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35)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35화(536/674)
제갈세가.
호북성을 대표하는 무림세가이자, 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히는 가문.
사실상 무협에서 무림세가가 나온다면 필수 요소로 나오는 가문이다.
정파에 칼 든 박치기 공룡 다섯만 있으면, 굴러가지 않으니까. 기수 역할도 해주고 잡일도 하면서, 이런, 이런 못 말리는 박치기 공룡님들. 하면서 골머리를 앓 책사 역할이 필요하거든.
그런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가주의 명령을 받아, 검은 머리 오랑캐를 압송하고 있다.
도대체 저 검은 머리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누군가는 검은 머리의 운명을 걱정하겠지만, 정작 내 감상은 달랐다.
“이걸로 3번째인가…….”
“네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첫해에는 모용세가, 작년에는 사천당가. 올해에는 제갈세가네.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내년에는 또 다른 무림세가에 끌려가는 건 아니겠지.
“강 공자님. 도시락 꺼낼까요?”
점심시간. 마차에 내리자마자, 제갈 소저가 시비가 싸준 도시락을 언급했다.
“저쪽 대화 끝나는 거 보고 하지요.”
“아앟. 네에!”
“언제까지 싸우는 거래. 윤호, 네가 좀 말려봐라.”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한창 시끄러운 구석으로 향했다.
“강 공자님과 제갈향 아가씨를 길바닥에서 밥 먹게 한다니! 생각이 있는 겁니까!”
만금전장의 감찰대주, 송정학이 제갈작에게 따지며 언성을 높였다.
“제갈세가가 있는 양양현까지 5일 안에 갈 거요. 점심도 원래 안 먹으려고 했던 거 그쪽이 주장해서 잠시 멈춘 거니, 최대한 일정에 따라오시오.”
제갈작은 일말의 재고조차 필요 없다는 듯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뭐? 양양현까지 5일 안에 주파하겠다고?
“양양현까지 5일이라니? 우리가 지금 누구에게 쫓기고 있는 거요? 여유롭게 도착해도 무방한 상황 아니요.”
송정학이 놀라 따져 물을 만했다.
호북성 면적만 따져도, 대한민국의 두 배. 무한에서 양양현을 간다는 건, 옆 동네 놀러 가는 수준이 아니라, 서울에서 대구보다 먼 거리를 간다는 뜻이었으니까.
“이틀이나 끈 건 그쪽이요. 가주께서 최대한 빨리 끌고오…… 크흠! 데려오라는 명이셨소.”
“가져가는 짐도 있는 데다가 무림인이 아닌 자들도 껴있소. 거기에 슬슬 날이 추워지고 있으니, 너무 서두르다간 몸이 상할 수 있단 말이요.”
“우리가 끌고 왔소?”
“지금 뭐라고?!”
저러다가 싸우겠네.
“일단 제갈세가 사람들의 말을 따르지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강 공자님!”
저도 감찰대주 마음, 이해합니다. 너무 서운하게 바라보지 마세요. 저도 여행가는 기분으로 가고 싶지, 마차 경주하고 싶은 거 아니니까요.
“제갈세가 사람들도 다 생각이 있을 겁니다. 일단 일행을 이끄는 것이 제갈세가이니, 최대한 맞춰서 가봅시다. 장인어른을 만나러 가는 사위를 녹초로 만들어서 끌고 가기야 하겠습니까.”
“지금 누굴 누구의 사위라…….”
“설마 가주님의 장인어른이 직접 임명한, 만금전장의 후계자를 죄인 취급하는 게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갈작이 딴지를 걸기 전에, 웃으며 말을 끊었다.
막내딸의 동거남은 죄인 취급할 만하지만, 가주의 장인어른 의견까지 무시하긴 힘들잖아. 안 그래?
제갈작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한동안 나를 노려보더니, 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끄응……. 빨리 식사나 마치고 마차에나 올라타도록.”
