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utcast Writer of a Martial Arts Visual Novel RAW novel - Chapter (92)
무협 미연시의 오랑캐 글쟁이 (92)화(93/674)
Chapter 92 – 새로운 만남 – 5
‘당화린이 히로인이란 걸 너무 빨리 알아 내버렸네.’
원래는 친해지면서 여러 단서를 조합해서 결론을 내리려고 했었는데, 너무 증거가 명백하다.
‘당화린과 가까워져야 하나.’
당화린의 곤경을 해결해주면서 그녀와 가까워질 순 있다. 이미 좋은 설정은 만들어뒀으니까.
문제는 어디까지 가까워져야 하는가이다.
객실료만 내주고 헤어지는 것부터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내 한 몸 다 바쳐서 도와주는 것까지.
만약 당화린이 진 히로인이라면 후자가 맞을 것이다.
‘문제는 당화린이 히로인이 가능하다면, 다른 여성 캐릭터들도 다 히로인화가 가능하다는 거지.’
가슴 속에 답답함이 몰려왔다.
당화린과 가까워지고 다른 히로인을 찾아서 가까워지고 또 가까워지고 그 행동을 반복한다고 해서 그중에 누가 진히로인지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내 우려와는 다르게 그 와중에 진히로인이 누군지 파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 히로인을 찾아도 문제다.
‘소희와 똑같은 결말을 맞이할 수 있어.’
히로인 공략에 필요한 필수 공략 수치가 부족해서 헤어져야 하는 상황. 진히로인을 힘들게 공략했더니, 어딘가의 영원한 10세 몬스터 트레이너처럼 방생해야 하는 상황이 와버릴 수 있다.
‘나에게 지금 중요한 건 히로인 공략이 아니라 명성이야.’
내가 히로인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가까워지기보다 책을 쓰고 유명해져서 나를 찾아오는 히로인 후보들을 상대하는 게 더 현명하다.
‘역천자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어. 당화린과는 호감을 살 수 있는 정도만 도와주고 헤어지자.’
나는 이미 그녀를 충분히 많이 도와줬다. 비극적인 운명으로 가는 것을 막았고 숨겨진 진실을 알려주었다.
지금 곤경에 빠진 그녀를 도와주고 헤어진다면, 굳이 그녀와 더 친밀해지지 않아도 차후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무슨 히로인 공략이냐. 책을 쓰는 게 먼저지.
“화린 소저.”
“어? 왜.”
당화린은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내가 부르자 살짝 놀라며 답했다.
“향후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어디 따로 갈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의창에 외할아버지가 작게 상단을 운영하고 있어. 그 미친년도 그쪽으로 가겠다고 했으니 나도 가보려고.”
“의창에서 상단을요? 대단한 외할아버지를 두셨군요.”
호북성(湖北省) 의창(宜昌).
호북성 서쪽에 있는 번화한 도시로 관에서 관리하는 관도가 거미줄처럼 연결된 곳이다.
의창에서 출발하여 관도를 따라 서쪽으로 가게 되면 사천당문으로 유명한 사천성의 도시 성도가 나오고, 관도를 따라 북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무당파가 나온다.
그뿐인가. 장강 옆에 있는 도시라 강을 타고 내려가면 호북성 최대 도시인 무한에 다다를 수 있다.
그런 큰 도시에서 외할아버지가 상단을 운영한다니.
‘밀린 객실료 대신 내주고 의창으로 가는 마차에 태우는 것까지 도와준 뒤에 헤어지면 되겠네.’
잘 가라. 당화린.
역천자 의문을 해결해줘서 고맙다.
너도 진실을 알려줬으니 나에게 고마워하고 독인은 되지 마라.
혹시 내가 명성치 쌓였는데 네가 진히로인이면 찾아와야 한다.
“그냥 의창에서 서점이랑 잡화점을 하고 계실 뿐이야.”
뭘 운영한다고?
“서, 서점이요?”
예상치 못한 놀라운 사실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 목소리가 떨렸다.
서점을 운영한다니. 상단이라고 말할 정도면 서점 한 개만 운영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큰가?
이 세계에서 규모가 있는 상단이 운영하는 서점이라면 혹시.
“응. 재미있는 책을 다른 곳에서 가져오셔서 팔거나 작가들과 계약해서 따로 인쇄하셔서 파시고 계셔.”
“아, 아하. 인쇄기로 책을 찍어낼 정도면 규모가 있는 상단인가 보군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인쇄기라니. 인쇄기가 갖춰진 상단이라니.
현대의 자동화 기계가 아니라 교과서에서 언급되는 목판 인쇄, 금속 활자에 가까운 형태지만, 사용할 수 있다면 책을 그야말로 복사를 할 수 있다.
당연히 내가 구매하는 건 상상할 수 없을 정도고, 큰돈과 인맥이 없으면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 세계에서 멸시받는 오랑캐에 불과하여서 애초에 사용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었는데.
인쇄기만 사용할 수 있으면 책 한 권 쓰고 필사로 수십 권 쓰면서 시간을 날릴 이유가 없어진다.
