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445)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445화(446/674)
EP.445 선언 – 9
“너! 방금! 허억! 내가 듣고! 왔는! 허억!”
얼마나 급하게 달려온 거야.
전길산은 내가 후계자 후보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튀어왔는지, 가쁜 숨을 좀처럼 다스리질 못했다.
“숨 좀 골라라. 평소에 간단한 무공 수련이라도 좀 하라니까. 맨날 술 처마시고 놀러 다니면 나이 먹고 훅 가는 거야.”
흥청망청 살다가 나이 먹고 건강 검진 좀 받으러 갔더니, 의사 선생이 굳은 얼굴로 말하는 거다.
一 지방간입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네요. 혈압도 조금 있으시고요. 운동을 꼭 하셔야 합니다. 혹시 근래에 환경변화라도 있으셨습니까?
一 평소처럼 살았는데요.
一 기름기 있는 음식 적게 먹고, 소금 덜 치고 밥도 한두 수저 적게 먹으십시오. 금주는 필수시고요.
그때야 가늘고 얇게 사는 게 불가능하구나. 나이 먹고 하는 운동이란 건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살려고 하는 거였구나.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이 자식아.
“내가 지금 그러게 생겼허억! 후우우우우.”
전길산은 숨을 헐떡이다 못해 넘어가려고 하자, 결국 자리에 앉아 심호흡하기 시작했다.
“차나 한잔 타 주마.”
화를 내러 왔어도 일단은 손님이니까.
나는 찬장에 있는 다기를 조심스레 꺼내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직접 차 끓여 먹는 건 오랜만이네. 매번 하연 소저가 끓여줬는데.
내가 다기에 물을 올리며 작은 감상에 빠져있으니, 숨을 다 고른 전길산의 말문이 트였다.
“사실이냐.”
무슨 사실. 내가 굳이 물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됐다.”
찻잎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지.”
전길산은 심증은 있었는데 드디어 물증을 잡은 사람처럼 말했다.
“뭐가.”
“너 아니면 죽고 못 살 것 같은 여자를 멀리 보내고도 별 반응이 없었잖아! 분명히 그 정도 사건이라면 이 형님이랑 술로 밤을 지새워야 정상이었을 텐데! 어쩐지 너무나도 태연해하다니! 승계 구도에 방해되는 여인부터 일단 외할아버지의 시야에서 치우고, 시작해야 한다는 속셈이었어!”
전길산은 마치 죽은 사람 다섯으로 불탄 시신 여섯 개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깨달아, 알리바이를 푼 명탐정처럼,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하아.”
넌 어디 탐정 사무소는 개업 못 하겠다.
“한숨으로 무마하려 들지 마라! 날 속이다니! 이 빌어먹을 놈!”
“속이긴 내가 널 언제 속였다고 그러냐.”
“무섭다! 무서운 놈인 건 알고 있었지만, 알수록 더더욱 무서운 놈이야!!!”
전길산은 경악 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전길산,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한번 보고 그만인 사이였으면, 옛날처럼 겁박하고 다시는 보지 말자 할 텐데. 지금은 나의 든든한 돈줄이다.
호필 영입 사건 때도 그렇고, 배달 객잔 사업 인수하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전부 실패로 돌아갔지만, 안목은 좋은 녀석이다.
최근에도 목 좋은 곳만 골라서 가맹점을 2곳이나 운영하고 있으니까. 덕분에 알뜰살뜰 매주 현금과 전표를 꽂아주고 있다.
‘만약 제갈 소저와 결혼하게 되면 전길산이 내 처남이 되는 거지.’
암담한 일이네. 하지만 인척 관계로 엮이게 된다면 굳이 척질 필요는 없다.
전길산을 회유해야 한다.
혈연, 지연, 학연이 기본인 세상. 혈연은 기대할 수 없어도, 인척 관계는 앞으로 기대할 수 있으니까.
다행히 생각해둔 방법은 있었다.
“나도 며칠 전에 들었다. 만금전주께서 갑자기 나보고 후계자 시험을 보라시더라.”
시작은 내 자의가 아니라는 어필부터.
나는 일부러 혀를 차며,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후계자 자격이 장난 같냐?”
“너희 외할아버지잖아.”
“아…….”
전길산의 얼굴에 아차 하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역시 가족들에게도 만만치 않은 어르신이셔.
“사업 보고하러 갔다가 흡족해하시길래, 이제 지긋지긋한 시험도 끝이고 다서각도 돌려받는구나 했다. 설마 갑자기 후계자 시험을 보라고 하실 줄이야.”
“흡족해했다고? 외할아버지가……?”
나는 어리둥절해하는 전길산 앞에 은근슬쩍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너도 외할아버지라서 알지 않느냐. 그 영감님, 종잡을 수 없는 거.
