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32)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32화(13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32화
지하 5층, 지상 20층 규모의 유성투자증권 사옥 10층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다.
“시작하지.”
방의 한가운데는 못해도 20명이 넘게 앉을 수 있는 원탁과 벽면에는 유성투자증권이 그동안 해왔던 업적들이 연도별로 나열된 장식이 크게 붙어 있었다.
이곳은 유성투자증권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회의실이었다.
50여 명가량 되는 임원들이 모두 상석에 앉은 한 사람의 말에 서류를 펼치기 시작했다.
“신라증권은 올해 리서치 센터를 폐지하고, 일선 기업 영업지점도 모두 폐쇄하기로 했습니다.”
“구조조정 규모는?”
“500명가량 되는 것 같습니다.”
한 임원이 그리 입을 열자 모두의 표정이 굳어갔다.
여의도를 덮친 한파의 제일 앞에는 증권사가 서 있었다.
“한경증권의 경우도 기업영업 팀을 폐쇄, 200명가량을 구조조정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시작이 증권사라는 점이었다.
금융계의 문제에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는 것이 증권사였지만, 은행과 보험사와도 사슬처럼 엮여 있었다.
“금융위에서 우리 회사의 방침을 알려달라고 합니다.”
오늘 회의가 열린 이유가 임원의 입에서 나오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금융사의 손실이 확대되며 계속해서 위기가 생산되자 금융사들을 관리하는 금융위원회에서는 위기관리에 관해 물어오고 있었다.
“트레이딩 본부는 이미 많은 리스크를 털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맞나?”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심주원은 트레이딩 본부를 이끌고 있는 부사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세한 건 실무자들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사장의 말에 실무자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습니다. 저희 주식 운용 파트는 이미 올해 초부터 꾸준히 시장 철수를 해왔고, 지금은 현금 보유량이 80%가 넘습니다. 진입 타이밍을 재는 중입니다.”
“손실은?”
“-7% 정도입니다.”
다행히도 그렇게 손실 폭이 크지 않았다.
“현금이 80%라 했으니 손실이 더 줄 거라 기대해도 되겠나?”
“올 연말쯤 플러스 전환할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회삿돈으로 주식을 운용하는 주식 운용 파트의 파트장이 그리 얘기하자 심주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저희 채권 파트도 일단 손실이 큰 장기채들은 더 보는 게 좋다는 판단하에 들고 있고, 단기채에 대한 투자는 멈추었습니다.”
“손실은?”
“올 초에 비해 -22% 이상 손실을 봤습니다.”
채권파트장의 말에 모두가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거의 모든 금융 사고의 중심이 채권시장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그런지 손실의 폭이 엄청났다.
“손실이 더 늘어날 가능성은?”
“다행히 현재는 없습니다. 오히려 손실을 최대한 줄여가고 있으니 올해 말 즈음에는 -10%를 손실 확정액으로 보고 있습니다.”
파트장의 말에 심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어려운 시장에서 저 정도만 해도 선방이라 생각했다.
“트레이딩은 확실히 괜찮은데 문제는…….”
심주원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박재엽 부사장.”
“네. 대표님.”
“구조화 금융본부는 손실액이 어떨 것 같습니까?”
구조화 금융본부(Structured Finance)는 기업 인수, 부동산 등 투자은행 업무를 하고 있는 본부였다.
말 그대로 부동산 사업에 투자하거나, 기업에 투자를 한다든가 여러 가지에 발을 걸치고 있었다.
“최근 저희가 시행 중인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대해 전수 조사를 했습니다만, 문제가 적을 것 같습니다.”
구조화 금융본부를 이끌고 있는 부사장 박재엽의 말에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금융위기가 찾아올 것 같다는 말들이 나오는 시장은 모두 구조화 금융본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이 확실히 얼어붙긴 했지만, 올 초부터 부동산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줄였고, 기업과 관련한 투자도 줄인 상태였습니다.”
