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596)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596화(597/674)
사고가 났다.
서로가 얽히고설킨 상황. 어디서부터 문제를 지적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다들 난감한 사고다.
누구의 잘못인지. 과실 비율을 따지기 힘든 다중추돌 교통사고 한복판에, 내가 서있다.
왜 하필 사고가 났지. 안 났으면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 텐데. 후회는 지금 할 일이 아니다. 주저앉아서 정리되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
‘가만히 있으면 결국 나만 망한다.’
내가 지금 나서지 않으면, 결국 피해는 내가 제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사고의 원인은 나니까.
움직이자.
만금전장. 제갈세가의 원로회. 장인어른. 사천당가까지. 모두가 범인으로 나를 가리키기 전에. 먼저 움직이자.
일단.
“의각주. 너무 흥분한 거 같소. 잠시 분노를 가라앉…….”
멋들어지게 끼어들어 의각주를 진정시키는 거다.
“뭣들 하는 거지.”
의각주의 미간이 찌푸려지자마자, 주위에 있던 당가의 무인들이 움직였다.
“강 공자님. 실례하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이런 렉카 같은 당가놈들! 지금 목소리 키워서 과실 비율 조정하려는 거 안 보여? 너희들의 갈고리에 걸려서 제압당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바로 용천혈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어?! 언제 가, 강 공자님이 경신법을?”
약혼녀가 알려줬어. 은색 머리 말고. 분홍색 머리가!
“잡아!”
잡힐 수 없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멋지게 빠져나왔다.
“여기가 명당이었네.”
길산이 저 자식은 저기서 뭐해. 사람 사이를 뚫고 나오자, 시야에 엉덩이를 들이밀며 원로회 쪽으로 앉는 길산이가 보였다.
“자네는 뭔가?”
“가주님의 처조카인 전길산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자리도 넉넉한데 좀 앉아만 있겠습니다.”
“아니…….”
“버터구이 오징어 좀 챙겨왔는데 드시겠습니까?”
어쩐지 같이 올 때 품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니!
길산이가 원로회에게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버터구이 오징어를 들이미는 것과, 무인의 손길이 내 뒷덜미에서 느껴지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강 공자님! 가만히 좀 있으십시오!”
저기 봐봐. 원로회에서 흥미진진하게 바라보고 있잖아.
“으으음…….”
“제가 이럴 줄 알고 좀 넉넉히 챙겨왔습니다. 사양 말고 드시죠.”
“강 공자님! 도대체 뭘 익히신 거야?!”
무영신법이야.
무인의 손길을 피하고 다시 앞으로 한 발짝 나간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탈출할 수 있는 상승의 절학이라고.
“잠깐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제아무리 사천당가의 무인들이라도, 무영신투의 무영신법은 상대하기 까다로울 것이다.
“조용히! 하세요!”
“꾸엑!”
“제압했습니다!”
아차. 내가 무영신투는 아니지.
“어으억! 읍읍읍!”
아혈을 짚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의각주. 발언권 안 주면 계속 추하게 굴거야! 내 쪽으로 시선 쏠리게 할 거야. 떼쓸 거라고!
우우우. 풀어줘라.
의각주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작은 한숨을 쉬었다.
“……풀어주거라.”
“허억! 허억! 다, 다, 다른 사람들은 할 말이 없을지라도! 나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요!”
“네 놈의 주둥아리가 제일 문제다…….”
의각주는 미간에 힘을 주며 다가온 나에게 말했다.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 기회나 주시오.”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게냐. 너를 이따위로 대한 제갈세가를 감싸기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의각주…….”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의각주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분노가 담겨있었으니까. 나를 위한 진심 어린 분노가 말이다.
“오늘 이 일을 알면, 사천당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뭣?!”
“지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길산이 옆에서, 오징어를 씹던 원로회 장로가 놀라 외쳤다.
“지금 내 손에 그간 강 공자를 협박한 이유가 들려있소. 우리 사천당가가 이런 꼴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것 같소?”
의각주의 손에는 어떤 변명이라도 통하지 않을 강력한 증거가 쥐어져 있었다.
“흐으으음.”
꼬이고 꼬인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해다. 사실 내 잘못이다. 설명을 일부러 안 했다. 제갈세가는 큰 잘못은 없다. 만금전장이 잘못이다. 말해봤자 믿지 않을 것이다.
만금전주는 제갈세가 가주의 장인어른이고. 제갈세가의 원로회는 나에게 제갈설록을 쓰게 했으니까. 아무리 설명해봤자 오해는 풀리지 않는다. 입만 아플 뿐이다.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간 이상, 다른 답을 꺼내야 한다.
소윤심상결을 운용하자.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흥분한 의각주도 들을 수 있게. 나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선물이요.”
“강윤호. 지금 뭐라고?”
“제갈설록은 내가 제갈세가에게 준 선물이요.”
————
오해의 매듭을 풀기 어렵다면, 매듭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선물이라고?”
“예비 처가에게 준 선물이요. 화린이를 위해서 당가풍운을 썼듯, 제갈 소저를 위해서 제갈설록을 썼소.”
거짓말을 하는 거다.
제갈세가도. 사천당가도.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전부가 알아차릴 수 있는 거짓말을 하는 거다.
“정황증거가 다 있거늘. 너는 거짓말을 해서까지 제갈세가의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냐?!”
예상대로의 반응. 하지만 모두가 알 수 있는 거짓말이라고 하여, 그것이 꼭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자기 생일날 아침에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고 하여, 남편이 저녁에 아내를 위하여 꺾어온 향기로운 꽃이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요.”