비극적으로 사망한 친우 생각 때문에 곤경에 처한 당화린을 꼭 도와주고 싶었는데, 꼭 의창까지 같이 가줘야겠네.
내가 손녀를 무사히 데려왔는데 인쇄기 좀 써보고 싶다고 오랑캐가 어딜! 하면서 호통을 치진 않겠지.
당화린 외할아버님.
손녀는 제가 무사히 모시겠습니다. 기다려주세요.
‘당화린 표정 갑자기 왜 저래.’
설레는 마음으로 당화린을 바라보니,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짜게 식어있다.
뭐지. 내가 잘못한 게 있나.
“그럼 화린 소저. 제가 일단 객실 요금을 지불해드리겠습니다.”
“네가 왜?”
“곤경에 처한 소저를 구하는데 이유가 있습니까. 순수한 호의로 생각해주십시오.”
“아하? 순수한 호의?”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높아진다. 약간 고까운 목소리. 갑자기 왜 그래.
“객실 요금 지불이 끝나면 의창까지 같이 가시죠.”
은혜 팍팍 씌워놓으면 인쇄기 좀 쓴다는 말을 거절 못 하겠지?
“네가 왜 나랑 동행하는데?”
“의창까지 먼 길이지 않습니까. 그사이에 아프면 간호해줄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왜. 네가 같이 가냐고.”
너희 집 프린터 좀 쓰자고.
갑자기 목소리가 까탈스러워. 불만이야? 혹시 불만이면 특별히 A4용지값은 낼게.
“친우가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몸이 아프신 걸 아는데 어찌 소저를 홀로 보내겠습니까.”
나는 사람 좋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야.”
하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네?”
“너. 계속 거짓말 할 거야?”
순간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거짓말이라니.
진실만을 말했는데 어디서 의심을 산 거지.
상대가 나를 의심하고 추궁한다고 해서 바로 긍정하거나 당황하는 건 하수다. 오히려 의심에 확신을 줄 뿐이니까. 태연하게 무슨 ‘오해’가 있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화린 소저. 거짓말이라니요?”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야. 너 순수한 호의. 친구가 생각나서. 다 거짓말이잖아.”
당화린은 나를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화린 소저. 불행히 죽은 제 친우가 생각나서 소저를 보면 남 일 같지 않아 도와드리려고 했던 것뿐입니다. 그걸 거짓말이라고 하신다니요?”
나는 진심으로 억울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넌 친구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모르는 사람 돈도 주고 수십 일을 가야 하는 길을 같이 가주나 봐?”
“소저, 지금 무슨 오해가 있으신 거 같습니다.”
당화린의 어투에서 그녀의 의심은 이미 확신 수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도대체 아까까지 잘 믿어놓고 왜 갑자기 의심하는 거지.
“오해? 내가 너처럼 흑심을 품은 채, 가면 쓰고 존댓말로 다가오는 새끼들 한두 번 본 줄 알아? 너. 외할아버지가 상단 운영한다니까. 눈빛 바뀌는 거. 내가 눈치 못 챘을 거 같아?”
당화린은 마치 모든 증거를 모은 후에 네가 바로 범인이야 외치는 탐정만화의 탐정처럼 확신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인쇄기 소리에 표정 관리를 못 했구나.’
의문이 풀렸다.
만약 그녀가 내 의도를 조금이라도 눈치챘다면, 순수한 의도 운운은 마치 여자를 추행하고서 딸과 같아서 그랬다고 변명하는 아저씨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친구가 그랬던 만큼. 그래도 혹시나 했는데. 그래. 나 같은 년을 순수하게 도와줄 리 없잖아…….”
혼잣말하는 당화린의 목소리와 얼굴에서 큰 실망이 묻어나왔다.
다행히 독인 친구썰은 믿나 보네. 하긴 그건 안 믿을 수가 없지.
“화린 소…….”
쉬익! 순간 얼굴 옆으로 암기 하나 지나갔다. 언제 암기를 뽑아서 쏜 거야.
“화린 소저! 화린 소저! 너처럼 존댓말 꼬박꼬박하면서 흑심을 품은 새끼들 소름 돋거든. 그러니까 꺼져.”
당화린은 단호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소저.”
“지금 바로 안 나가면 바로 미간을 노릴 거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나간다 나가.
“그래……. 이놈도 저놈도. 다들 내가 가진 것만 관심이 있지.”
객실에 나와 문을 닫기 전, 그녀가 한탄하는 말을 작지만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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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 ……역시 그럴 리 없지.”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당화린은 씁쓸한 마음에 중얼거렸다.
강윤호가 크게 간과한 것도 그것이었다.
당화린은 어렸을 적부터 피부 때문에 혐오와 멸시를 받아왔다.
당화린에게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항상 그녀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가진 배경 때문에 다가오는 사람들 뿐이었다.
강윤호의 눈에 흑심이 살짝 비친 건 아주 찰나. 대부분의 사람이었다면 강윤호의 흑심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당화린만이 평생을 가면 쓴 사람들만 속에서 살아왔기에 그 찰나의 흑심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발. 개새끼! 오랑캐 새끼!”
당화린은 이미 사라진 강윤호를 향해 홀로 분노를 토해내었다.
