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40)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40화(541/674)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혹시 제갈 소저는 진로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닐까.
장르만 잘 선택했으면, 레퀴에스캇 인 파체를 외치며 암살검을 휘두르거나, 군문에 투신해 암호명 강사(剛蛇)라고 불리며 잠입 임무에 투입되지 않았을까.
내가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제갈 소저는 장인어른의 앞을 막아섰고, 나는 예상치 못한 원군에게 감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향이야. 오랜만이구나. 아빠가 많이 보고 싶었어요. 우리, 이따가 따로 이야기하자꾸나.”
장인어른께서는 딸을 향해, 나에게 일 퍼센트라도 보여주었으면 좋을 다정다감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시, 싫어요!”
물론 제갈 소저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지만.
“어허!”
장인어른, 지금 살짝 충격받으셨네.
“강 공자님은 좋은 분이세요오오. 헤, 헤어질 수 없어요!”
제갈 소저, 화이팅! 지금 장인어른 멘탈에 스트레이트가 꽂혔어요.
장인어른께선 예상치 못한 급습에 잠시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마음을 부여잡은 듯 다시 한번 다정다감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어려서 그런 거란다! 이 아빠라면 저런 검은 머리보다 좋은 남자를 얼마든지 데려와 줄 수 있어요.”
그래. 제갈세가 정도라면 어디 명문가의 도련님들 일렬종대로 연무장 한 바퀴는 돌릴 수 있겠지.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얼굴에 지어지려는 찰나.
“강 공자님보다 더 좋은 남자는 절대 없어요.”
확신에 찬 말투가 내 심장에 스트레이트로 꽂혔다.
“제갈 소저…….”
“아핳. 강 공자니임.”
내가 감동해서 고개를 돌리자, 제갈 소저는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피했다. 붙잡은 손은 절대 놓지 않은 채.
“으으으윽! 지, 지금 누구 손을 붙잡는 것이냐. 그 손 놓지 못할까!”
따님이 붙잡으신 건데요.
“그럴 수 없습니다.”
“뭐라고?!”
제갈 소저가 지원 사격을 해주었으니, 다음은 내 차례다.
나는 종족이 달라도 사랑의 멋짐을 피력하려는 커플처럼, 제갈 소저의 손을 붙잡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아버님. 그 옛날 황 부인께서는 비록 그 머리색과 피부 빛이 중원인과 달랐지만, 제갈무후께서는 황 부인의 재능에 반해 결혼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보시기에 제가 검은 머리라서 눈에 차지 않으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강윤호! 아버님께서 옆에 두고 보신다면 분명……. 헉!”
보이지 않는 속도로 무언가가 내 볼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빠!”
“이놈이!!! 계속 우리 딸 손을 만지작, 만지작! 뭐하는 것이냐!”
“장인어른!”
붓이라는 게 벽에 박힐 수도 있는 거였나. 당황하여 장인어른을 불렀다.
“장인어른? 장인어르으으은? 이놈이 정말 나랑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냐!”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헉!”
이번에는 벼루가 내 얼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아무리 문인의 친구가 문방사우라지만, 암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거였냐고.
안 되겠다. 긴급 탈출의 술법!
“힣?! 가, 강 공자님?”
바로 제갈 소저 뒤로 숨었다.
“이놈이! 이게 지금 내 딸 뒤에 숨어?!”
철로 된 붓부터 치우고 그런 말씀하세요. 그거 맞으면 전 죽어요!
“아빠 안 돼요!”
장인어른이 심상치 않은 발걸음으로 다가오자, 제갈 소저가 팔을 벌려 장인어른을 막았다.
“비, 비키거라!”
제갈 소저가 앞길을 막은 것이 적잖게 충격이었는지, 순간 장인어른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아버님! 아무리 화가 나셔도! 평화적으로! 대화로! 대화로 풀어나가시지요!”
“이 노오오옴! 내 딸에게 달라붙어서 어딜 만지는 것이냐!”
“아버님. 그런 것이 아니라…….”
떨어지면 죽을 것 같아서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겁니다.
떨어지면 바로 철로 된 붓이 날아올 것 같고, 붙어있자니 장인어른의 살기가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앟! 아빠!”
“향이야! 비키거라!”
결국 장인어른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오자, 제갈 소저가 주먹을 움켜쥐며 울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빠! 계, 계속 다가오면 미워할 거예요!”
“커억! 따, 딸아!”
이건 크네.
딸 사랑뿐인 아버지의 다리가 순간 힘이 풀린다. 심장을 부여잡으며, 큰 상처를 받은 듯 딸을 바라보았다.
“강 공자님, 뒤, 뒤, 뒤에 계세요!”
“네놈 때문에……!”
우리 딸이 아빠에게 심한 말을 하다니. 전부 다 네놈 때문이다. 굳이 묻지 않아도 생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나를 꿰뚫듯이 바라보았다.
