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1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15화(11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15화
현대 경제 체제에서 사이클(Cycle, 순환)은 늘 존재했다. 그것이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활황기가 있으면 불황도 존재했고, 불황의 기간이 지나면 다시 활황기가 찾아왔다.
활황기라고 불리는 경제 상승기에는 그 누구도 빚을 내 투자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빚을 내면 낼수록 소득도 같이 증가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채권, 주식, 부동산이 모두 강세를 보이며 금융소득을 비롯한 모든 소득이 증가한다.
그러한 분위기에 취한 사람들은 피어나는 거품 속에서 ‘본질’을 보지 못한 채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상승기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불황이 찾아오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피치에서 CS의 신용등급을 강등했습니다.”
온 사무실에 울려 퍼진 경고음은 트레이딩 시스템상의 뉴스 속보였다. 하루를 시작하는 한국에서 맞이할 수 있는 최악의 뉴스가 미국에서 날아왔다.
도경의 말에 홍세준은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치가 왜…….”
피치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였다.
전 세계 국가와 회사를 상대로 신용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기관이었는데 이들이 발표하는 신용등급은 매우 중요했다.
이 신용등급이 뜻하는 바는 이곳에 돈을 빌려주거나 투자했을 때 원리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을 매겨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BBB입니다.”
CS는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하고 있는 투자은행이었다.
금융업 강국인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있는 그들은 유럽 최고의 투자은행이었다.
당연히 유럽 내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했고, 더 나아가 전 세계가 그들이 투자한 상품과 만들어낸 파생상품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BBB+로 강등된 지 석 달도 되지 않았잖아요.”
홍세준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피치가 발표하는 투자등급은 총 12단계였다.
AAA(신용도 매우 높음)부터 D까지 있었는데. 5단계인 BB부터는 투자주의 등급이었다.
새로 발표된 CS의 신용등급은 BBB로 투자주의 등급보다 겨우 한 단계 높을 뿐이었다.
대부분 투자은행의 신용평가가 AAA~A 등급에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위험한 등급이었다.
“일단…….”
홍세준은 당황스러움을 진정시키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일단 오후 장 마감 전까지 CS에 대한 자료를 조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영국 얘기를 할 때가 아니네요.”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국 연기금들의 문제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이때, 모두가 불안함을 감지하고 있는 이때, CS라는 거대 투자은행에 위험설이 대두된다면 전 세계 시장이 폭락할 수 있었다.
대비해야 했다.
“도경 씨는 우선 이번 강등이 왜 벌어졌는지, 과거부터 한번 조사해 주세요. 저는 이번 일이 어떤 파급력을 줄지 조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시작합시다.”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재빠르게 하던 일을 치우고는 새롭게 자료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 * *
“시작은 미국의 대형 커뮤니티 레딧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모든 장이 끝나고 도경은 파트장실을 찾아 파트장 서용원, 대리 홍세준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다.
“레딧?”
“네. 미국 최대 개인투자자 커뮤니티인 레딧 월스트리트 벳츠에 한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게시글은 여기…….”
도경은 이번 사태의 시작이 된 커뮤니티의 글을 보여주었다.
“CS의 직원인가 보네요.”
도경이 보여준 자료는 CS 경영진이 내부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를 처음 올린 게시자의 신분은 알 수 없지만, 이 내용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CS의 경영진은 전 직원들에게 재무 건전성 위기를 해소하자고 메모를 써서 보냈다.
“평소와 같았으면, 아니, 적어도 다른 투자은행이었다면 어려운 시기에 올바른 경영 판단이라는 평가를 했을 겁니다. 하지만…….”
“대상이 CS라면 문제가 좀 있죠.”
서용원의 말에 도경과 홍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CS는 근 몇 년간 가장 문제가 되는 투자은행 중 하나였다.
그들은 오직 돈만을 생각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마약 판매 자금의 세탁, 범죄 수익 은닉…… 등등 최근 들어 도덕적 해이와 함께 그들이 투자하는 상품들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며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으니까요.”
