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1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11화(111/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11화
“요즘 헤지펀드는 어때?”
그날 밤, 유성투자증권 랩 어카운트 1팀 파트장 서용원은 여의도 모처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
“어떻기는 아주 죽을 맛이지.”
서용원의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외국계 헤지펀드(Hedge Fund)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동기였다.
“그래도 나 같은 주식쟁이들은 살 만한데 채권 플레이어들은 아주 죽으려고 한다.”
동기의 말에 서용원은 미소를 지었다.
“채권시장이 많이 힘들지?”
“힘들 뿐이겠어? 우리끼리는 속된 말로 코인 왜 하냐고 한다니까. 변동성이 코인보다 더해.”
채권에 투자하는 이유는 안정성 때문이었다.
주식이나 코인보다 훨씬 변동 폭이 작았기에 안전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었는데, 최근 채권의 변동성은 그런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듯 말해오고 있었다.
“뭐 어쨌거나. 보여줄 거 있다며?”
동기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서용원을 향해 물었고, 서용원은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동기에게 건넸다.
“한번 읽어보고 말해줘.”
“이게 뭔데?”
“읽어보면 얘기해 줄게. 네가 미리 판단할 수도 있으니까.”
서용원의 말에 동기는 별일이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서류를 집어 들고는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동기는 흥미롭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밌는 전망이네. 이거 너희 리서치 센터에서 나온 거야?”
“그건 나중에 얘기해 줄게. 어때?”
“뭐가?”
“유럽에 투자하고 있잖아.”
서용원의 말에 동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서류에 나도 동의해. 최근 우리 같은 유럽 플레이어들은 포지션을 지키거나, 정리하고 있지. 신규 투자는 안 하거든. 특히 영국은…….”
“영국은?”
“여기 다 적혀 있네. 제일 와닿는 말이 있던데.”
동기는 서류를 다시 보다가 원하는 부분을 찾은 듯 입을 열었다.
“외부적인 요인.”
“물가 상승이 모두 외부적인 요인이라 이거지?”
“그렇지. 파운드화는 지금보다 가치가 더 떨어질 거야. 그렇게 되면…….”
“영국이 곤란해지겠지.”
영국은 이렇다 할 제조업 기반의 산업이 남아 있지 않았다.
과거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영국의 모습은 지금 없었고, 자본시장에서의 영향력만이 영국의 찬란했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금융 강국 영국의 화폐인 파운드화의 가치가 내려간다는 것은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얘기해 주는 것과 같았다.
“당분간은 힘들 거야. 가장 불안한 고리가 영국일 수도 있고. 그래서 이거 누가 작성한 거야? 유성 리서치 센터야?”
“아니, 우리 팀에 있는 신입이 작성했어.”
“랩 어카운트 운용하는데 이런 매크로 데이터를 취급하는 팀이 따로 있어?”
동기는 놀랍다는 듯 서용원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야, 심주원 대표 취임 이후 개인 자산 부문을 강화했다더니 유성이 이를 갈고 있네. 아니, 그것보다 신입이 작성했다고?”
“너도 알 수도 있어. 윤도경이라고.”
서용원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동기는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윤도경…… 윤도경…….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아! 이동혁이랑 한판 붙은 걔야?”
“맞아.”
“PB 아닌가?”
“이번에 우리 부서로 발령받았어.”
“이야, 이름 한 방에 여기 적힌 전망이 모두 이해가 되네. 글로 적혔는데도 과감하고, 거리낌이 없다는 게 느껴지잖아.”
마치 도경의 평소 행실이라는 듯 동기는 웃으며 얘기해 왔다.
“어쨌거나 시장은 우리가 감히 평가할 수 없다고 하지만, 지금은 지켜볼 때라는 말에는 동의한다. 여기까지가 내 총평이야.”
“그렇다 이거지…….”
동기의 말에 서용원은 고민에 빠졌다.
지이잉-
그때 앞에 앉은 동기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화면을 확인한 동기는 놀란 듯 서용원을 바라보았다.
“서 프로.”
「[속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향년 96세로 서거.」
동기는 뉴스 속보를 보여주었고, 서용원의 표정은 찌푸려져 갔다.
* * *
영국이 전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했다.
우스갯소리로 한 나라의 역사가 꼬인 이유를 찾다 보면 영국이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영국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잉글랜드 본토 섬에서부터 북미, 북중미, 남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동, 오세아니아, 아프리카까지.
식민지 시대의 영국은 전 대륙에 식민지를 두고 있었고, 그들의 해는 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의 모습은 현재 영연방(Commonwealth of Nations)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허무하네…….”
한편, 도경은 집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
「[속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 향년 96세로 서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의 죽음이 이렇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처음이었다.
“길트는 괜찮나?”
한참 멍하니 뉴스의 헤드라인을 바라보던 도경은 휴대전화 앱을 통해 영국의 국채 상황을 점검했다.
길트(GILT, Gilt Edged Securities)는 여왕을 대신해 영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말했다.
종이로 된 채권증서 주변을 금테로 둘러 발행했는데 대표적인 안전자산 중 하나로 통했다.
“안정적이네…….”
찬란했던 대영제국은 이제 없고, 전 세계를 호령하던 여왕의 영원한 안식도 금융시장엔 그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했다.