“보고서를 받아봤습니다만, 박 부사장이 꽤 잘 이끌고 있는 것 같더군요.”
심주원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존에 투자된 부동산들 같은 경우도 사업성이 보장된 곳에 투자를 했기 때문에 후에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공사들은 잘 진행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위기관리에 온 힘을 다해주길 바라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재엽이 그리 답하자 심주원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모두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모든 사업부의 구조를 내년에도 끌고 가겠습니다.”
심주원의 말에 자리에 앉은 모든 임원은 안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모두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성과급 규모는 작년보다 축소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얘기였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증권사의 보릿고개였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전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리스크관리 확실하게 합시다.”
심주원의 마지막 말과 함께 회의가 끝나고 임원들은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을 떠났다.
* * *
“오늘 대표 명의로 메일 온 것 봤어요?”
사흘 후, 도경은 트레이딩팀 대리 이지훈과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재작년, 작년에 엄청 좋았죠?”
이지훈은 올해 보험사에서 이직한 상태라 소문으로만 전해 들었다는 듯 물었다.
“저도 본사는 처음 와봤는데, PB는 계약직이다 보니 성과급이 좋았습니다.”
“그렇겠죠. 신입 사원들도 억대로 받았다고 들었어요.”
오늘 오전 대표이사 명의로 전 직원에게 발송된 메일은 회사를 뒤집어놓기 충분했다.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이지훈은 도경을 향해 물어왔다.
메일의 내용은 고용안정을 보장하는 대신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자는 얘기였다.
“다행이 아닐까요?”
“글쎄, 여기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까요?”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구내식당에서 식사 중인 모두를 둘러보았다.
여느 때보다 가라앉은 회사 분위기였다.
“글쎄요. 결국엔 회사의 안정성을 올려줄 거예요.”
“안정성?”
“네. 당장 신라증권에서 구조조정을 시행 중이라는 기사가 나오자마자 그들과 거래하던 법인들이 다른 증권사를 찾기 시작했어요.”
“그렇죠.”
“거기다가 우리는 재벌가의 계열사고요.”
도경은 이 선택의 과정에서 그룹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유성그룹의 계열사인 유성투자증권이 구조조정을 한다는 소문이 나면…….”
“그룹을 의심하겠죠.”
“네. 당장 우리 회사에서도 채권을 발행하고, 계열사들도 회사채를 발행하는데 신용도가 내려갈 수밖에 없겠죠.”
도경의 말에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면 회사는 더더욱 돈줄이 마를 테고, 지금은 계약직이지만 다음엔 정규직이 대상이 될 겁니다.”
“그렇겠죠.”
“그러니까 당장 내 성과급이 준 건 저도 아쉬운데 고용안정이 더 좋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거예요.”
“뭐 도경 씨 말 들으니까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이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도경 씨.”
그때, 도경을 부르는 목소리에 두 사람의 시선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했다.
“어, 연지 대리님.”
도경을 부른 사람은 리서치 센터의 애널리스트 이연지였다.
“앉아도 되죠?”
“그럼요.”
자신의 옆에 이연지가 자리하자 도경은 이지훈을 바라보았다.
“여기는 리서치 센터에서 IT 업계를 담당하고 계시는 애널리스트 이연지 대리님이세요.”
“아, 안녕하십니까? 랩 어카운트팀 대리 이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연지입니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눴다.
“연지 대리님, 요즘 어떠세요?”
“어떻기는요. 우리는 그냥 입 꾹 다물고 일만 해요.”
“신라 영향이죠?”
“네. 우리야 개인 고객 영업도 하니까 센터를 폐쇄하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인원을 줄일까 봐…….”
신라증권을 비롯해 증권사들이 계약직들을 줄이고 있었고, 애널리스트라든가 PB들은 전문계약직이 다수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칼날이 떨어지지 않을까 숨을 죽이는 중이었다.
“힘드시겠어요.”
