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467)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467화(468/674)
EP.467 제지소 – 1
감찰어사가 기꺼이 방패가 되어주기로 약조했다.
“문제는 산더미인데, 풀어볼 사람은 하나뿐이네.”
불가 장부 명단에서 돈을 추심하기 위한 최고의 패가 마련되었다.
누구에게서 돈을 돌려받아 볼 것인가. 어떻게 받을 것인가. 신중하게 고민할 차례였다.
“매제가 고생이 많아.”
전길산은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불가 장부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나에게 말을 건넸다.
“이젠 아예 저택으로 출근하는 거냐.”
점점 오는 시간이 빨라지고 있잖아. 나중에는 아침밥도 달라고 할 판이네.
“사람이 쉴 때는 쉬어야지. 내가 요새 일을 너무 하는 것 같아. 삼안검에 이어서 감찰어사까지. 이 몸이 사실상 1등 공신 아니냐. 이러다가 전길산이 아니라 장자방이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니까.”
전길산의 어깨가 하늘로 솟구칠 것 같다. 너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차를 마시고 있으니, 도움이 안 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왜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걸까.
“결국 놀려고 온 거잖아.”
“술, 도박보다 더 재미있는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데, 여기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겠냐.”
전길산은 내 쏘아붙이는 말에 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원하게 인정해버렸다.
“……문제네. 문제야.”
“내 문제 말고 일단 저 문제부터 좀 해결해봐.”
전길산은 찻잔을 든 채, 난처하다는 듯 나에게 조심히 말을 건넸다. 아. 그 문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전길산이 조심히 곁눈질한 거실 한구석에.
“으으읗……. 아니. 아무리 그래도요. 아니에요. 제 잘못인 게. 아무리 그래도요오오.”
제갈 소저가 말 걸기 힘든 음울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쟤는 갑자기 왜 저래?”
전길산은 자기 사촌 동생이지만 도통 행동을 이해 못 하겠다고 말하며, 나에게 물었다.
“그게……. 감찰어사 가고 나서 사건 설명해줬는데 말이야.”
감찰어사 사건도 잘 해결되었겠다.
정면 돌파부터 시작해서, 전길산의 활약, 강 포쾌의 등장, 손에 땀을 쥐는 투신 시도 막기에, 협박과 협상까지.
내 눈부신 활약 설명에 제갈 소저의 좋은 반응을 기대했는데 말이야. 잘하셨네요. 칭찬하고서는 어제부터 묘하게 저기압이다.
“그걸 시시콜콜 다 말했어?”
전길산은 기가 찬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왜?”
“쯧쯧. 이게 여심을 모르네. 네가 기루 들락거리면서 화월루주 종아리도 주물럭거리고 얼굴로 부비부비하는 걸 듣는 향이의 마음도 생각 안 한 거야?”
“개소리할래?”
지금 누구 허벅지를 주물럭거렸다고 그러는 거야. 할머니 같은 분이라니까. 이 자식이 큰일 날 소리를 하네.
“왜? 거짓말 같냐.”
전길산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반문했다.
“진짜……?”
맞다. 이 자식. 기절한 척 깨어있었다고 했지. 설마 내가 기절한 사이에 무슨 실수라도 저지른 건가.
“글쎄?”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전길산은 의미 모를 썩은 웃음을 지었다.
아닐 거야. 맞아도 아닐 거야. 괜히 더 물어봤다간 전길산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것 같아,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아무튼 일 때문이었잖아.”
내가 항변하자, 전길산은 한숨을 내쉬고는 제갈 소저가 듣지 못하게 내 귀를 잡아당겼다.
“남녀관계에서는 솔직한 게 꼭 답은 아니다. 일이고 뭐고 집에 약혼녀 놔두고 기루 들락거렸다고 당당히 말하는 걸 어느 약혼녀가 좋아하냐.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될 일인데 그걸 또 열심히 말했어?”
내가 본의 아니게 여자 앞에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한 건가.
사나이 강윤호. 여심에 있어서 성공하는 법은 몰라도, 실패하는 법은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항상 고백에서 입구 컷이라, 남녀 간의 고백 이후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
“제갈 소저.”
충격이 컸지만, 전길산의 말에 바로 납득하고는 실수를 바로잡고자 제갈 소저에게 다가갔다.
“으으읗……. 엏?!”
제갈 소저는 의미불명의 신음을 내뱉다가, 내가 다가가자 당황한 얼굴로 일어났다.
“제가 세심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사과했다.
“네에……?”
“아무리 일 때문이었다고는 하나, 제갈 소저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죄. 욕을 먹어 마땅합니다.”
