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24)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24화(525/674)
연기해야 한다.
“참으로 의문투성이의 사건입니다.”
나를 두려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자들에게 연기해야 한다. 나를 포장하여, 저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나는 포쾌 강윤호. 이제 범인을 잡아낼 것이다. 그러니 나를 두려워해라. 이 일을 목도하고, 다시는 허튼 생각을 가지지 마라.
내 앞에 놓인 나의 무대. 지금 내가 시작하려는 것은 하나의 공연이며, 경고였다.
“귀가 중에. 저택에서. 장원주를 마시다가. 세 번의 암살 시도가 있었고, 범인은 사라졌으며, 저는 감옥에서 갇혔지요.”
“조카사위를 죽이려고 했던 자의 행방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가장 앞자리에 앉으신 큰이모께서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넸다.
“네. 참 완벽했습니다. 범인 스스로도 생각했겠지요. 만금전주께선 의식을 잃으셨고, 저는 옥사할 예정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범인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생각지 못한 일?”
너희들이 나를 위기로 몰아넣을 때, 나는 무엇을 했는가.
“포쾌 강윤호에게 참으로 오랜만에 차분히 생각할 시간을 주어졌다는 것을요.”
자신감 있게 말하며 나를 감춘다.
분노에 냉정한 판단이 되지 않았던 강윤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보여줄 내 모습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까지 역전을 노리던 자다.
“…….”
기분 좋은 침묵이 방안에 흘렀다.
“범인이 누굴까 고민했습니다. 만금전장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노린 일임은 분명하고, 이 방에 있는 자 중의 하나임이 분명한데. 어찌할까. 고민하지 말고 다 쓸어버릴까.”
“으윽.”
두려움이 섞인 신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하하하!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만금전장의 후계자 강윤호가 할만한 생각이었지만, 포쾌 강윤호가 할만한 생각은 아니었으니까요.”
명분도, 권력도, 힘도 나에게 있다. 너희들 따윈 쓸어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경고와 농담을 동시에 섞으니, 긴장한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다, 다른 생각이 있으셨소?”
뇌물 먹여 향시에 급제한 구씨 가문의 이모부가 연신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마침 잘되었다.
“제가 바둑은 따로 배우지 않아 재주는 없으나, 바둑에 대한 고사는 좋아하는 편이지요. 위기십결에 신물경속(愼勿輕速)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
“이기려거든 경솔하게 서두르지 말고 신중히 생각하라.”
“맞습니다. 범인의 첫 번째 암살 시도는 완벽했습니다. 계획까지 잘 짰지요. 하지만 기가 막힌 우연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비장의 수가 막힌 상황. 이대로라면 꼼짝없이 후계자가 결정될 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범인의 다음 계획들은 신중했을까요?”
“욕심은 많고 경솔해지겠군.”
내가 어떻게 범인을 찾아내었는가. 어떤 작은 실수를 통해서 음모를 파헤쳤는가. 내가 너희들의 작은 실수에도, 어떤 식으로 답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인가.
“네. 범인이 누구일까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조급했다면, 나는 그 발자취만 따라가다가, 흘린 조각을 찾아내면 그만이었으니까요.”
이들에게 들려줄 시간이었다.
—————
“암살자의 첫 번째 실수는 암살자의 정체인 청포검객이었습니다.”
백면호리가 처음 꼬리를 밟히게 된 계기. 나는 이 자리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백면호리를 비웃듯, 추리를 이어 나갔다.
“청포검객이라면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된 암살자를 말하는 건가?”
“찾을 수 없을 만도 하지요. 청포검객은 두 달 전 죽었으니까요.”
“뭣?!”
모두의 얼굴이 놀람으로 바뀐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그들이 놀람을 채 소화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놀라운 소식이지만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이상을 느낄 조각을 발견한 게 중요한 거니까요. 발자취를 따라 한 발짝 더 옮깁니다. 독을 탄 시비도 감쪽같이 사라졌군요. 이상합니다. 고작 해봐야 시비가 수많은 눈을 피해서 종적을 감추다니요. 덕분에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게 됩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의 입이 채 다물어지기도 전에 결론을 내린다.
“무슨 결론 말인가?”
“고작해야 검은 머리 오랑캐 하나 처리하기엔 너무 규모가 큰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동시에 깨닫습니다. 범인이 저지른 두 번째 실수를 말입니다.”
“두 번째 실수?”
백면호리의 첫 번째 실수는 연이은 암살로 수상한 낌새를 보였다는 것.
“하필, 자신의 발자취를 좇고 있는 사람이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을 목도한 적이 있다는 걸 말입니다.”
두 번째 실수는 백면호리 본인이 무한에서 벌인 음모가, 적게 든 많게든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비슷한 사건을 봤다고? 언제?”
