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19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196화(19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196화
[유성배터리가 출범 이후 첫 M&A를 성공시켰습니다……(중략)……유성배터리는 미국 소재의 폐배터리 재사용업체인 선셋 인더스트리를 우리 돈 9,100억 원가량에 인수하며 배터리 수직계열화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1억 7천만 달러를 후려쳤어요.”
두 달 후, 도경은 사무실 한가운데 있는 TV 앞에 서 있었다. 도경의 옆에 있던 이연지가 그리 얘기하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후려쳤다뇨.”
“맞지 않아요? 배터리가 처음 생각했던 가격이 9억 달러(한화 1조 1,400억 원)였다면서요?”
“네. 저와 유성투자증권 선배님들이 멀티플 주고 가치 산정을 했죠.”
“그런데 지금 인수 가격이 7억 3천만 달러예요. 아우, 이렇게 장사했다고 하면 욕먹어.”
이연지의 말에 도경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타이밍이 좋았죠.”
“그냥 좋았던 게 아니죠. 어떻게 마침 딱 그런 타이밍이 오냐구요.”
3팀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도경의 예측이 맞았다.
머큐리 펀드는 자신들의 투자 자산들을 급하게 현금화하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고객들의 환매 요청에도 그들은 신뢰를 지키기 위해 그런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유성배터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처음에는 안 팔려고 했다나 봐요.”
도경의 말에 이연지는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겠죠. 멀쩡한 사업 왜 팔겠어요. 앞으로 가치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그런데 마침 경제가 도운 거죠.”
선셋은 머큐리가 청구한 풋옵션을 이행하기 위해 여기저기 투자자들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지금 한창 월가의 투자 은행들은 인원 감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부 인원도 정리하고, 내부의 상품도 정리하는 이때 선셋에 투자할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유성배터리에도 엄청난 인재가 있던걸요?”
“아, 네. 예전에 GM에서 영입한 M&A 전문가가 붙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이연지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성화학에는 도경보다 뛰어난 M&A 전문가가 있었다. 도경은 그저 앞으로의 전망을 그에게 넘겼다면, 이 거래를 해낸 것은 온전히 배터리의 능력이라 생각했다.
“뭐 어쨌든 싸게 사면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 중심엔 우리 전략투자실이 있다면 더 좋은 거고요.”
이연지의 말에 도경은 기분이 나쁘지 않은 말이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자리로 향했다.
* * *
“어서 와. 요즘 우리 너무 자주 보는 거 아냐?”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심주원은 유성그룹 본사 회장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회장 한태오를 보며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나쁜 소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쁜 소식이었으면 이런 말도 안 하겠지.”
회장 한태오는 회장실 가운데 마련된 자리를 향해 손짓했다.
“그래, 배터리에서는 이번 딜에서 증권의 도움을 고마워하더군.”
심주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한태오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터리에서 말씀이십니까?”
심주원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보았던 유성배터리 대표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표정을.
“회사에서 나가는 돈을 아꼈는데 유성배터리 대표가 아무리 그래도 증권에는 고마워해야지.”
“제가 받아도 되는 인사인가 싶습니다.”
심주원의 말에 회장 한태오는 피식하고 웃었다.
“요 며칠 알아봤어. 윤도경이란 놈에 대해서 말이야.”
역시 한태오는 그냥 넘어갈 인물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도경이 그렇게 튀어버린 이상 한태오는 윤도경이 뭐 하던 인물인지 궁금해했을 것이다.
“네가 이끌었다며?”
“그렇습니다.”
“친분이 있었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한태오는 알면서도 물었다. 심주원이 학을 떼듯 대답해 오자 한태오는 껄껄 웃었다.
“그렇게 학을 뗄 일인가? 그렇게 친분도 없는 새파란 놈을 어떻게 이끌 생각을 했냐 이거지.”
“첫 만남에서부터 튀었습니다.”
“…….”
“회장님 앞에서 드릴 말씀은 아닙니다만, 이제는 좀 알겠더군요.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과 실속이 있는 사람을 골라내는 법을요.”
심주원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을 뽑고 쓰는 자리에서는 응당 생겨야 할 능력이었다.
“그 능력이 한창 생길 때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습니다.”
“실속이 있는 놈이었나?”
“예. 지금 보셔서 아시겠지만, 너무 뛰어난 친구였습니다.”
“자네도 참.”
