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34)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34화(535/674)
“우리 조카사위 자랑을 늘어놓으려면, 먹을 좀 많이 갈아야겠군. 집안일은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게. 영영이에게 안부 전해주고. 큰 언니가 얼굴이 보고 싶다고 말이야.”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아무리 장인어른과 아내에게 단단히 화가 난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아내가 어머니처럼 여기는 큰 언니의 편지를 무시하긴 힘들겠지.
다행히 큰 이모님에게서 수월하게 편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오늘도 바로 나가십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자, 부총관 운엽이 나에게 물었다.
“이틀 안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많군요. 제갈세가로 떠날 준비는 어떻게 되어갑니까?”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첫날과 똑같이 전부 저택 안에서 대기 중입니다.”
“전부 다? 주루나 음식점에 간 사람이 하나 없이?”
놀라 되물었다.
“대주라는 자가 바로 떠날 거니까 얌전히 쉬고만 있으라고 엄명을 내린 모양입니다.”
역시 명문 세가인가. 아무리 임무 중이라지만, 먼 길 왔으면 술 한 잔이라도 하려고 나돌아다닐 만도 할 텐데. 규율이 잘 잡혀있나 보네.
“제갈 소저는? 아침부터 안 보이던데. 혹시 제갈세가 사람들이랑 있습니까?”
“마음의 안정을 취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안정?”
무슨 소리지.
“목각인형을 늘어놓으시고 명상에 잠겨계시더군요.”
“그림을 그리거나 방안에서 뒹굴거리는 게 아니라요?”
“네, 제갈 세가만의 수련법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상하네. 평소 제갈 소저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아닌데.
마음이 번잡하면 다른 생각이 끼어들지 않도록 그림을 그리거나, 어떤 망상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뒹굴거리는데 말이야.
“알겠습니다. 외출할 테니, 부총관은 내가 말한 거 잊지 마세요.”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다. 빠르게 만금전장을 나섰다.
**
“어서 움직여!”
만금전주의 저택.
큰 소란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 만금전장을 이끄는 후계자가 여행을 떠날 준비까지 해야 하니, 만금전장은 어느 때보다 더 소란스러웠다.
저택 내원의 연못 근처. 사람만 한 목각인형이 서 있는 곳을 제외하곤 말이다.
“으으읗.”
제갈향은 푸르른 눈으로 자신의 목각인형을 노려보았다.
누군가 보았다면 다들 바쁜데, 제갈향 아가씨는 한가로이 무공 수련이나 하는 것인가 오해를 살만한 상황. 하지만 그 실상은 달랐다.
제갈향은 목각인형과의 오랜 대치 끝에 드디어 용기를 내었다.
“아, 아빠. 엄마. 저 왔어요. 소개할게요. 제 소중한 사람이에요오.”
제갈향 눈앞에 있는 인형은 두 개. 제갈향 옆에 있는 목각인형은 하나. 아버지와 어머니. 옆에는 강윤호.
살벌한 대치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사실 제갈향은 전력을 다해 연습 중이었다.
“아앟! 또 이름 빼먹었어요오오.”
제갈향은 또다시 저지른 실수에 머리를 부여잡고 쪼그려 앉았다.
떨지 말아야 해요. 아빠 엄청 많이 화나셨을 거란 말이에요. 강 공자님이 곤란한 상황이 되지 않으려면, 저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요.
제갈향은 눈을 감고 다시 한번 아버지 제갈극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너무 어려워요오오오.’
말도 더듬지 않고, 끌지도 않고 똑 부러지게 말해야 하는데요. 강 공자님이 용기를 내서 가자고 했는데, 저라도 지켜드려야 한다고요오오오.
제갈향은 연이은 실패에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강윤호가 먼저 소개하고 지켜주는 방법을 상상해 보았다.
一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흫흫흫. 아니에요. 강 공자님. 지금도 행복한데요오오.”
은발벽안의 미소녀는 부끄러움 섞인 웃음을 참을 수 없다.
‘강 공자님에게 맡겨도 잘하실 것 같긴 한데요오오.’
어떠한 난관에 부딪혀도 헤쳐 나가는 남자. 그의 손을 붙잡고만 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안심이 될 것 같다.
‘아니에요. 이번 일은 제가 꼭 도움이 돼야 해요!’
강 공자님과 자신.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난관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제갈향은 강윤호와 손을 꼭 붙잡은 채 당당하게 제갈세가의 정문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一 저런 똑 부러진 남편감을 데려오다니.
一 마, 말도 안 돼! 향이 아가씨는 연애 못 할 줄 알았는데! 뭐 저렇게 잘생긴 남자를 데려온 건데!