한 시대의 종말은 그렇게 씁쓸하게 찾아오고 있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섭섭해해야 할지 도경은 좀처럼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일단 자료를 좀 더 업데이트하자.”
도경에게는 씁쓸해할 여유가 없었다.
두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고는 영국의 상황에 대해 다시 자료를 보충하기 시작했다.
* * *
“보셨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여왕의 사망은 큰 이벤트인데 영국의 펀더멘탈은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며칠 후, 유성투자증권 랩 어카운트 1팀 파트장 서용원의 방에는 여전히 한 가지 주제만이 나오고 있었다.
트레이딩 팀의 과장은 파트장 서용원을 매일같이 찾아와 똑같은 말을 해대고 있었다.
“김 과장님 뜻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헷징 수단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을 하고요. 하지만, 무언가 불안한 신호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게 우리 리서치 센터의 판단이기도 합니다.”
서용원은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성격이었다.
증권사 입사 때부터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일부터 시작하다 보니, 이제는 몸에 배어버린 습관과도 같았다.
자신이 취급하는 자산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리서치 센터에서 말입니까……?”
서용원이 리서치 센터를 얘기해 오자 과장은 꿀이라도 먹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예. 채권 운용팀에도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만, 현재 채권 운용팀에서는 영국 쪽 자산을 늘리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 며칠간 서용원은 자신의 인맥이 닿는 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의견을 들어보았다.
각자의 인사이트(insight, 통찰)는 모두 달랐지만, 공통으로 경고해 오는 것은 하나였다.
‘신규 진입은 하지 않는다.’
“여왕은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그 어떠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물론 상징적인 인물의 서거는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길트가 안전하다는 답변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리서치 센터부터 채권운용본부까지.
그들의 이름이 나오자 과장은 더 이상 자신이 거들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조금 더 지켜보겠습니다. 아예 철회한 것은 아니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파트장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과장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자 서용원은 한숨을 내쉬며 목에 걸친 타이를 조금 풀어 헤쳤다.
고객의 자본을 마냥 놀릴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서용원은 잠시 마른세수를 하다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내 메신저로 누군가를 호출했고, 잠시 후 주인공이 다가왔다.
“파트장님, 부르셨습니까?”
“아, 홍 대리.”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대리 홍세준이었다.
“영국 상황에 관해 업데이트된 게 있습니까?”
“윤도경 씨가 매일 체크하고 있습니다. 곧 출근할 시간인데…….”
홍세준은 그리 말하며 통유리로 된 벽을 통해 사무실을 바라보았는데 때마침 도경이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불러도 되겠습니까?”
홍세준의 물음에 서용원은 고개를 끄덕였고, 홍세준은 파트장실 문을 열고는 도경을 불렀다.
“도경 씨, 길트 자료 업데이트된 것 챙겨서 와주세요.”
사무실에 막 들어서 가방에 있던 자료를 꺼내던 도경은 자신을 호출하는 홍세준의 목소리에 그대로 자료를 챙겨 들고는 파트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좀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길이 좀 막혀서.”
“뭐, 아직 출근 시간 전이니까요. 죄송할 일은 아니고. 일단 파트장님부터 뵙죠.”
홍세준과 함께 파트장실로 들어선 도경은 고개를 숙여 서용원을 향해 인사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서용원은 미소를 지으며 도경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길트 데이터를 매일 팔로우하고 있었나요?”
“네, 아무래도 투자 이야기가 나오다 보니……. 그리고 유럽을 커버리지하는 것이 제 업무여서 매일 상황 점검했습니다.”
“좋네요. 자료 좀 봅시다.”
서용원의 말에 도경은 자료를 그에게 건넸고, 도경이 건넨 자료를 읽어 내려가던 서용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씩 악화하고 있네요.”
“예, 길트의 금리가 거의 매일 상승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오르는 국채 금리는 미미합니다만, 지난 일주일간 상승한 양을 합쳐보면 50bp(0.5%)가 올랐습니다.”
어려운 계산을 제하고, 단순 채권 수익률만 보더라도 채권 금리의 50bp 상승은 어마어마한 수익률의 손실을 얘기했다.
국채가 안전자산이라 불리는 이유는 변동성이 적기 때문이다.
거의 고정되다시피 한 시장의 국채 금리가 50bp가 상승했다는 것은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제일 큰 문제는 킹King달러로 인한 파운드화 가치의 절하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미국은 자국의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매달 0.75%씩 금리를 올려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달러화의 강세가 전 세계를 덮치고 있었다.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상승은 다른 화폐의 가치하락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임 내각의 정책이 너무 늦게 나온다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미국은 다른 나라는 안중에 없다는 듯 자국의 물가상승만을 고려하는 강도 높은 통화정책을 펼치고 있었다.
그런 미국의 강도 높은 기준금리 인상 정책은 거센 파도가 되어 위태로운 섬나라 영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영국의 신임 내각의 통화정책이 늦어지자 영국 시장에 있던 자본들이 빠르게 유출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가 겹쳤습니다만, 매우 좋지 않은 상황인 것은…….”
지이잉-
그때, 파트장실에 있는 세 사람의 휴대전화에서는 마치 짠 듯 동시에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반사적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는 화면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영국에 대한 투자 상의는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대영제국의 명맥을 이어오던 영국 금융시장의 불안했던 고리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소설 속 인물이 얘기했던 것처럼.
서서히, 그러다가 갑자기.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31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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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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