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323)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323화(323/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323화
“아무리 봐도 반도체 쪽에선 좋은 종목이 보이지 않습니다.”
일주일 후, 신라자산운용 전략투자사업부에는 파미르 캐피털과의 협업을 위한 TF가 꾸려져 있었다.
TF를 이끄는 이지훈은 자신을 향한 팀원의 말에 표정을 굳힌 채로 집중했다.
“아시다시피 최근 반도체 메이커들은 감산을 시작했습니다. 미래전자나 유성반도체 모두 공식적으로 감산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 전, 도경이 여러 업종으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특히 반도체 산업을 눈여겨볼 것을 주문했다.
“근래 미래전자가 아인텍에 큰 시설 투자를 하며,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위주로 주가가 많이 상승했습니다.”
아인텍을 제외한 다른 업체들도 혹시나 미래나 유성에서 투자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으며 주가가 상승했다.
“하지만, 말씀드렸듯 미래전자나 유성반도체, DS테크는 부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 회사는 국내 반도체 생산 기업이었다.
유성과 미래는 반도체 설계부터 위탁생산까지 하는 종합반도체(IDM)회사였고, DS테크는 다른 회사에서 설계를 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파운드리였다.
“이유는 반도체 감산이 전부인가요?”
“그것뿐만 아니라 재료가 많이 소멸한 느낌입니다. 특히 미래나 유성은 최근 고연산 메모리의 필요성에 따라 주가가 상승했지만, 그 동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입니다.”
“또?”
“미국과 중국의 대립입니다.”
지정학적 리스크는 현시대에 우리나라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과는 맞닿아 있었고, 미국과는 동맹으로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관계였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었다.
“국내 반도체 시장의 최대 고객은 중국입니다.”
국내에서 생산된 반도체 수출 비중은 중국이 약 40%로 최다 수입국이었는데, 홍콩까지 포함하면 약 60% 가까이 중국에서 사가는 것이 반도체였다.
“미국으로의 수출은 채 10%가 되지 않습니다만, 미국이 우리나라에 주는 가치는 엄청납니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우방국이자 동맹국이다.
미국과 동맹 관계임으로서 얻는 경제적 가치는 추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반도체는 이야기가 달랐다.
“현 상황에서 미국이 반도체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미래와 유성 DS까지 모두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겁니다.”
팀원의 보고에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팹리스 쪽은 어떻습니까?”
팹리스는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업체를 얘기했다.
미국의 엔비디아, 애플 등등이 팹리스 업체였고 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파운드리 업체가 위탁생산한다.
“…….”
이지훈은 자신의 물음에 팀원이 이야기할 거리를 찾는 모습이 보이자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겠네요. 하지만, 이사님께서 가이드라인을 잡아주신 겁니다. 지금 유 대리가 내게 한 말은 모두 시장의 평가일 뿐이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듯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니까요.”
파미르 캐피털과의 협업은 그런 것이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 만족할 만한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시장이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 우리만 볼 수 있는 무언가를 한번 찾아봅시다.”
이지훈은 자신의 주문이 팀원들에게는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같은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저도 좀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다음 회의 때까지 조금 시선을 남과 다르게 생각해 보자고요.”
“네. 알겠습니다.”
팀원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자리로 돌아가자 이지훈은 자료를 챙겨 들고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했다.
* * *
“확실히 어려운 부분이죠?”
도경은 자신을 찾아온 이지훈과 독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지훈의 얼굴에서는 곤란함이 뚝뚝 묻어 나오고 있었다.
“생각보다 힘든 작업입니다.”
“꼭 반도체에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도경의 말에 이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히려 반도체라는 가이드라인을 주셔서 더 편한 거 같습니다.”
도경은 가만히 이지훈의 말에 집중했다.
“오히려 아무런 가이드라인이 없었을 때 팀이 중구난방이었거든요.”
“다행이네요.”
“그런데 길이 정해지고 나니까 자꾸 검열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지훈과 TF 구성원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들의 처지에서는 한국이란 홈그라운드에서는 파미르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도경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도 그렇습니다.”
도경이 그리 얘기하자 이지훈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늘 자신감이 넘치던 천하의 윤도경이 그런 상황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오늘도 유성과 미래 두 기업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두 기업은 아닌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상황이고요.”
“사실 방금 저도 직원들과 유성, 미래는 제외하자고 결론을 내린 상태입니다.”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역시 자신과 비슷해도 너무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럼 지금 지훈 팀장이 나를 찾아온 것도 내 생각과 같을까요?”
이지훈 또한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마도 같을 것 같습니다. 시선을 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비상장 기업을 찾자.”
“그렇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었던 이유는 상장기업 중에서 고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비상장 기업은 실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투자 회사가 수익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다.
하지만, 상장기업들은 실적에 따른 주가 상승으로 인해 수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가 쉬웠다.
“그럼 부를 사람이 있네요.”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있는 전화를 들어 올려 내선 번호를 눌렀다.
“한 부장님, 반도체 팹리스 업체들 명단 좀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국내 기업입니다.”
도경이 전화를 끊고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자 이지훈도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며 한다현이 들어왔다.
“이사님, 요청하신 자료 들고 왔습니다. 지훈 팀장님 오랜만이네요.”
“그러게요. 한 사무실에 있는데 자주 뵙기가 힘드네요.”
한다현은 이지훈에게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꿀통 좀 풀어달라고 해서 당황했겠네요.”
도경은 자리에 앉는 한다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다현에게는 국내 비상장 기업 리스트가 있다.
그가 아주 오랜 기간 조사하고 추려서 업데이트한 리스트가.
“꿀통이요?”
“한다현 부장의 개인 자료니까요.”
