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465)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465화(466/674)
EP.465 부탁 – 9
“으흫흫. 역시 마음의 안정엔 그림만 한 게 없어요.”
어두운 방 안. 조명 앞에서 은발벽안의 미녀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여인이 무슨 음모라도 꾸미는 것일까. 누군가 궁금해서 여인 주변을 바라본다면, 그녀의 앞에 여인의 키보다 긴 화폭이 펼쳐져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제갈향은 그림에 마지막 붓질을 하였다.
“풍운협객전의 운현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완성이에요.”
제갈향은 평소와는 다른 화풍의 그림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강 위에 오롯이 서 있는 운현. 심상 안의 모든 것은 운현의 것이었지만,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었고, 조력자였으며 친구였다.
제갈향은 한 무인이 거대한 강 위에서 한 걸음 내딛음으로써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끝이 없다는 묘사를 하는 데 성공했다.
“강 공자님에게 꼭 보여드려야겠어요.”
몇 날 며칠을 잠도 줄여가면서 그리길 잘했어요. 제갈향은 자신이 그리고서도 너무도 만족스러운 그림에 괜히 서 있는 위치를 바꿔가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 공자님에게 꼭 자랑해야겠어요. 그녀는 강윤호가 그림에 연신 감탄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강 공자님이 그림 한구석을 가리키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설명해드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서로 손가락끼리 부딪치고, 강 공자님이 뜨거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면.
“흫흫흫.”
제갈향은 결국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질 못했다.
빨리 보여드려야겠어요. 제갈향은 발칙한 상상에 어쩔 줄 몰라 하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러고는 이내 누군가의 발치에 멈추었다.
“아가씨. 그러면 이제 청소해도 되겠습니까?”
시비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앟?! 어, 언제?”
몇 날 며칠 집중하고 계시니, 청소하는 것도 모르시더라고요. 시비는 당황한 주인을 향해 말을 할까 하다가, 업무적인 표정으로 창가로 다가갔다.
“어둠의 자식도 아니고 환기는 시키시고 작업하셔야죠.”
시비는 창의 가림막을 한 번에 걷어내었다.
“으아아아앟앟! 성불할 것 같아요!”
햇빛이 너무 눈부셔요. 제갈향이 눈을 가리며 괴로워했지만, 시비는 가차 없었다.
“강 공자님이 며칠 만에 일찍 퇴근하셨는데, 안 만나러 가셔도 괜찮으신 건가요? 요새 관아랑 기루에 계속 왔다 갔다가 하시면서 무슨 일을 하시고 계셨던 것 같던데요.”
“기루요……?”
제갈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비에게 물었다.
“못 들으셨나요?”
“기루……. 기루……? 기녀……?! 앟?!”
생각났어요. 제갈향은 망치를 맞은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가씨?”
왜 기억해내지 못한 거죠. 제갈향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괴로워했다.
사실 설명을 제대로 안 한 강윤호의 잘못도 있었다. 그녀가 너무 충격받은 얼굴이라, 대충 얼버무리고 며칠 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뛰쳐나가 버렸으니까.
“강 공자님이 며칠 쉬라고 해서 너무 기분냈잖아요오오오오.”
얼마 만에 지긋지긋한 서류 지옥에서 해방되었는가.
강윤호를 돕는다는 미명하에 참고 있었던 예술혼이라고 쓰고 덕질혼이라 부르는 감정이, 너무 한순간에 분출되어버리고 말았다. 설마 다 잊어버리고 며칠 동안 그림에만 몰두해버릴 줄이야.
제갈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안 돼요. 지금 그럼 강 공자님은 기루에 드나들고 계신 건가요. 설마 기녀랑 놀고 있으신 건 아니겠죠.
제갈향은 떠올리기도 끔찍한 강윤호의 모습을 상상했다.
一 후훗. 집에 약혼녀가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一 재미없는 그녀보다 그대가 날 즐겁게 하는군.
一 어머.
“으아아아앙앟앟!! 그것만은!!!”
위가 쓰려요. 심장이 아파요. 정실 독점 위기잖아요. 제갈향은 괴로움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아가씨? 강 공자님에게 몸이 아프시다고 할까요?”
“아니요오오오. 가, 가볼게요오오!”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제갈향은 뒹구르르 몸을 굴려 방문 앞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오해가 있는 걸 거예요.’
그녀는 소매 끝이 먹물투성인 것도 신경 쓰지 않고는, 서둘러 거실로 뛰쳐나갔다.
분명 자신의 괜한 걱정이리라.
급한 눈치셨다. 제대로 듣지는 못했지만, 무슨 업무 때문이라고 하셨다. 제갈향이 거실 쪽으로 다가가니, 강윤호와 전길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데려온 거야?”
“뒷말 나오기 전에 도장 찍고 바로 데려왔지.”
“이 상황에서 퇴근 시간까지 기다려달라는 건 무슨 경우야.”
“제가 사랑하는 분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괜찮다고 하잖아. 기다려보자.”
누구지. 여자 목소리인데. 제갈향은 처음 들어본 목소리에 조심히 거실 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강 공자님?”
