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7)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7)화(57/674)
Chapter 57 – 인연의 검은 줄 – 5
뒤에서 들린 싸늘한 목소리에 순간 뒷목이 서늘해졌다.
켕기는 게 전혀 없는 데 왜 잘못한 걸 걸린 거 같지.
고작 나에게 호의적인 말을 건넨 여자를 두고 연애, 결혼, 육아, 노후까지만 생각했을 뿐이다. 이정도는 꽤 흔하지 않은가.
그녀의 목소리가 싸늘하다고 생각한 것부터가 웃기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어투다. 단지 요새는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을 뿐이지.
“옥분아. 왔구나.”
“뭐 하고 있냐고 물었어.”
헌팅 당하는 중이었어.
이 세계에 와서 사냥당해본 건 내 돈을 털러 오는 놈들뿐이어서 좀 색다른 기분이야.
“내 이야기를 감명 깊게 들으신 관객분이랑 잠깐 대화 중이었단다.”
본능적으로 상황을 원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말을 꺼냈다.
내가 말했지만, 조별과제 여자 학우랑 단둘이서 술집에서 뒤풀이하다가 여친에게 걸린 조장형이 했던 어설픈 변명과 같은 느낌이다.
형님. 그런 건 가성비 있는 학교 근처 호프집에서 하시지 마시고, 좀 분위기 있는 곳에서 하셨어야죠.
덕분에 술안주 없이 맥주 2잔은 먹었습니다.
“아니잖아.”
천소희는 눈을 살짝 치켜든 채 나를 바라보았다. 요새 부드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따라 시선이 날카롭다.
거짓말은 안 했어. 너무 감명 깊게 들으셔서 저녁도 같이 하자는 거지.
그리고 다 들었으면 묻지를 말든가.
찔리는 건 없는데 이상하게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꽤 곤혹스럽다.
“흐응. 애인?”
나와 천소희를 보던 여인은 묘한 비음을 내며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아! 제 보표입니다.”
“애인?”
여인은 내 대답은 무시한 채 이번에는 천소희에게 물었다.
“……. 의뢰인이야.”
천소희는 여인의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고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 뒤에 말했다.
“흐응. 아직은 그런 관계구나.”
여인은 천소희를 향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천소희는 여자의 그 웃음을 보자 순간 한쪽 볼이 움찔거렸다.
“위험해. 물러서.”
천소희는 칼집 채로 칼을 들어 여자를 칼집으로 밀어내었다.
“후후. 뭐가 위험하다는 걸까나.”
여인은 칼집에 순순히 뒤로 물러나면서도 천소희를 향해 계속 웃었다.
“옥분아. 이러는 건 예의가 아니다.”
오빠와 저녁 먹을 사이야.
아직 2차랑 3차까지 확정은 아닌데 운 좋으면 오늘 밤 역사를 만들 사이라고.
“…….”
천소희는 여인과 거리를 벌리게 한 후에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이유나 알자.
“추녀의 질투만큼 추한 게 없더라.”
여인은 우리의 대치를 보면서 천소희에게 한마디 던졌다.
질투요? 누가요?
천하의 천살성이요?
이 여자가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했네.
지금 천소희의 외모는 여자 고등학교 1반에도 있고 2반에도 있고 5반에도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다. 너무도 평범해서 기억에도 남을 것 같지 않을 그런 얼굴.
아마 나와 섬씽이 있는 데 자기가 경쟁자로 등장해서 질투한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어마어마한 오해다.
“죄송합니다. 악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 문화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친구라 그렇습니다.”
“아니에요. 공자. 추녀의 질투는 익숙하답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어때요? 물론, 방해꾼 내버려 두고…….”
여인은 천소희에게 잠시 바라본 이후에 다시 나에게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좋죠.
천소희는 어떻게 보내지.
오빠가 급한 일이 생겼는데, 먼저 들어가 있어. 그렇게 말해야 하나.
혹시 혼자 심심하면 오빠가 재미있는 놀이를 알려줄게.
결박 방치 플레이라고 아니?
“너.”
내가 답하기 전에 천소희는 여인을 불렀다.
“응? 왜 그러신가요. 보.표.씨?”
“남편 있잖아.”
그녀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어, 어디서 그런 이상한 소리를 하시죠?”
여유로운 여인의 얼굴이 처음으로 구겨졌다.
정말? 반응을 보니 사실 같다.
“며칠 전에 봤어. 남편이랑 온 거.”
“다른 사람을 본 거겠죠. 여기 오늘 처음이에요.”
“회색 머리의 늙은 남자. 남편이잖아. 옆에서 부인이라고 부르는데 윤호만 보는 거 봤어.”
“호호호. 공자 이 여인이 투기(妬忌)가 심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네요. 방해꾼은 내버려 두고…….”
“꺼져.”
“히익!”
천소희의 한마디에 여인의 안색이 순식간에 파리해졌다. 살기를 쏜 건가. 아니, 윤대협 같은 사람도 놀라는 살기를 왜 민간인에게 쏘냐.
“가, 가볼게요!”
