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2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27화(12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27화
“채권시장이 빠르게 안정되었습니다.”
일주일 후, 유성투자증권 랩 어카운트 1팀의 회의실.
트레이딩팀 과장은 환하게 웃으며 시장 상황에 대해 파트장 서용원에게 보고했다.
“정부가 꽤 과감하게 지원책을 던졌네요.”
서용원도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정치적 문제로 발생한 위기다 보니, 문제는 정치라고 느낀 것 같습니다.”
일주일 전, 정부는 50조 원 이상의 시장안정 정책을 발표했고, 정책이 시행되자마자 채권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특히 채권시장이 빠르게 안정되며 자금이 돌아온다는 느낌입니다.”
“느낌이요?”
“아! 느낌이라고 말씀드린 건 앞으로도 좋아질 것 같다는 얘기고, 실제로 어제 발행한 채권들이 순조롭게 팔렸습니다.”
사안이 심각했을 때는 공기업인 한전과 같은 우량기업의 채권도 팔리지 않았는데, 정부의 개입 이후에는 채권이 팔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거기다가 돈을 푸는 방식도 굉장히 세련되었습니다.”
“예. 채안펀드를 이용했으니까요.”
영국은 채권시장이 문제가 되자 중앙은행에서 유동성을 공급해 채권을 사주었다.
즉, 물가상승으로 인해 돈을 풀면 안 되는 타이밍에 돈을 풀어 채권시장에 돈을 공급했다면.
우리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채안펀드를 이용하니 긴축재정정책에 어긋나지 않고요.”
채안펀드는 채권안정펀드의 줄임말이었는데 나라에서 돈을 찍어내 채권시장에 돈을 푸는 게 아닌,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들의 돈을 갹출해 시장에 돈을 푸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 은행과 증권사는 채권을 발행해 채권시장에서 돈을 빌려와 채권안정펀드에 돈을 넣었고, 한국은행에서 보증 성격의 적격담보증권으로 해주며, 신용도를 더해주었다.
즉, 돈을 찍어내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 아니니 돈을 거둬들이는 정책과도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과장님 말대로 당분간은 시장이 안정될 것 같네요.”
“예, 시장이 안정되어 가니 슬슬 다시 보험주를 사들일까 합니다.”
“좋습니다. 지금과 같은 때를 대비해서 그동안 지켜보고 있었던 거니까요. 홍 과장.”
서용원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려 홍세준을 바라보았다.
“매크로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홍세준의 말에 맞은편에 앉은 트레이딩팀 과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다만, 여전히 금융사들에는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저희는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정리하고, 미국 주식의 비중 확대가 좋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 홍 과장.”
트레이딩팀 과장은 한숨을 내쉬며 홍세준을 불렀다.
“테마 추종 상품을 놀릴 수는 없잖아.”
“국내에도 2차전지 테마가 앞으로 유망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미 포지션을 잡고 있는데 지금 와서 이 모든 것을 돌리자고?”
트레이딩팀 과장의 말에 홍세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래서 처음부터 보험주의 진입을 만류했다. 처음으로 되돌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매크로팀의 의견을 들어서 나쁜 것은 없으니까요. 테마 추종 상품은 보험주로 가고, 다른 상품들은 미국 시장과 국내 2차전지 업종의 확대 쪽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서용원이 그렇게 교통정리를 하자 트레이딩팀 과장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매크로팀에서 자료를 받아 포트폴리오 짜서 올리겠습니다.”
“좋습니다. 오랜만에 시장이 안정되니까 다들 얼굴이 밝아 보이네요.”
서용원의 말에 트레이딩팀 과장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몰랐다.
이번에야말로 팀에서 밀어붙인 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고 있었다. 앞으로 트레이딩팀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지사라 생각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리고, 확실하게 해봅시다. 연말에는 고객님들 계좌의 수익률은 조금은 복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합시다.”
그렇게 회의가 끝이 나고 홍세준은 재빠르게 파트장실을 빠져나갔고, 트레이딩팀 과장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 것인지 싱글벙글하며 파트장실을 빠져나왔다.
