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3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397화(39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397화
“잘 지냈습니까?”
며칠 후, 한국에서의 짧은 생활을 마치고 다시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온 도경은 파미르 캐피털의 CIO(최고투자책임자)인 윌리엄 마셜과 만나고 있었다.
빌의 생각을 처음 바꾸게 해준 샌프란시스코만의 한 벤치가 두 사람의 만남 장소였다.
어느샌가 두 사람은 이 장소를 공유했고, 도경 또한 생각을 정리하거나 할 때 이 장소에 오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네. 빌도 잘 지냈죠?”
도경이 벤치에 앉자 빌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건넸다.
“아직 따뜻하네요.”
“저도 방금 왔거든요.”
빌은 미소를 지으며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국에서의 성과가 좋았죠?”
“네. 한국 채권시장이 꽤 빠르게 안정되었고, 주식시장도…… 지금은 조금 광기에 가득 차 있거든요.”
“네. 한국의 소식은 들었습니다. 중국의 위기보다 더 큰 테마들이 떠다니고 있다고요.”
빌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한국 시장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세계 어느 주식시장이든 한 테마가 시장을 휩쓰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GS에서 초청장이 날아왔다고요?”
“네. 놀랐습니다. 다른 곳도 아닌 GS라니요.”
GS는 세계 5대 투자은행 중 한 곳이었다.
매출로만 따지면 JPM에 이은 2위의 자리에 오르는 곳이었는데 그들이 한 해 수수료로만 벌어들이는 돈이 65억 달러.
우리 돈으로 8조 6,225억 원이었다.
생각보다 못 버는 것이 아니냐라는 평가를 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수수료’로만 벌어들이는 돈이었다.
수수료는 인수 합병이나 상장 주관 등으로 벌어들이는 돈이었고, 그들은 따로 투자도 하고 있었다.
그들의 1년 매출은 445억 달러(약 59조 원)였고, 그들이 가진 자산의 가치는 1조 2천억 달러(약 1,590조 원)나 되는 거대 투자은행이었다.
“왜요. GS에서는 윤에게 초청장을 보내면 안 되나요?”
“아뇨. 변방의…….”
“이젠 변방이 아니죠. 이곳 서부 월스트리트의 스타 중 하나니까요.”
빌은 그리 말하며 재킷 안쪽 주머니에서 초대장을 꺼내 들었다.
“나도 받았습니다.”
“역시, 그럴 것 같아서 빌을 만나자고 했습니다.”
“저는 매년 받습니다. 하지만, 다른 핑계를 대고 참여하지 않았는데 올해는 참여해야겠네요.”
빌의 말에 도경은 의아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 이름은 좋습니다. 세계 경제 컨퍼런스. 얼마나 거대해 보이고 그곳에 모인 금융가의 거물들이 세계의 거시경제를 논할 것 같은 이름이죠.”
빌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상은 그저 노름판이나 똑같습니다.”
“노름판이요?”
“GS는 아주 철저하게 참석하는 인물들을 가립니다. 당연하겠죠. 그들은 자신의 회사에서 일을 할 사람을 뽑는 데도 철저하니까요.”
빌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GS가 직원을 고용하는 방법에 관해 들은 적이 있었다.
그들은 미국의 유명 대학.
그중에서도 미국 북동부 지역에 위치한 여덟 개의 유명 사립대학교인 아이비리그를 포함해 상위권 대학교에서만 인재를 뽑는다고.
직접 그들의 학부로 찾아가 면접을 거치고, 자신들이 원하는 인물상만 뽑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 해 입사 지원자만 25만 명 이상이 몰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중에서 약 9천 명만이 채용된다.
“컨퍼런스에 초청하는 인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의 급에 맞는 인물들만 초청하죠.”
“그럼 제가 그 급에 올라왔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럼 노름판이라는 말은…….”
“다음 먹잇감을 찾는 벌쳐들의 모임이랄까요.”
벌쳐(Vulture)는 흔히 아는 독수리를 얘기했다.
미국의 국조인 흰머리수리가 아닌, 대머리독수리.
벌쳐는 사냥 능력이 형편없었기에 먹이 대부분이 이미 죽어 있는 동물의 사체였다.