나는 답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모인 자들을 둘러보았다.
백면호리. 너는 지금 속으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상관없다.
“마양백과 허송.”
네가 여유롭게 다음 일을 생각하는 사이.
감옥에 갇혀 생각할 시간이 넘쳤던 검은 머리 포쾌가 어디까지 추리해 낼 수 있는지 몰랐을 테니까.
“얼마 전에 죽은 사람이 왜? 서, 설마 이 일과 상관이 있단 말인가?”
“네. 지금까지의 모든 죽음과 암살 시도는, 만금전장의 후계자 자리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백면호리. 너에게 성큼 다가왔다. 이제 네가 아니라, 내가 네 목을 조르러 가고 있다.
나는 모두의 앞에 담담히 진실을 고했다.
——
“양백이형님, 오작인에게 죽은 게 아니었다고?”
“허송을 죽인 범인이 이 자리에 있어?”
“네. 마양백. 허송. 강윤호. 두 번의 죽음과 암살 시도. 이게 모두 한 사람의 범행입니다.”
“누가 왜 그런 악독한 짓을……!”
“네. 왜 그랬을까요. 답을 찾기 위해서라면 또 찾아내야 합니다. 두 사람의 죽음. 암살 시도. 만금전장의 후계자. 청포검객의 죽음. 종적을 감춘 일. 정말 많은 문제의 답이 하나라면, 세 번째 실수를 발견해 낼 수 있지요.”
백면호리가 예상치 못한 변수. 만금전주가 직접 데려온 변수. 치밀하게 짜인 계획에서 변수가 일으킨 최초의 실책.
“세 번째?”
“허송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얼굴 가죽이 반쯤 뜯겨서……. 어?”
이제 모두의 앞에서 진실을 말할 차례였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에. 그 얼굴 가죽이 뜯어졌으면. 그걸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비슷한 것으로 무엇들을 할 수 있을까요?”
“서, 설마.”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 갔다.
“감옥에서 풀려난 포쾌는 의문을 확인해 보기로 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명백한 증거 하나를 꺼내었다.
“그건?”
“야, 양백이형 얼굴이잖아!”
“설마 인피면구?!”
내가 꺼낸 물건은 마양백의 인피면구였다.
“무림에는 인피면구를 만들어, 타인을 완벽하게 흉내 내는 악독한 무공이 있습니다.”
타인의 얼굴 가죽을 뜯고, 타인의 뇌를 먹어, 타인을 완벽히 흉내를 내는 무공. 무림인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마교의 악독한 마공.
섭식공의 정체를 이들 앞에 밝힌다.
“무, 무슨?!”
“잠깐만 범인이 이 안에 있다며?”
“설마?! 그러면 지금!”
큰이모의 고개가 숙어진다. 차마 더는 볼 수 없다는 듯 어깨가 떨렸다. 내가 눈짓하자, 길산이가 대신 큰이모의 어깨를 붙잡았다.
장난옥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다시 한번 나를 올려다보았다. 지금 내가 나를 지지해 준 사람이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뿐.
“네. 이 자리에 자격도 없는 자가, 만금전장을 차지하기 위해 숨어들어 있다는 뜻이지요.”
이제 곧 끝이 다가온다는 말뿐이었다.
———
“도대체 어떤 놈이!”
“옆 사람 얼굴 가죽을 당겨봐!”
누군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방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감찰대.”
“조용!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강제로 조용히 만들겠소!”
“으읍!”
바로 휘두를 수 있는 칼이 있다는 게 이래서 좋은 거구나. 감찰대주가 크게 한마디 하자, 방 안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강 공자! 범인이 있다면 찾아내야 하지 않겠소!”
어디선가 들려온 항변에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단순히 답을 알았다고 해서 범인을 찾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너무나도 완벽한 변장이라 얼굴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별 차이를 못 느끼는 무공이거든요.”
괜히 마공이 아니다. 무림인들도 알아내지 못하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 알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럼 어찌하란 말이오!”
섭식공을 알아차릴 방법 따윈 없다.
하지만.
“완벽한 변장을 간파할 순 없지만, 실수에서 답을 찾아낼 순 있지요.”
나는 백면호리가 저지른 크나큰 실수는 알고 있었다.
“실수?”
“광혼산(狂魂散). 사천당가 분들을 어렵사리 초빙하니, 제가 며칠 전에 마신 독의 이름을 알려주시더군요. 이 독의 약점까지도요.”
혹시나 하고 당가에서 운영하는 서천표국을 찾아가길 잘했지.
내 소식을 듣고, 다 찢어 죽일 놈들이라며 직접 나서겠다는 걸 간신히 말려야 했지만, 자기 일처럼 나서주었으니까.
“약점이라니?”
