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0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00화(40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00화
“윤, 반갑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가장 고급 호텔의 스위트룸으로 들어섰다.
오늘 만나기로 한 약속 상대인 얼라이의 모리스 코헨은 양팔을 벌리고 서서 도경을 맞이해 왔다.
“모리스, 샌프란시스코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리스는 도경을 만나기 위해 텍사스에서 이곳 샌프란시스코까지 날아왔다.
“세 시간이 넘는 비행을 해 조금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친구와 만나니 피로가 다 사라지는 느낌이군요. 이쪽은?”
“안녕하십니까? 이지훈입니다.”
이지훈이 모리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도경은 입을 열었다.
“우리 신라의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의 관리자입니다.”
“아! 그렇습니다.”
“네. 오늘 업무 이야기를 하겠다고 하셔서 함께 왔습니다.”
“물론입니다. 여기는 우리 얼라이의 CIO 데니스 샤피로입니다.”
도경은 얼라이에서 나온 직원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 이후 모리스 코헨의 안내를 받아 스위트룸 한편에 있는 서재로 향했는데, 1박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방이다 보니 규모며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어마어마했다.
“갑작스레 만나자고 말씀드렸음에도 너그럽게 이해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오늘 이 자리에 나와보고 싶더군요.”
도경은 빌의 경고를 떠올리며 이 자리에 나왔다.
모리스 코헨은 벌쳐의 우두머리라는 경고 말이다.
“하하하, 역시 윤이라면 제가 말한 것에 흥미를 느낄 거라 생각했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리스를 바라보았다.
“우리 얼라이는 헤지펀드입니다. 윤이 몸담고 있는 신라와는 성격이 조금 다른 편이지요.”
도경이 속한 신라자산운용은 말 그대로 자산운용사였다.
요즘은 워낙 금융기법이 고도화되어 자산운용사와 사모펀드, 헤지펀드의 경계가 없다시피 했지만, 신라는 얼라이와 확실히 달랐다.
얼라이는 소규모의 고객을 모집해 최대의 수익을 위해 투자 상품을 가리지 않는 폐쇄형 펀드를 운영했다.
고액 자산가가 아니면 얼라이에 돈을 맡기기도 힘들었고, 폐쇄형 펀드이기 때문에 중간에 돈을 빼기도 힘들었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절대다수를 상대로 자산운용 업무를 하니까요.”
반면, 도경이 속한 신라자산운용은 도경의 말마따나 다수의 고객을 모집했다.
이 업계서는 ‘잔돈’이라고 부르는 1억 원 이하의 자산가도 쉽사리 맡길 수 있었고, 개방형 펀드가 대다수였기 때문에 고객의 입장에서는 펀드에 가입해도 주식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을 하자면, 신라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조금 더 큰 규모로 놀아야 합니다.”
도경은 가만히 모리스의 말에 집중했다.
“내가 알기로 윤은 미국에서 신라의 규모를 키우길 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리스 코헨은 도경과 신라에 대한 정보를 알고 왔다는 듯 이야기해 왔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고액 자산가들의 네트워크를 뚫는 게 중요합니다.”
모리스 코헨은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물론 다수의 고객을 모집하는 방식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자산이 적은 다수의 고객은 네트워크가 없습니다.”
그들은 자산을 모으기 바쁜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 얼라이나 리우의 파미르 캐피털이 상대하는 고액 자산가들은 시간이 많습니다.”
시간은 곧 돈이다.
돈이 많으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돈이 적다면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다고 모리스 코헨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은 그 시간을 대부분 오프라인 공간에서 자신의 네트워크를 늘리는 데 사용합니다.”
“…….”
“네트워크 또한 곧 돈이고 힘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은 한 이너서클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너서클에 들어가면 밖에서는 듣지 못했던 독점적인 정보들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그 정보는 고액 자산가들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는 수단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구성하면 알 수 있죠. 이 사람들은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는 걸.”
모리스 코헨은 진지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게 우리 헤지펀드들이 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자산을 맡기는 고객들은 그저 네트워크를 구성하기만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자산을 불려주는 곳이요.”
절대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그게 모리스가 이끄는 얼라이와 대다수 헤지펀드들의 모토였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결론은 윤과 신라는 좀 더 넓은 세계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게 얼라이와 함께하는 일인가요?”
도경의 물음에 모리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습니다. 우리 얼라이는 우리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업계의 모두를 돕습니다.”
실상은 이용당하는 거라는 걸 도경은 알고 있었다.
얼라이 혼자서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보다 여럿이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선호했다.
숨이 끊어져 가는 동물 근처에서 숨이 끊어지기만을 혼자 기다리는 것과 수많은 벌쳐들이 모여 기다리는 것은 위용부터가 달랐으니까.
“우리가 가진 고순도의 정보를 가지고 전 세계에서 투자를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파트너십을 맺었던 헤지펀드들은 지금 각자의 영역에서 매우 훌륭한 회사들이 되어 있고요.”
가만히 모리스의 말을 듣던 도경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우리를 위해 얼라이가 조언을 해준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의도가 어찌 되었든 모리스의 조언에는 고맙다는 말을 해야 했다.
“본론을 들었으면 합니다.”
“물론이죠. 전화로 말씀드렸듯 우리는 아시아 시장에 대한 투자를 하려고 합니다.”
모리스는 여유가 넘치는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확히는 윤의 홈그라운드인 동아시아겠죠. 자세한 건 우리와 함께했을 때 오픈할 수 있지만,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400% 이상의 수익을 장담할 수 있다는 겁니다.”
모리스 코헨은 지난 며칠간, 수십 년 갈고닦아진 자신의 팀원들과 이번 투자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의 포지션을 따라가면 400% 이상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400%요?”