한태오가 그리 입을 열자 심주원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도 참 별나. 특출난 것 없는 놈에게 어떤 미래를 본 거야.”
“지금과 같은 미래를 봤다고 하면 믿어주시겠습니까?”
“……믿어야지. 실적을 이렇게 가지고 오는데 어떻게 안 믿어?”
한태오는 자신의 앞에서 할 말을 다 하던 도경을 떠올렸다.
2, 30년 같이 일한 임원들도 자신의 앞에서 말을 더듬곤 했는데 도경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도경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얘기해 왔다. 마치 한태오 자신의 생각을 읽는다는 듯 말이다.
“유성투자증권이 최근 궤도에 오른 건 과장을 좀 보태 그 친구 덕분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심주원은 그리 말하며 한태오를 바라보았다.
“물론 그렇게 말하면 서운해할 직원들이 있을 테지만, 저는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알아. 나도 그 친구의 소식을 처음 들은 게 신라증권 인수전 때였으니까.”
“네. 어쩌면 그 자리에 그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태산과 선진을 이길 수 있었고, 그 성과를 토대로 성장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주원은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아니, 증권가 모두가 그리 평했다.
성장을 멈춘 유성투자증권이 다시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고.
그 전환점이 신라증권의 인수였다.
“또 이제 막 출범한 신라자산운용이 제 모습을 하고 있을 수 있는 이유도 윤도경이란 친구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보고를 받기로도 그랬으니까.
“인재들이 몰려오고 있다지?”
“네. 기본적으로 높은 임금을 보장하긴 했지만, 업계에서는 흔한 연봉입니다.”
“그런데도 몰리는 건 윤도경 때문이고?”
“그렇습니다. 증권가에서는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팀에 있었던 것만으로도 커리어에 도움이 됩니다. 윤도경의 팀은 그런 팀이고요.”
“이것 참, 뭐 하는 놈이길래 심주원을 이렇게도 제 직원 칭찬만 하는 팔푼이로 만든 거야?”
한태오의 말에 심주원은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기 시작했다.
“회장님께 지은 죄가 있습니다.”
느닷없이 심주원이 그리 얘기해 오자 한태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죄?”
“예. 회장님께서 일전에 제게 계좌를 맡기신 적이 있습니다.”
“…….”
한태오는 듣기 싫은 과거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굳어갔다.
그때 자신의 멍청함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치가 떨렸다.
“그때 일을 수습한 것이 윤도경이었습니다.”
“뭐?”
한태오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짓다 이내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보고서…….”
“예. 그때의 보고서도 그 친구가 작성한 겁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윤도경이 작성한 보고서를 받아보며 계속해서 기시감이 들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해 전 자신이 심주원에게 계좌를 맡기고 받았던 보고서와 같은 어조였다.
확신에 가득 차 있는 전망을 던지는 보고서.
“그때 말씀을 드리지 않았던 이유는 회장님께서 믿지 못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개 지점에 있는 PB가 자신의 계좌를 주무른다고 말하면 회장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심주원은 그 PB가 누구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었다.
“인제야 말씀드리는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 친구도 아나?”
“모를 겁니다.”
“그 친구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있나?”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모를 겁니다.”
확신에 가득 찬 말에 한태오는 한참 심주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심주원의 말이 맞았다. 윤도경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모를 것이다.
그렇게 추측한다고 하더라도 모를 것이다.
설령 확신하더라도 모른다고 말할 것이다.
“내 그 친구에게 큰 빚을 두 번이나 졌구만.”
“…….”
한태오는 잠시 아무런 말이 없다가 심주원을 바라보았다.
“빚을 두 번이나 졌는데 내가 모른 척해도 되나?”
“지금은 그렇게 해주십시오.”
“지금은?”
“네. 지금은 회장님께서 그 친구를 마음속에 담아두셨다는 것만으로도 그 친구에게는 큰 보상입니다.”
한태오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표정을 짓자 심주원은 말을 이어나갔다.
“혹여, 그 친구가 후에 일을 하다 위기가 찾아오거든 그때 보상을 해주십시오. 이전 두 번의 빚을 모두 갚겠다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심주원의 말에 한태오는 피식 웃었다.
“자네 그 친구를 아주 좋아하는구먼.”
“유성투자증권의 미래를 이끌어갈 친구입니다.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유성을 위해서 그 친구가 필요합니다.”