“약효가 매우 뛰어난 만큼, 하독한 자도 극미량을 코로 들이킬 수밖에 없는 독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 독을 누가 사용했는지, 사천당가에선 아주 쉽게 알아내는 방법이 있지요.”
마음이 급해진 백면호리가 한 네 번째 실수. 독 선택을 신중히 하지 못했다.
“그, 그게 무엇이오.”
“약초가 든 찻물을 들이키면 눈에 실핏줄이 보입니다.”
그 점을 바로 파고들었다.
“약초를 든 찻물? 설마 우리가 기다리면서 마신 차 안에?”
“맞습니다.”
내가 괜히 큰이모님에게 일부러 시간 끌라고 말하고, 전부 차를 마시게 했겠냐고.
“누가 눈이 충혈되었는지 봐봐!”
“청이 너?”
“아닙니다! 어제 기루에 들러서 잠을 못 잔 거라고요!”
“여기도 있다!”
“오해입니다!”
“여기도!”
누구의 눈이 충혈되었는가. 누가 범인인가. 속속들이 튀어나오네.
“다들 진정하십시오.”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감찰대원들 모두 칼집을 굳게 잡았다.
“범인을 색출해 내야 하지 않은가!!!”
그래. 방안 모두가 차를 마셨다는 건 확인했으니까. 눈이 충혈된 사람 중의 하나가 범인이긴 할 거야.
근데 말이야.
“고작 눈이 충혈되었다고, 범인으로 몰아갈 수는 없는 법이지 않습니까.”
“어?”
독 때문에 충혈되었는지, 다른 이유로 충혈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의외의 맹점을 지적당하자, 사람들의 흥분한 얼굴은 당황으로 물들어 갔다.
“마, 맞아!”
“차로 충혈되었는지, 피곤해서 충혈되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아까 겁에 질려서 눈물 고인 거 못 보셨습니까? 충혈되었다고 범인이라니요!”
범인으로 몰린 자들도 변명거리를 얻자, 필사적으로 자신을 논리로 방어했다.
“네. 맞습니다.”
내가 마시게 한 차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광혼산을 흡입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주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범인이라고 확정지을 수 없다.
범인이 마신 독은 극미량이었을 테니까.
“말도 안 되는 억…….”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
“제가 그래서 술에 독을 탔습니다.”
“……뭐?”
“자네, 지금 뭐라고?”
사람들의 표정이 보기 좋게 얼어붙었다.
“의심 가는 사람들에게 진짜 독주(毒酒)를 따라주었지요.”
마시는 것만으로도 고통인 독주에 정말 독을 타면, 독이 들어있는지 알아차리기 힘들다더라. 급격하게 싸늘해진 방안.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미, 미친 건가!”
“사람이 할 일이 있고 못할 일이 있는걸세! 금수도 하지 않을 짓을!”
“진정하십시오.”
“지, 지,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잘못하다간 독이 아니라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겠네. 집안 기둥뿌리 뽑아다가 뇌물로 바치신 분이, 본전은 뽑고 가셔야죠.
소윤심상결을 운용한다. 난리 난 상황이 퍽 웃기긴 하지만, 진실을 알려주어야 했다.
“여러분이 마신 건 크나큰 실수를 한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독이니까요.”
“한 사람에게 효과가 있다고?”
어떻게 독은 다 같이 마셨는데, 한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을까.
답은 백면호리가 한 결정적인 실수에 있었다.
“저택에 숨어든 암살자는 함정에 당해 도주했습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피를 몇 되나 쏟은 흔적이 발견되었지요.”
“피? 설마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건가?”
“네. 제가 탄 독은 평범한 사람이 마시면 나른함만 느낄 뿐이나, 내상을 극심하게 입은 자가 마시면, 온몸에 퍼지는 사천당가의 독.”
내장이 진탕 된 자의 입에 들어가면, 몸 안으로 흡수되어 단장(斷腸)의 고통을 느껴지게 만드는 독.
“쿠, 쿨럭!”
기다리던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언제 온몸에 독이 퍼지나 기다리던 참인데, 이제야 퍼지나 보군요.”
나는 웃으며, 각혈하는 자에게 다가갔다.
너였냐.
피를 토하고 있는 자는 최종 후보 중 하나. 만씨 가문의 공자. 만소평. 아니, 만소평의 가죽을 뒤집어쓴 백면호리였다.
“네, 네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독에는 독으로.
만금전장의 사건을 주도하고, 수많은 사람을 눈물짓게 하며, 앞으로 강호에 분란을 일으키게 했을 자.
“정식으로 인사하는 건 처음이군. 안녕하시오. 백면호리.”
나는 기어코 잡아낸 백면호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크윽……! 네놈이! 감히!”
“당신이 그리도 죽이고 싶었던, 만금전장의 후계자. 강윤호라고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