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25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256화(25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256화
“어, 지금 가고 있어.”
다음 날, 오전.
변호사 윤도진은 여의도 한복판을 걷고 있었는데 매우 귀찮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형, 근데 이거 내가 가입해도 되는 거야? 나보고 주식에 투자하지 말랬잖아. 증권사 직원 가족이 주식을 하면 되겠냐고.”
핏줄은 못 속인다고 했던가, 주식으로 돈을 버는 형을 보며 윤도진은 주식을 해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도경에게 상담했더니, 돌아온 답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증권사 직원의 가족이 주식을 못 하도록 법이 마련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형은 의심받는 것 자체가 이미 좋지 않은 거라 말했다.
윤도진은 형의 의견에 따랐다. 그런데 어제 갑작스레 도경의 전화가 오더니 도진에게 증권사 창구에 좀 다녀오라 말했다.
-주식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저 가서 상담받아 보라는 거야.
“그러니까 이유를 설명해 주면…….”
-이유를 설명해 주면, 네가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할 거야. 가서 한번 상담해 보고 끝나면 전화해 줘. 그리고 직업은 꼭 회사원이라고 하고.
“알겠어.”
전화를 끊은 윤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그래도 형이 얼마 만에 부탁을 한 건데.”
툴툴거리면서도 윤도진은 태산증권의 지점으로 들어섰다. 일터와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지점이었다.
처음 와본 증권사 지점은 은행과 아주 유사한 모습이었는데, 요즘같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시대에도 지점에서 봐야 하는 업무가 있는지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기표를 뽑고 자리에 앉아 있던 윤도진은 ‘딩동’ 소리와 함께 자신의 번호가 화면에 표시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창구로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아, 다름이 아니라 펀드 가입 상담을 받고 싶어서요.”
“아! 그러시구나. 자리를 좀 옮길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에 있는 상담실로 들어가자 한 남자가 자신을 반겨왔다.
“어서 오십시오. 펀드 상품을 전문으로 상담해 드리는 투자 상담사 김지섭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윤도진은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반겨오는 증권사 직원의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는 듯 쭈뼛쭈뼛하며 자리에 앉았다.
“펀드 상품을 들기 위해서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일단 자본시장법에 따라 고객님의 투자성향을 진단해야 하거든요. 이 테스트를 한번 해주시겠습니까?”
직원이 태블릿 PC를 건네자 윤도진은 하나하나 답변하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시간 투자성향 진단을 마치고 태블릿을 건네자 직원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고객님께서는 안정 추구형이시네요.”
“안정 추구형이요?”
“네. 안정형, 안정 추구형, 위험 중립형, 적극 투자형, 공격 투자형으로 나뉘는데요. 주식과 펀드의 투자 경험이 없으시고, 지식도 없으시면 대부분 안정 추구형으로 뜨세요.”
“뭐가 다른가요?”
윤도진의 물음에 직원은 귀찮아하는 내색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안정 추구형이신 고객님 같은 경우에는 초고위험 상품과 고위험, 중립형 상품에는 투자를 권유할 수 없어요. 투자도 못 하시고요.”
“아…… 그럼 안정적인 것만.”
“네. 저위험과 초저위험 상품에만 투자하실 수 있습니다.”
“등급마다 뭐가 다른가요?”
“당연히 수익률이 차이가 나겠죠? 물론 수익률이 높은 상품들은 하락 폭도 크고요.”
직원은 그리 말하며 태블릿을 통해 간단한 인적 사항과 자본금을 묻고는 상품을 설명했다.
여러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대부분 4~5% 정도의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안정적인 상품들이었다.
형의 심부름으로 왔지만, 전문가와 상담을 하다 보니 욕심이 나는 윤도진이었다.
“요즘은 은행만 잘 골라도 예금이 3% 후반대인데…… 수익률이 너무 낮네요.”
“아무래도 그렇죠? 안정적인 걸 좋아하시는 고객님들 상품 위주라…….”
“혹시 위험 상품들은 안 되나요?”
“죄송합니다. 법상 불가능합니다.”
