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1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11화(411/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11화
“이야! 이게 누구야.”
며칠 후, 도경은 강남에 있는 한 식당에 딸린 방으로 들어섰다.
미리 나와 있었던 것인지 오늘 만나기로 한 최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어우, 워낙 큰일을 하셔가지고. 진짜 못 본 지 한 10년은 되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최우진의 농담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두 달 전에 뵈었잖아요. 선배, 둘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 좀…….”
“아! 이제는 존대를 하는 게 더 편해서. 버릇이 됐네. 그나저나 한국에 오면 늘 회사부터 나오더니.”
“일단 좀 앉아서 얘기해요. 선배.”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아차 싶은지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도경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어두고는 웃으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잘 지내시죠? 아이들은 잘 있고요?”
도경이 미국에 나가 있는 동안 최우진은 둘째를 얻었다.
벅찬 목소리로 전화가 왔던 그날, 도경은 그저 말로만 축하한다고 했던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럼, 요즘은 그래도 우리 회사가 워라밸이 좋아져서 일찍 퇴근해서 아이 봐주고 하는 게 좋아. 자리 좀 잡히고, 아이 엄마가 일을 하고 싶어 하면, 내가 좀 쉬든가 해야지.”
“네. 그러세요.”
“만약 그때가 되어서 돌아와도 내 자리는 있겠지?”
“물론이죠. 회사 내규로 정해진 건데.”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말했듯이 요즘 미국 오피스가 생기고 워라밸이 너무 좋아졌어.”
“그래요?”
“응, 원래 한국에서 처리했어야 할 일들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리해 주잖아.”
이전에는 해외투자를 하려고 하면 시차 때문에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오피스가 생긴 이후로 서울 팀원들은 정시 퇴근을 보장받고 있었다.
“다행입니다. 너무 일을 시키는 게 아닌가 늘 고민이었거든요.”
“우리야 뭐 그만큼 연봉을 받으니까 욕하면서 한다고 하지만, 사원들은 또 그게 아니잖아. 나도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나저나.”
최우진은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늘 사무실부터 오더니 이번엔 웬일이야. 들어온 지도 몰랐네.”
“그때는 일 때문에 들어왔잖아요.”
“어? 그럼 이번에는 쉬려고 들어온 거야?”
“아뇨. 한국에서 오래 있을 것 같아요.”
도경의 말에 최우진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정말?”
“네. 곧 합병이고, 이제 샌프란시스코 오피스도 자리를 잡아서요. 제가 할 일은 두 곳을 컨트롤하는 일이니까 이제는 한국에서 모든 걸 컨트롤해야겠죠.”
“정말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이게 사람이 늘 함께 있으면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잖아.”
“하하하, 제 빈자리가 느껴지셨어요?”
“말도 마.”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음식이 들어왔고, 정갈하게 차려진 한식을 먹으며 최우진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했어?”
“제가요?”
“그래. 도경 씨가 가고 나서 하던 일 그대로 인수인계만 받았을 뿐인데 그거 처리하기가 어우…….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진짜 뒤지겠더라니까.”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크게 웃었다.
“투자부서 일 처리하고 나면, 바로 VC에서 인큐베이팅 중인 기업들 실사보고서 올라오지. 그 보고서가 맞는지 또 확인하다 보면 일주일 훌쩍. 그게 다야? 그거 끝나면 펀드 관련 보고받지.”
“그거 다 하시면 제게도 주실 보고서를 작성하시고요.”
“그러니까. 회사에도 보고서 작성해서 올려야지. 결재받으러 매일 대표실 가야 하지. 으…….”
최우진은 치가 떨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를 딱 육 개월? 아닌가?”
“그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한 달만 더 했으면 나는 퇴사했어.”
“제때 들어왔네요. 인재를 잃을 뻔했어요.”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피식 웃으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어쨌거나 미국으로 출장은 자주 가겠지만, 이제는 한국에서 모든 걸 다 컨트롤하려고 합니다.”
