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39)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39화(540/674)
첫인사라니.
내가 살다 살다 예비 장인, 장모에게 첫인사를 하는 날이 오다니.
결혼할 때도, 약혼할 때도 첫인사는 안 했는데. 물론 애인을 사귈 때는 했지만. 왕 아저씨를 만났을 때는 첫인사보단 오랜만에 하는 인사에 가까웠으니까.
어디인지도 모를 방으로 끌려와, 대기하기를 잠시. 마치 죄인이 판결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가주님의 집무실로 안내하겠소. 따라오시오.”
한눈에 보아도 나 가주님의 측근이야라고 주장하는 외모의 무인이 들어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갈 소저와 같이 가는 것이 아닙니까?”
“따라오시오.”
“최소한 가져온 선물이라도 들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두 번 말하지 않겠소.”
곤란하네.
‘우리 사랑하게 해주세요.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는 겁니다. 두 가지 작전이 한순간에 막혀버릴 줄이야.’
예상 밖이다.
제갈 소저도, 선물도 없이 만나라니. 나와 혼자 만나겠다는 건, 타협에 여지도 없이 얼마든지 내칠 준비를 하고 만나겠다는 건데.
“알겠습니다. 앞장서 주십시오.”
어쩔 수 없다. 각오를 다지는 수밖에.
——
“들어가시오.”
속으로 크게 심호흡하고 지옥문, 아니 장인어른이 계신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커다란 방안.
장인어른이 어디 계실까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책상에 앉아 강렬한 존재감을 내뿜고 있는 사람을 놓칠 리 없었으니까.
저분이 제갈 소저의 아버지신가.
칼보다는 붓이 익숙해 보이는 문사 같은 외모의 미중년이 퇴근하고 무공 수련까지 열심히 해서 강렬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기분이다.
문제가 있다면 어쩐지 내가 느끼는 게 존재감이 아니라 살기 같다는 거였지만.
조심히 책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빠르게 시선을 움직였다. 제갈 소저도, 선물도 없는 상황. 정보를 조금이라도 얻어내야 한다.
‘장모님도 없어?’
들어올 때 문 옆에 호위로 보이는 무인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첫인사를 하러 왔는데, 장모님도 없다니.
시작도 하기 전에 사위 사랑은 장모 작전도 실패로 돌아갈 줄이야.
역시 제갈세가인가.
제갈 소저도 없고, 장모님도 없고, 선물도 없고, 변수란 변수는 다 차단당하고 분노한 장인어른 앞에서 시작하게 될 줄이야.
수싸움에 중요한 패를 차례차례 다 압수당한 느낌이다.
“들어오자마자 하는 게, 어찌하면 살아볼 수 있을지 눈알부터 굴리는 건가.”
마뜩잖은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이런. 황급히 책상 앞으로 다가가 서둘러 책상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인어른. 강…….”
“장인어른?”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분노 섞인 헛웃음이 가슴을 파고든다.
역시 장인어른은 너무 서둘렀나.
“처음 뵙겠습니다. 아버님!”
“아버님……?”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헛웃음이 2연타로 박힌다.
단지 헛웃음 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잘못하면 뒤에 있는 벽에 그대로 처박힐 것 같은 기분이다.
여기서 또 물러나면 안 돼. 엄지발가락에 단단히 힘을 주고,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연인의 아버님이니, 당연히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도리 아니겠습니까.”
“연인……? 누가 그걸 허락했지?”
만금전주님과 장모님이요.
안 돼. 참아. 싸우러 온 곳이 아니야. 인정받으러 온 곳이잖아. 그리고 말했다간, 은은한 노기(怒氣)가 아니라 살기가 꽂힐 것 같다고.
“…….”
침묵이 괴롭다.
누가 구급차 좀 불러줘. 과호흡 올 것 같아.
“……가주님이라고 부르도록.”
내가 답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기다리자, 장인어른께선 차마 웃는 얼굴의 멱살을 잡을 생각은 없으셨는지, 이내 타협하듯 말했다.
“제갈세가의 가주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강윤호라고 합니다.”
인사 한번 하기 너무 힘들다.
——
“하는 일.”
무릎부터 꿇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호구조사가 들어왔다.
“네? 아! 이번에 만금전주님의 후계자로서 인정받아…….”
“내 허락도 없이 내 딸을 엮어 얻어낸 자리 말고, 그간 뭐 하고 살았냔 말이야.”
내가 현재 가장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직함. 만금전장의 후계자라는 자리가 단숨에 무장 해제되어 버린다.
“다서각이라는 서점과 무한에서 객잔 몇 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필이라는 이름을 내밀까도 고민했지만, 당가풍운이 제갈세가에서 금서 소리를 듣는 이상, 호필이라는 호칭도 내밀기에 곤란했다.
“손톱만 한 점포 몇 개 가지고 있나 보군.”
