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1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14화(11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14화
유성투자증권 본사 빌딩의 옥상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지친 사원들의 쉼터로 사용되는 이곳에는 조금 이질적인 모습을 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어제 혹시 파트장실 들어갔다 나왔어?”
일을 하던 도경은 갑작스레 박현재에 의해 불려 나왔는데 박현재는 한기가 도는 얼굴과 말투로 도경을 향해 물었다.
“그게 무슨…….”
“어제 파트장실 들어가서 영국 상황 업데이트했냐고.”
“네, 했습니다.”
“뭐라고 했어?”
무엇 때문인지 설명해 주지 않고 다짜고짜 계속되는 물음을 던지는 박현재를 보며 도경은 무례함을 느꼈다.
“영국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하…….”
도경의 답에 박현재는 분을 못 이기겠다는 듯 두 주먹을 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고는 마른세수를 해 벌게진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윤도경 씨, 지금 영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
도경은 가만히 박현재를 바라보았고,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도경의 모습에 박현재는 미쳐 버리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영국 연기금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냐고!”
박현재는 언성을 높이며 도경을 향해 얘기했다.
“지금 영국에서는 연기금이 투자한 LDI가 부러지기 시작했어.”
“알고 있습니다.”
도경은 뻔히 아는 얘기를 설명해 오려는 박현재를 차단하려는 듯 답했다.
“뭐?”
“영국 연기금들이 마진콜을 받고 있다는 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는데 그딴 답을 파트장 손에 쥐여줘?”
박현재는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 듯 도경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마진콜 다음은? 영국중앙은행에서 개입할 거라고. 이번은 다른 충격들이랑 달라. 피해 규모가 나와 있는데 왜 이걸 적기라고 보지 않는 거지?”
도경은 박현재의 말에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다.
금융위기의 가장 큰 적은 사고를 친 금융사들이 피해 규모를 속이고 숨긴다는 것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얼마를 투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늘 초기에 투입하는 구제금융 자금보다 큰 피해액에 2차 충격이 있곤 했다.
하지만, 이번 영국의 연금 사태는 다행히도 초기에 피해액들이 나오고 있었고 더불어 얼마를 투입해야 할지 각이 보이고 있었다.
“더군다나 지금 초기에 영국중앙은행이 채권매입 선언하면 시장은 안정될 거야. 오히려 구제금융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채권 금리가 오르며 일어난 사태였다. 즉, 영국중앙은행이 나서서 시장에 풀린 채권을 사들인다면 유통되는 채권이 줄어들 테고, 당연히 채권 금리가 내릴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 건 단 하나, 투자하면 무조건 수익으로 돌아온다. 봤잖아. 최근 변동성.”
최근 영국 국채의 변동성은 어마어마했다. 단기간에 채권 금리가 매우 가파르게 오르며 수익률 또한 빠른 속도로 하락했다.
두 자릿수 이상의 하락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영국 연기금들이 마진콜을 받았다는 게 널리 알려지고, 영국중앙은행이 개입하면 채권 금리는 빠른 속도로 내려올 거야. 이거 며칠 걸린다고 봐?”
“…….”
“나는 사흘 안에 이 모든 게 일어난다고 보는데. 그럼 오늘이 마지막 기회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를 내던 박현재는 도경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윤도경 씨가 파트장한테 투자하는 게 좋겠다고…….”
“아뇨. 하지 않을 겁니다.”
“왜?”
“오히려 저야말로 대리님께서 영국에 집착하시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아니!”
버럭 소리를 지른 박현재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올해 시장이 어려워. 고객들 포트폴리오 수익률이 말이 아니야. 수익률이 높아야 우리가 가져가는 게 많지 않겠어?”
박현재가 이리도 집착하는 이유를 도경은 인제야 알 것만 같았다.
“도경 씨에게 내가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야. 이 바닥에서 우리 수익은 우리가 찾아 먹어야 해. 이 업계에서 내가 얼마를 버냐가 나의 가치니까.”
어쩌면 성과제가 가장 도드라지는 분야가 금융계였다.