제갈작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강 공자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송정학은 제갈작이 물러나는 것을 보고는, 걱정스럽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나도 아침, 점심, 저녁, 객잔에 들러서 식사하면서 여유롭게 가고 싶지만 어쩌겠어. 장인어른이 빨리 오라는데.
“하하! 죽기야 하겠습니까.”
—————
“죽겠다.”
오늘 죽겠다. 내일도 죽겠다.
해가 진 늦은 밤. 객실에 들어가 쓰러지며 외쳤다.
“으아아앟.”
“야. 윤호. 이, 이게 맞아? 이렇게 5일을 가자고?”
길산이는 침대에서 녹아내리는 제갈 소저를 보며 헛웃음을 짓고는, 내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든 5일 안에 가겠다고 하시잖아.”
명절에 차 타고 시골 내려갈 때도 지치는데, 새벽부터 밤까지 마차 타고 달리니 확실히 고되긴 고되었다.
“말도 지친 것 같던데. 모르겠다!”
길산이는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다는 듯 침대에 퍼질러 누우며 외쳤다.
“다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객잔에서 늦은 시간에도 밥은 차려준다니 내려가 보긴 해야 하는데. 두 사람 다 식욕이 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저, 저는 못 먹겠어요.”
“반주 나오냐?”
“주문하면 나오기야 하겠지만, 우리끼리만 먹으면 눈치 보이지 않겠냐.”
“그러면 이따가 방에서 마실래?”
“됐다. 아침에 술 냄새 풍겼다가, 제갈세가 사람들에게 나쁜 인식을 심어줄 필요는 없잖아.”
저 오랑캐 새끼. 저럴 줄 알았다. 남은 힘들게 임무 중인데 자기만 술 처마시고. 분명 제갈향 아가씨도 저런 놈팡이에게 꼬셔진 거겠지.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긴 싫다고.
“뭐?! 나빠질 인식이 있었어?”
“…….”
“난 상관없는 일이니 좋았쓰. 이따가 한잔할 테니까 너 내려갈 거면 술병하고 잔 좀 챙겨와 줘라. 아! 안주도!”
“네가 가져와 인마.”
홧김에 던진 베개가 정확하게 길산이의 얼굴을 강타했다.
“핫!”
“남은 기간 이렇게 가는 걸까요오?”
제갈 소저가 걱정스레 나에게 물었다.
나도 제갈세가에 들어가서 고생하는 건 상정한 바지만, 가기 전부터 고생은 생각 못 했는데. 이러다가 녹초가 되어서 장인어른을 만나는 거 아닌가.
“역시 안 되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오오. 역시 만금전장의 후계자! 한마디 하러 가는 거냐? 근데 점심에 말하고 밤에 안 되겠다고 말하면 너무 모양 빠지지 않아?”
“말을 하지 않고 천천히 가게 만들 방법이 있어.”
내 생각대로만 된다면, 여유롭게 제갈세가에 도착할 방법이 있다.
“뭔데?”
“출발 전에 의외의 사실을 하나 들은 게 있어서 말이야.”
“아까 향이에게 물어본 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확실히 성공할 수 있냐인데.
실시간으로 입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려고 하는 제갈 소저를 바라보았다.
“제갈 소저. 마차에서 물었던 말, 확실한 이야기지요?”
“느에에. 맞아요오오.”
“알겠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쾌적한 여행을 위해 한번 부딪혀보자.
**
“우린 가주님의 명을 받아 임무를 수행 중이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다시 한번 해이한 모습이 보이면 가만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대주 제갈작은 당장이라도 침대로 뛰어들고 싶어 하는 대원들을 모아, 객잔 1층에서 한바탕 설교를 펼쳤다.
“네!”
“이틀간 불침번은 어제 임무 중 대기 장소에서 이탈한 대원들과! 거기에 협력한 대원들이 맡을 것이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그럼 쉬도록.”