장인어른. 제 잘못이 맞긴 한데요.
“아버님.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보스몹이 잠시 스턴에 걸린 사이, 다시 한번 승부를 보기 위해 빠르게 뛰쳐나왔다.
“기회는 무슨 기회! 네 녀석 따위에게 주려고 내 딸 키우지 않았다. 절대 안 돼! 내 눈에 흙이 들어…….”
장인어른이 말을 잇는 사이, 제갈 소저가 빠르게 구석을 가리켰다.
“강 공자님, 저기 화분에 흙 있어요오.”
“네? 제갈 소저?”
“……햐, 향이야?”
제갈 소저는 순간 당황한 듯한 시선이 꽂히자, 부끄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앟……. 이건 아닌가요오오.”
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으으으윽! 흙이 들어와도 안 돼에에에에에!”
개판이네. 정말.
*******
“아버님, 제가 비록 한미한 일을 해왔을지 모르나, 만금전주님의 인정을 받아 이제는 만금전장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제발 고정하시고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십시오.”
제갈향은 불안한 시선으로 연인이 아버지에게 간곡히 간청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딸을 꾀어내어 얻어낸 자리로, 나까지 꾀어보겠다는 것이냐? 꼴에 상인이라고 이젠 나와 흥정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이냐!”
아버지의 분노는 사그라들 줄 몰랐다.
“어찌 고작 후계자 자리 따위로 천하의 제갈세가와 흥정을 하겠습니까? 다만, 맨손으로 중원으로 와, 만금전주님의 인정까지 받은 저를, 한 번만 냉정히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자신이 봐온 강 공자님은 정말로 대단한 사람인데. 누구보다 좋은 남자인데.
“냉정히 봐달라고? 좋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건, 아비 허락 없이 딸과 살림을 차리고 일 년 가까이 인사도 없던 놈이구나!”
아버지의 눈에 보이는 건, 검은 머리 놈팡이이다. 그 사실이 제갈향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버님! 아까 말씀드렸듯이.”
“듣기 싫다! 두 손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용서를 구해도 모자를 판국에! 맞기 싫으니 내 딸을 방패막이로 쓰고! 용서를 구하면서도 변명이나 하고 있으니! 네놈은 정말 죄송한 것이 맞긴 한 것이냐!”
“아버님!”
‘이대로라면 강 공자님과 영영 헤어지고 말아요.’
제갈향이 보기에도, 천하의 강 공자님이라도, 아버지의 분노를 감당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강 공자님은 옆에서 보면 볼수록 대단한 남자이지만, 아버지가 보기에는 작은 가게나 운영하던 검은 머리 포쾌일 뿐이니까.
거기에 어찌 되었든 아버지의 허락 없이 살림을 차렸다.
강 공자님이 어떠한 말로 설득하든, 결국 아버지가 보기에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남자일 뿐이었다.
‘결국 그 방법밖에 없어요.’
자신에겐 지금의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아니, 그래도요. 정말 그 방법을 써야할까요오오. 실패하면 큰일인데요오. 아니에요. 실패란 없어요. 이 길뿐이에요. 강 공자님하고 헤어지기 싫다고요.
수많은 불안이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머리를 격하게 흔들며 떨쳐내었다.
자신이 나서야 한다.
자신에겐 당정의 독살공간, 운현의 팔괘검법처럼, 아버지라도 납득시킬 수 없는 최후의 절초가 있으니까.
제갈향은 각오를 굳히며 아버지를 불렀다.
“아빠!”
“향이 너도 더 이상 끼어들면 이 아비에게 크게 혼날 생각 하거라!”
“저, 저 할 말 있어요!”
폐가 쪼그라드는 느낌이에요. 제갈향은 용기를 얻기 위해 연인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제갈 소저?”
무서워요오. 손이 떨린다. 제갈향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듯, 연인의 손등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강하게 붙잡은 손이 느껴졌다.
“빠져 있으라…….”
강 공자님의 손이다.
따스한 손이다. 안심되는 손이다. 숨이 쉬어진다. 떨림이 멈춘다. 제갈향은 크게 심호흡했다. 강 공자님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제갈향은 자신이 가진 최후의 절초를 펼쳤다.
“저어! 강 공자님이랑 이미 동침했어요오오오오.”
“…….”
“…….”
순간, 무거운 침묵이 방 안에 내리깔렸다.
“향이야?”
“제갈 소저?”
“그, 그, 그, 그게 무슨 소리니? 이 아빠가 다, 다 들었단다. 분명 저놈이 분명 손은 대지 않았다고 했어요.”
“마, 맞습니다! 양심에 거리낄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처음으로, 두 남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필사적인 수습에 나섰다.
“지, 집에 오기 전에 일주일 밤을 한 침대에서 동침했어요.”
새빨개진 얼굴로 하는 부끄러운 고백에, 가까스로 그러모은 상황이 박살 났지만.
“제갈 소저!”