“강윤호!”
모두가 알 수 있는 거짓말은, 동시에 거짓말을 한 사람의 마음도 느끼게 할 수 있으니까.
‘일단 제갈세가에겐 마음의 빚을 지워두고.’
강윤호가 제갈세가를 두둔해 주고 있다. 나를 거세게 압박하던 이장로님의 눈빛조차 살짝 감동으로 물들어있었다.
‘사천당가에겐 한발 물러설 이유를 주는 거지.’
어찌 되었든 내가 자의로 쓴 소설이다. 의각주에게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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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가에서 다 알아보고 왔거늘! 너는 어째서……!”
“물론 눈치를 주는 게 과했지만 말이요.”
답답해하는 의각주를 향해, 장난스레 그의 오해를 긍정한다.
“허허헣.”
내 말을 차마 부정할 수 없는 원로회에서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노리는 바였다.
‘당가의 오해를 굳이 해결할 필요는 없어.’
오히려 당가의 오해를 이용해야 한다.
내가 지금 당장 오해를 해결해봤자 남는 것은, 약혼녀를 숨긴 채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온 검은 머리라는 사실뿐이니까.
‘사천당가는 확실한 아군이 되어줘야 해.’
풀 수 없는 오해의 매듭을 굳이 풀 필요는 없다.
오해를 해결하지 않으므로 명분을 주자. 제갈세가가 함부로 나를 압박할 수 없게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의지를 보이므로 완강히 반대할 명분은 없애야 한다.
“강윤호. 네가 원한다면 당가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의각주의 말은 사뭇 진지했다.
“진심으로 화를 내주는 것은 고맙지만, 행여나 나 때문에 피를 흘리는 건 원치 않소.”
“무인이라면 나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무림인이 아니라 글쟁이 호필이요.”
“누군가는 너를 위하여…….”
“나는 흘린 피로 글을 쓰고 싶지 않소.”
“…….”
장인어른. 제갈세가 원로회분들. 다들 보고 있죠?
지금 실시간으로 저에게 빚이 생기는 겁니다. 당가랑 전면전 가는 거 막아주는 거예요.
“너를 강제로 끌고 와! 자신들의 시커먼 욕망대로 너에게 글을 쓰게 한 놈들이다!”
“그러게 말이요. 호필로 살다 보니. 어째 비슷한 일을 자주 겪는 거 같소.”
작년에도 한 번 겪었잖아. 본인이 끌고 갔으면서.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니, 의각주도 당황하여 나를 바라보았다.
“강윤호!”
“나를 위해 화냈듯이, 나를 위해 진정하고, 나를 위해 해명할 시간을 좀 주시오. 그때 그랬듯이.”
너희가 가진 오해는 전부 사실이야. 굳이 부정은 안 할게. 근데 내가 결혼 허락받으러 온 것도 사실이야. 그러니 잠시 기다려줘.
의각주를 향해 작게 미소 지었다.
작년 어느 날. 당가를 떠나갈 때의 얼굴이었다.
“……네놈의 세 치 혀는 여전하구나.”
“의각주도 여전한 것 같아서 반갑소.”
결국,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
의각주를 진정시켰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폭탄은 터졌으니까.
불발탄으로 만들어, 방실방실 웃는 손자 옆에서 깔끔하게 처리하려고 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속으로 심호흡하고 의각주를 지나쳤다.
원로회와 제갈 소저의 시선을 받으며, 장인어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아버님.”
“강윤호…….”
장인어른은 당장이라도 다시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아. 물 밖으로 나온 잉어가 된 기분이야.
“소란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긴급대피! 긴급대피! 아버님에게 갑작스러운 상황을 사과하는 김에, 원로회에게도 사과했다.
“강제 맞선이라니? 이건 또 무슨 소리고?”
“둘이 눈이 맞아서 동거한 것이 아니었더냐?”
“약혼녀는 무슨 소리고?!”
“당가주의 아들이라니. 정말로 그 당가주. 당백호의 아들이 맞단 말이냐?”
원로회는 바로 궁금증을 토해내었지만, 상석에서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에 단숨에 조용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가주전의 모든 시선이 장인어른에게 향했다.
“서로에게 얽히고설킨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정말로.”
목소리에 배신을 당한 아버지의 떨림이.
“…….”
“정말로 약혼녀가 있었느냐?”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분노가 느껴졌다.
어찌 대답해야 할까. 장인어른의 화를 누그러트릴 방법은 없을까. 지금 상황을 어떻게 넘어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네,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당화린이라는 이름의 약혼녀가 있습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
“정말. 정말이었다고?”
“네, 제갈 소저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당당하게.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은 것처럼 답했다.
“네가……! 네가! 지금까지 나를 속여?!!!”
장인어른이 앉고 있던 의자의 팔걸이가 부서진다. 장인어른의 분노한 얼굴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빠!”
파국(破局).
파국으로 치닫는 소리가 들려온다. 약혼녀가 있는 남자가 결혼 허락을 받으러 오다니. 그것도 장인어른에게 비밀로 한 채 말이다.
‘차라리 잘됐어.’
정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일. 왜 하필 당가에서 찾아왔을까. 억울해하지 말자. 오히려 늦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이 순간.
이 자리라서 가능한 방법이 있었으니까. 내가 당당히 약혼녀의 존재를 인정해도 괜찮은 방법이 말이다.
“내가 하라고 했어요.”
“부인?”
“내가 저 아이에게 함구해달라고 했어요.”
장모님.
나에겐 또 다른 원군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