“아쉽네요. 오늘 상담 감사했습니다.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윤도진이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직원은 화들짝 놀라 입을 열었다.
“고객님께서 원하시면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네?”
“설문을 다시 할 수 있거든요.”
“아, 그런가요?”
윤도진은 자리에 다시 앉아 투자성향 테스트를 진행하고는 상품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와우, 전부 기대수익률이 높네요.”
조금 전과 다르게 투자성향이 바뀌자마자 기대수익률이 두 자릿수나 되는 상품들이 즐비했다.
“여기 보시면 알겠지만, 붉은색으로 초고위험 상품이라고 적혀 있으시죠. 기대 수익률이 높지만 그만큼 하락의 폭이 더 클 수도 있습니다.”
“그렇군요. 요즘 어떤 상품이 잘나가나요?”
윤도진의 물음에 직원은 태블릿 PC를 통해 한 상품을 보여주었다.
“요즘 가장 유명한 상품인데요. 코코본드라는 상품에 투자하는 건데 연 8% 이상의 이자를 받을 수 있어요.”
“8%요?”
“네.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은행에서 발행하는 거라 안정적이기도 하고요.”
“안정적인데 왜 고위험 상품인지…….”
윤도진은 무언가 모순되는 점이 있어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채권과는 조금 다른 신종자본증권으로 후순위 채권이거든요.”
“후순위 채권이면, 만에 하나 은행이 망하면 돈 못 돌려받는 거 아닌가요? 선순위들이 다 가져가야 돌아오니까요.”
“그렇긴 한데요. 말씀드렸듯 큰 은행이기도 하고, 설령 망한다고 하더라도 주식으로 전환이 됩니다.”
“망한 회사의 주식이 무슨 가치가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윤도진이 묻자 증권사 직원은 당황스러워하던 표정을 짓다가 평정심을 찾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씀드렸듯 세계적으로 정말 큰 은행이에요. CS라고 들어보셨을까요?”
“아, 네.”
“이 은행이 망하면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니 정부에서 살리겠죠? 만에 하나 살리지 않는 결정을 냈을 때 입는 피해가 더 크니까요.”
직원의 얘기에 윤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손목에 걸친 시계를 바라보다 이내 놀란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담을 하다 보니 시간을 오래 써버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업무 중에 나온 터라, 고민 좀 해보고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상담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닙니다. 상담이 저희 일인걸요. 그러면 여기 명함 하나 받아 가시고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직원의 배웅을 받으며 증권사를 빠져나온 윤도진은 휴대전화를 들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 * *
“어, 도진아.”
일을 하던 도경은 걸려온 전화에 다급히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우, 나 투자할 뻔.
“했어?”
-아니, 하지는 않았지. 태산 나와서 선진이랑 유성까지 다 돌았어.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도 시키는 대로 다 한 동생의 행동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다 무슨 상품 추천하든?”
-태산이랑 선진은 코코본드? 그걸 추천했고, 유성은 여러 개 추천하더라.
“여러 개?”
-응, 상품이 많더라고. 아! 코코본드도 있었어.
동생의 말에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현재 3대 증권사에서 중개하는 코코본드 관련 펀드는 아시아델타 펀드에서 내놓은 상품밖에 없다는 걸 확인했다.
“뭐라고 설명해 주던?”
-첫 번째로 태산을 갔는데, 내가 안정 추구형이 나와서 불만족스러워하니까 설문을 코칭해서 바꿔주더라고, 이거 자본시장법 제50조 위반이야. 직접적으로 코칭을 해줬으니까. 적정성 원칙에 위배돼. 두세 번째로 간 선진, 유성은 내가 직접 공격 투자형으로 했어.
윤도진은 변호사답게 도경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뭐 어쨌든 바꾸고 나서는 코코본드에 관해 설명하더라고.
“어떻게?”
수화기 너머의 동생은 도경을 향해 들었던 얘기들을 해주었다.
“혹시 주식으로 전환된다 말고는 다른 말은 하지 않던?”