순간 모리스 코헨의 입에서 나온 숫자에 잠자코 있던 이지훈이 놀란 듯 물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나서면 안 되는 자리에 나섰습니다.”
“하하하, 아닙니다. 솔직해서 좋은걸요.”
모리스 코헨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나와 내 팀은 정확한 데이터로 지난 며칠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결론 내렸고요. 하지 않는 게 바보인 투자라고요.”
도경은 자신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리스 코헨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고민을 마치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모리스, 한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취득한 정보가 정당하게 취득된 것인가요?”
도경의 말에 모리스의 이마에서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모리스나 얼라이를 나쁘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순도 높은 정보라고 했는데 그것이 그저 정당하게 얻은 것인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정당하다는 것에 정의가 무엇입니까?”
도경은 갑작스레 자신에게 매정해진 모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윤은 고객의 돈을 취급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정당함이 수익 말고 다른 게 있던가요?”
“있습니다.”
모리스의 물음에 도경은 확신을 가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적어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요.”
“기분이 몹시 좋지 않군요. 마치 나와 내 팀을 범죄자 대하듯 말을 한다는 것이요.”
“죄송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도경은 굳은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다만, 우리 일에도 어느 정도 선은 필요하고, 제가 그은 선은 그렇습니다.”
“선을 넘어야 큰돈이 벌립니다.”
“선을 넘지 않아도 방법은 충분히 있습니다.”
“돌아간다는 건가요?”
“제가 모리스보다 경험이 적고, 보여준 능력도 없습니다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도경의 얼굴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때로는 돌아가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것을요.”
“하하하.”
“제의는 정말 감사합니다. 얼라이와 함께한다면 우리 신라는 단기간에 클 수 있겠죠. 하지만, 저희는 내부의 방침에 따라 일하고 있습니다. 관리자인 제가 그 룰을 깬다면, 회사는 길을 잃고 말겠죠.”
도경은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와 신라를 위해 해주신 충고만 이 자리에서 가지고 가겠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영광인 시간이었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걸음을 옮겼고, 모리스 코헨은 그런 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도경이 방을 나가자 모리스 코헨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재수가 없군.”
“아쉽네요. 윤도경과 신라가 받아들였다면, 그 뒤에 있는 유성투자증권을 아시아에서 우리의 얼굴로 써먹을 수 있었을 텐데요.”
함께 온 직원의 말에 모리스 코헨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지. 떠먹여 주는 기회도 먹질 못하는 놈은 우리와 함께할 자격이 없으니까. 굳이 저쪽이 아니더라도 우리와 함께할 사람은 있고. 시간이 없으니 돌아가자고.”
“네. 다음 상대와 미팅을 준비하겠습니다.”
부하 직원의 말에 모리스 코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는 죄송했습니다.”
한편, 도경과 이지훈은 사무실로 복귀했다.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치던 도경은 뒤에서 들려오는 이지훈의 사과에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놀라선 안 되었는데, 저도 모르게…….”
“아.”
도경은 자리에 앉으며 미소를 지었다.
“놀랄 만하죠.”
단기간에 네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헤지펀드의 제왕 모리스 코헨이 얘기해 온다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훈 부장님이 제게 사과를 한다는 건 잘못되었다는 걸 아셔서겠죠?”
“물론입니다.”
“다음부터는 평정을 유지해 주세요.”
도경의 말에 이지훈은 고개를 숙였다.
“그나저나 오히려 마음은 편하네요.”
“마음이요?”
“네. 솔직히 의심하기는 했습니다만, 만에 하나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모리스 코헨과 얼라이를 보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확인하기 위해 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제 물음에 답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적어도 깨끗하지 않은 투자라는 건 확실하다는 거겠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400%라는 숫자가 잠시 제 마음을 흔들기는 했지만, 독이 있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는 결국 독이 있는 법이니까요.”
설령 그 열매가 아주 달고 맛있다고 하더라도.
그 열매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본다면, 처음부터 나무의 싹을 잘라 버려야 했다.
“어쨌거나 지훈 부장님도 들뜨셨을 텐데, 지금부터는 없는 일로 생각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겠습니다.”
이지훈이 그리 말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지훈이 사무실을 나가자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아시아에 400%의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 생긴다는 건데…….”
모리스 코헨과 함께 일을 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가 자신감 있게 떠든 원천은 알아야겠다고 생각한 도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익숙한 앱을 찾아 눌렀다.
“들으셨죠?”
마치 도경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화면 속 고양이는 자세를 잡고 앉아 있었다.
-물론입니다.
“도움이 필요해요.”
도경의 말에 고양이는 잠시 고민을 하다 입을 열었다.
-윤도경 씨가 속한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가장 순도 높은 정보는 내부에서 나온 정보다”.
메시지의 말에 도경은 가만히 집중했다.
-그리고 내부의 정보를 얻기 위한 헤지펀드들의 방식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과 같습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뎌도 교도소로 향하는.
-윤도경 씨는 우리가 처음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 검은손의 유혹을 뿌리치며 우리가 틀린 선택을 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습니다.
“…….”
-우리가 느낀 벅참에 대한 보상은 윤도경 씨가 원하는 정보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도경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메시지의 말에 집중했다.
-중국에 집중하세요. 윤도경 씨가 원하는 답은 그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고양이는 어느새 화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속 시원하게 답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지만,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던 도경에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고마워요. 그 정도면 충분하네요.”
메시지에게 인사를 한 도경은 휴대전화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기를 잠시,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도경은 입을 열었다.
“리우, 윤도경입니다. 갑작스레 전화해서 무리한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리우의 인사이트가 필요합니다.”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킷을 챙겨 들고는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