“다른 사람의 곤란을 이용해서 물어뜯는 벌쳐들 말입니다.”
금융가에서 벌쳐 펀드(Vulture Fund)는 부실한 기업을 싼 가격에 인수해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회사를 파는 기업들을 얘기했다.
하지만, 빌이 얘기하는 벌쳐는 그저 습성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는 앞으로의 경제를 걱정하고, 논의를 하기보다 물 밑에서 다음 먹잇감을 찾죠.”
“경제에 관해 토론을 하면서 먹잇감을 찾는다는 말씀이군요.”
“네. 겉으로는 앞으로 세계 경제를 걱정합니다. 그 누구도 아 우리 저기를 물어뜯자고 얘기하지 않아요.”
“하지만, 좋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힌트가 되겠고요.”
도경의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네요. 마치 제가 아는 월가의 모습 같아서요.”
“명암이 분명한 곳입니다. 월가는.”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었다.
찬란한 빛의 이면에는 어둠이 존재했고, 그것은 빛을 가지기 위한 어둠일 뿐이었다.
어둠마저 수단이 되는 곳이 월 스트리트였다.
“안 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리고 싶지만, 윤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겁니다.”
빌은 그리 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둠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도박꾼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제게 도움이 될 네트워크도 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아주 좋은 자리가 될 겁니다.”
“빌이 그렇게 얘기하니까 더 가보고 싶습니다.”
“네?”
빌은 자신이 겁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도경이 그곳에 가서 노련한 금융가의 벌쳐들을 상대로 한눈을 팔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도경은…….
빌의 입장에서 과장하자면, 지금 도경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야기를 해왔다.
“재밌잖아요. 그런 거.”
“하…… 하하하.”
도경의 말에 빌은 크게 웃음이 터져 버렸다.
“빌의 충고는 새겨들었습니다. 확실하게 어떤 곳인지 알고 가는 것과 아닌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빌.”
도경이 자신을 부르자 빌은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도경은 그리 말하며 알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
* * *
Occupy Wall Street.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2011년, 전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월 스트리트에서는 화가 난 군중들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기 위해 모였다.
2008년에 있었던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월 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자 참다못한 군중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외친 구호였다.
우리는 99%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월가의 수많은 금융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신용도가 낮은 사람에게도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며 그를 이용한 파생상품을 만든 것에서 시작되었다.
경제가 순항하며 돈이 돌 때는 저신용자들도 이자를 곧잘 갚았고, 금융가는 자산 증식의 기회로 삼아 무분별한 레버리지를 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고용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저신용자들이 돈을 갚을 수 없는 사태에 이르자 금융회사들의 자산 증식 수단은 한꺼번에 부도수표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금융사들은 차례대로 쓰러지기 시작했고…….
「FED(미국연방준비제도), 금융기관에 유동성 제공」
「FED, 특별 대출 프로그램 발표. 금융기관에 자금공급 확대」
「FED, 구제금융 확대. 파산한 금융기관 인수하는 금융기관에 지원」
대마불사.
그냥 망하게 두기엔 너무 커버린 금융기관들을 위해 중앙은행이 막대한 돈을 투입했다.
그 과정에서 나라의 돈을 이용해 살려두었더니, 그 돈으로 이사진들에게 거액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더 나아가 원유 선물에 투자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하는 모습이 보이자 월가를 점령하러 나선 일반 시민들이었다.
“한때는 이곳이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도경은 월가를 지나는 차량에 타고 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말씀하는 거죠?”
도경은 옆좌석에 앉은 빌을 향해 말했다.
“그전부터요. 제가 막 입사를 했을 시기였는데, 자고 일어나면 출근길에 종이 서류가 가득 담긴 박스를 들고 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출근길에요?”
“네. 자고 일어나니 회사가 망한 거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에게는 출근길이 누군가에게는 퇴근길이 되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시기에 벌쳐들은 움직였습니다. 계산기를 두드리면서요.”
“…….”
“하나둘, 중소 헤지펀드들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사인이 없었거든요.”
“FED의 지원 말씀이군요.”
도경의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헤지펀드들은 거대 투자은행을 찾아가 자신들을 살려달라고 했다.
