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33)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33화(534/674)
“며칠 시간을 달라?”
다음 날 아침. 제갈세가에서 온 무인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만금전장에 큰 소란이 생겨, 아직 수습이 끝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급한 대로 처리하고 출발할 테니 며칠 여독을 풀고 계시지요.”
일주일 연차 내고 와도 할 일이 태산인데, 사업체 전체를 이끄는 후계자가 되어서 다 던지고 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끔찍하다고.
“가주께서 바로 끌고 오라고 하셨다.”
제갈작이라고 했나. 가주의 명령을 받고 온 대주는 완고한 태도로 말했다.
“장인어른께 첫인사를 드리러 가는데 소홀히 준비해선 되겠습니까.”
장인어른 처음 만나는데, 홍삼이나 한우 정도는 살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냐. 사람 좋은 미소로 어르며 말했다.
“누굴 감히 장인어른이라고 하는 것이냐!”
검은 머리 놈팡이가 장인어른 운운하는 게 마음에 안들었나. 제갈작은 언성을 높여 나를 노려보았다.
“예의를 갖춰주시지요. 만금전장의 후계자이십니다.”
우리 감찰대주 잘한다. 송정학은 아무리 제갈세가라도 선이 있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내가 지금 당장 이놈의 머리채 잡고 끌고 가지 않는 것으로 충분히 예의를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작은 도발. 제갈작은 들을 가치조차 없다는 듯 나를 노려보았고, 감찰대주는 도발을 참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큭!”
빠르네. 감찰대주의 손이 허리춤을 가기도 전에, 서슬 퍼런 칼날이 그의 목을 겨누었다.
“어딜 칼에 손이 가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목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과잉 충성을 하는 것인가.”
역시 가주의 명령을 수행하러온 제갈세가의 무인. 어쭙잖은 무인 정도는 단숨에 제압해 버리는구나.
“그쪽에서 먼저……!”
“우리가 끌고 가려는 놈은 감히 대 제갈세가의 허락도 없이, 가주님의 막내 따님에게 손을 댄 녀석이다. 그놈이 만금전장의 후계자이건 검은 머리이건 상관없는 문제지.”
제갈작의 검 끝이 가소롭다는 듯 감찰대주의 턱을 두들겼다.
“크윽!”
감찰대주의 분노에 찬 시선이 제갈작에게 향했다. 이러다 정말 칼부림 나겠네.
“둘 다 그만하시지요.”
“우린 어제 이미 시간을 주었다.”
제갈작은 감찰대주에게 칼을 거두지 않은 채, 내게 답했다.
“늦은 저녁이 아니었습니까. 여독을 풀고 서로 차분히 대화할 시간을 드린 거지요.”
“나랑 말장난하자는 건가?”
드디어 고개를 돌리네. 근데 집주인이 말했는데도 칼을 안 거두다니. 아주 좋아. 해보자는 거지.
“가주님을 향한 충심을 이해하나, 칼을 뽑으시다니. 목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과잉 충성을 하시는 겁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제갈작이 조금 전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뭐?! 네놈 지금 뭐라고?!”
“제갈세가 가주님의 장인어른께서 의식을 잃고 누워계십니다. 그런데 사위가 보낸 사람이 칼을 뽑고 집안에서 행패를 부리는 모양새가 가히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선 제압이라도 하려고 했나 본데. 사위가 보낸 사람이 장인어른 집에서 칼을 뽑아? 이게 지금 옳은 상황이라고 생각하냐.
내가 슬쩍 다른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바라보자, 다들 껄끄러운 눈치였다.
“우리는 가주님의 명령을 듣고 왔다.”
“저도 가주님의 장인어른께서 명하신 대로 만금전장을 이끌고 있지요.”
제갈작의 눈빛에서 오늘 처음 당황한 기색이 흘렀다. 왜 너만 가주 카드 쓸 수 있을 줄 알았냐. 나도 가주 실드 쓸 줄 알아.
나와 제갈세가의 문제는 결국 집안 문제다.
내 사정은 상관없다. 장인어른이 부르셨으니 가서 해명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 가주의 장인어른이 등판하면?
한 집안의 문제이자 두 집안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내 사정은 상관없지만, 가주의 장인어른 사정은 다르니까.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나는 가주 장인어른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후계자이고, 상대는 가주의 명을 따라 움직이는 자.
너는 그러면 어떻게 할래.
“가주님에게 장인어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널 끌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
제갈작은 약간의 뜸을 들이더니, 다시 한번 완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나올 줄 알았지. 즉답이 안 나왔다는 건 고민을 했다는 건데. 그럼 파고들 틈 따윈 얼마든지 있다.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지요. 명령을 따르는 것이 부하의 덕목이지만, 저에게 시간을 주시는 것이 대주님에게도 이롭지 않겠습니까?”
“나에게 이롭다고?”
“저야 상관없습니다. 대주님께서 칼까지 뽑으셨으니, 얌전히 따라가면 그만이겠지요. 하지만 가주께서도 장인 어르신의 상황은 모르셨을 겁니다. 만약 제가 이대로 끌려가서 만금전장이 어지러워지면, 가주님께서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설령 가주님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셔도, 장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다시 한번 은근슬쩍 돌려 말한다.
