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620)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620화(621/674)
답은 충격요법이다.
내가 직접 이 세계의 진실을 말할 수 없다면, 그녀가 직접 세계의 이상을 자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제갈 소저는 명문가에서 자라 예의범절이 몸에 밴 여인. 우리는 아무리 연인 관계라고 할지라도, 서로 존대해 왔다.
남녀가 초면에 말을 놓고 관계가 급진전하는 것은, 제갈 소저라도 상상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하물며 음침 소심남이라는 설정을 가진 남자가 역으로 제안하는 상황은 더더욱.
당황스러움은 곧 이상으로 번지고, 이상은 곧 환상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끝으로 제갈 소저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녀의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읗. 저. 그읗.”
제갈 소저. 벌써부터 숨넘어갈 것 같습니다.
“응. 왜? 오빠라고 불러보라니까.”
“오호호홓! 이, 이런 건 시간 들여서 처, 처처천천히! 자연스럽게!”
안타깝게도 자연스러우면 안 돼서요. 연기를 하는 거지만, 상황이 꽤 즐겁네.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친해지려면 말 놓고 시작하는 거 아닌가? 우리 친해지려고 맞선 보는 거잖아.”
“그, 그, 그런 건 친구부터! 마, 맞선은 아니에요오오.”
제갈 소저는 내 손길에서 벗어나, 누가 봐도 당황한 것이 느껴지는 움직임으로 뒤로 물러났다.
“나는 괜찮은데.”
“오홓호호. 조,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저어는. 저는 김치만두를 좋아한답니다.”
제갈 소저, 어설픈 화제 전환이라니. 인싸 제갈향과는 어울리지 않는군요.
벌칙을 드리겠습니다.
“왜? 내가 검은 머리라서 김치만두 좋아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야?”
평소의 콤플렉스를 자극받아서, 순간 울컥한 음침남의 공격으로 난처하게 만들어보겠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좋아하시……! 어……? 왜?”
기회야. 제갈 소저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제갈 소저.”
환상에 빠져서도 연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기억하는 그녀에게 감동하는 것도 좋지만, 일단 제갈 소저의 정신을 되돌려 놓는 게 먼저다.
나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오호호어헣. 아, 어……. 저기.”
좋아. 혼란해하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물러나세욧!”
바로 뒷덜미를 잡혀서 하늘을 날았다.
“으악!”
“남녀가 유별한 법이에요! 아무리 맞선 자리라도, 아니! 맞선 자리이기에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라고요!”
“누, 누구?”
갑작스러운 훼방꾼의 등장이라니.
“언니!”
“언니? 어?!”
나는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집어던진 사람은, 내가 아주 잘 아는 여인.
“오호호홓. 제 유일한…… 아니! 최고로 친한 친구이자 언니! 하연 언니예요!”
“하연 소저…….”
내 또 다른 약혼녀, 하연 소저였으니까.
“남녀가 진지한 만남으로 자리에 앉았으면 천천히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지! 주루에서 여자 찾는 남자도 아니고! 거기! 여기 똑바로 앉아요!”
몇 달 만에 듣는 당찬 목소리였다.
“하하…….”
“뭐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서로 친한 사이인가 봅니다.”
갑작스러운 훼방꾼의 등장이었지만.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오호호홓! 서로 측간 갈 때도 같이 가는 사이랍니다!”
“정말……. 친한 사이인가 보군요.”
제갈 소저가 하연 소저와 팔짱까지 끼며, 아주 친근한 표정을 지었으니까.
‘제갈 소저의 마음속에서 하연 소저는 정말 소중한 사람이구나.’
제갈 소저는 나하고만 거의 1년간 동거한 것이 아니다. 하연 소저와도 미운 정 고운 정을 같이 나누었다.
내가 제갈 소저의 연인인 것처럼, 하연 소저는 제갈 소저에게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이였다.
산하사직도의 세계는 아마 제갈 소저의 인기 있고 싶다는 바람이 반영된 세계일 것이다.
환상 속 세상에서조차 하연 소저가 제일 친한 친구라는 건, 그만큼 제갈 소저에게 하연 소저가 소중한 언니이자 친구라는 뜻이겠지.
심지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러 오는 사람이 하연 소저라는 것은, 그만큼 믿을 수 있는 친구라는 뜻일 것이다.
나로서는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엿본 것 같아, 웃음이 새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연 소저는 지금쯤 어디 있으려나.’
어느새 하연 소저의 얼굴을 못 본 지도 몇 달이 되었다. 비록 환상이라지만, 나에게 화를 내는 하연 소저의 얼굴이 이리도 정겨울 수가 없다.