* * *
“과장님.”
파트장실을 빠져나와 자신의 자리로 향하던 홍세준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는데 도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얘기 좀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홍세준은 무언가 잔뜩 지친 표정이었는데 이내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도경과 함께 비어 있는 회의실로 들어섰다.
“요 며칠 보험사에 대해 조사를 좀 했습니다.”
“보험사요?”
“네. 아무래도 저희가 투자를 하려다 보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할 것 같아서요.”
도경은 그리 말하며 노트북을 펼쳐 준비한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채권시장이 굉장히 안정되어 가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어딘가 불안한 고리가 있을 것 같아 자료를 좀 뒤져봤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며 화면을 손으로 가리켰다.
“몇몇 보험사들에서 문제가 좀 발견되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대표적으로 이안생명의 경우는 이번 달이 콜옵션 행사일입니다.”
“콜옵션이라면 신종자본증권을 얘기합니까?”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거나 만기가 30년 이상의 채권을 얘기했다. 영구채라고도 불리는데 콜옵션은 5년이 지난 이후 이 영구채를 사들이는 것들 얘기했다.
다시 말해, 언제 주겠다고 약속을 하지 않고 돈을 빌리는 것이 영구채(신종자본증권)이고, 콜옵션은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5년이 지났으니 도의상 갚을 거라고 하는 행위를 얘기했다.
“예. 영구채입니다. 발행 당시 금리는 연 4.475%였고요.”
“그런데 이게 왜 문제라는 겁니까?”
“지금 시중금리가 올라 현재 이 영구채의 금리는 연 12%입니다.”
도경의 말에 홍세준의 미간은 순간적으로 찌푸려져 갔다.
시중금리가 오르면 채권금리는 더 빠르게 오른다. 금리가 높은 것은 대표적으로 만기가 긴 채권들의 특성이었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는 이유는요?”
“영구채를 발행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홍세준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영구채는 애초에 만기가 없거나 길어서 채무로 잡히지 않습니다.”
“그렇죠. 자본으로 분류되죠.”
“네. 그래서 자본이 튼실해야 하는 보험사나 은행, 증권사에서 발행합니다.”
쉽게 말해 5,000억 원을 빌렸는데 재무제표에는 이것이 빚으로 잡히지 않고 자본으로 잡힌다는 얘기였다.
특히 은행이나 보험사들은 자기자본비율이 높아야 하는 금융업계의 특성상 비율을 높이기 위해 발행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도 만기가 없는 것에 돈을 빌려주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암묵적인 약속이 하나 있죠.”
“네. 콜옵션입니다.”
아무리 이자가 높아도 언제 원금을 돌려받을지 모르는 곳에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암묵적으로 5년 후에 원금을 갚는다는 믿음 속에 빌려주었다.
이것 또한 상대가 이전에 콜옵션을 꾸준히 행사했다는 걸 보고 신용을 믿고 주는 대표적인 신용상품이었다.
“제가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 보는 이유는 단 두 가지입니다. 페널티가 오히려 더 적기 때문입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며 화면을 넘겼다.
[콜옵션 이행 시 연 이자 12% vs 콜옵션 이행하지 않을 시 페널티 연 6.742%]“두 배나 차이가 나는 연 이자율입니다.”
도경이 작성한 자료를 보며 홍세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두 번째는 지금 이안생명의 경우는 지급여력이 151%인 상황입니다.”
지급여력은 보험상품에 가입한 고객 모두가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지급할 수 있는 여력을 얘기했다.
150% 이하로 떨어지면 부실 금융기관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영구채를 갚으면요?”
“144%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
도경이 결론을 추론하기까지의 과정을 본 홍세준은 할 말을 잃었다.
“재정이 건전해 보이려고 발행한 영구채입니다. 그런데 이 영구채를 갚게 되면 재정건전성은 둘째 치고, 부실 금융기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자 문제도 페널티를 무는 게 훨씬 싸게 먹히고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보험사와 은행 등이 발행한 영구채의 신뢰가 사라질 겁니다.”