나는 지금 네가 칼까지 뽑았으니 오히려 좋아. 그냥 끌려가면 되니까. 근데 말이야. 잘 생각해 봐.
만금전주는 제갈극의 장인어른. 만약 사위 때문에 장인어른의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될까. 만금전장이 잘못되면 누가 독박을 쓰게 될까?
가주가 널 실드쳐 줄 것 같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이니?
상대가 가주의 장인어른과 제갈세가의 안주인인데 말이야.
“…….”
제갈작은 말문이 막혔는지, 나를 노려보았다.
고민되냐. 그럼 내가 특별히 이제 명분까지 줄게.
“장능이군불어자승(將能而君不御者勝)이라는 말이 있지요. 가주님의 명을 받고 오셨지만, 대주님께서 현장 지휘관이니, 얼마든지 융통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상대의 마음을 교묘하게 흔들며, 대주를 바라보았다.
칼은 네가 먼저 뽑았어. 기다려달라는 말도 꺼냈어. 이제 잘못되면 다 네 책임인데, 감당 가능하니?
내가 명분 주잖아.
주군의 말에 무조건 적으로 따르지 않고, 현장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는 게 유능한 장수라고 말이야.
우리 융통성을 발휘하자.
나는 제갈작이 충분히 심사숙고할 때까지 웃는 얼굴로 기다렸고.
“……상인이라 그런지 세 치 혀가 아주 능수능란하구나. 그 혀로 아가씨를 꾀어낸 것이냐?”
검집으로 돌아가는 칼과 함께, 작은 패배 선언을 들을 수 있었다.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제갈작이 몸을 돌려 문으로 향했다.
“준비까지 해서 이틀 안으로 출발하지요.”
나도 오래 끌 생각 없어.
“대기하도록 하지. 시간을 넘기면 강제로 끌고 가겠다.”
——
“감찰대주님, 수고하셨습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사라지자마자, 감찰대주에게 한마디 말을 건넸다.
“아무리 강 공자님의 명령이었지만, 큰일나는 줄 알았습니다.”
“강윤호 이 자식은 진짜 미친놈인가? 일부러 제갈세가 무인을 도발해?”
길산이가 상황을 다 지켜보고는, 내게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래. 방금은 사실 일부러 유도한 상황이었다.
“결혼도 안 한 막내딸과 동거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어떤 논리도 통하지 않을 거 아니냐. 시간을 벌어야 하니 격장지계를 써서 약점을 만들어야지.”
제갈세가 가주의 논리엔 약점이 없다. 하지만 나도 바로 끌려갈 순 없다.
어찌 해야 할까.
감히 가문의 허락도 없이 막내딸을 꾀어낸 놈팡이가 가주님을 장인어른이라고 부른다면? 거기에 일부러 대치 상황을 만들어 칼을 뽑는 척한다면?
제아무리 제갈세가라 하지만 무림인. 이미 화난 마음에 대응을 안 할 리가 없다. 하지만 거기서 이미 끝이다.
무림인으로서 칼을 먼저 뽑는 것은 승세를 잡는 것이지만, 상인의 판 위에서 칼을 먼저 뽑는 것은 약점을 노출하는 것이었으니까.
“엎드려 빌어도 모자를 상황에 상대방을 물러나게 한다니. 뭐 이런 놈이…….”
“괜히 저자세로 나왔다간 끝까지 저자세로 가야 하니까.”
내가 사과할 바엔, 상대방을 물러나게 만들어야지.
길산이는 기가 찬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외할아버지가 참 걱정 없겠어. 쓰러져있어도 후계자가 잘하고 있으니까.”
“하하. 만금전주님도 한 담력 하셨지만, 강 공자님도 만만치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감찰대주도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시간을 벌었으니, 첫인사를 갈 준비를 서둘러 끝마쳐야겠군요. 부총관.”
시간을 벌었다면 빠르게 움직일 차례다.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나를 바라보고 있던 부총관을 불렀다.
“한 달 정도만 자리를 비우실 예정이라면, 당장 급한 인력이 문제입니다.”
“몰수한 사업체 때문에 그렇습니까. ”
운엽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특히 마교와 연관되어 멸문 수순을 밟고 있는 방씨 가문과 은씨 가문이 소유했던 사업체들이 문제입니다. 사람을 처음부터 뽑아야 하는데, 현장 실무에 익숙한 중간 관리직을 바로 투입해야 해서 난처한 상황입니다.”
“바로 실무에서 뛸 수 있어야 하고, 심지어 믿고 맡길 수 있어야겠군요. 좋아요. 일단 급한 인력은 내가 보충해 주겠습니다.”
“네? 따로 생각이 있으십니까?”
“바로 현장 실무에 투입할 정도로 능력이 있으나, 기회가 없던 자들을 고용하면 그만이지요.”
내게는 쉽게 받지 못하는 교육을 끝마쳤으나, 막노동하는 인재들이 있거든.