도경의 말에 서용원과 홍세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CS의 주가는 1년 전과 비교해 -60% 이상 빠져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메모가 투자자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이번 일의 핵심이었다.
사실 일반적인 투자은행의 경영진들이 저와 같은 메모를 내려보냈다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저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험하니 우리가 투자하는 것들을 재정비하는 아무 건설적인 마인드였으니까.
“CS의 그간 행실이라면 당연한 것으로 보이고요.”
서용원이 그리 말을 받아치자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러티브 문제입니다.”
내러티브(Narrative)라는 말을 우리 말로 하면 ‘서사’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서사’가 금융시장을 움직인다는 얘기였다.
CS의 자산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데이터로 말하더라도, 금융시장에서 CS에 대한 ‘부정적인 서사’가 떠돈다면, 시장의 상황은 폭락만을 불러올 것이라는 얘기였다.
“CS에 대한 부정적인 내러티브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는 CS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과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경의 말에 파트장실에는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흔히 ‘리먼 사태’라고 부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또한 그랬다.
금융시장의 파생상품은 여러 금융사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2008년 리먼 사태 당시, 시작은 AIG라는 보험사의 파생상품이 문제였다. 이 사태로 인해 다음은 BofA라는 은행이, 마지막으로는 리먼 브라더스가 영향을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AIG와 BofA에는 구제금융을 통해 돈을 투입했지만, 리먼 브라더스를 살리지는 않았다.
앞에 두 회사는 그냥 죽도록 놔두기에는 너무 큰 회사였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작은 리먼 브라더스가 독박을 써서 파산했고, 이 ‘작은’ 회사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해 전 세계가 고통을 받았다.
“CS급의 은행이 터진다면…….”
서용원은 자신이 말하고도 뒷일은 상상하기도 싫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유럽 은행으로 전염될 겁니다. 그다음은 미국의 월 스트리트가 될 테고요.”
하지만, 도경은 지금 상황에 대한 최악을 가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될 거라고 저도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악을 가정하고 투자를 해야 한다면 얘기해 볼 가치는 있다고 봅니다.”
도경의 말에 서용원은 ‘후…….’ 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도경과 홍세준을 바라보았다.
“오늘 국내시장도 힘들었습니다.”
CS 파산 위기설이 국내 주식 시장 개장 전 들려오며 국내시장은 엄청난 폭락을 맞이했다.
위험자산들을 현금화하려는 움직임이 컸기 때문이다.
“곧 유럽과 미국 시장이 오픈되면…….”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렇겠죠. 그럼 매크로 팀의 의견은 어떻게 됩니까?”
서용원의 물음에 홍세준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현재 투자되고 있는 자산들은 뺄 수 없습니다. 이미 큰 손해를 봤기 때문입니다.”
현재 랩 어카운트 1팀에서 운용 중인 고객들의 포트폴리오는 많은 생채기를 입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터지는 사건, 사고들에 의해 경제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겠죠. 헷징 수단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영국 채권 얘기가 나왔던 거고요.”
이미 손실을 본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로운 상품을 찾아 손실 본 것을 어느 정도 만회해야 했다.
“저희가 생각하는 헷징 수단은 현금입니다.”
홍세준의 말에 서용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현금을 쥐고 있자는 걸…….
“정확히는 현금을 달러로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홍세준이 말을 덧붙이자 서용원은 잠시 생각에 빠졌고, 이내 모든 걸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평균 포트폴리오의 수익이 -18%입니다. 이것은 국내시장 비중이 높은 고객님들 대상이고…… 해외 시장 비율이 높으신 분들은 최대 -35% 이상 손해를 보고 계십니다.”
이틀 후, 랩 어카운트 1팀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고, 회의실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침울했다.
최근 고객들에게 자신의 포트폴리오 수익을 설명해 주기가 점점 힘든 장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영국발 위기가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만…….”
트레이딩 팀의 과장은 말끝을 흐렸다.
영국중앙은행의 시장 개입으로 시장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터진 CS발 금융위기 우려가 다시 시장을 불안감으로 잠식해갔다.