결국. 여인은 부리나케 뒤를 돌아 달려갔다.
사실이 아니면 연락처라도 남기고 가시지.
내 바람과는 다르게 여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잘 가라.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다. 제길.
“윤호.”
내가 여인이 사라진 방향을 아쉽게 바라보고 있자 천소희가 나를 불렀다.
“응?”
“가자.”
천소희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인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소희야! 저쪽으로 가야지!”
그쪽으로 가면 좀 돌아가야 하는데.
—————–
저녁 시간 내내 천소희는 묘하게 저기압이었다.
“해장국 나왔습니다!”
점소이가 웃는 얼굴로 우리 앞에 해장국을 놔줘도, 천소희는 수저를 들지 않았다.
국밥 말고 떡볶이를 시킬 걸 그랬나. 근데 너 점심때 떡볶이 먹었잖아.
저녁엔 든든한 국밥 먹어야지.
“오늘 소희 때문에 큰 위기를 벗어났구나.”
천소희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올려주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말을 꺼냈다.
“…….”
천소희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정도로 부족하다는 거냐.
“남편이 있는 여인이 어떻게 그런 천박한 짓을 할 수 있는지. 소희가 안 알려줬다면 큰 사달이 날 뻔했구나.”
하마터면 애 하나 만들뻔했다.
“그 여자. 사실. 세 번 왔어.”
“세 번?”
“남편이랑 한번. 다른 남자랑 한번. 오늘.”
오우. 부인께서 바람기가 많으신 분이셨네. 남편이 자리를 비웠나.
“허어.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소희는 관객들을 다 기억하고 있는 거니?”
“동태가 수상한 사람만 기억해.”
남자 갈아치우는 여자는 동태가 수상한 거에 속하나.
하긴 가짜 신분 같은 거에 익숙한 살수라, 특이하게 일행이 바뀐 상황이라면 기억에 남을 수 있다.
“하하. 소희가 그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을 줄은 몰랐구나.”
“호위 무사. 하겠다고 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천소희가 생각하는 호위 업무는 꽤 광범위했나 보다. 그러니까 매번 공연이 끝나고 뒤늦게 나타나는 건가.
“소희 덕에 매번 안심하고 매담자 일을 할 수 있구나. 정말 고맙다.”
나는 감탄한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응.”
천소희는 내 감사 인사에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는지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그 모습에 안심하고 수저를 들었다.
그나저나 여기 해장국은 별로네.
다음에는 일품 해장국 파는 객잔 가서 먹어야지.
——
“윤호.”
객실에 들어오자 천소희는 침대에 걸터앉아 나를 불렀다.
“응?”
“이 얼굴. 못생겼어?”
천소희는 그녀의 변장한 얼굴인 옥분이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그 여자가 말해서 그러니?”
“그냥.”
“평범한 얼굴 같은데. 굳이 말하면 조금 못생긴 편 같긴 하구나. 하지만 변장한 얼굴이니 상관없지 않니?”
10점 만점에 4점 정도. 기억에 남지 않을 평범한 얼굴이다.
“이건 어때?”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잠깐 가리더니 얼굴을 조금 변형시켰다.
“눈이 조금 커졌구나. 확실히 그 정도면 평범, 아니 괜찮은 거 같구나.”
솜씨 구린 성형외과에서 수능 할인받고 시술받아서 미묘하게 예뻐진 느낌이네.
혹시 얼마 주고 했니. 그 돈 주고 했다고? 그냥 강남 가지. 그런 느낌.
여전히 지나가다가 보면 기억에는 안 남는 평범한 여인이지만, 인상만은 괜찮아진 얼굴이었다.
“그럼 이젠 이렇게 다닐게.”
“그러렴.”
크게 중요한 사항은 아니니 그냥 긍정했다.
“윤호. 칠야승 꺼내줘.”
벌써 잘 시간인가.
나는 하루의 마지막 일과를 위해 한쪽 구석에서 검은 밧줄을 꺼냈다.
이젠 첫날처럼 칠야승에 그녀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는 없지만, 가끔 균형을 잃는 때는 있다.
그런 그녀를 부축해서 침대 위에 눕히면 하루 일과 끝.
“여기 있다.”
나는 일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평소처럼 칠야승을 건네였다.
“…….”
“소희야?”
천소희는 검은 밧줄을 가만히 바라볼 뿐, 받지를 않았다.
“오늘부터는 네가 묶어줘.”
이건 또 무슨 소리래.
호이가 계속되니 대수림 사는 둘리마냥 요구하려 드네.
이럴 땐 따끔하게 거절해야 한다.
“소희야. 저번에도 말했지만, 오빠가 과년한 처자의 몸을 묶는 건 좋지 않단다.”
“일당. 내일부터 안 받을게.”
“목부터 묶어주면 되니?”
천소희는 내 대답이 어처구니없는지 나를 잠시 쳐다보았다.
뭐. 네가 먹는 떡볶이 1인분이면 든든한 국밥이 몇 그릇인데. 심지어 객실 비용도 내가 내고 있다고.
“……. 목부터 해줘.”
