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3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30화(3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30화
“마치 준비한 사람처럼 말하더군요.”
회의를 마치고, 류태화는 도경을 불러 지점장실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준비했습니다.”
“DU 건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아닙니다. 지점장님.”
도경은 진지한 표정으로 류태화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겠다고 말해오던 그 날, 도경이 지었던 표정과 똑같았다.
“DU와 외국계 자본의 공방이 저와 지점장님의 철학을 꺾지 않아도 될 수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 도경은 DU 사태를 자신과 고객의 이익을 위해 메시지가 알려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경은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메시지는 그저 도경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였고, 꿈으로 향하는 길은 도경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본사의 실적 압박이었다.
그리고 그런 실적 압박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자신의 투자 철학을 지지해 주는 류태화에 대한 본사의 적대감도 지워야 했다.
그때부터 도경은 류태화와 지점의 다른 직원들을 설득할 방법을 찾다가 유성투자증권에서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다는 기사를 접했다.
“본사에서 출시한 랩 어카운트 상품은 회의 때 지점장님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고객에게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품입니다.”
혹자는 펀드를 단체로 가는 여행 상품이라고 말했고, 랩 어카운트는 가이드와 1대1로 떠나는 여행이라 말했다.
국내에도 2000년도 초반부터 도입되어 상품이 판매되고 있었지만, 가입 금액이 고액 자산가들만 가입할 수 있는 수준이라 워낙 생소했다.
하지만, 최근 유성투자증권은 WM(개인자산관리) 부문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가입 요건을 낮춘 랩 어카운트 상품을 준비했다.
“그렇죠. 포트폴리오를 짜기 전 고객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고, 투자에 대해 여러 가지 간섭을 할 수 있으니까요.”
펀드와 같은 상품들은 고객이 일절 간섭이 불가능했다. 오직 펀드매니저가 구성해 놓은 상품에 투자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래서 저는 이 상품이 실적 압박을 받는 우리 성남지점에는 꼭 필요한 상품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럼 아까 회의 때 말했던…….”
“네. DU 사태는 그 수단이고요.”
도경이 확신하듯 답하자 류태화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지 신기한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그저 생글생글 미소를 짓고 다녀 샌님처럼 보이다가도, 투자와 관련된 얘기만 나누면 어느 순간 그 샌님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 되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굉장히…… 확신을 하는군요.”
“어쩌면, 누군가 우리 모습이 안타까워 준 기회라고 생각될 정도로 꽃놀이패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도경은 아무것도 할 일이 없었다. 그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DU의 주식을 사서 고객의 포트폴리오에 채워두면, 칼 서튼이라는 광대가 앞서서 주가를 끌어올려 줄 것이다.
도경의 말에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패한 사례도 있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한국 증시 시장은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들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난이도가 상당했다.
특히, 칼 서튼의 방식을 차용해 세계 유명 헤지펀드가 자금력을 앞세워 국내 기업을 공격해 왔지만, 그들이 공격한 시점부터 주가가 하락해 수십조 원을 손해 보고 떠난 일도 있었다.
그래서 칼 서튼과 스틸라이프가 먼저 주먹을 내질렀음에도 시장의 반응은 반반으로 나뉜 상황이었다.
“그때와는 방식이 좀 다를 것 같습니다.”
“강력한 우군부터 확보하려 할 겁니다. 이전에 실패했던 사례들은 우군이 부족했습니다. 칼 서튼은 그 실패 사례들을 파악했을 겁니다.”
해외 자산운용사가 들고 있던 DU의 지분을 모두 시장에 던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틸라이프는 그 지분을 거두어들였다.
계속해서 DU의 지분을 노리고 있었다는 얘기고, 시차가 있음에도 미국에서 한국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했다는 얘기였다.
“주식을 사자마자 국내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실사 요구서를 보냈고요, 칼 서튼과 스틸라이프의 CEO가 한국에 방한했습니다. 극비리라고 단독 기사가 나긴 했지만, 의도된 노출이었을 겁니다.”
칼 서튼은 차근차근 DU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 우군을 찾을 겁니다. 아마도 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홍콩의 자산운용사를 접촉하겠죠.”
