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38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389화(38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389화
WGBI는 세계국채지수(World Government Bond Index)의 약자였는데, 영국증권거래소가 소유한 FTSE 러셀이라는 곳에서 발표하는 지수였다.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중국, 멕시코 등 신흥국을 포함해 23개국의 국채를 포함한 지수였다.
“WGBI의 편입을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노려보아야 합니다.”
금융위원장 이혜연은 경제부총리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WGBI는 우리가 거의 매년 도전하고 있습니다.”
“네. 올해는 더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이유가 생겼고요.”
이혜연은 부총리를 바라보며 적극적인 자세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부총리님께서도 아시다시피 WGBI 지수에 우리나라 국채가 편입된다면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들은 비율에 맞춰 우리나라 국채를 사들여야 합니다.”
지수가 중요한 이유가 이혜연의 입에서 나왔다.
가령, <윤도경>이라는 채권이 <신라자산운용>이라는 지수에 편입되어 있다면, <신라자산운용>이라는 지수에 투자하는 상품을 출시한 증권사나 펀드는 필수로 <윤도경>이라는 채권을 사들여야 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도 아니라, 지수에서 애초에 비율이 정해져 나오기 때문에 비율에 맞춰서 사야 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국내로 들어올 해외의 자본입니다.”
이들이 급하게 모여 회의를 가진 이유도 원화의 가치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결국엔 누군가가 원화를 믿지 못해 시장에서 달러로 바꿔간다는 얘기였다.
“우리 채권은 현재 WGBI의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두 달 후면, 편입 발표가 납니다. 그전에 우리는 먼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WGBI 지수에 편입되는 과정은 먼저 국채 발행이 일정 이상(500억 달러) 되어야 하며 국가 신용등급이 A- 이상이어야 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다면 지수 편입 후보인 ‘관찰대상국’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한국은 현재 관찰대상국으로의 편입 후보였다.
“정량적 측면에서는 아주 훌륭하게 WGBI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만, 정성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WGBI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강합니다.”
이혜연은 지금 정책적으로 빠져나가는 달러를 다시 국내로 들어오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듯 확신하며 입을 열었다.
“특히 해외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시장 접근성 평가에서 늘 좋지 않은 소리를 듣습니다.”
한국의 경제시장은 열려 있었지만, 닫힌 세계와 같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규제가 심했다.
특히 외국인 국채 투자에 대한 조세 관련 부분이 다른 나라와 달라 경제는 세계 10위권 국가였지만, 세계국채지수에 편입조차 되지도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작년에 우리는 비거주자 국채 투자 비과세 조항을 담아 시행령을 발효했고, 이제는 나머지 접근성을 더 키우면 될 것 같습니다.”
부총리는 고민이라는 얼굴이었다.
이혜연은 금융위원장으로서 정책적인 부분을 말해왔지만, 자신은 경제행정가이면서도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정치인이었다.
“이 위원장이 말한 것을 결론짓자면, 결국엔 외환시장 개방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외환시장 개장 시간을 연장해야 합니다. 런던 금융시장의 마감 시간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외환거래 시장은 24시간 열리지 않는 시장이었다. 주요 선진국들의 외환시장이 24시간 개장되는 것에 비해 여러모로 투자 매력을 떨어뜨렸다.
“현행 시장 개장 시간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낮춥니다.”
아무래도 국내 외환시장이 마감되면 해외 투자자들로서는 은행에 더 높은 수수료를 낼 수밖에 없었다.
은행의 입장에서도 시장에 바로 매각하지 못하고 하루 동안 들고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접근성은 둘째 치더라도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통화별 보유 자산 평가를 런던 금융시장의 오후 4시 환율로 계산하는데 원/달러 환율은 해당 시간에 적용할 환율이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자산평가는 글로벌 투자은행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과였다.
하지만, 해당 시간에는 국내 외환시장이 닫혀 있었기 때문에, 원화는 늘 기준이 달랐다.
“이 두 가지만 빠르게 수정한다고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국내 채권이 매력적으로 보일 겁니다. 채권뿐만 아니라 증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국의 목표는 WGBI 지수 편입이었지만, 설령 되지 않더라도 투자 접근성을 높인다면 적어도 지금보다 달러가 빠져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확실히 파격적인 만큼 외국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군침을 흘리겠지요.”
경제부총리는 정책적으로는 확실히 구미가 당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 과정에는 반대되는 의견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문제는 우리 외환시장이 외국인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겠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총리의 말에 이혜연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고도화된 금융기법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들이 어떤 장난을 칠지 모르죠. 그런데 부총리님.”
우리나라의 과거에는 좋지 않은 기억들이 있었다.
그래서 금융시장에는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규제가 덕지덕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때, 경제적으로 수탈을 당한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과 우리는 다릅니다. 이미 국가적으로 외환시장에 대한 경보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저는 확언할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은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선진국에 비해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요.”
과거의 아픔을 디디고 빠르게 성장한 한국의 금융시스템이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요. 하지만, 국민도 우리와 같은 생각일까요?”
“……부총리님, 이 정책을 하지 않으면 더 많은 돈을 치러야 합니다.”