“물론 가주님의 눈에 차지 않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무한에서 전서구를 통한 주문을 도입해서 배달 음식으로 유명해진 객잔이 바로 제 객잔이고, 호북성에서 유명한 작가 호필의 책을 저희 다서각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유망한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자신감 있게 내 가능성을 내밀자, 장인어른의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호필? 내 딸이 좋아하던 책에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아! 호필 아시는구나!
“네. 제가 발굴한 작가지요. 요새 무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그래. 천진난만한 우리 딸을 어떻게 꾀어내었나 했더니! 내 딸을 그 소설로 유혹한 것이었군!”
역시 제갈 소저의 아버지. 한 번에 정답을 도출하실 줄이야.
“물론 공통의 관심사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장인어른께선 더 이상 들을 필요 없다는 듯, 다음 화제로 넘겼다.
“집안은?”
‘조선의 역적 집안입니다.’
대답할 수 있을 리 없다. 씁쓸한 표정으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신 지 좀 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중원으로 온 조선인이었나.”
부모도 없으니 먹고 살려고 중원으로 온 것이냐.
외국인 노동자냐고 말하는 것이었지만, 고아 드립도 안 하고, 오랑캐라고 비아냥거리지 않으니, 사실 중원인 상위 10프로의 인성이긴 했다.
“사내로 태어난 이상 큰 세상을 보고 싶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가 아니라 견문을 넓히기 위해 큰 세상으로 나선 사내입니다. 나 자신을 포장하며 말했다.
“별호는 있나.”
그래? 큰 세상을 보러왔다면 명성은 가지고 있냐. 한마디 말에 많은 뜻이 느껴졌다.
“호신을 위하여 무공을 배웠으나, 무림인이라고 불리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입니다. 다만, 포쾌 일을 겸하고 있어 무한에서 과분하게 명 포쾌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녹봉도 못 받는 미관말직이군.”
포쾌는 제대로 된 관직이 아니다.
정식으로 녹봉을 받지 못하는 직책. 조선시대 아전처럼 뇌물이나 받으면서 호구지책으로 사는 비리 경찰이니, 어디 자랑할 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물론, 나는 자랑할 것이 있었지만.
“물론 한미한 직책입니다. 그러나 맡은 바 소임에 충실히 하다 보니, 무한에서 제법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일례로…….”
“사건 몇 개 해결하고 도둑 좀 잡았다고 치켜세워주는 것 가지고 자랑하려는 것인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무영신투 사건은 알고 있으신가?!’
장인어른께서는 딸의 동거 사실을 알자마자 노발대발하며 바로 사람을 보냈다고 들었다.
내 정보를 알아내기 위한 시간은 적었을 터. 아무래도 무한 밖에도 조금 알려진 강 포쾌에 대한 소문 정도는 들었나 보다.
‘장인어른이 보기에 정말 별거 없는 놈이겠네.’
재벌집 회장님이 막내딸이 동거하고 있다고 해서 남자 뒤를 파봤다고 생각해 보자.
사윗감이라는 게 외국인 노동자고, 배달음식집 운영하면서 겸업으로 대리운전이나 하고 있다고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어떻게든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아버님.”
바로 무릎을 꿇었다.
“누가 네놈의 아버님이라는 거지.”
“정말 죄송합니다!”
호구조사는 끝났다.
최대한 몰입하자. 나는 피해자이자 죄인이다. 어떻게든 장인어른의 마음을 얻어내는 거야.
“죄송? 이게 죄송으로 끝날 일인 줄 아나?”
“어찌 아버님의 심란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도 며칠 전에 사실을 알고 대경실색하였습니다.”
“며칠 전에 사실을 알았다?”
“만금전주님께서 맞선 자리를 마련해주시고, 제갈 소저의 어머님께서 동거를 허락하셨다고 하여. 당연히 제갈 소저의 아버님께서도 허락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르고 계셨다니. 제가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도 몰랐습니다. 억울함은 말에 숨기고 최대한 장인어른의 분노에 공감하는 척하자.
“일 년 가까이 같이 살아놓고 모르고 있었다고 발뺌할 셈이더냐!”
“당연히 모르시는 걸 알았다면 거절했을 겁니다. 어찌 연인의 아버님에게 허락받지 않고 간 큰 짓거리를 벌이겠습니까? 장모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할아버님이신 만금전주님께서 적극 지지해 주시니, 저도 큰 의심을 하지 못했습니다.”
저 그렇게 무례한 놈이 아닙니다. 단지 상황이 의심을 못 하게 했었다니까요. 작게 한숨을 쉬어 억울함을 표현하면서도, 얼굴로 최대한 죄송함을 표현하자.
“결혼도 하지 않은 내 딸과 살림을 차리고, 일 년 가까이 부모님을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입에 발린 소리만 하고 있구나!”
살림을 차린 놈이 어떻게 약혼녀 부모님을 뵈러 올 생각도 안 하나. 입이 몇 개여도 할말이 없는 지적이 가슴을 찔렀다.
내가 어떠한 이유를 쏟아내든 변명으로 들릴 거다.