하오문주랑은 만났으려나.
혹시 내 소식을 들었을까. 편지라도 왔으면 좋겠다. 그녀가 곁에 남아있었다면, 무한에서 문제가 더 쉽게 풀렸을까.
물론 남아있었다면, 내가 제갈세가로 끌려와 작살났겠지만.
“흐으응.”
예상치 못한 만남으로 감상에 젖어있는데, 묘한 불만 섞인 콧소리가 들렸다.
“제갈 소저.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고개를 돌리니, 제갈 소저가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없어요. 흫!”
왜 저러지.
“하연 소저. 미안하지만 차를 한잔내어……. 어?”
고개를 다시 돌리니, 하연 소저가 사라졌다. 뭐야. 방금까지 있었잖아.
“제갈 소저. 하연 소저는 어디에?”
“몰라요. 그런 사람.”
“제갈 소저……?”
“흥!”
왠지 화가 난듯한 제갈 소저의 얼굴은 그간 내가 본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
“오늘 만남. 즐거웠어요.”
제갈 소저는 도도한 표정으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몇 마디 말도 안 나누지 않았습니까. 조금 더 있다가…….”
하연 소저도 사라졌잖아요. 조금 더 밀어붙이면 될 것 같단 말입니다.
“오늘은 호필이 강윤호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우리 천천히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도록 해요.”
“제갈 소저!”
나가려는 제갈 소저를 막으려는 찰나였다.
“우우우우우우.”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빌어먹을 뮤지컬이 또!”
왜 방안에서 튀어나오는 건데.
“퇴장하신다네!”
“퇴장하신다네!”
“퇴장하신다네!”
“즐거운 경험! 새로운 경험!”
“아가씨는 첫눈에 마음을 빼앗기셨네!”
“아가씨는 말 못 하고 계시지만! 남자 때문에 아주 부끄러워하고 계시지!”
제갈 소저의 감정을 왜 너희들이 해설하는 거냐고.
이대로 제갈 소저를 놓칠 수 없다. 어떻게든 말해야 한다. 정신을 들게 만들어야 한다.
“제갈 소저! 이 세계는 환! 읍! 으으읍!”
산하사직도는 여지없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다음에 봬요.”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이라네!”
“안녕이라네!”
“다 같이 춤을! 비트 주세요!”
나는 결국 산하사직도에게 입이 틀어막힌 채, 그녀의 퇴장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환장하겠네.
————
“성공할 뻔했는데.”
빌어먹을 산하사직도.
내 남자다운 반전 매력에 반하게 만들어서, 세계의 이상을 깨닫게 한다는 계획이 틀어질 줄이야.
제갈 소저가 사라지고, 홀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누구 있나?! 제갈 소저와 내일 만나자고 연락 좀 해줘.”
“다음에 연락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역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건가. 직접 찾아가 봐야 하나.
“혹시나 이상한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갈세가에 직접 찾아갔다간 바로 쫓겨날 겁니다.”
“역시 내가 히로인인 설정인가.”
“네?”
“아냐. 가봐.”
제갈 소저는 지금 가상현실 여성향 미연시를 하는 거다.
주인공은 제갈 소저. 나는 히로인. 공략을 당해야 하는 대상이다. 결국 제갈 소저가 재정비를 마치고 나와 다시 만나줄 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원래라면 말이다.
“시간이 없어…….”
가상현실 게임 연료가 언제 제갈 소저의 선천 진기로 바뀔지 모를 일이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 시간 따윈 없다.
문제는 노트북 배터리 5퍼센트 남은 상황에서, 이제 주인공과 만난 히로인으로 미연시 엔딩을 봐야 한다는 건데.
불가능해 보이는 난이도지만, 불평불만을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아직 희망은 있으니까.
“개연성만 있다면 불가능한 게 아니야.”
세계를 설득할 개연성이 있다면, 한순간에 유명인이 된다는 것도 될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제갈 소저의 본성은 그리 변한 게 아니야.’
패션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이, 갑자기 모델이나 입는 옷을 억지로 걸쳐 입고, 익숙지 않은 런웨이를 걷는 걸 보는 기분이었다.
본인이 즐기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옷만 벗기면 다시 원래의 사람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하지만 어떻게?
포기하지 말고 고민해 보자.
제갈 소저의 목숨이 걸린 일이야. 분명히 돌파구가 있을 거야. 세계의 빈틈. 아니면 제갈 소저가 납득할 수 있는 설정이어야 할 텐데.
“잠깐만. 납득?”
순간 깨달았다.