확신을 가진 듯한 심주원의 말에 한태오는 고민을 했다.
그러고는 심주원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심주원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 * *
“MOU이긴 하지만, 별일이 없는 이상 딜이 부러지진 않을 것 같네.”
사흘 후, 도경은 집에서 유성배터리의 선셋 인더스트리 인수에 관한 기사들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인수를 하겠다고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아직은 본계약이 남은 상태였지만 인수 가격을 합의 본 이상 계약은 진행될 것이다.
“어쨌든 배터리가 상장하면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기업이 되어버렸어.”
유성배터리는 회장 한태오의 그림대로 토털 배터리 제조 기업에 한 발짝 다가섰다.
배터리 밑으로 소재, 부품 등은 물론이고 폐배터리 재사용 업체까지 한 기업에서 소재, 부품부터 완성품까지 만드는 수직계열화는 물론이거니와 순환 경제에도 올라타는 것이다.
“ESG 부담도 좀 덜 테고.”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많은 기업은 ESG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압박을 받았다.
우리말로 환경(Environmental)을 생각하고, 사회(Social)에 이바지하고, 투명한 경영(Governance)을 하는 기업만이 앞으로 지속 가능하다는 패러다임이었다.
“실제로 돈이 거기로만 몰리고 있으니까.”
실제로 거대 투자 은행들은 각 기업에 ESG 점수 평가를 해 자신들의 기준을 맞춘 곳에만 투자하고 있었다.
유성배터리는 폐배터리 재사용 기업을 계열사로 넣으면 환경과 사회 기여 부분에서 큰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이잉-
도경이 한참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 소리가 울렸고, 도경은 재빠르게 화면을 확인했다.
【회원님을 늘 응원하는 VIP 서비스입니다】
늘 타이밍이 좋게 등장하는 메시지였다.
“이렇게 등장하시는 거 보면 유성배터리와 선셋의 딜이 깨지진 않겠죠?”
이번 메시지가 유달리 반가운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인간의 풍요로움 중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우리의 터전을 지키는 일입니다】
【인간의 지속가능성 문제는 결국 환경보호 없이는 이루지 못할 미래나 다름없으니까요】
메시지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말이었다. 최근 다녀온 박람회엔 기술혁신은 찾아볼 수 없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도경은 이제 혁신보다는 진정 인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곳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박람회의 모토가 마음에 들었다.
혁신은 없어도, 우리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인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윤도경 씨의 작은 움직임은 앞으로 미래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도경의 작은 움직임이었다고는 하지만, 크게 본다면 유성배터리가 순환 경제에 올라탔고, 만약 그들이 업계의 1위가 된다면.
그것은 업계의 표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임무를 훌륭하게 달성한 윤도경 씨를 위해 보상을 준비했습니다】
메시지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해당 주소로 찾아가세요. 그곳에 윤도경 씨를 위한 보상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메시지에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거기가 어디예요?”
【회원님을 늘 응원하는 VIP 서비스입니다】
도경의 물음에 메시지는 얄짤 없이 사라져 버렸고, 도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뭐, 어쨌든 가 보면 안다는 거네요……. 예, 가 봐야죠.”
도경은 그리 혼잣말을 내뱉으며 인터넷에 주소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 * *
“여긴가?”
다음 날, 도경은 주말을 맞아 메시지가 알려준 주소에 와 있었다.
도경은 차에서 내려 눈앞에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흡사 독채로 된 펜션 같은 모습이었는데 건물 앞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여기 맞나요?”
혹시나 답이 올까 물었는데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도경은 ‘흠…….’ 하는 소리와 함께 조심스레 문 앞으로 다가가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딩동-
초인종을 눌렀음에도 안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기시감이 들었다.
지이잉-
한참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리기 시작했고 도경은 재빠르게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메시지가…… 아니네?’
도착한 알림의 주인공은 메시지가 아니라 <고양이 사진 모음> 앱에서 온 알림이었다.
[인증키 NEW!]“어, 이거.”
서울에 있는 아지트의 입장 키 바로 밑에 새로운 키가 생겼고, 도경은 그 부분을 눌러 문에 가져다 댔다.
휴대전화를 가져다 대기 무섭게 문에서는 ‘삐리릭’ 소리와 함께 잠금이 해제되었다. 조금 전부터 느꼈던 기시감의 정체였다.