“제갈 소저.”
“누구시죠오?”
제갈향은 한눈에 보아도 미인인 여인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내며, 강윤호에게 물었다.
“아! 일전에 말했던 임신한 기녀입니다. 제가 결국 낙적시켜서 데려왔습니다.”
“……네에?”
제갈향이 다시 한번 얼어붙었다.
**
“도, 도장을 찍겠소! 홍란이를 낙적시켜줄 테니, 감찰어사께 죄송하다고, 천것이 욕심이 너무 과했었다고, 부디 말 좀 잘해주시오.”
협상이 끝났으니, 홍란이의 기적 문제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내가 내민 조건이 가혹한 수준도 아니었고, 며칠 옥살이를 한 혜월루주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기에 수월하게 서류에 도장까지 찍을 수 있다.
마지막에 사소한 오해를 사는 문제가 있었지만.
“정 오라버니!”
“홍란아.”
일 년에 한 번, 칠월칠석에 만나는 견우직녀처럼 간신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분위기는 매우 애틋했다.
“오라버니! 죄송해요. 정말, 저 때문에……. 저 같은 것 때문에……”
“네 마음을 눈치채지 못한 내 잘못이지, 어찌 그게 네 잘못이겠느냐. 그런 말 하지 말거라.”
“오라버니!”
“고향에 돌아가면 정식으로 부모님에게 인사드리자꾸나. ……읍? 으으읍!”
오우. 찐하네.
생각해보니까 홍란이가 잡아먹힌 게 아니라 잡아먹은 거였지. 홍란이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듯, 감찰어사 얼굴 여기저기에 영역표시를 해대었다.
자리를 비켜줄까. 잠시 고민해보았으나, 이대로 방을 나갔다간 잘못하면 전 연령에서 성인 연령으로 바뀔 것 같아, 염장질을 견디는 까마귀의 마음으로 버티었다.
“크흠. 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정문원은 아직 한참 모자란 눈치의 홍란이를 간신히 떼어내고는, 내 앞자리에 앉았다.
“입 주변부터 닦으십시오.”
반들반들 윤이 납니다.
“이, 이런!”
당황한 감찰어사는 소매로 서둘러 입 주변을 닦았다.
“며칠간 바삐 움직인 보람이 있는 장면이었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네…….”
감찰어사는 당황한 표정을 정리하고는,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적 가격은 기존의 절반. 대신 양조장을 불하해주는 걸로 끝냈습니다. 감찰어사님의 이름에 어떠한 누도 끼치지 않을 겁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정말 자네가 아니었으면…….”
정문원은 양손으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작은 꾀를 가지고 며칠 열심히 돌아다녔을 뿐입니다. 자, 여기 기적 값을 치르고 돌려받은 돈입니다.”
탁자 위에 전표와 돈이 올려졌다. 감찰어사가 홍란이를 구하기 위해 처분한 재산과 만금전장에게 빌린 돈 등을 합하니, 상당한 액수가 올려졌다.
‘이제 돈을 갚으라고 하긴 해야 하는데.’
문제는 연체이자다.
저리로 빌렸다고는 하나, 만기일이 지나버렸다. 탁자 위에 많은 돈이 올려져 있지만,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면 그리 많지 않은 돈만이 남을 것이다.
사실상 감찰어사가 빈털터리가 된다는 건데.
“만금전장에게 빌린 돈은 갚아야지. 자네 덕분에 원금과 밀린 이자까지 충분히 치를 수 있겠군.”
내가 돈을 보면서 고민한다는 것을 깨달은 걸까. 정문원은 흔쾌히 탁자 위의 돈을 나에게 밀어주었다.
“밀린 이자까지 계산하면 남은 돈이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탁자 위의 돈으로도 찾지 못할 뻔했던 내 소중한 여인과 아이를 자네가 되찾아와 주었네. 뭘 그리 미안해하나.”
정문원은 행복한 얼굴로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홍란을 슬쩍 바라보며 말했다.
“감찰어사 나리께서 괜찮으시다면 괜찮겠지만…….”
사실 주기 싫다고 해도 가져갈 테지만. 마지막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라면 겸양과 예의는 필요한 법 아니겠습니까.
나는 돈을 가져가야 하지만, 감찰어사가 걱정되어서 망설이고 있다는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생활하는 데는 녹봉으로 충분하네. 홍란이와 무한에서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거야. 거기에 내가 홀로 무한에 임관하여 돈을 구하러 다녔을 뿐, 고향에 있는 가산은 넉넉하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네.”
“그러시면 다행입니다만.”
해외 파견에 가져온 돈이 부족한 거였지, 고향 집은 잘사나 보네. 그러면 걱정 없지.
“다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혹시 갑자기 말 바꾸실 생각이라면 곤란합니다.
정문원의 어깨가 갑자기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듯 축 처졌다. 설마 독신에서 하루아침 만에 애 딸린 가장이 되어서 그런 건 아닐 테고.
무슨 걱정일까. 설마 돈 못 주겠다는 말이 안 나오길 빌며 정문원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내가 이제 알면 무슨 경을 칠지…….”
