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61)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61화(562/674)
“네가……. 네가 정말 호필이란 말이냐?!”
호필이라는 필명에 담겨있는 뜻을 깨닫자마자, 원로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오랑캐가 중원에서 붓을 들었으니, 호필이라는 필명보다 더 어울리는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네가 정말 호필이 맞는가. 아니, 오랑캐 글쟁이가 맞는가. 당신들은 검은 머리에게 그렇게 묻고 있으니, 내가 어찌 웃기지 않겠는가. 조금 빈정거리며 답했다.
“호필에 그런 뜻이 있었단 말인가…….”
“단순히 작가가 질 좋은 오랑캐 붓을 사용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나는 오랑캐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길래, 친애를 담아 호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 줄 알았네.”
“조용! 분명 네 말에도 분명 일리는 있다!”
이장로는 다른 원로회를 진정시켰지만, 정작 본인의 당혹감은 감출 수 없는지, 표정을 구긴 채 나를 바라보았다.
“계속 말씀하시지요.”
“하지만 다른 이들의 의심도 합당하다! 어찌 검은 머리가 무당파의 무공을 그리 잘 안단 말이더냐!”
팔괘검법은 창작인데요.
“맞아! 사천당가의 소설은 그 내용이 문란하기는 하나, 당가의 사람이 썼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놀라운 고증이 담겨 있었다!”
그야 당가에 있는 약혼녀에게 검수받았으니까요. 제갈세가에 결혼 허락받으러 와서, 대가리 터질 말은 할 수 없었다.
“호필에겐 마음을 나눌 검은 머리 지음은 없을지언정, 술 한잔 대접하면 언제든지 기쁘게 입을 열어줄 강호의 사람들과 맞장구를 쳐주며 들어줄 귀가 있었지요.”
“무림인들에게 들었다고?”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이 꽂힌다.
내가 왜 정체를 숨길 수밖에 없었는가. 내가 어떻게 무협 소설을 쓸 수 있었는가. 호필의 정체가 나라는 증거를 제시하고서도, 계속 반신반의하는 눈치네.
며칠간 체통도 잊고 풍운협객전에 환호했던 어르신들에겐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긴 하겠지.
“제갈세가의 어르신들 덕에 큰 용기를 얻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한 번 더 흔들어주자. 가슴에 손을 얹고 도전적인 얼굴로 원로회에 한발 다가갔다.
“용기?”
“혹시 호필의 정체가 밝혀지면 어떡하지? 검은 머리가 썼다고 하면 소설이 팔리지 않을 텐데! 어쩌면 무슨 큰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게 아닐까! 몇 날 며칠을 속으로 끙끙댄 적이 있지요.”
과장된 몸짓으로 홀로 걱정하는 모습을 연기하자.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
“검은 머리가 무림의 일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자기 몸도 제대로 못 지킬만한 무공 실력으로 어찌 무공에 관해 쓰겠는가. 하물며 조선에서 나고 자란 놈이라지 않은가. 우리 중원인들이 감탄할 만한 소설을 쓸 수 있을 리 없다. 모두 그리 생각했지요.”
경멸 어린 시선으로. 모멸 섞인 말투로. 부채를 펼치어 원로회를 가리키고는, 다시 내 얼굴을 가린다.
다들 보지 못했다.
모두가 그랬다. 당신들도 다를 것은 없다. 그런데 말이야.
“…….”
“제가 이렇게 눈앞에서 소리를 지르는데도, 천하의 제갈세가마저 눈뜬장님이 되어 저를 찾지 못하니, 앞으로도 누가 저를 호필이라고 알아차리겠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느냐. 내가 호필이라고.
내 부채는 당신들이 씌워준 검은 머리의 가면. 이제 이 가면이 보이지 않느냐. 천하의 제갈세가가 계속 눈뜬장님처럼 굴 것이냐.
“크흠!”
다행히,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
놀라운 이야기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생각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원로회의 모두가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침묵이 감도는 상황은 꽤 기꺼웠지만, 나는 쉬어서는 안 되었다.
“물론, 제가 호필이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던 건 아닙니다.”
내게는 원로회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것이 있었으니까.
“응?”
내 목적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나는 호필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원로회의 동의는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허락을 구해야 할 사람은 다른 이였다.
잠시 대화에서 발을 빼고 있는 사람.
원로회보다 더 중요한 장인어른 말이다.
“네가 호필이라는 정체를 알아차린 사람이란 게 설마…….”
장인어른이 혹시나 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님. 처음으로 제가 호필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이 바로 제갈 소저입니다.”
“……!”
기왕, 호필의 정체를 밝힌 김에 장인어른에게 점수 좀 따볼까.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확신에 찬 얼굴로 찾아왔거든요. 제가 호필이 확실하다면서요.”
정말로 식겁했지. 설마 내 정체를 알아낼 줄이야. 나와 제갈 소저 사이의 일을 회상하면서, 추억 어린 미소를 지었다.
“내 딸이 매일같이 떠들어대던 작가의 정체가 정말로 네 녀석이었더냐.”
아버지는 모르는 딸과의 추억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딸 도둑놈을 향한 분함일까. 딸바보 아버님의 못마땅한 시선에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님에게 점수를 따보자.
내가 제갈세가의 사위로서 인정받기 위해 원로회에게 필요한 것은, 검은 머리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문재(文才)일 것이다.