침착해.
방법은 있다. 최대한 나를 낮게 만들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얼굴로 장인어른을 바라보는 거야.
“자격지심 때문에 그러하였습니다.”
“자격지심?”
“저도 당연히 제갈세가에 가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맨손으로 중원에 온 지 몇 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미관말직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포쾌 일이나 하면서, 손톱만 한 점포를 운영하는 검은 머리를, 누가 과연 사윗감으로 마음에 차겠습니까.”
재벌가 사위로 부족한 스펙이라면서요. 저도 알고 있어요. 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한 듯, 가슴을 움켜잡고 말했다.
“으음…….”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당당히 만금전주님의 시험에 통과하여, 만금전장의 후계자로서 제갈 소저와 손을 잡고 방문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낮추면서 변명하는 척, 은근슬쩍 최대한 나를 포장하자.
저 이렇게 대단한 놈이에요. 가주님도 아시잖습니까. 맨손으로 중원에 와서 유명한 포쾌가 되었다니까요.
거기에 사업체도 굴리고, 그 어려운 만금전주님의 시험도 통과해서 몇 년 만에 만금전장의 후계자도 되었다니까요.
매력적인 사윗감임을 어필하는 것이다.
장인어른께서는 나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시더니, 이내 조심히 입을 열었다.
“……내 딸 하곤 어, 어디까지 갔지.”
정말 듣기 싫지만, 꼭 해야만 하는 질문이라서일까. 장인어른의 목소리가 오늘 처음 떨렸다.
“걱정하시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내가 일말에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장인어른께서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한집에서 일 년 가까이 살았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나를 기만하려고 하는 것인가?”
“제갈 소저는 천하의 제갈세가 막내딸이 아니십니까. 정말 없었습니다.”
저도 뒷감당 생각하는 남자입니다. 시원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우리 딸이 매력이 없다는 뜻인가?”
왜 불만스러운 표정이시죠.
“소, 손은 잡았습니다.”
“손을 잡아?! 지금 내 딸이랑!”
죽겠네.
“한 저택에 살았을 뿐 한 방에서 산 것이 아닙니다. 제갈 소저가 워낙 집안에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시니. 만금전주님께서 서로 알아가라고 배려해 주셨을 뿐입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당합니다. 일등 사윗감. 강윤호. 한 번만 믿어주십시오. 결백한 눈으로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장인어른은 어디 미심쩍은 곳이 있나 계속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작게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그 말 믿어도 되겠나.”
“맹세코 없었습니다.”
“좋아. 믿어보지. 제갈세가에 온 것을 환영하네.”
장인어른의 입꼬리가 오늘 처음으로 올라갔다.
“아버님!”
설마 통과한 건가!
웃으며 일어나려는 찰나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 호칭은 안 되네.”
“네?”
“제갈세가는 만금전장의 후계자를 환영하네. 여독을 풀고, 바로 만금전장으로 돌아가게.”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말을 이해하기도 전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 터져 나왔다.
“내 딸이랑 헤어지게.”
————
순간 머리가 정지한 듯한 기분이었다.
“아버님!”
이해를 하기도 전에,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결혼은 허락할 수 없네. 내 딸이랑 헤어지게.”
장벽과 같은 선언이 내 외침을 막아섰다.
“아버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장인어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네. 가주인 내 허락 없이 내 막내딸을 멋대로 검은 머리와 약혼시키다니. 만약 장인어른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 다른 가문의 사람이 이런 짓을 벌였다면, 난 그 가문을 지도에서 지워버렸을 걸세.”
“…….”
“더는 내 딸과 만나지 말게. 딸과 인사도 하지 말고 떠나게. 그러면 장인어른과 안사람의 얼굴을 봐서, 이번 일은 불문에 부치도록 하지.”
제갈세가의 직계. 가주의 막내딸을 가주의 상의 없이 약혼시켜 버렸다. 그것도 검은 머리랑. 천하의 만금전주님이라고 할지라도,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은 일.
장인어른의 선언은 너무나도 완고했다.
어찌 말해야 할까.
용서를 더 빌어야 할까. 만금전장의 후계자 정도면 괜찮은 사윗감 아니냐고 협상해야 할까. 조금만 더 생각해달라고 간청해야 할까.
“아버님, 그건…….”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순간.
“그건 싫어요오오.”
옆에 있던 커다란 상자가 일어났다.
“무슨?!”
“제갈 소저?!”
“아, 아빠!”
“향이야? 네가 여길 어떻게!”
제갈 소저. 도대체 언제부터 여기에? 아니. 어떻게 들어온 거야.
내가 놀랄 겨를도 없이, 제갈 소저가 내 앞에 섰다. 그녀는 평소처럼 고개도 숙이지 않은 채, 한 손은 주먹을 움켜쥐고, 한 손은 내 손을 움켜쥐고는, 이내 장인어른에게 외쳤다.
“강 공자님이랑 저, 절대 헤어질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