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3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31화(131/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31화
“어, 도경 씨…….”
일주일 후, 도경은 서울 모처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는데 도경을 부르던 약속 상대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아휴, 우진 대리님. 그런 표정 그만 하세요.”
“아니, 무슨 일이야?”
도경의 약속 상대는 성남지점 PB 최우진이었는데, 도경을 보자마자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계속해서 할 말을 잃은 듯 ‘아니’만을 연발하는 최우진을 바라보며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불편해 죽겠어요.”
“미쳤어? 왜 불편해. 얼굴에 무슨 광채가 나는구먼.”
“증권사에서 일을 하니까 문제죠.”
최대훈이나 최우진이 저리 호들갑을 떨 정도로 얼굴에서 빛이 나는 건 아니었다.
문제는 도경의 직장이 증권가에 있다는 것이었다.
증권가는 모두가 피로에 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얼굴에 생기가 도니 모두가 도경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어우, 무슨 상견례 프리패스 상이 걸어오는데.”
“대리님.”
“아, 알겠어. 알겠어. 그만할게.”
최우진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싱글벙글하며 도경에게 잔을 건네고는 맥주를 따라주었다.
“그냥 잔만 채워주는 거야. 술 별로 안 좋아하니까.”
“아뇨. 요즘은 마셔야 할 것 같아요.”
“본사는 요즘 어때.”
“글쎄요. 전체적으로 다들 넋이 나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비단 유성투자증권만의 모습은 아니었다.
여의도 증권가에는 그 어떤 생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길을 걷다 보면 좀비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휴…….”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태산이나 선진, 우리는 버티겠지. 업계 1, 2, 3위니까. 문제는 다른 회사들이야.”
“들은 거 있으세요?”
“신라는 구조조정 들어간다더라.”
신라증권은 업계 10위권 밖에 있는 중소 증권사였다.
기실 최근 여의도 증권가는 지출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쉽게 지출을 줄이는 방법은 늘 그렇듯 인건비를 줄이는 일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업계가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첫 주제부터 그리로 향하는 것 같았다.
“구조조정이요?”
“그래, 작년까지 우리 업계가 어땠어? 거의 무슨 여의도에 돌아다니는 강아지들도 오만 원권 물고 다닌다는 소리가 있었잖아.”
재작년과 작년은 증권가의 최대 활황이었다.
성과급으로만 수십억, 수백억 원을 받는 연봉킹들이 생겨났고, 일반 직급의 직원들도 수억 원대의 성과급을 받았다.
“1년 사이에 이게 맞나 싶네.”
최우진은 씁쓸한 듯 맥주를 들이켜고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도경 씨야, 정규직이니까 괜찮겠지.”
“확실히 PB 쪽은 불안해하겠네요.”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증권사의 영업직들은 대부분 계약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증권사들은 계약직을 대거 늘려왔다.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도경과 같은 백오피스(Back Office, 실무담당) 직원들은 정규직으로 채용했고, 영업직 직원들은 전문계약직으로 계약을 갱신하는 형태였다.
“신라증권 같은 경우는 64%가 계약직이라더라.”
중소형 증권사의 경우는 보통 개인보다 법인 영업을 우선으로 했기 때문에 영업직 비율이 높았다.
“이번에 법인 영업팀이랑 리서치 센터를 폐쇄한다더라고.”
“그럼 영업을 하지 않겠다는 소리 아니에요?”
“일단 계약한 법인들만 관리하겠다는 소리지. 사업 확장은 하지 않겠다고.”
경기침체는 이곳 금융가도 빗겨 나갈 수는 없는 문제였다.
특히나 계약직들은 정규직보다 구조조정을 하기가 수월했다. 그저 사측이 계약 갱신을 거절하면 되니까.
“이유는요? 계약직들도 그냥은 못 자르잖아요. 이유가 있어야지.”
“자금 경색, 경기침체, 손실 확대.”
“명분은 그럴싸한데 변명 같아 보이긴 하네요. 제가 너무 팔이 안으로 굽은 걸까요?”
“아냐. 애초에 계약직을 64%나 뽑은 걸 보면 이럴 때 쉽게 쳐내겠다는 이유였겠지.”
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우리 PB들에게도 온다는 거지.”
“PB 업계는 어떤가요?”
“뭐 그냥 다들 요즘은 숨만 쉬어도 평가 손실이 늘어나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주의지.”
“가혹한 11월이 되겠네요.”
보통 업계는 12월에 계약을 갱신하는 방식이었는데 갱신 한 달 전인 11월에는 적어도 갱신 의사를 회사에서 말해와야 했다.
“그래도 도경 씨 얼굴 보니까 우울했던 게 사라지긴 하네.”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씩 미소를 지었다.
“농담하시는 모습이 그래도 보기 좋아요.”
“그래? 어우, 요즘 너무 안 좋은 소리만 들으니까. 내색은 않으려고 해도 이게 다 티가 나나 봐.”
“…….”
“그래도 이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최우진은 무언가 마음이 정리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맞아요.”
“내가 도경 씨를 보면 느끼는 감정이야.”
“네?”
“왜 저렇게까지 이 악물고 열심히 사나 생각을 해봤거든.”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도경 씨가 걸어온 길들이 증명하잖아. 열심히 사는 건 언젠가 올 기회를 잡기 위함이라고 말이야.”
“과찬…….”
“과찬이 아니야. 그냥 나도 그렇게 살아보려고. 그럼 기회가 오지 않겠어?”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지금은 그의 다짐에 동의를 해주는 것이 유일하게 도경이 할 수 있는 위로였다.
* * *
“팀장님.”
며칠 후, 유성투자증권 본사 앞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도경은 약속 상대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경 씨, 오랜만이네요.”