단 하루 금리가 내렸던 영국의 국채는 다시 금리가 상승하고 있었고, 시장 어느 부분에서도 나아질 분위기가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현재 현금 보유 비율이 40%가 넘는 고객님들입니다. 이 현금을 어디 투입할 곳이 없어 적금에 넣는 것보다 못한 상황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 물가는 상승하는데 그저 현금을 쥐고 있다면, 상승하는 물가 대비 내 현금은 그대로였다.
말 그대로 현금을 쥐고 있는 게 쓰레기가 되는 상황이었다.
“오늘 달러 환율이 어떻게 되죠?”
서용원은 도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제 기준 원·달러 환율은 1달러에 1,390원입니다.”
“현금 비율이 높은 고객님들의 현금을 모두 달러로 보유하겠습니다.”
서용원의 입에서 그와 같은 말이 나오자 트레이딩 팀 과장은 놀란 듯 서용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어디에 투자를 하기에는 바닥을 찍었다고 보기 힘듭니다.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 현금을 달러로 보유하겠습니다.”
“무기한 말입니까?”
“아닙니다. 바닥이 보일 때까지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1,400원 선을 돌파하고 1,500원 선을 위협할 겁니다. 헷징 수단으로도 좋은 것 같네요.”
서용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트레이딩 팀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분간 모두가 힘들겠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바닥이 나오기 전에는 현행 유지한다는 느낌으로 임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고생들 합시다.”
파트장 서용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서자 대리 박현재가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 * *
“이게 뭡니까?”
“제 업무는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파트장실, 서용원은 자신을 따라 들어온 박현재가 내민 봉투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영국 문제 때문입니까? 그건 내가 박 대리를 무시한 게…….”
“아닙니다. 적성이 맞지 않다고 이전부터 느끼고 있었습니다.”
“…….”
“저는 더 큰 돈을 벌고 싶습니다. 랩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최근 느꼈을 뿐입니다.”
고객의 자산을 관리하는 랩은 절대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없었다. 당연히 벌어들이는 성과급도 헤지펀드나 사모펀드에 비해 적었다.
“국내를 떠날까 합니다.”
“갈 곳은 있습니까?”
“네. 다행히도 일전에 연락이 온 곳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싱가포르로 갈 것 같습니다.”
이미 자신의 미래를 정한 듯한 박현재의 말에 서용원은 잡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박현재의 말마따나 그는 이 랩에는 맞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시간은…….”
“오늘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갑자기 떠나면 회사의 입장은…….”
“죄송합니다. 제 마음이 떠났습니다.”
마지막까지 이기적인 박현재를 바라보며 서용원은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좋습니다. 다만, 앞으로 어디를 가나 지금과 같은 모습이라면 박 대리는 진정한 팀원이 아닌 외부인 취급을 받을 겁니다.”
“충고 감사히 듣겠습니다. 나가 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박현재의 뒷모습을 보며 서용원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부디 자신의 경고 섞인 충고가 그에게 먹혀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달러로 선택한 거 잘한 거 같네요.”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적 킹달러 분위기를 우리나라라고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오늘 아침 장이 시작하자마자 고객들이 보유 중인 현금을 달러화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달러 시장이 열리자마자 8원 이상 오르며 환율이 급격하게 상승 중이었다.
“박 대리, 야! 박현재!”
그때 사무실 안에 울려 퍼지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그곳에는 트레이딩 팀의 과장이 대리 박현재를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박현재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사무실 입구를 향해 걷고 있었다.
“얘기 좀 하자!”
박현재는 자신을 따라오는 과장의 말을 무시하고는 사무실 한 곳에 멈춰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도경과 눈이 마주쳤다.
박현재의 시선을 받은 도경은 그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박현재는 자신의 짐이 든 것 같은 커다란 상자를 든 채로 도경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일을 할까요?”
한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도경은 옆에 있는 홍세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던 찬란한 유동성 시대의 끝은 여러 사람의 퇴장과 함께 찾아오고 있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31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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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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