류태화는 어느새 도경의 가정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홍콩의 자산운용사는 칼 서튼의 플랜에 따를 겁니다. 가만히 있어도 보유하고 있는 지분의 가치가 오를 테니까요.”
“하지만, DU도 우군을 확보할 겁니다. 국내 기관들은 DU의 손을 들어줄 거예요.”
“네. 그건 저희 입장에서 신경 쓸 부분이 아닙니다.”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류태화를 향해 말했다.
“오히려 더 즐거운 일이죠. 두 세력이 진심으로 싸우기 시작하면 주가는 오를 테니까요.”
“오직 주가로 인한 이득이 목적이라면 엑시트exit 전략이 있어야 해요. 우리가 공격 측의 목표가를 알 수 없는 이상 엑시트 시기가 늦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들어가면 그들이 먼저 빠져나간다 해도 꽤 큰 수익을 볼 겁니다. 그리고 엑시트 시점은 이미 생각해 뒀습니다.”
“이미 생각해 뒀다고요?”
“네. 곰이 앞발을 들기 시작하면 빠져나올 겁니다.”
의문스러운 도경의 말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류태화는 도경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만면에 그득한 미소를 지었다.
* * *
“어떻게 됐습니까?”
스틸라이프의 홍콩지사.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헤지펀드의 대가, 인수·합병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칼 서튼은 그답지 않게 평정심을 잃은 표정으로 상대를 향해 물었다.
이제 막 방으로 들어온 상대는 숨 돌릴 틈도 없이 자신을 향해 묻는 칼 서튼을 바라보며 야속함을 느꼈지만, 지금 그런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코어 파트너스를 설득했습니다.”
“설득했다는 건?”
“우리의 강력한 흑기사가 되어줄 겁니다.”
상대의 말에 칼 서튼은 주먹을 꽉 쥐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큰돈을 벌고도 이 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쾌감 때문일 거라고 칼 서튼은 생각했다.
“그럼 우리 우호 지분이…….”
“40.51%. 상대는 모든 한국 기관이 그들의 백기사가 된다고 생각했을 때 42.24%입니다.”
지분 싸움으로 갔을 때 2% 이상 DU에게 밀렸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아직 개인투자자들의 지분 6%가 남아 있었으니까.
“애당초 우리 목표는 DU의 경영권이 아니야.”
“그렇죠. 우리의 목표는 한국이 아니라 영국에 있으니까요.”
기실, 이들은 영국에 있는 세계 유명 보험사를 타깃으로 두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들의 방어는 견고했고 투자자 모집이 쉽지 않았다.
쓴 입맛을 다시던 그들에게 동방의 작은 나라에 있는 한 재벌 기업이 눈에 띄었다.
재무구조는 엉망이었고, 오너의 모럴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해이)도 극에 달하는 기업이었다.
그때부터 7개월간 기업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래. 원래 목표를 공격할 실탄을 보급하는 게 목적이니까.”
애당초 그들에게 경영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번 일은 거물을 공격할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딱 알맞은 상대가 알맞은 타이밍에 이들의 앞에 나타났을 뿐이다.
“자네는 한국으로 가게.”
“DU 경영진을 만나라는 말씀이십니까?”
둘은 이번 일을 오래 준비했기에, 한마디만 해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래. 가서 우리의 모든 요구를 내보여. 최대한 저들이 들어줄 수 없는 요구로.”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언론과의 접촉도 늘리고.”
“네. 그럼 칼 당신은…….”
“나는 뉴욕으로 돌아가겠네.”
칼 서튼과 대화를 나누던 스틸라이프의 CEO는 칼 서튼의 두 눈을 보고 놀랐다.
전설적인 칼 서튼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빨 빠진 호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고, 두 눈에서는 광채가 나오고 있었다.
전성기 칼 서튼의 모습이었다.
“가서 우리 고객들을 상대로 IR(Investor relations, 투자설명회)을 진행할 거야.”
칼 서튼은 먹잇감을 발견해 신이 난 포식자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물론 투자는 받을 생각이 없지.”
“그럼…… 대외적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마지막 피날레를 위한 퍼포먼스지.”
“마지막 피날레라 하시면…….”