“향이야. 아무리 급해도 아비에게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제갈극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딸아이를 타일렀다.
“가, 강 공자님이 밤새 제 가슴도 주물럭거리고 다, 다 했어요!”
빨개지다 못해 이미 홍시가 되어버린 딸아이는, 부끄러운 이야기까지 꺼내며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꽂았다.
“하하하. 향이야.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하려면 최소한 말이라도 맞추…….”
아닐 거다.
절대 아닐 거다.
딸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헛소리를 하는 것뿐이다.
저 검은 머리는 못 미더운 놈이지만, 건들지 않았다는 말은 거짓말을 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제갈극은 확인을 요 하듯, 강윤호를 바라보았고.
“…….”
검은 머리 도둑놈이 시선을 피하는 것을 목도하고야 말았다.
“네 놈……? 거짓말을……?”
“아버님, 오, 오, 오해입니다!”
“네가 감히 내 딸에 손을 대!!!”
분노의 일갈에 넓디넓은 가주의 집무실이 떨렸다.
“강 공자님은 잘못 없어요. 제, 제가 같이 자자고 했어요오오.”
“뭐?!”
“제갈 소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향의 아버지. 제갈극은 얼어붙은 채,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써보았다.
딸이 결혼도 하기 전에 동침했다.
우리 딸이 검은 머리를 유혹해서 동침했다.
20년 가까이 키워온 자기 딸을 검은 머리 도둑놈에게 도둑맞았다.
“끄륵! 끄르르륵!”
천하의 제갈세가 가주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어버렸다.
“아빠아아!”
“아버님!”
“가주님! 가주님! 정신 차리십시요!”
***
무림인도 극한에 몰리면 고혈압에 쓰러질 수 있구나.
제가 제갈세가의 가주를 쓰러트렸습니다. 백면호리 소개로 왔다고 마교에 투신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사이, 다행히 장인어른이 금세 정신을 되찾으셨다.
“저놈 뇌옥에 박아버려!”
안정을 취하시러 나갈 때 나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은 건 아쉬웠지만.
“따라오도록.”
“그럴 수 없어요오오오.”
“가겠습니다.”
“강 공자님?”
나에게 죄가 있다면, 날씨가 좀 쌀쌀해서 무의식적으로 따스하면서도 푹신한 부위를 찾은 것뿐이었지만.
장인어른께서 아신 이상, 더 변명해봤자 먹히지도 않을 것이다. 제갈 소저의 폭탄선언은 예상치 못한 행동이었지만, 상관없다.
가주님이 생각하는 선이 아니라, 휴전선을 넘은 수준이 되어버렸으니, 장인어른께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 기회에 점수 좀 따자. 사위가 져주는 척이라도 해야지.
“제갈 소저. 다른 사람들에게 말 좀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제갈 소저에게 걱정 말라고 머리를 쓰다듬고는 웃으며 방을 나섰다.
————
“따라오시오.”
제갈세가의 무인을 따라가니, 딱 봐도 경계가 삼엄한 곳에 당도했다.
“소문으로 듣던 검은 머리가 저 검은 머리요?”
감옥인가. 거짓말 한번 못 하고 평생 선량하게 산 사람이 감옥에 갇히게 된다니.
크게 상관없다.
‘나도 이제 밑의 사람들이 있으니까.’
만금전장의 사람들이 후계자가 갇혔다는 사실을 알면 바로 움직여주겠지. 제갈 소저와 길산이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말이야.
‘괜히 안 가겠다고 고집부리면서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는 거지.’
일종의 요식행위다. 저는 장인어른의 말을 잘 듣는 사윗감이라 감옥에도 들어갈 수 있어요.
잠깐 보여주는 거지.
“알고 있겠지만…….”
감옥에 나오면 특식으로 두부를 먹을지 백설기를 먹을까 고민하는 사이, 뇌옥의 담당자랑 나를 데려온 자가 한참을 대화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소?”
“알잖습니까. 괜히 문제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나도 미리 언질을 듣긴 했지만. 알았소.”
무슨 일이지.
“되었소. 따라오시오.”
뇌옥의 담당자가 무언가를 적더니, 나를 데려온 무사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뇌옥으로 가는 게 아닙니까?”
“조용히 따라오기나 하시오.”
감옥으로 가는 게 아닌가. 갈수록 주변 풍경이 밝아진다.
“다 왔소. 들어가시오.”
“여긴 뇌옥이 아니라 정원 입구 아닙니까?”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싱그러운 향기가 코끝을 찔렀다.
“…….”
“혹시 제갈세가는 빠져나올 수 없는 진법 속에 따로 감옥이 있는 겁니까?”
혹시 가두는 건 너무하니까 근신 처분으로 바뀌었나.
내가 계속 답을 보채자, 무인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들어가시오.”
장 부인?
제갈세가에서 장씨 성을 가진 부인이라면.
설마?!
“장모님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