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414)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414화(415/674)
EP.415 폐관수련 – 6
“유키코도 당정처럼 독문무공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키코는 지난 며칠간 당가풍운을 탐독하며, 내린 결심을 천소희에게 말했다.
“살수는 흔적을 남겨선 안 돼.”
“5호는 낭만이 없는 겁니다! 동영의 닌자들도 다중분신술이니, 바람 수리검이라느니, 번개 가르기니, 자신만의 오의가 있었던 겁니다!”
유키코는 동영의 닌자라도 된 듯 수인을 맺고는, 생전 본 적 없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뭐야 그게?”
“그런 게 있습니다! 적나찰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키코는 자신의 멋진 동작에도 천소희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원군을 요청하듯 단서월을 불렀다.
“뭐라고 하였느냐?”
단서월은 생각에 잠겨있느라, 대화 내용을 쫓지 못했다.
“적나찰 님.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며칠 안색이 어두워 보이는 겁니다!”
“무슨 일 있어?”
천소희도 조금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물었다.
“별일 아니다. 벌써 날이 어두워졌구나.”
단서월은 궁금해하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가로젓고는, 슬슬 파장해야 함을 알렸다.
“이만 가볼게.”
“오늘도 즐거운 당가풍운 이야기였습니다! 내일도 기대되는 겁니다!”
단서월은 제자와 설자가 자신에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 보고는, 이내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제자의 정인이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이라니.
제자에게 사랑한다고 편지를 보낸 지 얼마나 되지도 않았는데.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단서월이 강윤호에 대한 자세한 상황을 요구하자, 또 다른 소식이 날아들었다.
[임하연. 출신 불명. 분홍색 머리. 푸른 눈. 외모. 특상.]적나찰의 시선이 마지막 두 글자에 못 박혔다.
“외모가 특상?”
살막은 암살 대상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적기 때문에, 외모도 평가한다. 보통의 외모 평가는 상중하. 그런데 특상(特上)이라니.
적나찰도 놀라움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었다.
“제자와 비견될 정도의 외모라니…….”
특상은 정말로 특기할만한 외모여야 받는 평가다.
설자도 미인이지만, 살막의 평가로 치면 상급 정도에 불과하다. 아직 만개하지 않았음에도 가히 조선제일미라고 뽑아봄직한 제자의 외모 정도는 되어야 특상 취급을 받는다.
단서월은 그제야 상황이 얼추 파악되었다.
특상의 외모를 가진 여인이 제자의 정인과 동거 중이라니. 그게 사실이라면 아무리 제자의 정인이라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소식을 들었다간 가만히 있지 않을 터인데.”
당분간 의창에서 날아오는 소식을 알리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강윤호라는 자의 마음이 변심하진 않아야 할 터인데. 단서월은 간신히 길을 찾은 제자가 다시 길을 잃을까 봐 노심초사했다.
“적나찰 님. 의창에서 제자분께 편지가 왔습니다. 그리고 의창 지부장에게서 적나찰 님에게 전할 말도 가져왔습니다.”
단서월이 걱정에 방 안에서 서성이고 있자, 살수 하나가 문을 두들겼다.
“편지를 가져왔다고?”
다른 여자와 동거 중인데 편지를 보내다니.
“설마 이별 편지?”
단서월은 놀란 눈으로 강윤호의 편지를 바라보았다. 예상이 맞는다면 정말 큰 일이다. 만약 제자가 이 편지를 읽게 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럴 바엔 이 편지는 절대 제자에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그녀는 경계 어린 표정으로 강윤호의 편지를 바라보며, 의창 지부장이 자신에게 보내었다는 작은 서신을 읽었다.
[강윤호 공자도 대충 상황을 아니, 안심하고 편지만 보여주시면 됩니다.]“이게 무슨……?”
———-
“오빠가 다른 여자랑 살아?”
충격적인 소식이 천소희의 머리를 강타했다.
오빠가 또 다른 여자랑 같이 살고 있다니. 천소희는 도무지 믿기 힘든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키코 대 충격! 5호 같은 예쁜 연인을 놔두고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 남자! 혹시 호색한입니까!”
“그 여자. 누구야.”
천소희의 마음 속 강윤호에 대한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얼마 전에 사랑한다고 편지까지 보내준 오빠다. 윤호 오빠의 잘못일 리 없어. 오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야.
‘당가풍운의 당정과 같은 상황일 거야.’
분명 같이 사는 여자 잘못이다. 천소희도 당가풍운으로 교육받아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한 여자를 바라보아도, 유혹은 존재한다.
당정이 사천제일미 구숙정만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도, 살살 꼬리치는 두응향처럼. 분명 그 여자 잘못일 것이다.