확실하게 어필했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통과면 통과지 다음 관문으로 넘어가는 게 어디 있냐.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너에게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만금전주님 저택 나오자마자 네 매장부터 간 거다.”
너를 속이려고 했다고? 천만에. 내가 사실 너를 가깝게 생각해서, 너에게 먼저 고민 상담을 하려고 했었다. 확실하게 어필한다.
실상은 그냥 가는 길에 들른 거지만.
“네가 그런 적이 있다고? 언제?”
“왜 얼마 전에 네 녀석이 왜 죽상이냐고 물어봤잖아.”
“죽상? 언제지……. 아! 너 새끼 나랑 매향이 만나러 가자고 해놓고 갑자기 마음 바꾼 날?!”
“내가 언제 그랬냐.”
“네 놈 때문에 매향이 손 한번 만져보려다가 퇴짜맞고, 더 이상 예약하지 말라고 해서 얼마나 억울했는지 알아?!”
“…….”
그게 왜 내 책임이냐.
“내가 최애를 매향이 말고 다른 기녀로 갈아타려고 해서 망정이지. 아무튼, 며칠 전에 들은 거란 말이지…….”
전길산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찾으려는 듯, 내 면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열심히 찾아봐라. 찾을 수 있나.
이 녀석이 갑자기 내일부터는 우리 적이다! 외치고 돌아가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덜 서운하게 해어지는 게 사람 사는 일이 아닌가.
갑자기 가맹점 사업 접고,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척만 지지 않으면 된다.
“강윤호.”
전길산은 한참을 살피더니 어울리지도 않는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왜.”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내 의지를 물어보는 건가.
“끝까지 가야지.”
나도 결연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내 사정을 설명했으니, 후계자 싸움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에게 거부권이 없을 뿐이다. 억지로 하는 거야. 허울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나랑 척을 져도 말이냐?”
고개를 끄덕였다.
“넌 뒤가 있지만, 나는 없으니까.”
“뒤가 없다고?”
“너는 후계자 시험에 떨어져도 크게 손해 볼 게 없잖아. 만금전주님의 외손자인 건 바뀌지 않으니까. 무한에서 잘나가는 도련님의 인생이 크게 달라질 건 없는 거지.”
“그러는 너도.”
“난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끝이다.”
들고 있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전길산과 일부러 눈을 마주쳤다.
“끝이라고?”
“너에게는 기회겠지만, 난 낭떠러지에 매달려 동아줄을 붙잡고 있거든. 그리고 칼은 네 할아버지가 쥐고 있지.”
의창 다서각은 만금전주가 저당 잡고 있고, 내 사업체도 만금전주의 돈으로 이룬 것이다. 하나 남은 무한 다서각도 제갈 소저의 것.
만금전주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게 사라진다.
전길산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흐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 할아버지가 동아줄을 자르기 전에, 네 할아버지에게 한 방 먹이러 기어 올라가는 것뿐이다.”
“하! 우리 할아버지에게 한 방 먹이겠다고?”
“할 수만 있다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은근슬쩍 나와 전길산 사이에 적 아닌 적을 만들어, 작은 유대감을 조성하면서 말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내 피치 못할 사정은 설명했다. 그래도 척을 져야 한다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네 녀석과 경쟁해야 한다면 할 거니까.
내 뜻이 이해되었을까.
전길산은 그제야 내가 탄 차를 마셨다.
“네 놈이 탄 차, 맛없다.”
전길산은 말없이 차를 다 들이켜더니, 짧은 감상을 남겼다.
“네가 타 먹든가.”
같은 찻잎인데 왜 하연 소저가 탄 것보다 맛없지.
“그래도 잘 마셨다.”
전길산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려고?”
“날 또 안 속였으면 됐다.”
“…….”
설마 화난 포인트가 후계자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이었나. 하긴, 전길산과의 첫 만남은 이 녀석을 속여 넘기는 거였으니까.
“아, 맞다.”
전길산은 문을 열고는, 깜빡했다는 듯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우리 어머니는 너 누군지 알고 있어서, 욕은 안 했다더라. 나간다!”
이모들이 너무 많아서 누군지도 몰라.
전길산은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손을 흔들고는, 급히 왔을 때처럼 훌쩍 떠나버렸다.
————————
“오셨군요! 다들 기다리고 있으십니다.”
이틀 뒤. 만금전주의 저택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금전주의 후계자 후보 모임이 열렸다.
“제갈 소저. 같이 들어가시지요.”
“네에에에.”
제갈 소저는 긴장이 되는 건지, 일주일 치 기력을 쓴 게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지, 힘없이 내 소매를 붙잡았다.
“강 공자님과 제갈향 아가씨. 드십니다!”
문이 열리자, 만금전주와 딸들, 그리고 후계자 후보들이 보였다.
“저, 저 녀석이……!”
