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2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20화(12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20화
“우진 대리님.”
이틀 후, 도경은 일을 마치고 여의도 모처에 있는 한 치맥집에 나와 있었다.
문을 열며 들어서는 성남지점 PB 최우진을 보고는 손을 들어 올리자 최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도경 씨, 잘 지냈지?”
“그럼요. 우진 대리님께서는 잘 지내셨어요?”
“보다시피.”
최우진은 멀끔하게 빼입은 정장과는 다르게 얼굴은 상당히 푸석푸석해 보였다. 머리도 듬성듬성 빈 것 같은 게…….
“힘드시다는 얘기죠?”
“아휴, 죽지 못해 살지.”
최우진은 재킷을 벗어 서류 가방과 함께 의자에 대충 던져놓고는 도경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도 서울에 고객 뵈러 왔다가 시간이 남길래 도경 씨나 볼까 하고 온 거야. 도경 씨는 어때?”
“뭐라고 해야 할까요? 일은 힘든데 몸은 편해요.”
“아, 정신적으로 힘들구나?”
최우진이 공감해 주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퇴근이야 오후 다섯 시 반만 되면 업무용 PC가 꺼져 버리니까요…….”
부서마다 다르겠지만, 도경이 일하는 랩 어카운트 팀은 오후 다섯 시 반이면 업무용 컴퓨터의 전원이 내려갔다.
물론 개인적으로 요청해 꺼지지 않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마저도 한 시간 후면 자리를 비워야 했다.
“이제 다섯 시 반에 PC가 꺼지니까 그때 맞춰서 일을 처리하려고 힘들고, 또 제가 하는 일이…….”
“매크로 분석은 늘 힘들지.”
최우진은 다시 한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했다.
“트레이더 놈들 머리만 굵어가지고 매크로 만날 무시하고, 감으로 다 하려고 하고.”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굉장히 도경의 편에 서서 얘기를 해주는 최우진이었다.
“맞아요. 아주 죽겠어요.”
도경은 그런 분위기를 깨기 싫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맥주나 한 모금 하자고.”
최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맥주잔을 들어 올려 내밀었고, 도경은 잔을 부딪쳤다.
“크하! 그래서, 요즘은 문제가 뭐야?”
“영국 일이 지나고 나니까 뭐 딱히 문제가 되어 보이는 건 없습니다.”
“그래? 요즘 랩에서 상품 엄청나게 개발하던데?”
“랩에서요?”
도경의 물음에 마른안주를 주워 먹던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경 씨 랩은 아닌가? 아니, 본사에서 랩에서 만든 상품이라고 이것저것 내려보내는데, 보면 인도 시장이라든지 신흥국으로 많이 빠지더라고.”
“아, 저희 랩은 아닌 것 같아요. 요즘 미국이나 국내나 어렵다 보니까…… 신흥국 쪽으로 상품을 개발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에이, 미국이랑 국내가 어려운데 신흥국이라고 어렵지 않을 리가 있나.”
최우진은 그리 말하다가 손뼉을 쳤다.
“참, 내 정신 좀 봐라.”
최우진은 가방을 뒤져 서류를 하나 꺼내 도경에게 건넸다.
“이거 도경 씨가 좀 봐줬으면 해서.”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바라보았다.
“다른 건 아니고 이번에 새롭게 투자를 권유하려고 뽑아놓은 리스트인데 의견을 한번 묻고 싶어서.”
최우진은 이따금 도경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고른 종목에 대해 의견을 묻고는 했다.
물론 그가 도경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른다든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반대되는 의견이 있으면 들어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도경은 그런 최우진의 모습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선택과 반대되는 의견은 늘 들으려고 했으니까.
“2차전지 주는 좋은데요.”
“그래?”
“네. 중국도 곧 3연임을 할 테고, 중국의 자금이 몰방된 사업이…….”
“전기차랑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쪽이지.”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이 전기차와 배터리에 투자를 더 늘린다면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이 반사이익을 보겠네요.”
“키야, 역시 최우진!”