금융기관은 말 그대로 신용으로 먹고사는 기업이었다.
돈을 빌려, 이 돈을 시중에 공급한다.
그 돈을 빌리는 것이 영구채이고 시중에 공급하는 것은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으로 공급하는 일을 한다.
“은행으로 향하는 돈줄이 마르면…….”
“시장, 아니, 우리나라 자체의 돈줄이 말라 버릴 수도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결론은 보험사는 여전히 위험한 고리다. 맞나요?”
“예,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도경의 말에 홍세준은 한숨을 내쉬며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제는 좀 지치는 단계까지 왔다.
서용원에게는 이런 일을 경고하는 게 자신들의 일이라 했지만, 경고함으로써 얻는 스트레스가 더욱 컸다.
그래도 인정하고 있었던 트레이딩팀 과장은 자신의 팀에서 발행한 경고가 담긴 보고서가 고까워 견제를 해오고 있었다.
“…….”
차라리 상황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고. 좋으니 그냥 진행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예스맨이 되고 싶었다.
“우리가 보는 게 맞을까요?”
홍세준의 말에 도경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도경 씨의 의견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하지만, 이걸 내가 들고 가서 말하면 상대는 우리의 말이 맞다고 볼까요?”
“…….”
“지치네요. 이제는 틀리는 것도 무섭고요.”
홍세준은 그리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틀려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맞은편에 앉은 도경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입을 열었다.
“바람이 부는 날 양궁선수들은 과녁에 정확히 맞히려고 일부러 오조준한다고 합니다.”
“…….”
“누가 더 과감하게 오조준을 하냐에 따라 바람의 영향을 받은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으로 날아간다고 하네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도 언젠가 내가 틀리는 게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양궁선수들의 말을 믿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홍세준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겁을 먹거나 너무 틀리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면 화살은 바람을 이기지 못할 테니까요.”
도경은 틀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틀리더라도 겁을 먹기보다는 다음을 위해 더더욱 틀릴 수 있는 용기를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었다.
“저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 일은 그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틀릴 수도 있지만, 저는 과감하게 내가 본 전망을 얘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도경이 그렇게 말하고 홍세준을 바라보자, 홍세준은 무언가 결심이 선 듯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 *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이안생명에 대한 투자 건은 접어야 한다고 봅니다. 더 나아가 보험주에 대한 포지션도 정리해야 하고요.”
사흘 후, 홍세준은 서용원을 찾아 도경이 자신에게 보여준 자료를 보고서로 올렸다.
모든 설명이 끝이 나자 파트장 서용원은 고민이라는 듯 아무 말 없이 보고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오늘도 보험주에 대한 포지션을 꽤 과감하게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빠르게 정리해야 합니다.”
홍세준은 급하다는 듯 얘기했고, 서용원은 그럴수록 더더욱 고민이 깊어갔다.
매크로팀에서 가져온 자료에 마음이 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콜옵션이 만기 되는 보험사가 더 있나요?”
“이안생명을 포함해 총 세 곳입니다.”
“…….”
“세 곳까지 볼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당장 이안생명이 콜옵션 행사를 포기한다면, 보험주는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할 겁니다.”
“무너져 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네. 무너져 내리지 않더라도 호재가 돌아와도 오르지는 않을 겁니다.”
사면 물린다는 얘기였다. 최근 들어 미국 경제 상황에 대한 좋은 얘기들과 정부의 대처가 더해져 시장은 훈풍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보험주는 그 훈풍의 영향을 피해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좋습니다. 자료를 보니 꽤 신빙성이 있네요. 한번 얘기를…….”
똑똑-
그때 파트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사색이 된 직원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파트장님, 지금 뉴스 속보를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직원의 말에 서용원은 리모컨을 들어 올려 TV를 틀었다.
[이안생명이 이달 말에 만기 되는 영구채에 대해 콜옵션 행사 포기를 발표했습니다. 이안생명은…….]시장의 불안한 고리는 어김없이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1-23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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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