대출을 내주거나, 만기를 연장해 준다면 살 수 있는 헤지펀드들도 있었다.
투자은행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왜?
벌쳐의 습성이니까.
“죽을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렸습니다. 숨을 가쁘게 쉬며 쓰러져 있는 헤지펀드들을 보면서요.”
당시 빌은 거대 투자은행이자 자산운용사인 블랙 세일즈의 소속이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이 가쁘게 쉬던 숨이 멈추었을 때 벌쳐들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빌은 창밖의 월가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FED를 찾아갔죠. 저 금융사를 저대로 두면 쟤네 채권을 산 중소기업이나 개인이 망한다. 우리가 저 금융사를 인수할 테니 지원해 달라.”
“…….”
“충분히 인수할 돈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자신의 돈 한 푼 쓰지 않고 FED의 지원이 시작되자 움직였습니다. 마치 나는 저 금융사에 관심이 없는데 너네가 살리라고 했으니 살릴게. 대신 돈을 주든지 가격을 깎아달라며 말입니다.”
도경은 가만히 빌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들의 전략은 성공했죠. 중소 헤지펀드부터 거대한 헤지펀드들을 인수했으니 말입니다.”
그 위기를 통해 어마어마한 메가뱅크들이 탄생했다.
불과 1년 전보다 자산규모를 두세 배는 늘린 거대은행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성과급 파티? 그래. 백번 이해해 예정된 성과급이니 지급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목숨을 붙여줬더니 원유 선물에 투자한다고요?”
마치 열흘은 굶은 사람에게 밥을 사 먹으라며 만 원을 쥐여줬더니, 그 사람이 스포츠 복권을 사러 가는 행위와 같은 모습이었다.
“가끔 월가를 그리는 영화를 보면 불편했습니다. 왜 항상 월가는 악당일까?”
예로부터 월 스트리트의 금융가는 늘 악당의 포지션으로 영화에 비추어졌다.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선의에 가득 찬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주는 흑막으로 말이다.
“그런데 월가에 있어보니 알겠더군요.”
빌은 어깨를 으쓱이며 뒷말을 줄였다.
도경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분주해 보이는 월가의 일상이었다.
저 이면의 어둠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갈 때쯤 차는 월가를 지나 GS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GS의 본사와 같은 뉴욕 본부는 월가에서 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 우리에게는 9/11로 알려진 세계무역센터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말 높네요.”
차에서 내린 도경은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통유리로 된 고층 빌딩이 도경과 빌을 맞이해 왔다.
빌딩의 전면부인 통유리에는 구름이 떠다니는 푸른 하늘이 반사될 정도였다.
“작당 모의를 하기엔 딱 좋은 규모겠죠.”
도경은 빌의 말에 피식 웃으며 그를 따라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미국과 세계 각지에서 온 것인지 꽤 유명한 인사들도 같이 빌딩으로 들어섰는데, 빌딩에 마련된 대형 행사장으로 들어서자 더 많은 인원이 삼삼오오 모여 손에는 샴페인을 든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술회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요.”
도경은 의아하다는 듯 빌을 향해 물었고, 빌은 피식 웃었다.
“아, 물론 조금 후면 그런 분위기로 변할 겁니다. 본행사라는 이름으로요. 하지만, 지금이 본행사나 마찬가지죠.”
시간이 돈인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는 것은 결국 네트워크를 구축하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컨퍼런스가 열리는 본행사보다 이렇게 식전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이 본행사나 다름없었다.
도경과 빌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샴페인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윌리엄 마셜, 오랜만이네.”
그때, 빌을 부르는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두 사람은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 만이지?”
“작년에 리우와 함께 뵈었습니다.”
“아! 그런가. 이쪽은 미스터 윤도경이겠군요.”
중년의 남자는 도경을 잘 안다는 듯 인사를 해왔다.
물론 남자는 도경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헤지펀드 얼라이의 CEO 모리스 코헨입니다.”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네시십분 현대 판타지 장편소설
지은이
: 네시십분
발행인
: 권태완, 우천제
전자책 발행일
: 2023-08-31
정가
: 100원
제공
: KWBOOKS
주소
: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 31길 38-9, 401호
ISBN
979-11-404-4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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