최우진은 자신에게 취한 듯 말했고, 도경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최우진이 늘 하던 장난이니까.
“지금 딱 저점인 것 같은데 어때?”
“네. 2차전지는 최근 좀 소외받았었는데, 슬슬 실적 발표 기간이 돌아오면 다시 오를 거라고 봅니다. 다만…….”
“다만?”
“셀(Cell, 완성형 배터리) 업체는 좀 지켜보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급하게 볼펜을 꺼내 서류에 적기 시작했다.
“미국 인플레 법안 때문에?”
“그런 것도 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요. 경쟁이 치열할 때일수록 배터리 완성업체에서는 캐파(Capacity, 생산능력)를 늘리려고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슬슬 이쪽에서 치킨게임이 시작될 조짐이 있긴 하니까. 아직은 느낌뿐이지만.”
“네, 그럼 당연히 소재, 부품, 장비 쪽은 영향을 받게 되겠죠.”
당연한 얘기였다. 생산설비를 늘리려면 소재, 부품, 장비는 필수였으니까.
“좋아. 그 부분은 참고할게. 그럼 보험 쪽은 어때?”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잠시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묘한 우연인지 오늘 팀 내에서도 보험업종에 관한 얘기가 나왔었다.
“글쎄요. 아직은 판단 유보입니다.”
“뭐야. 판단 유보라는 건?”
애매한 도경의 답에 최우진은 의문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기준금리가 높으면 보험사의 수익이 상승하는 건 모두가 봐왔잖아. 난 이거는 도경 씨가 당연히 좋다고 생각할 거라고 봤는데.”
“그렇긴 한데요…….”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물론 금리가 높아지면, 예정이율이 상승하니까 보험료는 싸지겠죠.”
금리 상승기 때 보험사들의 성장세는 어마어마했다.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가지고 지급 때까지 투자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예상 수익률(예정이율)이 상승해 보험료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예정이율 상승은 보험료의 하락. 즉, 보험가입자 수의 증가!”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자신이 생각한 것도 그것이라는 듯 목소리를 높이며 이야기했다.
“해외 사례만 봐도 금리상승 때 보험사의 보험료 수입이 엄청나게 늘었잖아.”
“그런데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애매하다고?”
“네. 어떤 상품에 운용을 하고 있는지 밝혀진 게 없으니까요.”
도경이 보험사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이유를 얘기했다.
“지난 10여 년간 엄청난 저금리 시대였어요. 그럼 보험사들은 지급 예정된 보험금을 벌어들이기 위해 고위험 상품에 투자했을 가능성이 커요.”
“…….”
“최근에 CS 문제만 봐도, 어디선가 불안한 고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아요.”
도경이 섣부르게 보험사에 대해 콜을 부를 수 없는 이유였다.
금융기관들의 장기계획은 ‘앞으로도 저금리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하에 짜여 있을 것이다.
“요즘 들어 제가 좀 걱정 인형이 된 것 같지만, 시장에서 가장 위험한 부분이 솔직히 금융사들이라고 봐요.”
당연히 지급해야 할 보험료보다 벌어들이는 돈이 적을 때를 대비해 여러 상품에 투자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앞서 세계적 투자은행처럼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 상품도 있을 것인데 장기적인 경제침체가 풀리지 않는 이상 도경은 어딘가 도사리고 있는 위험 요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듣고 보니까…… 좀 불안하긴 하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니까요. 보험사나 은행 등은 들어가더라도 조사를 좀 빡빡하게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나도 그럼 이 문제는 공부를 좀 더 해봐야겠다. 고마워.”
최우진은 도경의 전망이 도움이 되었다는 듯 인사를 해왔고,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제 슬슬 적응이 되는 느낌이야.”
한편, 매크로팀 신입 사원 최대훈은 다른 신입 사원들과 함께 퇴근 후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대훈이 형이야 선배들이 잘해준다지만, 우리는 좀 힘들었냐고.”
두 사람은 마치 최대훈이 들으라는 듯 얘기했고, 최대훈은 귀엽다는 듯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이 적응하기 쉬웠다고 해서 저들도 그런 것은 아닐 테니까.