성과가 좋을수록 많은 성과급을 받았고, 내가 받은 돈은 나의 가치였다.
다음번에 회사를 옮길 때 더 높은 곳으로 가게 해주는 것은 당장 성과급 시즌에 받은 돈이었으니까.
“모든 정보를 우리가 쥐고 있어. 도경 씨도 영국중앙은행이 개입할 거라는 건 동의하잖아. 그럼 들어가면 100% 먹는 일인데 이걸 왜 마다해?”
하지만, 도경은 눈앞에 있는 박현재와 달랐다.
“지금까지 대화에서 대리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던 부분은 영국중앙은행이 개입할 거다라는 의견 단 하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외에는 아무것도 공감하지 못하고요.”
“뭐?”
또 한껏 말을 늘어놓으려던 박현재는 당황한 듯 도경을 바라보았다.
“어차피 가치관 차이라 더 말씀드려도 제가 본 영국 상황은 안 믿으실 테고요.”
도경은 더 이상 박현재와 얘기를 하기가 싫었다.
투자에 대한 가치관 차이라면 그를 설득할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 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가치관 차이가 있었다.
“돈? 저도 좋아합니다. 아니, 돈이 있어본 날보다 없었던 날이 더 많아서 돈이 너무 필요하죠.”
“…….”
“그런데 저는 내가 있는 위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대리님께서는 혹시 증권사에 취업하기 전 주식 투자를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도경은 굳은 표정으로 박현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표정을 보니 없으신 것 같네요.”
“…….”
“이 시장에 들어온 개인 소액투자자들은 말입니다. 그저 남들이 자산을 불리는 만큼 따라가고 싶어 하는 투자자들이 대다수입니다.”
물론 거액을 벌기 위해, 자산을 빠른 기간에 불리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도경이 본 소액투자자들은 그저 남들이 자산을 불리는 만큼이라도 따라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 같은 전문가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내 아까운 돈 좀 덜 잃게 해달라고, 전문가들은 다르겠지라는 믿음이 있는 겁니다.”
“그게 지금…….”
“그런데 그런 믿음으로 고객이 우리와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대리님께서는 그 믿음을 담보로 도박을 하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뭐?”
물론 도경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고, 이 바닥에서는 내가 받는 돈이 곧 나의 가치라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선택할 때 돈이 우선이 된 적은 없었다.
도경이 있는 이 자리는 그 무엇보다 고객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직업이었고, 진정한 책임이 뒤따르는 자리였다.
그저 계약서에 적힌 투자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문으로 법적 책임을 빠져나가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저는 그 신뢰가 계약서만으로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착각하나 본데 우리가 돈을 벌어다 주는 게 고객 입장에서는 신뢰의 증거라고 생각할 거야.”
“네. 도박을 하기보다는 고객에 성향에 맞춰서 투자하는 게 우선이겠죠.”
자신의 말에 도경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반박해 오자 박현재는 콧방귀를 뀌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설교 그만하고, 그래서 못 하겠다는 거지?”
“네. 못 합니다.”
“좋아. 그게 윤도경 씨 선택이니까. 대신 내기 하나 할까?”
박현재는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만약 이번에 내 의견대로 상황이 흘러가면 다음부터 내 의견을 지원해 줘.”
“만약 제 의견이 맞는다면요?”
“내가 이제 막 팀에 들어온 신입 팀원한테 밀리고도 이 팀에 남아 있을 정도로 낯짝 두꺼운 놈은 아니야. 내가.”
도경은 왜 박현재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판단을 너무도 신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상대가 걸어온 싸움을 도경은 피해 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이길 게 뻔한 게임에서는 말이다.
“약속 지키실 거라 믿겠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고, 박현재는 그런 도경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 * *
“영국 상황이 슬슬 안정될 것 같네요.”
일주일 후, 도경은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대리 홍세준을 바라보았다.
“네?”
“영국 말입니다. 간밤에 채권 금리가 큰 폭으로 하락했어요.”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지난 일주일간 영국의 상황은 전 세계적 공황을 불러왔다.
시작은 영국 내부에서 나온 기사 때문이었다.