一 만금전장의 후계자래! 능력도 엄청 대단한가 봐!
“흐흫흫흫. 저도 할 때는 한다고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이는 제갈향이었다.
‘그렇게 되면…….’
혹시.
정말로.
모든 일이 수월하게 해결만 된다면……!
제갈향은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누가 들을까 자신의 엉큼한 상상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잘하면 저, 정실도 가능할지 몰라요오.”
다른 경쟁자가 무려 둘이나 있는데.
강 공자님이 사랑하는 약혼녀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언제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하연 언니를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달리는 사냥개마냥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진도를, 치타처럼 한순간에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제갈향의 입가가 스멀스멀 올라가려고 할 때였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제갈향의 뒤편에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엏?! 허, 헛소리였어요! 죄송해요오오오!”
설마 강 공자님인가. 제갈향은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라,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아가씨, 한참 찾았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누, 누구세요?”
제갈향을 찾아온 사람은 강윤호가 아니었다. 은발벽안의 남성. 제갈세가의 사람이었다.
“저번에 그 검은 머리 뒤에 숨어계셔서 제 얼굴을 제대로 못 보셨나 보군요. 저 현원대 대주 제갈작입니다.”
“네. 아, 안녕하세요.”
제갈향은 명절에 인사하는 것마저 어색한 먼 친척을 만난 아이처럼, 꾸물거리며 인사했다.
“저 몇 번 본 적이 있으실 텐데, 못 알아보시겠습니까?”
“아, 그, 저. 제가 사람 얼굴을 잘 안 봐서요.”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타인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어려워하는 제갈향이다. 가문의 수많은 구성원 얼굴을 다 기억할 리 만무했다.
“그러셨군요. 근데 아가씨. 죄송이라니요? 누구에게 죄송하다고 하신 겁니까?”
제갈작은 조금 서운한 기색을 감추며, 방금 제갈향의 행동을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오오.”
당화린과 임하연이 아무리 빨라 봐야 사냥개. 날 때부터 치타였던 자신이 못 따라잡을 리 없다. 호기롭게 상상했다는 걸 어떻게 말하겠어요.
제갈향은 당황하며 말을 얼버무렸고.
“아가씨……. 역시 협박당하고 계셨던 겁니까?”
제갈작은 그녀의 태도에서 제갈향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생각을 떠올렸다.
“네에?”
———
“협박이요?”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죠. 제갈향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다.
“순진한 아가씨께서 갑자기 검은 머리와 동거라니. 분명 알려진 것과는 다른 깊은 다른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제갈향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지만, 제갈작은 이미 확신에 사로잡혀있었다.
“아앟. 그게요오.”
사정은 있었다. 가짜 호필 사건부터 해서 여러 사건이 얽혔으니까.
“설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조선인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갈작이 상상하는 사정은 다른 것이었지만.
“소, 소문이요?”
제갈작은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상하다고 했다. 순진한 아가씨께서 검은 머리와 갑자기 동거라니. 분명 예전에 들어봤던 소문에 연루된 게 틀림이 없으리라.
“네, 흔한 소문이지요. 성도에 막 상경한 순박한 여자를 노리고, 검은 머리가 접근하는 겁니다.”
제갈작의 표정에 아가씨를 지키지 못했다는 원통함이 스쳐 지나갔다.
“네에?”
“분명 무한에 와서 개방적인 성도의 분위기에 한껏 취하셨겠지요. 아가씨답지 않게 웬일로 밖에도 돌아다니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화려한 세상을 동경해 따분한 고향을 벗어나, 무한에 상경한 순박한 시골 처녀는 무한의 화려함에 넋을 잃어버린다.
“집안에만 있었는데요오.”
제갈향이 부정해 보았지만, 이미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제갈작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분명 무한에 있는 서점 때문에 놈팡이 놈의 시야에 걸리셨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서, 서점 때문에 강 공자님과 만난 건 맞는데요오. 다른 이유로…….”
“역시 맞군요. 불쑥 나타나 말을 걸었겠지요. 같이 가자고!”
“어엏…….”
왜 묘하게 맞는 걸까. 제갈향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예상대로군요! 아가씨께서는 거절을 잘 못하시니, 저 놈팡이 놈이 강권했겠지요! 같이 술이나 마시자고! 아가씨는 내심 싫지만, 권유를 거절하지도 못하시지요! 거기에 그 놈팡이의 번지르르한 면장으로 같이 술을 마시자고 하는 상황에, 분명 호기심이 생기셨을 겁니다!”
“아앟……. 그건.”
제갈작은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분함에 발을 굴렀다.
