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616)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616화(617/674)
이면세계(裏面世界).
거울은 많은 문화권에서 종종 다른 세계로 가는 입구라고 여겨지곤 한다.
현대의 수많은 대중매체에도 볼 수 있지 않은가. 거울 속 세상의 또 다른 자신이 갑자기 튀어나온다든가, 미러 월드 속에서 세상을 위해 강화 슈트를 입고 싸운다든가.
“역시 호수가 입구였나.”
잔물결 하나 보이지 않는 호수.
호수는 새하얀 세상 속에서 은백색의 거울처럼 빛나고 있었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살을 에는듯한 추위에도 호수가 얼어붙지 않고 있다니. 쌓여있는 눈을 헤치고 호수쪽으로 다가갔다.
다가가니 더 가관이네. 아무것도 반사되지 않으면서, 가까이 다가간 내 모습만은 반사하다니. 내 의심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좋아. 신발을 벗고 조심히 호수에 발을 집어넣었다.
“으악! 차가워! 차가워도 너무 차갑잖아!”
바로 뺐다.
입구가 아니라 시리도록 차가운 물인데. 설마 좀 특이한 호수였나. 손을 집어넣어 보았지만, 차가움에 서둘러 손을 뺐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거 봐서는 입구가 맞는 거 같은데. 어떻게 들어가는 거지.”
어느 순간부터 반응을 하지 않았던 나침반이, 내 짐작이 맞았다는 듯 다시 움직였다. 혹시 잘못 보았나 호수 주변을 돌았지만, 나침반은 계속 호수를 가리켰다.
‘단숨에 뛰어들어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타이타닉에 탄 커플도 한 번에 보내버릴 정도의 수온이었으니까.
나는 제갈 소저가 있는 산하사직도의 세계로 가고 싶은 것이지, 호수의 수온 체크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괜히 뛰어들었다가 입구가 아니면 그대로 동사다.
나는 여자 문제가 아주 조금 생겼을 뿐이지. 아직 사업 실패는 겪지 않았어.
“난감하네.”
잔물결 하나 없는 은백색의 호수. 분명히 입구 같아 보이는데.
혹시 조건 같은 게 있나.
“주문 같은 거라도 외워봐야 하나……. 도막사라무!”
어설프게 수인 같은 걸 맺어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안되는 건가.”
역시 조언 무시하고 팽이도 챙겨올걸 그랬다.
아무리 봐도 소환 조건이 매우 복잡한 마법 로봇도, 단숨에 부름에 응할 것처럼 생긴 수상한 호수인데 말이야.
무슨 방법이 없을까.
최후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뭐라도 해봐야 한다.
“삼천결순! 급급여율령! 황혼보다 어두운 자여 내 몸에 흐르는 피보다 붉은 자여! 나의 궁극 마법, 익스플로전!”
생각나는 대로 주문을 외워보았다.
“……될 리가 없지.”
호수는 내가 무슨 내용을 보내든, 반응이 없는 여동기의 메신저처럼 요지부동이었다.
역시 답은 하나밖에 없나. 고개를 떨군 찰나였다.
一 우웅. 우우우웅.
호수의 한가운데가 빛나기 시작했다.
“되, 된다고?”
왜 되는 거야. 뭐에 되는 거지?
“장르가 어디야? 역시 급급여율령인가? 다음 주문 모르는데. 음양화합! 일부다처제! 아닌가? 암흑보다 더 어두운 자여 밤보다 더 깊은 자여!”
어디에 반응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호수의 한가운데. 동양스러운 마법진 같은 게 생겼다.
“입구 같긴 한데, 수상비는 못한다고.”
내가 최종 테크를 찍으면 수상비를 할 수 있는 무공을 익히고 있긴 한데, 경쟁 게임 같은 캐릭터로 랭크 매치 돌린다고 모두가 최고 계급인 건 아니잖아?
깊은 곳까지 수영해야 하나.
一 빠직. 파지직.
갑자기 호수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치 걸어서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처럼.
“너무 의도가 대놓고 보이지 않냐.”
수상하다.
수상해도 엄청나게 수상하잖아. 마치 너는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것처럼,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주고 있다니.
마법진이 서서히 점멸했다.
생각이 없으면 더 이상 열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 사람을 유혹했다.
“오냐. 해볼 테면 해보라는 거지.”
간다. 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산하사직도에 의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만만히 보는 모양인데.
네가 신선의 보패면, 이쪽은 역천자거든.
각오를 다지고, 얼음 위로 힘차게 발을 옮겼다.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강윤호가 걸어갑니다. 아니. 미끄러집니다.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기 전에 안전한지 확인부터……. 어? 이거 왜 안 멈춰져?”
마찰계수가 제로라도 된 것처럼, 호수의 중앙을 향해 계속 미끄러져 나간다.
“자, 잠깐만! 잠깐만! 이건 아니지! 야!!!”
마음의 준비는 한 번 더 해야지.
내 의지와는 별개로.
“으아아아아아!”
이면세계의 안으로 너무나도 손쉽게 빨려 들어갔다.
————————
의식이 침잠한다.
강윤호라는 인간의 정신이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난 한 여름에도 온수 샤워하는데. 가벼운 생각을 점점 할 수 없게 된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의식을 씻어나간다. 구도자들이 차가운 폭포를 맞아가며 정신을 수행하듯, 잡념이 깎여나간다.