두응향 같은 여자. 너 도대체 누구야. 천소희의 가슴 속에 끈적하고 거무튀튀한 것이 목소리를 타고 올라왔다.
“히이이익! 매, 매미 허물벗기의 술! 바, 발동입니다!”
“호들갑 떨지 말고 이걸 읽어보거라.”
단서월은 별거 아니라는 듯, 품속에서 편지 하나를 꺼내었다.
“이건?”
“네 오빠에게서 온 편지다.”
시작은 강윤호의 작은 의심이었다.
혹시 살막에서 자신의 근황을 소희에게 보고할지 모른다. 만약 소희가 자신의 소식을 전달받고 있다면? 임하연과의 동거 소식을 알게 되었다면?
강윤호가 천소희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는 무한으로 이동하기 전, 의창에 있을 때. 아직 임하연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였을 때라, 오해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강윤호는 빠른 사태 수습을 위하여, 천소희에게 바로 편지를 보내기로 했다.
“줘.”
천소희는 날카롭게 편지를 낚아챘다. 강윤호의 해명이 담긴 편지를 말이다.
[사랑하는 소희에게.]전과 같이 사랑한다고 쓰여있다. 다른 여자와 같이 살고 있는데도 사랑한다고 보내었다.
역시 무언가 사정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천살성의 마음속에 한 줄기 빛이 내리쬐었다.
물론 첫 문장도 강윤호의 계략이 담긴 것이었지만.
[소희야. 너도 신기해야 할 일이 있어 편지한다. 혹시 포목점 왕 아저씨 기억하고 있니? 얼마 전 왕 아저씨의 딸을 만나게 되었다.]“왕 아저씨?”
천소희는 의외의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고 있는 사람이더냐?”
“응. 오빠 은인.”
오빠가 매담자 일을 할 때 수없이 도와주던 사람이다. 천소희도 포목점의 남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강윤호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숨겨진 혼자만의 비밀이 아니라, 둘만 아는 공감대를 형성해서 경계심을 지운다.
천살성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사용한 방법이었으니까.
[견습 기녀인데 교방에서 도망쳤다더구나. 왕 아저씨와는 연을 끊었다며 퉁명스럽게 말하길래, 아무리 그래도 은인의 딸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 소희, 네 얼굴이 떠올랐단다.]“내 얼굴……?”
모르는 여자. 아니, 포목점 왕 아저씨 딸과 같이 사는데 왜 자기 얼굴이 떠올랐을까. 천소희는 강윤호의 편지에 계속 몰입했다.
[세상에 상처 입어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도움의 손길이 간절한 고양이 같은 모습이 말이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더구나. 너와 동갑이라서 그랬을까. 계속 소희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더구나. 그래서 도무지 모른 체할 수 없었다.]“내 생각이 나서?”
여자를 도와준 이유가 예뻐서도, 몸매가 좋아서도 아니다. 하물며 자신에 대한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떠올라서 도왔다.
천소희는 강윤호의 말에 이해가 조금 되면서도, 조금 못마땅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떠올라서라니. 그럼 자신 대신이라는 말이 아닌가.
강윤호는 천소희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로 치고 들어갔다.
[얼마나 툴툴대면서 일하는지. 보면 볼수록 의젓한 소희 생각만 나더구나. 소희가 훨씬 더 어른스러웠어.]편지에는 임하연보다 천소희가 나았다면서, 강윤호의 애정에 듬뿍 담긴 내용이 계속 이어졌다.
“헛! 5호가 웃습니다!”
천소희는 황급히 볼을 매만졌다.
[사업이 날로 번창하여 의창에 집을 따로 구했단다. 마침 빈방이 많이 남아, 오갈 데 없는 왕 아저씨의 딸에게 하나 주었다.]강윤호는 편지에 임하연은 단순히 왕 아저씨의 딸로, 천소희는 소희라는 애정이 어린 단어로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왜 같이 사는 거야.”
천소희는 사정은 알겠지만, 여전히 같이 산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었다. 강윤호도 그 점을 예측하고 내용을 이어 적었다.
[나중에 소희와 같이 살려고 큰 집을 샀는데, 은인의 딸에게 방 한 칸을 주는 게 어렵나 싶었다.]이슈는 이슈로 덮는다.
임하연에겐 고작 방 한 칸 내주는 것이지만, 천소희와는 둘이 같이 사는 것이다. 같은 말이지만 뜻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말이었다.
“오빠랑 같이 산다…….”
효과는 주효했다. 천소희는 자신도 모르게, 강윤호와 한집에서 사는 미래를 떠올렸으니까.