“빌어먹을! 남자가 웃으며 건네는 술에 어색하게 한잔하셨을 겁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처음 마시는 술이 달짝지근하니, 의외로 술이라는 게 맛이 좋구나! 착각하셨겠지요! 사실은 그게 검은 머리의 뻔한 음모인데!”
“으, 음모요?”
“놈팡이 놈들이 주로 쓰는 수법입니다! 레이디킬러(徠移知吉裸)라고 여자를 위로하는 척 취하게 만들어 침대로 끌고 가게 하는 술이란 말입니다!”
달짝지근한 술로 정신을 잃게 만든다. 술기운이 조금 돈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사람을 앉은뱅이로 만드는 술이니까. 금방 정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
“부, 분명! 분명……! 정신을 차리셨을 땐 이미 늦으셨겠지요. 그리고 바로 협박당하셨겠지요! 제갈세가에 돌아갈 방법은 이제 자신과 돌아가는 거 하나뿐이라고!”
검은 머리 놈팡이가 순진한 제갈향 아가씨랑 동거했다면, 분명 이 방법을 썼으리라. 제갈작의 움켜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대, 대주님? 저기요오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조선인에게 간 여자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요! 빌어먹을 검은 머리 놈들! 하지만 아가씨, 정신을 차리셔야 합니다! 비록 예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가진 못하더라도,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
말이 통하지 않아요. 제갈향은 당장 흥분해 날뛸 기세인 제갈작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아가씨께서 협박당하셨다고만 말씀해 주신다면, 당장 저놈을!!!”
“아닌데요.”
즉답했다.
“아가씨?”
대주가 놀라 되물었다. 제갈향의 입에서 그녀가 말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정도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까.
“강 공자님은 좋은 분이세요.”
“구, 굳이 저에게까지 거짓말을 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강 공자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에요.”
말을 떨지도 끌지도 않는다. 오히려 분노까지 섞여 있다.
사랑하는 약혼자가 말도 안 되는 비방을 당한 상황. 제갈향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정말……. 이십니까?”
자신이 오해했던 것인가. 제갈작이 놀라 되묻자, 그제야 제갈향도 웃었다.
“흐흫! 네에!”
“아, 알겠습니다.”
아가씨께서 이런 표정을 하실 수 있을 줄이야. 제갈작은 놀라 더 이상 아가씨를 추궁할 수 없었다.
**
“흐흫흫흫흫!”
제갈 소저가 아침부터 왜 하이텐션이지. 오늘 제갈세가로 출발하는 날이라서 그런가.
“제갈 소저, 무슨 즐거운 일이 있으십니까?”
“흐흫! 강 공자님의 명예를 지켰거든요오.”
제갈 소저는 무언가 자랑스러운 듯 도드라진 가슴을 활짝 펼치며, 내게 말했다.
“네에?”
“앟! 그게……. 그런 게 있어요오.”
왜 다시 쪼그라드는데. 무슨 일이지.
내가 물어볼 새도 없이, 기다리고 있던 부총관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제 야밤에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몰래 빠져나가려다가, 대주에게 크게 혼나는 일이 있었습니다. 사정을 알아보니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부총관의 입에서 아주 흥미로운 소식 하나를 들을 수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정말인 듯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잘하면 여행 중에 써먹을 수 있겠는데.
“야, 윤호!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안 나오냐.”
부총관과 몇 마디 이야기하고 있으니, 길산이가 여행 준비가 만반인 채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길산아, 정말 따라 가게?”
“제갈세가 가주가 막내딸의 동거남을 끌고 오라는 상황을 어떻게 놓쳐? 당연히 따라가야지. ”
“하아.”
길산이가 같이 따라오는 게 나쁘진 않긴 한데. 이 녀석, 자기 일 아니라고 완전 관광객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것 같단 말이지.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가 이모부에게 한마디 해준다고! 마차에 내 자리도 만들어놨어! 빨리 와!”
길산이는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가슴을 두드리더니, 다시 문을 나가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제갈세가라…….’
가서 무슨 일이 생기려나.
단단히 화가 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약혼녀가 상기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며, 조심히 물었다.
“강 공자니임. 괜찮으세요오?”
은발벽안의 미인. 이제는 나와 마주 설 때 시선을 피하지 않는 그녀의 푸르른 눈이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그녀의 눈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가, 강 공자님?”
그녀의 하얀 얼굴이 분홍색으로 물든다. 계속 바라보는 건 부끄러웠나. 아니면 이제 떠나는 것이 불안한 걸까.
나를 바라보는 제갈 소저의 푸른 눈이 떨린다.
“앟?!”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래. 망설일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갑시다. 제갈세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