버텨야 한다.
왜 버텨야 하는지 모르지만.
의식을 놓지…….
“으아아아아아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떴다.
“저, 정신이 드십니까?”
마치 오랜만에 눈을 뜨는 것 같다. 빛에 적응하느라 흐려진 시야 너머, 처음 보는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으윽! 누구?”
한겨울에 꽁꽁 언 아이스크림을 먹고 머리가 시린 느낌이 덮친다. 무슨 일이지.
“어서 주인 마님에게 알려라! 윤호 도련님이 깨어나셨습니다!”
“의원부터 불러!”
“여기 있소!”
“여기는 도대체?”
딱 봐도 명의처럼 보이는 남자가 내 머리를 만졌다.
“자네 방일세. 안심하게. 지혈은 다 되었으나.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이거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네.”
생전 처음 보는 방인데 무슨 내 방이야. 아이디어 노트도 안 보이고, 컴퓨터도 없잖아.
“으윽! 머리가!”
“물살에 휩쓸릴 때 하필 물속 바위에 부딪혀 머리를 다쳤네.”
내가 머리를 다쳤다니. 확실히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는데.
“윤호야! 정신을 차렸느냐?!”
“누구……? 으으윽!”
처음 보는 노부부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의사 양반! 이, 이게 무슨 일이요? 우리 아들이 애미 애비 얼굴을 못 알아보고 있지 않소?”
“건강 상태에는 큰 문제가 없으신 거 같습니다.”
“큰 문제가 없다니?! 계속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있잖소!”
“물에 빠지셨다가 겨우 살아났으니, 일시적으로 기억에 혼란이 올 수 있습니다.”
“기억상실? 우리 아들이?!”
내가 왜 당신 아들이야.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머리가 사정없이 울린다. 여러 사람이 귓가에서 소리 지르는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겠다. 일단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환자가 쓸 수 있는 필살기를 쓰기로 했다.
“내가, 내가 기억상실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으윽! 말도 안 된다고!”
머리를 붙잡고 절규하자, 의원이 서둘러 달라붙었다.
“안정이 필요한 것 같소! 다들 나가 있으시오!”
————
“무협 세계에 빙의된 건가.”
사람들이 방에서 물러나자마자, 차분히 기억과 상황을 되짚었다.
겸업 작가 강윤호. 눈 떠보니 무협 세계. 근데 이상하단 말이야. 난 무협 소설은 쓴 적 없다.
내가 쓴 소설에 빙의한 건 아니란 건데. 다른 사람 작품인가. 악플도 안다는데. 마지막 기억이라곤 회사에서 야근하고 돌아와서, 잠든 게 전부다.
“설마 과로사?!”
평일에 하루 3, 4시간씩 자고 연재하는 게 독이 되었나. 그렇다고 해도 무협 빙의는 영문을 모르겠다.
소설에 빙의된 게 아니라 단순히 무협 세계로 빙의된 건가.
“육체의 기억이 있어서 다행인데.”
호북성 부잣집 도련님. 강윤호. 전부 다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마치 선택적 기억상실에 걸린 것마냥 기억이 남아있다.
정신을 차릴 때 겪은 두통은 두 기억이 정리되느라 생긴 건가.
“강 도련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상황을 정리하고 있으니, 하인으로 보이는 자가 밥상을 들고 왔다.
그래. 생각을 많이 했더니 시장하네. 일단 밥부터 먹고 하자.
“가져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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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꼭꼭 씹어 드십시오.”
하인이 내 앞에 대령한 음식은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이, 이게 뭔가?”
“치킨 누들 수프입니다. 몸이 안 좋을 때는 역시 잘 끓인 치킨 스프에 채소들을 곁들어 먹는 게 최고지요.”
뭐?
“이런 건 무협이……. 으윽!”
갑자기 관자놀이가 아파져 온다.
송곳을 찌르는 듯한 통증이 덮친다. 머릿속으로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는 기분이다.
“왜 마음에 안 드십니까? 클램차우더도 있는데 바꿔 드릴까요?”
“치킨 누들 수프. 치킨 누들 수프……. 아니야. 괜찮아.”
조개 크림수프보단 역시 치킨 수프가 낫다. 고통이 잦아들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드시고 그릇은 문 쪽에 놔두시면 가져가겠습니다.”
하인이 나가고, 조용히 치킨 누들 수프를 바라보았다.
그래. 무협 세계잖아. 보양식으로 뜨끈한 삼계탕을 기대하는게 이상한거지.
내가 적응해야한다. 고기 건더기와 함께 입속으로 한가득 치킨 누들 수프를 넣었다.
목구멍을 넘어 식도와 위장까지. 시장한 배속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치킨 수프는 역시 무협의 보양식이라고 할만했다.
환자식이라, 간이 좀 부족한 것만 유일한 불만이었다.
“무협에서 치킨 누들 수프를 먹는 건 상식인데……. 뭐 때문이었지.”
갑자기 왜 위화감이 들었을까. 당연한 일이야. 단지 무협 세계로 와서 이상한 것 뿐이다.
그러나.
치킨 누들 수프를 다 비우고, 클램차우더도 다 먹을 때까지.
이상하게도 위화감은 사라질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