“그래? 미국 시장도 이제 제대로 노릴 거고?”
“네. 우리 팀원들 서울에서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았을 테니까요. 메인은 미국이고, 서브로 한국 시장에서도 투자하려고 합니다.”
도경의 포부는 꽤 스케일이 컸다.
“우리나라 증권사 중에 그런 업무를 맡은 곳이 없지?”
“네. 유성의 이사회에서 이번 참에 유성을 한국 최고의 증권사를 넘어 아시아 최고의 증권사로 만들어 보자고 의견이 통일되었다고 합니다.”
대표인 류태화의 강력한 푸쉬와 더불어 그룹사 차원에서 증권사에 대한 무한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골칫거리였던 유성투자증권이 어느새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캐시카우가 되어 있었으니까.
“거 양반들 진짜 포부가 작네. 아시아가 뭐냐? 세계 최고가 되어야지.”
최우진의 농담에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께서 하는 것에 달린 거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나도 이제 차석투자전략가가 되었으니까 말이야.”
최우진은 합병 후 조직개편에서 도경 바로 밑에서 모든 부서를 총괄하는 차석을 맡게 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도경이 관리하겠지만, 도경이 자리를 비우거나 혹은 다른 일에 몰두할 때 훌륭한 지원군이자 부관이 되어줄 사람이었다.
“설렙니다. 우리가 정말 작은 사무실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것 같은데요. 어느새 본사에 우리 조직이 들어가게 되었네요.”
이런 말을 잘 하지 않는 도경이 감회가 새로운 듯 얘기해 오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그때 도경 씨랑 나랑 연지 씨, 대훈 씨, 지훈 씨. 딱 다섯이서 시작했잖아.”
“그때 솔직히 막막했거든요.”
“아휴, 말해 뭐 해. 솔직히 나 국민연금에서 제안 왔을 때 진짜 갈 뻔했어.”
“가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주식판에서 구른 짬밥이 있지. 이 눈으로 딱 봤을 때…… 아 머지않아, 내가 회사의 간부가 되겠구나.”
최우진의 너스레에 도경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 지난 이야기니까. 웃자고 한 말이야. 고생 많았다. 정말로.”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왜?”
“모르겠어요. 그냥 그 말 듣는 순간 뭔가 좀 울컥하네요.”
“언젠간 해주고 싶었던 말이야. 우리 모두를 여기까지 데려와 주느라 고생 많았어.”
“…….”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아무 말 없이 입을 꾹 다물고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어쩌면 시작부터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한 최우진에게 듣는 최고의 찬사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더 높은 곳까지 함께 가고 싶어요. 우리 팀원들이랑 말이에요.”
감정을 억누르던 도경이 한 말에 최우진 또한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다 큰 성인들이 밥 먹다 말고 이게 뭐냐? 어서 먹자.”
최우진이 그리 말하며 밥을 한 숟갈 크게 퍼 입에 넣자, 도경 또한 숟가락을 들어 올려 식사를 했는데, 두 사람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어서 오십시오.”
이틀 후, 평일이 되자 도경은 출근길에 급하게 호출을 받고 여의도가 아닌 종로로 와 있었다.
청계천을 따라 서울 도심 안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유성그룹의 본사가 도경의 목적지였는데, 회장인 한태오의 호출을 받고 와 있었다.
“실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사님의 활약은 뉴스를 통해 매일 보고 있었습니다.”
도경은 회장 한태오의 비서실장인 김승구와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나중에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김승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회장실의 문을 두어 번 두드린 뒤 도경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안에서 방주인이 들어오라는 말을 하자 김승구는 문을 열어주었고, 도경은 옷 앞섶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는 방 안으로 들어섰다.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도경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아 신문을 보는 한태오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서 와.”
한태오는 신문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끼고 있던 돋보기안경을 벗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이구먼.”
“건강해 보이셔서 몹시 기분이 좋습니다.”
“자네가 지켜준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으니 건강할 수밖에.”