내 성공에 도취하여, 여자의 복잡 미묘한 마음을 알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하연 소저가 매번 기루를 갈 때면, 같이 가자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혼자 가도 된다고 했을 때도, 하연 소저가 꼭 따라붙길래. 기문의 일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는데. 두 여인 사이에 아무래도 이야기가 오갔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해된다.
제갈 소저도 분명 일이니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건 알지만, 묘하게 불편해했겠지. 제갈 소저 성격상 속으로 끙끙 앓으면 알았지, 지적할 리도 없고 말이야.
“네? 네에? 네네?! 그, 그런 게 아니에요오!”
제갈 소저는 내 말에 손을 꽉 취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저 때문에 기분 상하신 게 아니십니까?”
기루 가서 마음이 불편하게 아니었어?
“아……. 그게 아니라요오오.”
제갈 소저는 내 질문에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
무슨 일이지. 내가 궁금한 얼굴로 답을 기다리자, 제갈 소저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부끄러운 듯 입을 열었다.
“이, 이번 일에 아무런 도움이 못 되어서요오오.”
“아하.”
“하, 하연 언니도 가고, 제가 내ㅈ 아닣! 아무튼 잘 도와드려야 하는데. 강 공자님만 너무 고생하신 거 같아서요오오오.”
제갈 소저는 미안한 듯 어깨가 축 내려갔다.
그런 이유였구나. 나는 뒤에서 나도 고생했는데라는 말은 무시하고는, 제갈 소저를 향해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일부러 쉬게 해드리려고 한 거지, 제갈 소저가 도움이 안 되신 게 아닙니다.”
“그래도요.”
나는 작은 잘못을 저질렀을 뿐인데도 의기소침해하는 강아지 같은 제갈 소저의 표정에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전길산만 없었으면 왠지 그대로 꼭 안아줬을 것 같다.
내가 이대로 잘못 없다고 계속 말해도, 제갈 소저의 성격상 자책감에 계속 의기소침해질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하지.
좋아. 방법이 있다.
“사실 며칠 조금 서운하긴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돌리며 조금 삐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그런가요.”
이런. 내가 한마디 했다고 제갈 소저의 고개가 땅바닥으로 쓰러질 것 같다.
바로 무릎을 굽히자. 고개를 숙인 제갈 소저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퇴근하고 제갈 소저가 반겨주는 얼굴을 보는 게 낙이었는데. 며칠 제 낙을 하나 없애셨으니까요.”
눈이 마주친 제갈 소저를 향해 장난기 머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엏?! 그, 그, 그건!”
어딜 화들짝 놀라 도망가려고 그러십니까. 바로 손을 붙잡았다.
“제겐 제갈 소저의 웃는 얼굴이 저 녀석보다 수십 배 더 도움이 되는걸요.”
나는 손을 잡혀 얼어붙은 제갈 소저와 계속 시선을 교환하며, 뒤에 있는 전길산을 엄지로 가리켰다.
“그, 그런가요?”
반신반의하는 그녀를 바로 긍정해주었다.
“네. 정말입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집에 들어가 엄지발가락으로 컴퓨터를 켜는 삶을 살다가, 누군가가 불이 켜진 문앞에서 나를 웃는 얼굴로 기다려주는 삶으로 바뀌게 된 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를 것이다.
“그……. 둘 다 너무 쉽게 인정해버리면 나도 좀 상처받는데.”
전가놈은 조용히 해.
제갈 소저의 얼굴에 묘한 화색이 돈다. 역시 효과가 있나. 그렇다면 다음 단계다.
“앟?!”
묘하게 웃을락 말락 하는 제갈 소저의 손을 잡아, 강강술래를 하듯 빙빙 돌았다.
“제갈 소저 웃는 얼굴 최고!”
기분을 한껏 끌어올려 제갈 소저를 긍정해주자.
“네? 앟! 그, 그정도는 아니에요오오오.”
맞아요. 그리고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어요.
“삼안검 일등 공신! 우리 집 일등 공신!!!”
“아니. 저 같은 게 뭘 했다고요오오오.”
제갈 소저의 입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제갈 소저 최고! 그림도 잘 그려! 머리도 좋아! 웃는 얼굴도 예뻐! 최고! 최고!”
“앟! 놓아주세요! 흐흫!”
입과 달리 손은 솔직한데요. 제갈 소저는 놓지 않겠다는 듯 손을 꼭 붙잡았다.
무한 긍정.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타인의 작은 행동에도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에겐, 무한 긍정이 최고인 법이다.
작은 행동도 긍정해주고, 큰 행동은 무한 칭찬해준다. 항상 고마움을 표현하면 그것만으로도 기운차게 살아갈 수 있다.