대주가 객실로 사라지자마자, 제갈세가의 무사 몇몇 입에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망했네.”
“쯧쯧.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대주도 상황도 분위기 흉흉한데, 그걸 나갈 생각을 해?”
제갈세가의 무사가 방금 한숨을 쉰 무사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어제가 아니면 기회가 없는데 어떡하겠나.”
무사의 말에 오늘 불침번을 설 예정인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었다. 기회가 그때뿐이었으니까.
“그건 맞지. 그래. 그래서…… 구했나?”
혀를 찼던 제갈세가의 무인도 주변 눈치를 보더니, 조심히 물었다.
“문이 닫혀있더군. 해가 지면 문을 닫는 모양이야.”
“뭐? 못 구했어?!”
“저놈 자식 구해온다고 호언장담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괜히 불침번까지 하게 생겼네.”
“열려있어도 못 구했을 거야. 애초에 안 나왔으니까!”
“빌어먹을!”
탁자에 앉아있는 모든 제갈세가 무인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가주의 명에 따라 수행하고 있는 임무.
비록 사람 하나를 데려가면 되는 일이라지만, 가주의 명인 이상 휴식 중에도 이탈을 해선 안되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자리에 앉아있는 자들 모두, 대주에게 들켜서 욕하는 거지 왜 나갔냐고 욕하는 자는 없었다.
무한에 온 이상 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당가풍운 4권이 아직 안 나왔다니……!”
무한에 온 이상, 다서각에 들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당가풍운은 다서각에서만 파는 소설이니까.
“올 초에 3권이 나왔다고 하지 않았나? 왜 아직 안 나온 거지?”
“시 구절 하나 퇴고하는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하는데, 올 초에 나온 소설이 또 나오겠나.”
“3권에서 예고를 하지 않았는가! 그럼 최소한 올해 안에 한 권은 더 나와야지!”
“내 말이…….”
진한 아쉬움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 않으면 나오지 못하는 진법을 보고 싶었다고……!”
“쉿! 누가 듣겠네.”
제갈세가의 무사 하나가 입가로 손을 가져다 대자, 탁자에 앉은 다른 무인들도 놀라 고개를 숙였다.
“당가풍운을 읽는 티를 내었다간 불침번으로 안 끝날 수 있네. 입조심 좀 하게.”
“헛! 내가 감정이 너무 격해졌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다. 다른 가문의 사람들에게 당가풍운을 읽은 티를 내면 안 되는데. 무인은 탁자에 앉은 다른 동료에게 사과했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여길 것이다.
제갈세가는 정파 무림에 수많은 무림인을 배출하고, 관직에도 나선 자들이 있을 만큼 문무겸비의 무림세가가 아닌가.
무식한 무림인들처럼 책 따윈 보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자들도 아니고, 제갈세가의 사람이 고작 소설책을 읽었다는 걸 감추려 들다니.
사실 사건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주 큰 이유가 있었다.
“도대체 어떤 병신 새끼가 세가의 원로가 지나가고 있는데, 자기도 당가 무공 배우고 싶다고 중얼거리냐고……!”
“중독되어서 헛소리를 중얼거린 거면 몰라. 당가풍운을 들고 그따위 말을 했으니!”
“아니! 하필 또 할 것 없는 원로들이 요즘 젊은것들 정신상태가 문제라면서 걸고넘어질 걸 어떻게 알았겠나!”
제갈세가와 사천당가.
강호에 무림세가를 언급할 때 다섯 손가락 안에 언급되는 두 가문은, 붙어있는 손가락마냥 서로 계속 비교되는 사이였다.
자연스레 두 가문은 좋든 싫든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하게 되었고, 서로 적대하진 않아도 뿌리 깊은 경쟁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필 그런데 가문의 사람이 사천당가의 무공을 부러워하는 발언을 하다니.
당가풍운이라는 책을 읽고 말이다.