-어, 안 하던데. 세 곳 다 안 했어.
“상각될 수도 있다는 말을 안 했단 말이야?”
-어, 못 들었는데. 그거 상각돼? 그러니까 돈을 못 돌려받고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단 말이지?
수화기 너머의 동생은 놀란 말투로 물어왔다.
“응. 어려운 얘기 다 빼두고, 주식 전환이 되는 건 맞지만…… 상각을 시켜 버릴 수도 있어.”
-뭐야? 그걸 설명 안 해줬다고? 설명의무도 위반했네.
“변호사로서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증권사들이 아직도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네.
일련의 커다란 사건들을 겪으며 자본시장법은 강화되어 왔고, 투자를 권유할 때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지점에서는 이 모든 것이 지켜지고 있지 않다.
간혹가다가 몇 번씩 터지는 금융 사고들이 모두 실적에만 혈안이 된 증권사들의 부주의 때문이었다.
-불완전판매야.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설문은 다시 할 수 있지만, 태산증권은 내가 고수익상품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설문을 코칭해 줬어.
“…….”
-그리고 태산, 선진, 유성 전부 다 코코본드라는 게 채무자가 망하면 상각될 수 있다는 걸 설명하지 않았어. 설명의무 위반.
투자 권유를 할 때는 적합성, 적정성, 설명의무를 포함해 총 6가지의 원칙이 있었다.
이 중 하나만 위반하더라도 이는 불완전판매로서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
“알겠어. 바쁜데 고맙다.”
-왜 이런 거 시킨 건지는 설명 안 해줄 거야?
“지금은 설명할 때가 아닌 것 같아. 일이 다 끝나면 설명해 줄게.”
-알았어. 고생해. 집에 좀 일찍 오고.
“그래. 집에서 보자.”
통화를 마친 도경은 굳은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톡- 톡-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두드리는 소리만이 방 안에 가득 퍼졌는데, 한참을 고민하던 도경은 마른세수를 했다.
“아닌 건 아닌 거니까.”
도경은 그리 혼잣말을 내뱉고는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사장님, 윤도경입니다. 혹시 잠시 시간 되시면 뵈러 가도 될까요? 네. 지금 찾아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경은 준비한 서류를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섰다.
* * *
“아니, 도경 씨…… 본부장님.”
“어! 선배님. 선배님 잘 지내셨습니까?”
유성투자증권 WM본부 부사장실로 향하던 도경은 복도에서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랩 어카운트 부서에 있을 때 사수였던 홍세준이었다.
“그럼요. 본부장 되신 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아닙니다. 선배님께서도 랩 어카운트 부서장이 되셨다고요.”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제 투자철학을 다시 세웠고요.”
홍세준은 진심이라는 표정으로 얘기해 왔고,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선배님과 이야기를 더 나눴으면 좋겠는데, 부사장님을 뵈러 와서요.”
“아! 아쉽네요. 저 보러온 줄 알았거든요.”
홍세준의 농담에 도경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음번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포지션에 관해 여쭤볼 것도 많고요.”
“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홍세준과 인사를 마친 도경은 부사장실 앞에 서서 옷매무시를 가다듬고는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도경은 방문을 열고 부사장실로 들어서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부사장님, 갑작스레 만남을 요청드렸는데,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사흘 만에 다시 봐서 좋은걸요. 앉을까요?”
도경이 찾아온 사람은 WM본부를 이끄는 부사장 서용원이었다.
“커피 드시겠습니까?”
“아, 아닙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온 터라.”
“옛날 생각납니다.”
서용원은 목에 걸친 타이를 조금 풀어 헤치고는 도경을 바라보았다.
“랩 시절 말입니다. 윤도경 씨가 나를 찾아오면 늘 큰 사건이 있었잖아요. 오늘도 그런 일입니까?”
서용원의 말에 도경은 준비한 보고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무언가 결심하듯 호흡을 골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그럽니까? 긴장이 되네요.”
“일선 지점에서 현재 불완전판매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미소를 짓고 있던 서용원의 얼굴은 급격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3-03-30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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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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