“우흐흐흫! 완전 부활이에요.”
결국, 제갈 소저의 얼굴에 화사한 웃음꽃이 피었다.
“이제 밖에서 같이 돌아다니면 더 최고!”
“그,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요.”
바로 정색했다.
“아…….”
거기까진 안 되는 겁니까.
전길산은 그 모습에 배를 잡고 웃으며 말했다.
“큭큭. 너는 그냥 그대로 융중산 가도 되겠다. 제갈세가에 계신 이모가 버선발로 반기실 거야.”
——
“강 회주님. 제지소 문제는 어찌할까요.”
아침 문제도 해결했으니, 이제 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총무가 저택 집무실에 찾아와, 며칠 전에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를 물었다.
“의창에서 다른 업체를 통해 사는 건?”
“무한에서 직접 사서 보내는 것보다 훨씬 비쌀 겁니다.”
“일단 계약된 물량까지는 내놓으라고 보채봐. 시정잡배 놈들도 아니고 계약서대로는 해야 할 거 아냐.”
“어르고 달래면 어떻게든 의창으로 가는 이번 표행에 물량을 보낼 수는 있겠지만, 다음부터가 문제입니다. 다음 계약서를 쓰기 전에 사람을 만나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일단 늦지 않게 진행하도록 하지. 들어가 봐.”
“네. 돌아가 보겠습니다.”
“문제네. 문제야.”
이마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그냥 포승줄 챙겨! 깽판 한 번 더 치자.”
전길산은 기루에서의 깽판 맛을 못 잊었는지, 기회라는 듯 내게 제안했다.
“아서라. 명 포쾌가 가끔 해야 먹히는 거지, 부패 관리가 되면 본전도 못 건진다.”
내가 지금 감찰어사 실드. 선 선향. 100%의 경우 사용 가능을 들고 있어서 안 된다고.
“뭐 어때. 다 뒤집어엎은 다음에 대접 한번 받자. 난 매향이도 보고, 넌 화월루주 허벅지도 한 번 더 주물럭거리고 좋잖아?”
아니. 그러니까 안 했다니까. 왜 한 것처럼 몰아가.
“네? 화월루주요오?”
제갈 소저는 책상에서 서류를 처리하다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나는 바로 전길산을 쏘아 보았다.
一 한마디만 더하면 영원히 내쫓는다.
一 매제. 실수였네. 다음에 몰래 가세.
몰래 가도 문제라고.
“아. 그게……. 말이 그렇다고. 하하하.”
전길산은 필사의 웃는 얼굴로 얼버무렸지만, 제갈 소저의 눈에 일말의 불안한 시선이 사라지지 않았다.
“제갈 소저. 저번에 불가 장부 관련으로 부탁드렸던 명단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자리에서 일어나 전길산의 등을 한 대 때리고는 제갈 소저에게 웃으며 묻자, 그제야 제갈 소저는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요.”
위험했다.
“다음 상대 물색하려고? 감찰어사를 등에 업었으면 그냥 관리들에게 돈 내놓으라고 하면 그만 아니야?”
“아무 집에 쳐들어가서, 돈 내놔! 내 뒷배가 감찰어사다! 이럴 순 없잖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안 되는 거냐?”
“애초에 돈 갚아달라고 왔다고 하면 만나주지도 않을 거다. 난 검은 머리 오랑캐고 상대는 지체 높은 관리들이니까.”
무슨 오랑캐가 감찰어사를 운운하냐면서, 저택 문 앞까지 갔다가 바로 쫓겨나겠지.
“어떡하게.”
“내가 혹시나 해서 미리 해둔 작업이 있거든.”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제갈 소저가 준 서류를 흔들었다.
“조선인 향우회 사람들에게 미리 시키셨던 일이요오?”
“네. 맞습니다.”
삼안검 조철의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만약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경우를 대비해서 몇 가지 수를 써놓았다.
“뭔데.”
“제지소 문제랑 불가 장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거야.”
그중에 지금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뭐? 어떻게?”
“무한에 있는 제지소 주인들의 명단이다. 한번 봐봐.”
제갈 소저가 준 서류 중에 하나를 전길산에게 건넸다.
“빨간 색으로 왜 칠한 거야. 어?! 구죽?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빨간색으로 칠해준 상대는 이번 불가 장부의 마지막 목표.
내가 가진 신분인 포쾌와 감찰어사의 비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상대이자, 이번 시험의 결착을 지을 수 있는 상대.
“구, 구죽은 지주대인의 이름이에요오.”
“뭐? 너 설마!”
불가 장부에서 모두가 겁을 먹게 한 이름.
“그래. 이번엔 지주대인을 친다.”
이번 상대는 지주대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