한태오는 그리 말하며 소파를 향해 앉으라는 듯 손짓했고, 도경은 자리를 옮겼다.
“그래, 미국에서 요란하게 지내고 있더구먼.”
“본의 아니게…….”
“원래 뛰어난 사람들은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사건이 끊이질 않는 법이야.”
도경은 신기하다는 듯 한태오를 바라보았다.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 아닙니다.”
“뭔데 그래?”
“조금 전부터 굉장히 무뚝뚝하신 말투로 제 칭찬을 해주시는 게…… 재밌어서 그랬습니다.”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피식하고 웃었다.
“자네가 뛰어나고, 나를 위해 일하는 건 온 세상이 다 아는데 호들갑을 떨며 칭찬해야 할 이유가 있나?”
“…….”
“그저 윤도경, 네가 해온 일들을 얘기할 뿐이야. 사실 그대로만 이야기해도 칭찬이 되는 일들을 해왔으니까.”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의 뜻을 전했다.
“증권이 합병이다 뭐다 또 시끄러워질 예정이라 오늘이 아니면 얼굴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불렀어.”
기실 도경은 출근길 갑작스러운 호출에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그런 이유라면 자신이 조금 무심했나 싶었다.
“송구스럽습니다. 늘 저를 지원해 주시는데 챙기지 못했습니다.”
“미안해야지. 어떻게 얼굴을 보기가 그렇게 힘드나?”
“아무래도 제가 먼저 회장님을 찾아뵙기가…….”
“서운하게 말하지 말게. 나는 자네에게 언제든 운월당으로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했어. 그건 인사치레가 아니었단 말이야.”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태오는 사과인형이 되어버린 도경을 보며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 미국에서 한 일들을 칭찬해 주려고 불렀어. 고생했다.”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영광입니다.”
“내가 더 영광이야. 요즘 어디를 가나 신라나 증권의 이야기들을 먼저 얘기해 와.”
한태오는 경제인 모임이나 정부 관계자, 외국 유명 인사와 일정을 가질 때마다 상대들은 계속해서 신라와 도경의 이름을 얘기해 왔다.
칭찬에 인색한 인간들이 신라를 얘기해 올 때면 부러움 반, 질투 반의 행동을 보였는데, 그게 한태오에게는 색다른 재미였다.
“어찌나 인간들이 시커먼 속을 숨기지 못하는지. 쯔쯧.”
“그리 말씀하시면서도 즐거워 보이십니다.”
“즐겁다. 그놈들은 가지지 못한 걸 나는 가지고 있다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나?”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한태오를 바라보았다.
“네 덕분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냐. 내가 투자에 소질도 없고 그쪽 일은 잘 모른다만, 그래도 윤 이사 네가 이번에 미국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한 건지는 잘 알아.”
자랑스러웠다.
국내 증권계에서 서부의 월가라 불리는, 혁신금융의 선두주자인 샌프란시스코에서 칭송받는 사람이 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한태오는 잘 알고 있었다.
말년의 자신에게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와 기쁨을 선사해 주는 것인지…….
아직도 자신에게 행운이란 놈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도경의 존재가 너무도 기뻤다.
도경과 이야기하며 그것을 숨기느라 오히려 더 힘들었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만들어준 윤 이사 네게 무엇을 줘야 할지 고민을 했는데…….”
“이미 많이 받았…….”
도경이 거절의 의사를 건네려 하자 한태오는 시끄럽다는 듯 손을 휘휘 저으며 작은 상자 하나를 건넸다.
“열어봐.”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상자를 건네받은 도경은 잠시 뚫어져라 상자를 바라보다 이내 상자를 열었는데, 안에는 작은 모형 비행기가 들어 있었다.
“필요하지 않나? 앞으로 미국을 왔다 갔다 할 텐데.”
“네?”
“비즈니스 제트기 한 대를 구입했더니, 똑같이 생긴 모형을 주더라고. 자네가 타고 다녀.”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상자 안에 든 모형 비행기와 한태오를 번갈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