“네……? 아! 결혼하셨었군요.”
감찰어사 정문원은 30대. 잘나가는 감찰어사가 결혼은 안 했을 리 만무했다.
“오라버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주인께 미움받지 않도록 제가 열심히 할게요.”
홍란은 쪼르르 다가와 걱정이 역력한 감찰어사의 손을 붙잡았다.
“마누라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일세.”
“그……. 고의가 아니었으니, 이해해주실 겁니다.”
동네 약재상도 잘 벌면 아내 서너 명은 두는 세상인데. 대과에 젊은 나이에 합격해서 어사가 된 사람인데 괜찮겠지.
“뒤통수만 안 터지면 다행일 것 같네…….”
정문원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하…….”
잡혀 사셨구나.
“자네도 그러고 보니 약혼녀만 셋이라던데?”
“네?! 오라버니, 사실인가요?”
“도대체 어느 전씨 성을 가진 망나니 놈이 그런 것까지 알려준 겁니까.”
화린이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길산 이 자식.
“너무 탓하지 말게. 그 친구가 저놈도 벌써 셋이니 둘 정돈 괜찮을 거라고 안심하라고 했었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셋이 아닌 다섯입니다. 거기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다.
“혹시 나에게 해줄 좋은 조언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겠나?”
정문원은 미래가 너무나도 두렵다는 듯 내 손까지 잡아가며,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조언이라.
남편이 해외 출장을 갔는데 현지처 만들고, 가서 고생하지 말고 고기반찬에 몸 건강히 지내라고 보낸 돈을 탈탈 털어가면서 기적을 사준 상황인데요.
내가 해줄 조언은 하나뿐이었다.
“죽을 날을 최대한 뒤로 미루시지요…….”
“아…….”
나도 남 걱정할 때가 아니거든요.
———
“감찰어사 나리. 액수 확인했습니다. 서류에 도장만 찍으시면 문제없이 만금전장으로 보내겠습니다.”
나는 감찰어사와 함께 차용증과 서류, 돈 액수를 확인하고는, 도장을 찍고 만금전장으로 보낼 상자에 넣었다.
감찰어사는 홍란이 기적부터 채무변제까지 모든 서류 작업이 끝나자, 후련한 듯 웃었다.
“정말 고맙네. 이 은혜는 정말 잊지 않겠네.”
감찰어사가 양손으로 내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이자, 홍란이도 다가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강 포쾌님. 정말 제 일생의 은인이십니다. 저도 은혜를 잊지 않고, 배 속의 아이에게도 항상 강 포쾌님 같은 분이 되라고 가르치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만금전주님과 감찰어사님의 부탁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두 번째 성공이다.
하나도 힘들 것 같았던 불가 장부에서 어느새 두 명이나 성공했다. 돈을 받아낸 상대도 삼안검 조철과 감찰어사 정문원이니, 누구에게 말해도 놀랄 것이다.
다만, 조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나만 더 성공하면 완벽할 것 같은데.’
남은 종료 일자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으나, 이젠 큰 문제가 가로막고 있다.
‘남은 사람들은 가능성이 너무 희박해.’
내가 불가 장부를 가능성 순으로 정리했을 때 1순위는 조철, 2순위는 정문원이었다. 나머지는 순위를 정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로 불가(不可) 난이도였으니까.
여기서 만족해야 하나.
시험 결과 날 갑자기 수십 개의 악성 채무자들의 돈을 받아오는 놈이 있다면, 곤란할 것 같은데.
‘하나 더 받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사실 방법이 있다.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면 말이다.
“무슨 고민이 있나 보군.”
너무 길게 고민했나. 내 표정이 굳어져 있는 걸 눈치챘는지, 정문원이 나에게 물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서둘러 표정을 풀고 웃었지만, 정문원의 표정이 오히려 진지해졌다.
“우리 사이에 서운하게 이러긴가?”
“네?”
“자네가 내 자식과 부인을 구해주었는데, 자네 고민 하나 들어주지 못하겠나.”
“입 밖으로 낼 만한 고민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연신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감찰어사는 포기할 기색이 아니었다.
“시종일관 나를 보고 고민하고 있으니. 나에게 볼일이 있다는 뜻이겠군.”
“…….”
“자네가 입 밖으로 낼 수 없다고 했으니, 필시 어려운 부탁이겠지.”
“하하.”
눈치가 빠르시네. 차마 부정하지 못하고 멋쩍게 웃었다.
“나의 이름이 필요한 일인가.”
정문원은, 아니 감찰어사 정문원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네. 감찰어사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일인가.”
“감찰어사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나의 이름을 방패로 사용해야 하는 일인가.”
“네. 조금 곤경에 처하실 수 있습니다.”
내 계획을 실행하려면, 호랑이 가죽을 빌려야 한다. 청백리인 감찰어사가 쉽게 빌려줄까.
정문원은 내 눈을 한동안 지그시 바라보았다.
“좋군.”
그러고는 흔쾌히 웃음 지었다.
“네?”
“사용하게. 내 이번에 자네의 방패가 되어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