“덕분에 다서각의 모든 책이 세가 정문을 못 넘게 되었으니. 누군지만 알면 내 그놈을 잡아다가……!”
결국, 다음 권을 목이 빠지라 기다리던 제갈세가의 당가풍운 애독자들만 피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크, 크흠! 당정의 무공이 워낙 멋있으니, 헛소리가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소, 소설에 중독된 거지.”
“자네 왜 그렇게 땀을 흘리나. 어디 몸이 안 좋은가?”
“아, 아닐세.”
“그놈 자식 때문에! 제갈세가에서 당가풍운 본다는 티도 못 내게 되지 않았는가! 다서각 소식도 듣기 힘들어졌고! 덕분에 올 초에 당가풍운이 나왔다는 소식도 여름에 겨우 들었네!”
다서각에서 오는 책은 금지. 당가풍운에 대해 화두를 꺼내지 못하게 되니, 자연스레 3권 소식도 늦게 접할 수밖에 없었다.
“난 얼마 전에야 겨우 3권을 구해서 읽었네.”
올 초에 나온 책을 멀리 외출하는 사람에게 겨우 부탁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제갈세가의 당가풍운 애독자들에겐 무한행은 또 다른 기회였다.
“무한에 온 김에 몰래 4권이나 사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직 안 나왔다니.”
“그러게 말이야. 무한 간다니까 자진해서 손든 건데. 신간은 없고, 대주 성질만 괜히 긁었네.”
“제갈세가로 돌아가면 올해 4권은 보기 글렀구먼. 밥은 내가 사지. 주문이나 하게.”
결국 신간을 구하러 무한까지 갔건만 돌아오는 것은 허탕뿐이었다.
거기에 불침번은 확정이고, 세가로 돌아갈 때까지 임무는 계속 해야 한다. 암담하지만 식사라도 하자. 제갈세가의 무인이 점소이를 부르려던 참이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합석해도 되겠습니까.”
검은 머리 남자가 기회를 잡았다는 듯 웃으며, 비어있던 의자를 당겼다.
“어? 공자님은……? 앉으시지요.”
“감사합니다.”
“…….”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웃으며 태연스레 합석하는 강윤호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이번 임무의 압송 대상.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강윤호를 어찌 대해야 할지 조심스러웠다.
가주님의 막내딸과 허락도 없이 동거한 남자. 분명 놈팡이라는 말만 듣고 왔는데, 실상은 너무나도 달랐으니까.
만금전장의 후계자라니.
대충 들으니, 안주인과 가주님의 장인어른께서 눈앞의 남자랑 이어주려고 하다가 사달이 난 것 같은데.
잘못은 했지만,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가문의 문제라기보단, 남편과 아내 사이의 문제가 아닌가.
죄인으로 보기에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가주님의 사위로 보기에도 이상하다.
탁자에 앉은 제갈세가의 무인들이 다들 조심스러운 가운데, 그나마 붙임성이 좋은 무인이 강윤호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 독서를 좋아하시는 모양이군요.”
강윤호도 현재 상황이 어색한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책을 읽고 있었다.
“네. 즐겨보던 작가의 신작이라 다시 봐도 봐도 즐겁군요.”
“저희도 무인이지만, 제갈세가의 사람으로서 소설을 즐기는 편이지요. 혹시 무슨 책을 읽으십니까?”
무인이 질문하자, 강윤호는 책을 들어 올리며 표지를 보여주었다.
“이런 제목의 책입니다.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풍운협객전……?”
무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벼운 대화나 하려고 했는데, 처음 보는 책이라니. 제갈세가의 무인이 동료들에게 시선을 던지니,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다른 화제로 넘어갈까. 아니면 당가풍운 이야기나 한번 꺼내볼까.
무인이 대충 넘어가려는 찰나, 검은 머리 남자의 입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호필 작가님이 얼마 전에 내신 신작입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