상대의 물음에 칼 서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그러고는 상대를 똑바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곰이 먹잇감을 발견했으니 할 일은 하나뿐이지 않나?”
“그게 IR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상대는 배우고 싶다는 듯 말해왔고, 칼 서튼은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곰이 되어주면, 나는 그 뒤를 생각한다는 말일세.”
* * *
“도경 씨, 신호가 왔어.”
“신호요?”
이틀 후, 최우진은 다급하게 도경의 방으로 들어왔다.
“그래, 스틸라이프와 DU의 경영진이 내일 만난다는 정보가 돌고 있어.”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아직 스틸라이프 측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오늘 아침 DU의 주가가 5% 이상 오르길래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그래서 오늘 아침 기관들이 그렇게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었군요.”
“맞아. 신뢰도는 90%. 장소는 광화문 포시즌스라는 구체적인 얘기도 나왔으니까.”
최우진이 가져온 정보는 지금까지 꽤나 정확했다. 그도 여러 정보를 취합해 거르고 걸러 도경에게 말해줄 테니까.
최우진의 무기는 정보였고, 그 무기를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정보는 듣고 필터링을 확실하게 하는 게 실력이었으니까.
“이거 도경 씨가 말한 그거잖아. 베어 허그.”
베어 허그(Bear’s hug).
곰의 포옹은 곰이 상대를 몰래 껴안듯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기업사냥의 전략이었다.
기업사냥꾼들은 적들을 만나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고, 그 조성된 공포 분위기 속에서 DU의 경영진에게 신속하고 빠른 의사 결정을 요구할 것이다.
협박성 플레이였다.
“그렇다는 건…….”
“네, 홍콩에 있는 코어 파트너스가 그들의 흑기사가 되었을 겁니다.”
“빠져야 할 타이밍 아냐?”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민에 빠졌다. 처음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주식을 털고 빠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성급하고 그들의 행보가 정보로 돈다는 것은 자신들의 행보가 공개되길 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직 주가가 올라오지 않았는데 그들이 행보를 공개한다는 것은 다음 무언가가 있다는 겁니다.”
도경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혹시 칼 서튼도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하던가요?”
“칼 서튼의 정보는 없던데?”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계속해서 무언가 아직은 타이밍이 아니라는 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떡해? 팔 타이밍 아니야? 도경 씨가 곰이 손을 들면 엑시트 타이밍이라고…….”
“우진 대리님, 잠시만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컴퓨터 앞으로 가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칼 서튼이 왔어야 해요.”
“뭐?”
“스틸라이프의 CEO가 DU의 경영진을 만나는 게 아니라. 칼 서튼이 만나야 해요. 곰은 그가 아니라 칼 서튼이니까요.”
애초에 저 전략은 상대를 협박하는 전략이었다. 협박을 하는 데 칼 서튼이라는 이름값과 존재만 한 협박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칼 서튼은 뒤로 빠지고 그의 대리인이 나섰다.
이건 협박이 아니었다.
무언가 눈을 돌리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칼 서튼의 움직임을 찾아야 해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무언가 느낀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한참 도경의 방안에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도경 씨.”
잠시 후, 도경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최우진이 휴대전화를 흔들고 있었다.
“찾았다. 칼 서튼.”
최우진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한 SNS가 떠 있었다.
“서튼 캐피털 주주가 트위터에 사진을 올렸어.”
“무슨 사진이죠?”
“서튼 캐피털에서 IR을 연다고 하네. 칼 서튼이 참여한대.”
“IR이요?”
그렇게 대꾸한 도경은 최우진이 건넨 휴대전화를 받아 들고는 화면에 떠 있는 사진을 바라보았다.
한참 생각을 하던 도경은 무언가 번쩍하고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진 대리님.”
도경이 자신을 부르자 최우진은 긴장되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이거 한 턴 더 있습니다.”
“뭐?”
한 턴이 더 남았다는 건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토요일 밤의 쇼를 준비하는 것 같아요.”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2-10-28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이 책은 KWBOOKS가 저작권자와의 계약에 따라 전자책으로 발행한 것입니다.
본사의 허락없이 본서의 내용을 무단복제 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습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