천소희는 양손으로 단발머리를 들쳐 올리고는 자신의 새하얀 목을 들이밀었다.
나는 마치 새색시가 남편의 넥타이를 묶어주듯 그녀의 목에 조심히 밧줄을 매었다.
“이 정도면 되니?”
“읏!”
“이런 너무 세게 묶었나 보구나.”
나는 황급히 매듭을 느슨하게 풀었다. 생각보다 어렵네.
“윤호.”
“응?”
그녀의 부름에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매듭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목을 묶어주기 위해 너무 가깝게 서 있어서 아이컨택 까지 해버리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나는 너에 대한 기억이 아직 떠오르지 않았어.”
“알고 있단다.”
영원히 떠오르지 않을 건데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나.
“너를 내 소꿉친구 오빠라고 인정하지 않았어.”
“아쉽구나.”
건성으로 대답하고 매듭에 집중했다.
이거 왜 이렇게 힘들어.
평소에 그녀가 묶이는 모습을 열심히 직관했지만, 직접 하나하나 매듭을 만들려니 꽤 번거롭다.
천소희는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줄을 묶어 나갔다.
천소희는 갑자기 열심히 줄을 매만지고 있는 나의 손목을 붙잡았다.
“소희야?”
왜 그래. 잘못 묶었나.
고개를 살짝 드니 나를 조금 샐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와 시선이 마주쳤다.
너무 건성으로 말했나.
맨날 우리 소희가 오빠를 기억 못 해서 너무 아쉬워. 슬퍼. 통곡할 수는 없잖아.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지는 거리에서 아이컨택이 되어버리니 좀 부담스럽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둘 중 한 사람이라도 고개를 내밀면 바로 입맞춤을 할 수 있는 거리다.
할 말이 있으면 빨리해.
“하지만.”
그녀는 아이컨택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응?”
“……. 의뢰자에게 이런 걸 해달라고 하진 않아.”
천소희는 고개까지 숙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소희가 오빠를 믿어주니까 맡겨주는 거 알고 있단다.”
새삼스럽게. 서로 신뢰가 있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응. 알면 됐어.”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오늘 저녁 내내 있었던 목소리의 묘한 뾰족함이 누그러진 느낌이네.
처음으로 직접 귀갑 묶기를 하게 되니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소희야. 이정도면 괜찮니?”
“더 세게 묶어.”
“이렇게 하면 되니?”
“으읏! 풀어.”
“그래. 그래.”
처음으로 하나하나 묶다 보니까 적절한 강도를 잘 모르겠다.
압박이 느껴질 정도로는 묶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피가 안 통할 정도로 묶으면 안 된다.
“흐읏!”
“하아!”
묶일 때 묘하게 달뜬 신음이 나오면 합격점인 거 같은데, 신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칠야승 효과가 엄청난 건 아는데 이러는 거 좀 참으면 안 되나.
평소에는 이정도로 신음소리 안 내잖아. 왜 내가 하니까 이러는 거야.
“…….”
열심히 묶고 매듭을 짓고 있으니 그녀의 시선이 느껴졌다. 첫날처럼 묶이고 나서 이지를 상실하진 않아서 오히려 더 민망하다.
나는 마무리를 위해 가슴 쪽 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흐흣!!!!”
‘소리가 너무 큰데.’
쾅!! 쾅!! 쾅!!
“저기요!! 저기요!!”
문밖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얼굴 반절만 보이도록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문을 열고 보니 얼굴에 화가 잔뜩 나 보이는 두 남녀가 서 있었다.
“오른쪽 방에서 묵고 있는 사람입니다.”
“난 왼쪽 방이에요.”
“어떤 일로 오신 건가요?”
“아니! 한창때인 건 아는데 소리 좀 죽이고 하면 어디가 덧나요?”
화난 여자는 팔짱을 낀 채에 나에게 따졌다.
“저도 같은 말 하러 왔습니다. 평소에는 그냥 놔뒀는데 오늘은 유독 너무 크고 오래 하시네요.”
“죄송합니다.”
그동안 다 들렸구나.
부끄러워서 얼굴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다.
나는 고개가 삐져나올 만큼 문을 열고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사과했다.
“고개만 까닥하면 다예요! 문 열고 나와서! 에구머니나!”
여자는 화가 나서 문을 활짝 열어 안쪽을 쳐다보았다. 옆방의 여자는 묶이는 중인 천소희와 시선이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문을 다시 닫았다.
“저기 위험한 짓을 하는 건 아니고.”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지. 조선의 전통문화 애수애무라고 말해야 하나.
“네네. 좋은 밤 되세요!”
“죄송합니다! 잘 즐기세요!”
아니! 즐기고 있던 적 없어! 오히려 저거 하고 나면 요새 밤새 너무 괴롭단 말이야!
남녀는 내 변명을 들을 생각도 안 하고 각자의 방으로 황급히 다시 들어가 버렸다.
“…….”
고개를 돌려서 천소희를 바라보니, 조금 황당한 시선으로 문틈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희야.”
“응.”
“내일부터는 객잔을 바꾸자. 방음이 잘 되는 곳으로.”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