“정말로 검은 머리잖아?”
“할아버지는 도대체 왜 오랑…….”
“입조심 하라고 하지 않았니.”
“하지만 어머니. 저 검은 머리가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늦게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많기도 하다.
만금전주의 자식은 원래 12명이다. 유일한 외아들이 죽었고, 후계자 후보 중 하나가 불의의 사고를 당했으니, 이 자리에 모인 후계자 후보는 총 열 명이었다.
만금전주 외손자들 악명은 귀가 따갑게 듣긴 했지만 말이야. 정말 살면서 사건 사고를 끊임없이 일으켰을 것처럼 생겼네.
“왔느냐.”
후계자인지 양아치인지 모를 놈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만금전주의 앞에 도착했다.
“배려해주신 덕에 편안히 왔습니다.”
어쩐지 마차를 보내주겠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일부러 늦게 도착하게 해서 주목을 다 받게 해주시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금전주도 내 눈빛으로 생각을 알아챘는지,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들 너만 보고 있구나.”
나는 만금전주의 말에 몸을 돌려, 포권을 취한 다음 쏟아지는 시선을 상대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윤호라고 합니다. 제갈 소저와 함께 작은 사업체를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 옆에 있던 제갈 소저도 덩달아 인사했다.
“하. 동네 객잔이 무슨 사업체라고.”
작은 비웃음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후계자 후보라고 뒷조사를 조금 했나 보네.
상관없다.
난 만금전주가 직접 선택한 후계자 후보니까.
“다른 분들에 비해 분명 늦게 도착하였습니다. 하지만 시작점에 선 이상 최선을 다해 달려보겠습니다.”
나는 무림인처럼 기도를 발출해 존재감을 내뿜을 순 없다. 그러나 얼마든지 사람을 커 보이게 만들어낼 수 있다.
당당하게 말한다.
바른 자세와 발성. 패기 담긴 표정과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내는 시선 처리까지. 거목이 될 나무처럼 당당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거다.
“윽.”
어디선가 기가 질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칫. 뻔뻔하게.”
“하아…….”
전길산, 넌 왜 한숨이야.
“흘흘. 가서 자리에 앉거라.”
“강 공자님. 제갈 아가씨. 따라오시지요.”
“다 모였구나. 이제 전에 말했던 대로 하겠다.”
만금전주는 나와 제갈 소저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 전에 말했던 이야기라고 하심은 설마…….”
설마 결석한 사이에 숙제가 있었나!
“그래. 첫 번째 시험의 통과자를 정하겠다. 총관!”
다행이네. 편입 추천 받았는데, 이건 통과지.
“네. 만금전주님. 반년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의 통과자는 총 여섯입니다.”
“여섯?!”
“여섯 명이라고? 아버지! 한 번에 거의 반으로 줄이신다고요?”
“네 아비보다 먼저 귀가 먹은 것이냐? 아니면 아비에게 항의하려는 것이냐?”
“…….”
만금전주의 위엄에 아무도 답하지 못하였다.
“총관. 발표하게.”
“네! 먼저 강윤호 공자! 배달 객잔 사업으로 합격!”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향해 작게 인사했다.
“다음은! 송겸 공자!”
“겸아! 합격이구나!”
“네 어머니!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다음은!”
분위기가 대학 합격 발표날 같네. 하나하나 호명될 때마다 희비 교차한다.
“마지막!”
어느새 5명이 불리고,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다.
“제발!”
“제에에발!”
“아버지!”
총관은 거의 울기 직전인 모임 장소를 한번 천천히 훑더니, 담담하게 마지막 합격자를 발표했다.
“전길산 공자!”
“흐으으.”
오. 전길산이 되었구나. 전길산은 고개를 떨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아아아!”
“안돼에에에!”
“길산아. 어서 일어나야지!”
전길산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녀석의 등을 두들겼다. 누군가 했더니 저 아줌마였구나. 닮은 것도 같네.
“전길산 공자?”
쟤 왜 안 일어나.
“외할아버지.”
전길산은 총관의 부름에 천천히 일어나더니, 굳은 표정으로 만금전주를 바라보았다.
“응? 할 말이 있느냐.”
“네.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전길산은 입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보거라.”
전길산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녀석이 크게 심호흡하자, 소란스러웠던 주변의 시선이 전길산에게 향했다.
무슨 일이 있나. 전길산은 바싹 마른 입맛을 다시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후계자 시험을 포기하겠습니다.”
“후계자 시험을 포기하겠다고?”
지금 뭐라고?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이 커졌다.
“네. 그리고 대신.”
“대신?”
전길산의 고개가 돌아간다.
무언가 확고한 결심을 했다는 듯, 그의 시선은 정확히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것은 외할아버지도, 자기 어머니도 아닌.
“강윤호를 지지하겠습니다.”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