상대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손을 맞잡았다.
“죄송합니다. 연락을 좀 자주 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본사에 적응해야죠. 앉을까요?”
상대의 말에 도경은 자리에 앉았다.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상대는 리더스 센터에서 함께 지냈던 팀장 서정환이었다.
“잘 지냈죠? 잘 지낸 것 같네.”
도경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말해오는 서정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는데요. 이걸 다 말씀드리면 책 열두 권 스토리라서요.”
“하하하, 잘 지낸 것 맞네요. 농담도 할 줄 알고.”
“팀장님은 어떻게…….”
“우리야 뭐.”
서정환은 씁쓸한 듯한 웃음을 지었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본사에 들어오는 김에 도경 씨도 보고 싶어서요.”
“제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볼일 있는 사람이 찾아가는 게 맞죠.”
서정환은 그리 얘기하며 테이블 위에 서류를 몇 개 꺼내놓았다.
“도경 씨가 관리하던 고객님들의 현황입니다.”
“네?”
“궁금할 것 같아서요. 아닌가?”
“아닙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사실 전화를 드리기 망설였던 이유도…….”
“왠지 그럴 것 같더라고요.”
사실 도경의 마음은 이미 서정환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전화를 하게 되면 관리하던 고객들에 관해 묻게 될까 봐 억지로 참고 있었다.
도경은 더 이상 리더스 센터의 일원이 아니니까.
“근데 조금 서운하네.”
“네?”
“나는 도경 씨가 본사에 갔어도 여전히 우리 3팀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
“궁금하면 언제든 전화해서 물어봐도 좋습니다. 지금도 봐도 좋고요.”
서정환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서류를 들어 올려 읽어 내려갔다.
“도경 씨와 성남지점에서 함께 온 김 회장님은 여전히 좋으십니다.”
서정환이 말한 김 회장은 도경의 첫 고객이자 창구직 일을 할 때부터 도경을 지지해 주던 고객이었다.
“워낙 도경 씨가 많은 수익을 내주셨던 분이라서요.”
“그런데 회장님 같은 경우에는 조금 신경을 많이 써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도경 씨가 본사를 가며 남긴 인수인계서 그대로 현재 담당이 관리하고 있습니다.”
서정환의 말에 도경은 자신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확실히 리더스 센터 매니저분들은 프로시니까요. 믿음이 가네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다음 순서를 읽어 내려갔다.
“애그로브릿지가 곧 상장을 하나요?”
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도경은 한 부분에서 놀란 듯 서정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부에서는 타이밍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내 시장은 아니고 미국의 나스닥 상장에 무게를 두는 것 같고요.”
애그로브릿지는 도경이 처음으로 만난 고액 투자자인 권은호가 투자를 한 곳이었다.
“권은호 대표님께서는 큰 이득을 보실 예정이고요.”
“확실히 초기 투자자라 지분을 많이 얻으셨죠.”
도경의 말에 서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권 대표님께서 도경 씨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농담이 아니실…….”
“진심으로 날을 잡아 하루 정도는 진득하게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서정환의 말에 도경은 씩 하고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권은호는 세계 경제 상황에 대해 도경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었다.
“다음은 고은하 씨입니다.”
서정환은 그리 얘기하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도경의 앞에 건넸다.
“이게…….”
“고은하 씨가 도경 씨에게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도경은 봉투를 들어 올려 내용물을 확인했다.
편지로 보이는 것과 티켓이 들어 있었다.
[윤도경 매니저님, 잘 지내시죠?저는 매니저님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와인에 대해 알아갈수록 변하는 것은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거든요.
매니저님이 저에게 하셨던 말씀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요.
매니저님도 하시는 일 모두 잘되길 바랄게요.
P.S. 이번에 제가 콘서트를 해요. 고은하학 석사님과 같이 오셨으면 좋겠네요. 오시면 꼭 저를 찾아주시고요!]
짧은 메시지와 함께 고은하의 콘서트 VIP 티켓이 두 장 들어 있었다.
“고은하 씨 담당 매니저가 슬퍼하고 있습니다.”
“네?”
“자신에게는 티켓을 주지 않았거든요.”
“아…….”
“어쨌든 고은하 씨의 와인 선물 투자도 꽤 잘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대신해 와인 선물 투자를 해주던 브로커들과 얘기가 잘돼서 정식 상품으로 출시해 볼까도 생각 중이고요.”
“정식 상품이요?”
물론 도경은 잘될 거란 확신은 있었지만, 정식 상품으로 출시한다는 것은 성과가 확실하게 나오고 있다는 얘기였다.
“네. 어디서 소문이 났는지 우리 센터로 와인 선물 투자에 관해 물으시는 분들이 좀 있어서요. 그리고 수익도 나름 훌륭하고요.”
“다행이네요. 정말 다행입니다.”
서정환이 건넨 서류를 보며 도경은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여전히 자신을 생각해 주는 고객들, 그리고 그런 고객들의 마음을 전해주기 위해 찾아온 서정환까지.
“뿌듯하다는 표정인데요.”
“네?”
“내가 감흥을 깼나?”
“아, 아닙니다. 그냥…… 이 업계에 들어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도경의 말에 서정환은 미소를 지었다.
“요즘 워낙 업계가 힘드니까요. 도경 씨가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찾아왔습니다. 근데 기우였나 싶기도 하네요.”
“감사합니다.”
“도경 씨는 꽤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으니까요. 꺾이지 마세요.”
물론 서정환은 도경이 꺾이지 않을 인물이란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중에 무언가 부침이 있을 때 오늘을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찾아왔다.
그런 서정환의 마음이 전해진 것인지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는 할 일이 많으니까요.”
도경의 답에 서정환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1-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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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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