규제를 푸는 정책을 함으로써 쓰는 돈보다, 환율을 방어한답시고 금융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돈이 더 많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혜연의 말은 사실이었고.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규제를 풀자고 여론을 설득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처럼 보이는 건 왜일까요?”
부총리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행정가로서 또 정부의 지지율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고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소극적인 대응은 더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이라고 이혜연은 생각하며 입을 열려 했다.
“위원장.”
그러나 부총리는 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더 고민해 봅시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요. 외부 일정이 있어서.”
부총리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섰고, 이혜연은 좌절감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 * *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관철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날, 도경은 한국에서 걸려온 연락을 받고 있었는데 수화기 너머의 주인공은 금융위원장 이혜연이었다.
-물론 지켜보자고 말씀하셨지만…….
“완곡한 거절이겠죠.”
지켜보자는 것은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말이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저는 그저 쉽게 말씀을 드린 것뿐인데 이렇게 진행 상황까지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윤 이사 덕분에 우리도 어떤 정책이 가장 실효성이 있는지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금융시장은 일종의 내러티브(narrative, 서사)가 아주 중요한 시장이었다.
당장 빠져나가는 외국인 투자자들을 국내시장에 잡아놓고 환율을 방어하고 싶다면, 그들에게 국내시장이 먹음직스럽게 보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한국의 시장은 외국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긍정적인 내러티브를 가진 시장이 아니었다.
‘규제 공화국.’
물론 도경은 규제를 풀자는 쪽은 아니었다.
분명 우리나라는 과거 야만인과도 같은 이들에게 금융시장을 수탈당한 경험이 있었으니까.
다시는 그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규제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쓸모없어진 잔가지는 쳐내야 했다.
핵심적인 규제만 남겨두고 조금 더 문을 열어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일 것은 분명했으니까.
-힘들겠지만, 이쪽에서는 이쪽의 방식대로 해봐야겠죠.
“제가 또 도울 일이 있다면 돕겠습니다.”
대한민국 출신이라는 것은 도경에게는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위치에서는 언제고 나서서 돕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빚만 지네요.
더군다나 금융위원장인 이혜연이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경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 뻔했다.
물론 그나 도경이나 편법이나 불법적인 일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혜연이 후에 학계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금융학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했으니까.
언제고 도움을 얻을 일이 있을 것이다.
“아닙니다. 일종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무요?
“국가에 충성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돕는 게 의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듣던 중 고마운 소리네요. 어쨌든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이혜연과 전화를 끊은 도경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쉬워 보이는 길도 누군가에겐 어려운 길일 수도 있는 법이지.”
그저 말 한마디 거들었을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겐 도경이 쉽게 말한 것이 어렵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정부의 생각이 그러할 것이다.
“이 정도면 오지랖 부릴 만큼 부렸으니, 나도 내 할 일을 해볼까?”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고는 일을 하고 있을 찰나.
똑똑-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테일러가 방으로 들어섰다.
“테일러, 어때요?”
“일에 관해 말씀하시는 거라면 재미있습니다. 리나 킴의 능력에 놀라고 있고요.”
“하하하, 테일러의 상사인 이지훈이나 김우혁 모두 한국에서는 뛰어난 본드(Bond, 채권) 플레이어니까요.”
도경의 말에 테일러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들의 실력에 놀라고 있었으니까.
“저를 찾으셨다고요?”
“아, 궁금한 것이 있어서요. 뭐라고 해야 할까. 국적이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한국의 채권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했거든요.”
도경은 그리 말하며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고, 자리에 앉은 테일러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규제가 덕지덕지 붙어 있어서인가요?”
“그것도 있습니다만, 지방정부 자체가 투자자들의 믿음을 쉽게 저버립니다. 정치적인 이유로요.”
테일러의 말에 도경은 무슨 일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정시가 화정테마파크를 짓기 위해 빌린 채권을 갚지 않고 법원에 파산 신청을 했던 일이 있었다.
“정치를 떠나 기업도 문제입니다. 이안생명이었던가요? 신종자본증권에 콜옵션을 실행하지 않았죠.”
테일러는 기업과 정부의 도덕성 해이를 얘기해 오고 있었다.
“물론 다른 나라에도 그와 같은 일들을 저지르는 기업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매력적인 투자처도 아닌데 그런 일이 터지면 누가 한국에서 투자를 진행하고 싶을까요?”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음식 위에 날벌레들이 꼬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테일러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렇다면 만약에 한국이 규제를 줄이고 WGBI 지수에 국채를 편입시키는 데 성공한다면요?”
“제 포트폴리오에 포함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한국은 선진국이니까요.”
답은 하나였다.
아주 골치가 아픈 문제였지만 말이다.
지이잉-
두 사람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을 때, 테일러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는데 화면을 확인한 테일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위안화 환율이 갑자기 내리꽂고 있습니다.”
중국의 위안화는 최근 모든 플레이어의 뇌관이었다.
위안화의 환율이 내려간다는 것은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모두가 걱정하는 일이 빠르게 찾아올 수 있었다.
“테일러, 지금 바로 긴급회의 소집해 주세요. 그리고, 우리에게 있는 현금 모두 끌어모아서 미국 국채 10년물에 공매도 포지션 잡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테일러는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고, 도경 또한 급하게 무언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3-08-21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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