“설마 여기도 아지트예요?”
도경은 집 안으로 들어서며 물었다.
높게 트인 천장은 집이 굉장히 넓어 보이도록 만들어주었고, 거실 벽에는 실용성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확실하게 챙길 수 있는 벽난로와 흔들의자가 있었다.
【이곳은 도심 속 콘크리트 정글에서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입니다】
한참 넋 놓고 집 안을 돌아보고 있을 때 알림 소리와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
【끝없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일상의 모든 것을 잊게 해주죠】
메시지 내용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마치 부동산을 소개하는 업자 같았기 때문이다.
【윤도경 씨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가 아니라 비워내는 법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비워내는 법이요?”
도경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메시지가 주는 보상은 하나같이 휴식과 관련되어 있었다.
지치지 않는 기력이라든지, 가족과의 여행 등등…….
【윤도경 씨의 삶의 균형은 무너져 있습니다. 쉬는 날에도 일이 우선이죠】
【하던 일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야말로 다른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메시지는 마치 도경을 혼내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 공평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앞으로의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휴식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윤도경 씨의 앞날을 위해 이곳을 사용하세요】
【윤도경 씨는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메시지는 끝났고 도경은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메시지의 배려였다.
“맥주 하나 마실까요? 오늘 이곳에서 자고 가야 할 것 같네요.”
도경은 조금 전 냉장고에서 본 맥주를 꺼내 집 앞마당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조그마한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라 그런지 좀 춥네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올 시간이 되자 날이 쌀쌀했다.
“사실 여유를 가지는 게 무서웠어요.”
도경은 가만히 앉아 메시지가 듣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쪽은 모르는 게 없으니까 알 테지만…… 어릴 때부터 집안이 빚 독촉에 시달렸어요.”
도경은 그 누구에게도 한 번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이 언제 가장 비참해지는지 아세요?”
도경은 잠시 말을 멈추고는 입술을 우물거렸다.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신는 신발이 낡았건, 매일 먹는 반찬이 똑같건, 내 몸이 힘들건 그런 건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건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였어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도경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야 할 때라든가…… 동생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할 때 내가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어요.”
도경은 그때를 떠올리는지 표정이 몹시도 괴로워 보였다.
“그래서 주식을 시작했어요. 어릴 때는 내가 가난에서 벗어날 길은 이 길밖에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죽자 살자 매달렸다. 도경의 투자 철학은 그때 매달린 덕분에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주식시장은 현실보다 더 냉혹한 것임을 깨달았고, 자신은 이곳에서마저 밀려나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주식에 관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그때부터 도경의 투자 철학은 생존이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어요. 그런데 정말 웃긴 건 뭔지 알아요? 과거는 나를 놓지 않더라구요.”
이제는 좀 나아질 법도 한데 그때의 기억은 불현듯 떠올라 도경을 힘들게 만들었다.
“출출해서 그냥 라면 하나를 끓여 먹을 때도 가난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가족과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도 예전에 힘들었던 시절이 생각나서 지금을 즐길 수가 없었어요.”
행복해야 했는데 과거의 기억은 좀처럼 도경을 놔주지 않았다.
도경뿐만이 아니었다. 가족들은 아직도 그때의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했었다.
좋은 것을 먹고 즐겨야 하는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냐는 말부터 해왔다.
“그래서 쉴 수가 없었어요. 내 몸이 편하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거든요.”
자신을 채찍질하며 버텨온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쪽을 만나고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요.”
누가 들으면 무슨 신파냐고 하겠지만, 도경은 메시지에게 고마움을 말하는 중이었다.
“가족들도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는 행복한 그 시간만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도 물론이구요.”
얼마 전 제주도 여행을 떠올린 도경이었다. 너무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조금 전 메시지가 해준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윤도경 씨는 그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요.”
도경이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라며 모든 것에 순응하게 될 때쯤 찾아온 메시지였다.
메시지는 도경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여유를 가지는 법을, 주변을 챙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여유를 가지게 되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행동 하나하나가 바뀌는 것이 느껴지는 요즘이었다.
“고마워요. 나를 선택해 줘서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았다.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꺼내고 나니 한결 홀가분해졌다.
모노드라마 한 편을 찍은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회원님의 곁에서 늘 함께하겠습니다. VIP 서비스입니다】
그리고 한참 후 도착한 메시지에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3-02-06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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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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