“어때, 이제는 발언권이 좀 늘었어?”
최대훈의 물음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훈이 형처럼 뭐 의견을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안을 하는 형식인 거죠.”
“제안?”
“누가 봐도 선배의 실수가 확실한데…… 이걸 짚어주면 뭔가 목숨이 위태로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최대훈은 재미있는 얘기라는 듯 웃으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럴 때는 이제, 다시 한번 지시 내용을 되물어요.”
“되물으면?”
“어떨 때는 본인의 실수라는 걸 눈치채시는데, 실수를 눈치 못 챌 때는 이제 지시한 것을 두 가지 버전으로 작성해서 올려요.”
“하하하, 너도 일 진짜 잘하네.”
최대훈은 앞에 앉은 동기도 대단하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니, 이게 얼마나 비효율적이냐고요. 그냥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얘기하면 되는데…… 일을 두 배로 하게 만들고.”
“그러니까요. 대훈이 형은 모르겠지만, 얘나 저나 눈치 보고 행동하는 스킬만 늘었다니까요.”
“대훈이 형은 선배한테 점수 어떻게 따요?”
“나?”
동기의 물음에 최대훈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글쎄. 나는 너네랑은 선배들이 다르니까…… 굳이 점수를 따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데?”
최대훈의 말에 동기들은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건 있어. 내가 의견을 얘기하면 도경 대리님은 그냥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보시거든.”
“예? 나댄다고 뭐라 하지 않아요?”
“오히려 도경 대리님이 나한테 막 나대라고 하셨어. 팀 내에서 의견을 숨기는 것보다 네가 내 의견은 이렇다고 말해야 네게도 기회가 주어질 거라고.”
“어디 뭐, 혼자서 완벽한 직장 이런 데서 일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러니까, 인터넷에서만 보던 신의 직장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 같네요. 형은.”
동기들의 말에 최대훈은 미소를 지었다.
“뭐…… 그런 부분에서는 복 받았지. 그래서 따로 노력은 안 하고, 그냥 내 의견을 얘기하는 거지.”
“대충 어떻게요?”
“오늘도 과장님이 보험이랑 은행주 위주로 알아보라고 도경 대리님에게 지시하셨거든.”
“어, 그거 우리 팀에서 요청한 것 같은데.”
트레이딩팀 신입이 그리 얘기하자 최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걸? 어쨌든 은행주나 보험주를 개인적으로 조사해서 의견을 얘기하는 거지.”
“그럼 수렴해 줘요?”
“글쎄, 나보다 도경 대리님이 더 잘 아셔서…… 그냥 그렇게 말씀 올리면 좋아하셔.”
“아! 그럼 형은 보험이나 은행을 어떻게 보는데요?”
트레이딩팀 동기의 물음에 최대훈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나는 별로인 것 같아.”
“별로라고요? 기준금리가 이만큼이나 올랐는데?”
“그거랑은 이제 좀 별개로 봐야 하지 않나 싶어. 보험사의 주요 운용수익이 채권투자인데 채권시장이 어렵잖아.”
보험사는 채권시장의 큰손이었다. 물론 주식 시장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채권시장을 움직이는 기관 중 한 축이 보험사였다.
“그러다 보니까 투자한 채권 수익이 내려가지 않았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지.”
“아니, 괜찮은데요?”
트레이딩팀 신입은 공감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단기적인 실적은 축소될 수 있잖아요.”
“그렇지. 도경 대리님도 좀 미심쩍게 보시더라고.”
“윤도경 대리님도요?”
최대훈과 말을 주고받던 동기는 더더욱 두 눈을 빛냈다.
“어, 자세한 얘기는 안 들어봤지만…….”
최대훈은 그리 말하고는 맥주를 홀짝였고, 동기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다 이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오늘 제가 살게요! 마셔요!”
“뭐? 갑자기?”
“아니, 그냥.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어요.”
동기는 그리 얘기하며 맥주잔을 들어 올렸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1-02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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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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