솔직하게 기대했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친구가 있었던 남자.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자신이 왜 이런 처지가 됐는지 알려주었다.
충격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는 상황.
남자친구는커녕 친구도 사귀어본 적 없는 자신에게 그런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로 호의를 보이는데 어떻게 정신을 차릴 수 있단 말인가.
“……. 멀쩡하게 생겨서는.”
그래. 정신을 못 차린 건 태연하게 추파를 던진 그놈 잘못이다.
오랑캐 주제에 귀공자처럼 생긴 녀석에게 정신을 못 차린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기대하지 마. 당화린.”
당화린은 마음을 정리하고 조금 슬픈 어투로 자신에게 말했다.
강윤호에게 건 기대가 컸던 만큼, 그 아주 찰나의 탐욕이 모든 걸 무너트렸다. 이 사람도 다른 놈들과 똑같은 사람이구나.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남모르는 슬픔과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으윽.”
착잡한 마음에 수 시간 침대에 누워있으니 다시 고통이 찾아와 당화린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
쿵쿵쿵!
사위가 어둑해지자 문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그 남자인가. 당화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면사를 쓰고 문을 열었다.
“누구야?”
당화린 모르는 얼굴의 남성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재상 주인이오! 약값을 왜 안 내는 거요?”
“약값? 그 새끼들 약값도 안 냈어?”
도망간 하인들이 당화린의 약값도 안 낸 모양이었다.
“약값이 일주일 치가 밀렸소! 빨리 내시오!”
“……다음에 줄게.”
“다음은 무슨! 객실료도 못 내는 거 알고 왔구먼!”
약재상 주인은 당화린이 돈을 안 내려고 하자 갖은 폭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언성이 높아지자 객실 문을 열고 사람들이 밖에서 힐끔댔지만, 그녀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객실료를 받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객잔의 무사들도 올라와 사태를 관망만 했다.
처참하다. 당화린은 남자의 폭언을 묵묵히 들으며 자조했다.
一 병신같은 년. 성질머리도 더러워서. 돈이 아니었으면 네년이랑 엮이지도 않았어!
돈을 훔쳐 간 하인들이 말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얼굴도 이렇고. 아프고. 성질도 이런 여자를 도와줄 사람이 어딨겠는가.
자신의 배경이 사라지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하나 없다. 평생을 알고 있던 사실이었으나 직접 겪으니 더 가슴 시리게 다가왔다.
一 제 막역지우도 독인이었습니다.
당화린의 마음 속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래. 오전에 시비를 해결해준 남자는 분명 처음에 선의로 다가왔다.
그 남자는 면사를 벗고 대화하는데도 자신에게 단 한 번도 혐오스러운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분명 그건 당화린에게 처음 있는 경험이었다.
확실히 친구가 독인이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성가장 때도 오늘도 순수한 호의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혹시 자신이 자격지심 때문에 중간에 그가 흑심이 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괜히 그의 호의를 거절한 걸까.
“내 말 안 들어? 돈 내놓으라고!”
당화린은 길길이 날뛰는 약재상 주인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하지. 빚을 진 건데 무력을 보일 순 없다. 어떻게 갚아야 하지.
막막하고 참담하다.
그때였다.
“제가 드리겠습니다.”
강윤호가 웃는 얼굴로 당화린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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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화린의 객실료와 약값을 전부 지불하고 사람들을 물렸다.
“뭐야, 왜 다시 왔어.”
당화린은 새침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으으음.”
내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당화린을 노려보며 침음을 흘리자, 당화린은 눈에 띄게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뭐, 뭐! 고맙다고 말해달라고?”
당화린도 솔직히 찔리는지 내 시선을 피했다.
상황 좋네. 역시 기다리길 잘했어.
내가 그녀를 속였다는 사실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준 고마운 감정과 같이 중화되고 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날 물릴 수 없는 상황. 재도전을 위해 인상을 바꾸는 충격요법부터 시작하자.
“야. 당화린.”
“뭐라고? 너 지금 반말하는 거야?”
“존댓말 하는 사람들 싫다며. 너도 나에게 반말하는데 나는 하면 안 되냐?”
“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당화린은 변한 내 태도에 인상을 잠깐 찌푸리더니, 이제야 본모습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야. 당화린. 내가 의창까지 동행해줄게.”
“말했지. 너처럼…….”
一 쿵!
“뭐, 뭐야?”
내가 당화린의 말을 끊고 이상한 통 하나를 탁자가 울리도록 꺼내놓자, 당화린은 놀라 물었다.
흑심 있고 속을 모르고 가면 쓰고 있는 남자랑 같이 다니기 싫다. 뭐 그런 말을 하려는 거겠지.
근데 말이야. 당화린.
넌 절대 날 거절할 수 없어.
“치료제다.”
나는 내게 주어진 기회를 다시 움켜잡을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의 정체를 밝혔다.
“치료제?”
“독인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는 치료제.”
“뭐어?”
당화린은 화들짝 놀라 탁자에 놓여진 치료제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의 약은 통 안이 아니라 자기 눈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다시 물어보자. 당화린. 같이 갈래? 말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