[작은 인연도 이렇게 기묘하게 얽히는데, 너와 나의 운명은 어떻겠느냐.]“오빠와 나의 운명.”
천소희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 책이 날로 유명해지는구나. 언제가 소희와 같은 집에 사는 날을 그리며, 우리의 집이 될 곳에서 편지를 보낸다. 건강하렴.]편지는 애정이 듬뿍 담긴 말로 끝맺음 되었지만, 천소희의 생각은 끝날 줄 몰랐다.
맞아. 거대한 중원에서 결국 다시 만나고 만 오빠와 나야. 나를 구해주기 위해 오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고작 포목점의 여자 따위랑 비교될 수 없는 운명이다.
“포목점 아저씨의 딸이었구나.”
천소희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듯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괜찮은 것 같다. 오빠의 은인이지 않은가. 거기에 자신이 기절시킨 여자들을 군말 없이 한숨 쉬면서 다 처리해준 남자다.
자신도 돈 한 푼 안 주고 부탁한 거니까. 딸에게 방 한 칸 내주는 것은 허락할만하다. 왜냐하면 강윤호가 편지했듯.
‘오빠의 운명은 나니까.’
천소희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읽었느냐?”
천소희는 스승의 질문에 편지를 소중히 챙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련하러 갈게.”
오빠는 이 시간에도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왔다고, 언제까지 쉬고 있을 순 없다.
천소희는 바로 연무장으로 향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엄청나게 화낼 줄 알았습니다!”
유키코는 놀란 표정으로 천소희가 열고 간 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천살성의 서방님이라는 건가…….”
단서월도 어안이 벙벙했다. 안심해도 된다고 했지만. 설마 저 아이가 투기 하나 부리지 않을 줄이야.
“여자와 동거한다는 사실을 알리고도 괜찮아한다니! 호필 작가는 편지도 잘 쓰나 봅니다!”
“저 아이를 어릴 적부터 가르친 나보다 더 저 아이를 잘 다루는 것 같구나.”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
“우리 적나찰 님 오셨군. 편지는 잘 받았나?”
살막주. 단세악은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온 여동생에게 물었다.
“편지 덕분에 제자의 작은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 말만 해. 의창 지부장이 다서회 회원이라, 내가 말하기 전부터 편의를 봐주고 있더라고.”
덕분에 신간도 잘 챙기고 있지. 단세악은 여동생의 어이없다는 반응에도 유쾌하게 웃었다.
“갑자기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로운 임무 때문에.”
적나찰은 막주의 입에서 나온 말에 대뜸 인상을 구겼다.
적나찰은 살막의 임무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임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줄 임무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막주, 제자는 얻은 성취를 가다듬을 때입니다. 기다려주시기로 하셨잖습니까.”
“너무 시작부터 인상 쓰지 마. 이쁜 얼굴로 연하라도 꼬셔서 조카 안겨주려면, 적나찰 시절 성격도 좀 가라앉힐 생각을 해야 한다니까.”
“나가겠습니다.”
적나찰은 더 이상 대화는 하지 않겠다는 듯 발걸음을 돌렸다.
“재미있는 의뢰들이 들어와서 이야기나 해주려는 거야.”
“재미있는 의뢰들?”
막주가 재미있는 의뢰 때문에 자신을 불렀다니. 적나찰은 궁금증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호위 의뢰인데 암살 위협에서 보호해달라네.”
막주는 서류 하나를 집으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살막에 호위 의뢰라니. 의뢰할 곳을 잘못 찾은 거 아닙니까?”
“본산에 올라올 만큼 매혹적인 액수였거든.”
“확실히 특이한 의뢰긴 하군요.”
살막의 의뢰비는 비싸다. 살수를 장기간 호위로 고용하겠다면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도대체 누가 그런 의뢰를 한단 말인가.
“다른 하나는 암살의뢰가 들어왔는데, 뒷감당이 문제긴 한데 액수도 상당해. 이것도 재밌어.”
“별다른 거 없는 의뢰지 않습니까?”
일상적인 의뢰지, 재미있는 의뢰는 아니었다.
막주는 적나찰의 물음에 웃으며, 양손에 각각 의뢰 서류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유쾌하다는 듯 그 서류를 사선으로 겹쳤다.
“이 두 의뢰가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거든.”
적나찰은 단번에 막주의 말을 이해했다.
“암살대상이자 호위대상?”
“맞아. 그러니 재미있는 거지. 심지어 둘 다 고액이야.”
살막의 막주가 고액이라고 할만한 의뢰. 심지어 호위와 암살 대상이라니. 적나찰도 사건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생각에,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누구입니까.”
“모용세가의 모용상아라고 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