내게는 세계도, 제갈 소저도 납득시킬 개연성이 하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제갈세가는 제갈향의 맞선 소식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아가씨께서 맞선을 보셨다네!”
“아가씨께서 맞선을 보셨다네!”
“아가씨께서 맞선을 보셨다네!”
그 누구와도 맞선을 보지 않던 제갈세가의 금지옥엽. 제갈향이 드디어 마음에 들어 하는 남자를 찾아내었다.
악공들의 연주와 춤사위가 펼쳐졌다.
“왜 저리 안절부절못하실까?”
“얼굴 붉어지신 것 봐!”
“정말 놀라워!”
“호호호홓!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사내라서요!”
제갈향이 기분 좋게 화답하자, 가족들과 하인들은 다같이 춤을 추며 노래했다.
“세상에 그런 남자 찾기 힘들지!”
“아가씨께서 발견한 흑진주 같은 남자!”
“드디어 아가씨에게 첫사랑이 찾아왔다네!”
“딸아! 네가 원한다면 그 남자와 언제든지 결혼해도 좋단다!”
가주 제갈극조차 딸의 결혼을 환영했다.
“에에에에에에!”
제갈향은 놀라워하는 표정으로 아버지와 함께 한바탕 춤을 추더니.
“우리 가문의 자랑! 우리 딸이 데려온 남자가 최고의 남자가 아닐 리 없잖니!”
“호오오홓! 맞아요오오오!”
제갈향은 이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하아아…….”
제갈향은 방문이 닫히자마자, 침대에 털썩 누웠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제갈향의 얼굴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진이 빠진 표정이었다.
“저는 평소에는 사람들 모아서 잔치하거나. 친구들끼리 다루에서 모여서 환담을 나누는 여자인데. 왜 오늘은 유독 지칠까요.”
이상하다. 너무 지친다. 하루하루가 즐거운 인생일 텐데.
제갈향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숨을 쉬고는, 이내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강윤호 공자님…….”
자신이 발견한 보석 같은 남자.
흑단 같은 머리에 흑진주 같은 눈. 자신이 등장했을 땐 얼마나 당황했는지. 얼빠진 표정이 너무 사랑스러워 그대로 끌어안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번엔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세상을 놀라게 할 문재, 더벅머리 속에 반전스러운 매력. 검은 눈과 마주친 순간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있다는걸. 오직 자신만이 발견했다. 제갈향은 서서히 들어차는 만족감과 우월감에 가슴을 떨었다.
‘배고파요!’
오늘 활동이 너무 많았나. 제갈향은 왜 속으로 이번엔 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치채지 못한 채, 꼬르륵거리는 배를 붙잡았다.
“저녁과 달리 야, 야식은 몰래 먹어도 되는 거니까요.”
떠들썩한 식사는 좋아하지만, 야식은 누구에게 밝힐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야식은 몰래 먹는 거잖아요.
제갈향은 왜인지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평소에 먹고 싶었던 야식을 종이에 적어 보냈다.
“가랏, 구구.”
“구구! 구구구굿!”
“배달왔습니다.”
역시 신속 배달. 기오수구 배달 음식을 만들어낸 사람은 나라에서 상을 줘야 한다. 제갈향은 속으로 생각하며, 방문을 열었다.
“탁자 위에 놔주세요.”
“짜장면이랑 만두입니다.”
삿갓을 쓰고 들어온 배달원은 탁자 위에 신속하게 배달 음식을 꺼내놓았다.
“네? 만두는 안 시켰는데요. 어?”
제갈향은 기시감에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이상해요. 언제 겪은 적 있는 일인 거 같아요.
그녀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배달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삿갓을 벗으며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군만두를 가져올까 하다가. 김치만두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김치만두로 가져왔습니다.”
제갈향은 그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배달원의 정체가 자신의 첫사랑, 강윤호였으니까.
“가, 가, 강 공자님? 여긴 어떻게?”
“제갈 소저를 만나고 싶어, 옛날처럼 배달원으로 변장해서 왔지요.”
옛날처럼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일까. 제갈향은 의문을 가질 수조차 없었다.
지금 금남의 구역. 결혼하지 않은 여인의 방에 남자가 찾아왔으니까.
“호, 호호호홓. 저도 빨리 다시 만나고 싶어, 마음은 이해하나. 지금은 밤이 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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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향은 태연함을 가장하며, 강윤호와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해 보려고 했으나.
“괜찮습니다.”
“네에?”
“제갈 소저.”
서로의 시야에 얼굴만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남자는.
“가, 강 공자님?”
“오늘 덮치러 왔습니다.”
“엫?”
그녀에게 당당히 선전포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