이지훈의 말에 이연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커버리지 하시는 쪽도 힘들죠?”
“네. IT 기업이나 게임 기업들이 좋으면 저도 신이 좀 날 텐데…….”
이연지는 말끝을 흐렸고, 질문을 한 이지훈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리포트 올리기가 무서워요.”
“왜요? 요즘도 막 항의 메일 와요?”
도경의 물음에 이연지는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 그렇지 않아도 주가도 안 좋은데 더 내려가라고 기도하냐는 건 양반이고, 어디 사냐고 물어보는 메일까지 와요.”
시장이 워낙 좋지 않다 보니 영향을 주는 애널리스트의 보고서에도 과민 반응을 하는 투자자들이 많았다.
“요즘은 보고서 숫자로만 써야 하는데, 쓰다 보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니까요?”
도경은 씁쓸한 듯 미소를 지었다. 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는 증권사 직원이다 보니 이렇게 밥을 먹는 시간에도 모여 앉아 불행 전시를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도경 씨.”
“네. 연지 대리님.”
“그렇지 않아도 전화하려고 했는데요. 이번 주말에 뭐 해요?”
“저요? 그냥 집에 있을 것 같아요.”
“그럼 혹시…….”
이연지는 고민이라는 듯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랑 같이 탐방 갈래요?”
“탐방이요?”
“네. 커버리지를 개시할 기업을 몇 개 찾았는데, 워낙 여러 기업을 봐서 그런지 다 고만고만해 보여서요.”
애널리스트들은 주기적으로 새롭게 담당할 기업들을 찾거나 아니면 담당하는 기업들을 탐방하러 갔다.
“마침 그쪽에서도 주말에 오면 좋겠다고 하고, 좀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PB 생활을 할 때 쉬는 날이면 틈틈이 이연지와 기업 탐방을 나갔던 도경이었다.
“제가 한번 스케줄을…….”
지이잉-
그렇게 얘기를 하려던 순간 도경의 휴대전화에서는 알림이 울렸다.
【회원님을 늘 응원하는 VIP 서비스입니다.】
【모든 경제 불황에는 훗날 그때를 기억하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뜬금없는 메시지의 알림에 도경은 당황한 표정으로 가만히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1995년 닷컴버블, 97년 외환위기,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훗날 작금을 사람들은 무엇으로 부르며 기억할까요?】
메시지의 물음에 도경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모두의 입에서 ‘화이트칼라의 위기’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화이트칼라(White Collar)는 사무직 종사자를 얘기했다.
그들이 입은 셔츠의 색깔과 목 부분 칼라가 흰색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직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은 블루칼라(Blue Collar)라고 불렀다.
【오늘날의 위기는 부도덕한 특정 직업군의 화이트칼라들이 일조한 위기입니다.】
【그리고 윤도경 씨가 속한 그곳에도 부도덕한 일들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메시지의 말에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속한 곳이요? 회사를 얘기하는 건가요? 아니면 여의도 증권가를 얘기하는 건가요?’
【윤도경 씨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악해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신뢰는 거울의 유리와 같고, 한 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 않으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메시지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내어놓지 않았고, 신뢰와 관련된 명언을 얘기해 왔다.
도경은 점점 답답해져 왔다.
【회원님을 늘 응원하는 VIP 서비스입니다.】
“스케줄 있어요? 아니, 거기가 정말 부동산 빅데이터를 구축해 놨거든요. 전국에 부동산과 연관된 사업들 데이터를 다 들고 있어요.”
이연지는 도경이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것이 스케줄을 확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말해왔다.
“빅데이터요?”
도경은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자신이 던진 떡밥을 도경이 물었다고 생각한 이연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라고 해야 할까. PF 데이터도 다 들고 있을걸요?”
이연지의 말에 무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감을 느낀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주말에 스케줄이 비어 있네요. 같이 갈까요?”
도경의 답에 이연지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1-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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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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