“아! 전에 보았던 조선인 향우회 사람들 말씀입니까?!”
역시 부총관이야. 눈치가 빠르다니까.
“내가 중간 관리직을 찾는다고 하면, 조선인 향우회에서 건실한 자들로 뽑아줄 겁니다. 기존에 총무로 쓰던 자들은 실무경력도 출중해서 업장을 몇 개씩 맡겨도 능히 해낼 겁니다.”
기회가 없던 거지, 능력이 없던 사람들이 아니니까.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후계자로 오셔서 조선인만 쓰신다고 하면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 조선인 향우회에서 몇 명을 뽑고, 만금전장에서도 따로 몇 명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좋아. 인력난은 해결되었고.
이제 바로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만날 준비를 시작해 볼까.
————
“영영이를 만나러 간다고? 아버지께서 드디어 의식을 차리셨나?”
제일 먼저 향한 곳은 큰이모, 장난옥의 집이었다.
“제갈 소저와의 약혼 사실을 장인께서 모르고 계셨던 듯합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몰려오더군요.”
“하아……. 노친네가 또 수작을 부렸나 보군.”
장난옥은 사정을 듣자마자 단숨에 아버지를 노친네로 격하하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다행히 장모님이랑 대화는 나누셨답니다.”
“노친네가 흉계를 꾸미는 게 오늘 내일은 아니라지만, 사위 몰래 그런 일을 꾸미다니. 향이는 엄연히 남의 집안 딸이거늘!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장난옥은 장녀로서 아버지가 벌인 일들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지, 한숨 섞인 탄식을 내뱉었다.
“다 집안의 미래를 위해서 하신 일이지 않겠습니까.”
“후계자가 되었다고 이제는 싸고도는 건가.”
“하하! 할아버님 생각은 손녀사위가 해야 하는 법이지요.”
다 백면호리 잘못이지 만금전주님께서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제가 그 흉계 때문에 후계자가 될 수 있었으니까 감싸고 도는 거 아닙니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쩔 생각인가.”
“별거 있겠습니까. 조금 뚜드려 맞고 혼 좀 난 뒤에 결혼 승낙을 받아와야지요.”
살아서는 돌아오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만약 가서 결혼을 승낙받지 못하게 된다면 어쩔 생각인가.”
“설마 그러시기야 하겠습니까.”
만금전장의 후계자 정도면 어디서 부족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거 아닌가.
“조카사위가 외국 출신이라 제갈세가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무림에서도 손에 꼽는 명문 세가가 바로 제갈세가일세. 만금전장의 후계자 따위는 일개 상단 아들로 만들어버리는 곳이란 말이야.”
“가주의 장인어른이 운영하시는 곳인데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제부(弟夫)가 보통 성미가 아니어서 그러는 걸세. 만약 인정하지 않겠다면 어쩔 건가.”
“어떻게든 납득하게 만들어야지요.”
외국인 노동자가 재벌가 막내 따님이랑 결혼하겠다고 찾아가는 격이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다.
내가 굳은 얼굴로 답하니, 장난옥은 나를 한참 바라본 뒤에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제갈세가에서 너무 가혹하게 대한다면 그냥 뛰쳐나오게.”
“네?”
“어딜 내놓아도 자랑스러운 사윗감을 못 알아보는 곳에 미련 가지지 말게. 아버지가 인정한 후계자인 이상 방법은 많으니까.”
왜 갑자기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시는 거지.
“자신감을 가지라는 뜻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너무 비굴하게 굴지는 말라. 큰이모님 나름대로 격려의 말씀일 것이다.
“나도 생각이……. 아닐세. 그래. 나에게 다른 할 말이 있어서 온 건가?”
“사실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네. 당연히 있어서 왔지요. 자세를 고쳐잡고, 장난옥을 바라보았다.
“너무 염려하지 말고 갔다 오게. 아버지 병간호라면 맡아서 하도록 하지. 사위가 자리를 빈 사이에 누가 가문을 흔들려고 한다면, 내가 절대 좌시하지 않을 거야.”
역시 큰 이모님이야. 괜히 장 노야께서 장녀의 마음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가장 든든한 아군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말한 것이 아니라니까.
“제가 찾아온 이유는 다른 부탁 때문입니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려는 부탁은 달랐다.
“다른 부탁?”
제갈세가에 가기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빠르게 목록을 작성하는 중에, 제갈 소저로부터 의외의 사실을 들었다.
“제갈 소저에게 듣기로는, 제갈세가 가주이신 제갈극께서, 큰 이모님을 조금 어려워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장난옥은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눈을 크게 뜨고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부가 아버지에게 결혼 승낙을 받기도 전에 찾아온 것이 나일세.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에 동생들을 키우다 보니, 제부에게도 집안의 큰어른 대우를 받았지.”
역시.
“그래서 말입니다.”
“응?”
분노에 찬 장인어른을 만나야 하는 상황인데, 아무런 준비 없이 첫인사를 갈 순 없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제아무리 화가 나도 거절할 수 없는 선물 하나를 들고 가자. 무조건 열어서 받아야 하는 선물 말이다.
“편지 한 통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