도경의 말에 한다현은 피식하고 웃었다.
“이제는 팀의 자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국내에 팹리스 업체들이 꽤 많은데요. 몇 개 간추려 가져올까 하다가 아예 다 가져왔습니다.”
한다현은 그리 말하며 USB 메모리를 건넸고, 이지훈은 건네받은 자료를 노트북에 연결했다.
“국내에 팹리스 업체가 이리 많았나요?”
얼핏 봐도 문서 파일의 숫자가 50개가 넘었다.
“아, 보강 자료들도 있어서요. 대충 제 리스트에는 스물다섯 개 정도 기업들이 있습니다.”
팹리스는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고 설계만 하는 업체를 얘기했다.
“다들 제가 스무 개가 넘는 기업이 있다고 하면 놀라더라고요.”
“보통 유성이나 미래를 제외하더라도 LC세미콘이나 제주펩리스 정도만 생각하니까요.”
이지훈의 말에 한다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꽤 뛰어난 기업들이 많습니다. 워낙 국내는 반도체 강국이라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경우죠.”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 공유 고맙습니다. 이번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아닙니다. 말씀드렸듯 팀의 자료라고 생각하시고 언제든 요청해 주세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하고는 이지훈을 바라보았다.
“지훈 팀장님, 이제 좀 보이나요?”
도경의 물음에 이지훈은 환하게 웃었다.
“네. 아주 잘 보입니다. 일주일 안에 자료 정리 후 보고드리겠습니다.”
* * *
“오늘도 꽝이네요.”
서울의 한 지식산업센터.
오늘 이곳에 있는 행사장에는 한 소규모 기업의 투자설명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기다려 보면 오겠죠.”
열 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은 행사장 입구에 서서 오지 않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들 표정이 어두웠다.
이들은 반도체 설계기업인 세미오프의 대표와 직원들이었다.
“자자, 다들 너무 침울한 표정 짓지 말고 자리에 앉아들 있어요.”
대표인 박성엽은 직원들을 바라보며 그리 말했다.
세미오프의 직원들은 한국대학교의 한 연구실에서 시작한 인연이었는데, 박성엽은 당시 이들의 교수였고 직원들은 모두 석박사 학위를 딴 제자들이었다.
“교수님…… 아니, 대표님도 좀 앉으시죠.”
박성엽에 말에 자리에 앉은 한 직원이 말하자 박성엽은 미소를 지었다.
“대표가 앉아 있을 수 있나요? 난 괜찮으니 편히들 쉬고 있어요.”
박성엽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돌렸는데, 얼굴에는 초조함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개발한 반도체 설계 기술로 세미오프라는 설계 기업을 차렸고, 기술력은 누구보다 뛰어나다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기업은 투자가 있어야 돌아가는 곳이었다.
‘오늘도 투자자를 만나지 못하면…….’
지난 몇 번의 투자 유치 행사를 열었는데, 첫 행사와 두 번째 행사는 자신의 인맥과 학연을 통해 많은 투자자가 찾아왔었다.
하지만, 참 얄궂게도 전 세계 경제침체가 찾아오자 투자자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세미오프보다 더 기술력이 좋고, 경쟁력이 있는 기업들도 투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자 세미오프에게 돌아올 투자금은 없었다.
‘후…….’
사정이 좀 나아지니 이번에는 반도체 불황이 문제였다.
세계적인 반도체 업체들이 힘들어지니, 자신들과 같은 중소 업체에는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여긴가요?”
“여기 맞는 것 같은데요?”
박성엽이 초조한 마음을 가다듬고 있을 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혹시 오늘 여기서 세미오프의 투자…….”
“아! 예. 맞습니다. 모시겠습니다.”
박성엽은 찾아온 손님들을 모시며 직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직원들 또한 빠릿빠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저희가 다네요?”
“그러게요. 오늘 좀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박성엽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심장이 콩닥콩닥 떨렸다.
“이곳에 앉아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안내 감사합니다.”
안내를 마친 박성엽은 직원들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바로 시작합시다.”
“아직 시간이…….”
“더 올 것 같지도 않네요. 두 분께 간단한 다과와 음료 제공해 주시고요.”
박성엽의 말에 직원들이 바삐 움직이자 박성엽은 행사장 단상 위로 올라갔다.
잠시 후, 행사장의 불이 꺼지고 정면에 있는 화면에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떴다.
“안녕하십니까?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세미오프의 대표 박성엽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본격적으로 저희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겠습니다.”
박성엽은 단 두 사람만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압감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느껴지는 상황이었다.
특히 두 사람의 표정은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이었는데, 마치 모든 발표를 세세하게 뜯어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희 세미오프는 2009년…….”
박성엽은 열과 성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시작했다.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박성엽의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있었다.
“이상, 저희 세미오프에 대한 투자설명회를 마칩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발표가 끝나자 박성엽은 고개를 숙여 두 사람을 향해 인사했다.
짝짝짝-
그때, 박수 소리가 들려오자 박성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향해 손뼉을 치는 두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좋은 발표 잘 들었습니다.”
“미리 조사를 하고 왔는데도, 생각보다 더 괜찮은 기술력을 가지신 것 같아 흡족하네요.”
두 남자의 말에 박성엽의 얼굴에는 진실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감사합니다.”
“진지하게 오늘 하셨던 발표를 다른 자리에서 듣고 싶은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때, 남자가 그리 제안을 해오자 박성엽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죄송하지만 어디서…….”
“아! 죄송합니다. 저희 소개를 하지 않았군요.”
남자는 사과와 함께 명함을 건넸고, 명함을 읽은 박성엽은 놀란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신라자산운용의 윤도경입니다. 세미오프에 투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