하지만 정말 장인어른에게도 중요할까.
제가 호필입니다. 저 재능있어요. 그러니까 딸 내놓으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문재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부분일 것이다.
“제갈 소저는……. 낯선 사람과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사람을 대하는 데 서툰 여인입니다. 부끄러울 땐 말 앞에 추임새를 넣기도 하고,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거나, 곧잘 더듬기도 하지요.”
“흐흠!”
장인어른. 가문의 어르신들 앞에서 딸의 흠결을 말하니 심기 불편하신가 보네.
“하지만 말입니다. 아버님. 그 여인이, 이 세상에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저를. 편견과 멸시라는 가면 속에 가려져 있던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었습니다.”
더없이 사랑스러운 여인을 떠올리는 표정으로, 장인어른에게 말했다.
“허…….”
“오직 제갈 소저만이 말입니다.”
장인어른에게 있어 사위의 성품도, 자질도, 꿈도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딸을 사랑해 주고 아껴줄 사람이 맞는가가 아니겠는가.
나를 알아봐준 유일한 여인. 그 여인을 위하여 결혼 허락을 받으러 왔습니다.
제갈 소저의 흠결을 이해하고, 그 누구보다 사랑해 줄 남자가 말입니다.
호필이라는 내 정체를 밝힌 상황에서, 내 정체가 아니라 마음으로 아버님에게 점수를 딸 좋은 기회였다.
——
“네가 호필이라는 걸 또 누가 알고 있지.”
장인어른의 눈빛에서 사위 점수가 오르는 모습이 보이자마자, 이장로가 나에게 물었다.
“앞서 말한 제갈 소저를 제외하면, 만금전주님과 만금서점의 전길산 공자가 알고 있습니다.”
“전부 다 네 사람이로구나.”
“확실히 제 사람이 아니라면 알릴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어디 가서 떠들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고 어깨를 으쓱거리자, 이장로는 작은 한숨을 내뱉고는 장인어른을 바라보았다.
“가주.”
“네, 이장로님. 말씀하시지요.”
“며칠 휴회를 요청하네.”
“휴회 말씀입니까.”
이장로는 가주의 질문에 나를 슬쩍 곁눈질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원래는 저 아이가 무슨 말을 하건, 오늘 안으로 끝내려고 했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달라졌지 않은가.”
너무하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반대하려고 한 거냐. 역시 혼천미리진을 7일 만에 통과하는 거로는 부족했나 보다.
“저 아이가 자신을 호필이라고 밝혔기 때문입니까.”
“보아하니. 호필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장로는 대놓고 답을 회피하며 물었다.
“네. 가주의 일에 집중하다 보니, 소일거리로 잡서를 읽는 취미는 접어두었습니다.”
“자, 잡서? 잡서라고?!”
“가주. 풍운협객전은 잡서가 아닐세!”
“크흠! 조용히 좀 해! 아무튼! 저 아이가 정말로 호필이라면, 딸아이의 아버지인 가주도 책을 읽어보는 것이 옳은 듯싶네.”
“옳으신 말씀입니다.”
장인어른은 나와 이장로를 번갈아 바라보시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아이가 자신을 호필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무조건 호필이 되는 것은 아니네. 다만 이야기의 정황상, 좀 더 알아보고 논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도 사실이네. 그러니 며칠 휴회를 요청하네.”
“상관은 없습니다. 너도 괜찮겠느냐.”
장인어른이 내 소설을 읽을 시간과 원로회가 나에 대해 더 알아볼 시간을 달라.
“시간이 필요하시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굳이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
“부인.”
휴회로 끝난 모임.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향의 아버지. 제갈극은 저택으로 돌아와, 아내를 찾았다.
“어서 와요. 오늘 어떻게 되었어요?”
제갈극은 내색은 하고 있지 않지만,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의 아내에게 간략히 오늘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휴회하기로 하였소.”
“휴회요?”
“원로회에서 생각할 시간은 달라더군.”
“나쁘지 않은 소식이네요.”
제갈극도 굳이 부정하진 않았다. 원로회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제갈극에게는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도대체 호필 작가가 쓴 소설이 무엇이길래. 원로회 모두가 그리 난리란 말인가. 회의 내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던 가주는, 다행히 쉽게 답을 찾을 방법이 있었다.
“며칠 뒤에 다시 논의하기로 하였소. 그나저나 혹시 향이가 읽던 소설. 서재에 있소? 작가 이름이…….”
“자. 여기요.”
장영영은 기다렸다는 듯, 당가풍운과 풍운협객전을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향이가 아빠 오면 찾을 거라고 주고 갔어요.”
제갈극은 말없이 책을 들었다. 향이가 자신있게 책을 건네다니. 역시 강윤호 그 아이가 호필이 맞는 것인가.
제갈극은 아무도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고는, 책을 든 채로 서재로 향했다.
“허허허…….”
바쁜 하루를 마친 해가 지고.
“이런!”
늦은 밤까지 책을 펼친 사람을 위해 달이 떠올랐다.
“허어…….”
어느새 닭울음과 함께 여명이 밝아왔고, 서재에는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탄성만이 들릴 뿐이었다.
“당신 밤새운 거예요……?”
“…….”
“당신?”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향의 아버지. 제갈극은 아내의 물음에, 책장을 닫으며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재미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