「다수의 연기금 투자상품 마진콜 받아.」
「파생상품에 물린 영국 연기금 ‘디폴트 공포’.」
「감세안부터…… 연기금 디폴트 우려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 뇌관이 되어버린 영국.」
도경과 박현재가 동시에 우려했던 바대로 영국 연기금의 파생상품 투자 쪽에서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미 시장은 몇 번의 금융위기 때의 패턴을 봐왔다.
지금의 패턴이 그때와 유사하게 흐르자 전 세계 금융시장에는 패닉셀(공포에 의한 매도)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런 공황은 며칠 흐르지 않았다.
바로 지난밤 있었던 소식 때문이었다.
「영국 주식, 채권시장 447조 원 증발하자, 영국중앙은행 나섰다.」
「영국중앙은행, 101조 원 규모의 긴급채권매입 프로그램 개시.」
「영국중앙은행 “시장 안정화를 위한 조치, QE(양적완화)는 아니다”.」
「영국중앙은행 “일정 기간 정해두고 필요한 만큼만 사들일 것”.」
영국중앙은행이 시장 개입을 하며 부도 위기에 내몰렸던 연기금들은 숨통을 트게 되었다. 간밤에 영국 국채를 비롯한 전 세계 국채 시장의 금리가 폭락했기 때문이다.
금리의 폭락은 수익률의 상승이었기 때문에 다들 안도하는 눈치였다.
옆에 앉은 사수 홍세준처럼 말이다.
“왜 그런 표정이에요? 도경 씨는 더 갈 거라고 보나 봐요?”
“아! 아닙니다.”
어쩌면 모두가 이대로 공황이 끝나길 기대하는 와중에 괜히 자신이 부정적인 전망을 더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저는 괜찮으니까 말해봐요. 나도 다른 쪽 전망을 봐야 하니까. 그 의견까지 참작할게요.”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입을 열었다.
“무제한이 아닌 일정 기간의 시장개입은 어쩌면 시장의 혼란을 더 키울 수 있습니다.”
“음…….”
“만약 당장 내일모레 영국중앙은행의 채권매입 프로그램이 종료된다면요?”
도경의 말에 홍세준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죠. 채권매입프로그램이 생기기 전.”
“그렇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감세안도 철폐되지 않았고, 연기금들의 마진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시장을 붙들어놓을 것은 ‘일정 기간’이 아니라 ‘무제한’이어야 합니다.”
도경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홍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감세안이 철폐될 수도 있고, 연기금의 마진콜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리되지 않은 진짜 근본 원인이 하나 더 남아 있습니다.”
“물가상승 문제죠.”
“그렇습니다. 근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하는 이상, 다시 시장은 혼란에 빠질 겁니다.”
이가 아픈데 진통제만 계속 먹는다고 치통의 근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언제고 다시 치통이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도경은 조심스레 홍세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시장을 공부하면 할수록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도경은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지금과 같은 일들이 자꾸 벌어질 때는 어딘가에 또 다른 충격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997년 우리에게는 IMF 사태로 기억에 남은 경제 위기도 그랬다.
시작은 태국이었고, 다음은 인도네시아, 그다음이 우리나라였다. 아시아의 경제 위기가 그렇게 찾아왔다.
다른 경제 위기도 시작은 한 나라에서부터였지만, 줄줄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니길 빌겠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우리의 역사는 반복됐습니다.”
도경의 말에 홍세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경 씨는 믿는 종교가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저도 종교는 믿지 않지만, 성경에 나오는 한 구절을 늘 마음에 담고 일하고 있습니다.”
홍세준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경은 그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도경 씨의 말대로 아니길 바라야겠죠. 하지만, 그런 위기까지 경고하는 게 우리 일이 아니겠습니까? 깨어 있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띵띵-
그때, 도경과 홍세준, 아니, 사무실 전체에 무언가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고, 사람은 재빠르게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경고음의 존재를 확인한 두 사람의 얼굴은 삽시간에 굳어가기 시작했다.
홍세준이 말했던 그날이 갑작스레 찾아온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31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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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