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21)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21화(421/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21화
“오늘은 결재 서류가 좀 적네요.”
한 달 후, 최우진이 들고 온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이사님이 계시다 보니 바로바로 보고할 수 있는 체계가 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보고서로 작성하고 결재 서류에 사인받고 하는 거 자체가 조금 효율이 떨어지잖아요.”
물론 회사의 입장에서는 결재 서류에 누가 사인을 했냐에 따라 책임 소재를 가릴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는 시간을 다투는 세계였다.
도경은 큰일이 아니라면 선조치 후 보고서를 작성해 증거를 남기는 쪽을 선호했다.
어차피 무슨 일이든 이 사업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것이었으니까.
“합병 공시 보셨죠?”
도경은 결재를 마친 서류를 최우진에게 건네며 물었다.
“네. 말 그대로 흡수합병이라 유성투자증권 주주들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 없더군요.”
회사끼리 합병을 하게 되면 지분 문제가 골치가 아팠다.
유성의 주주들은 자신들의 지분 가치가 희석이 될까 봐 싫어할 수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신라자산운용은 비상장사였고, 유성에서 신라의 지분 100%를 사들이는 흡수합병 방식이었기 때문에 기존 가치가 희석되지 않았다.
“네. 다행입니다. 워낙 합병 때면 주주들이 들고일어나서 이번에 방식을 잘못 골랐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회사에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아 좋았습니다. 덕분에 우리사주조합에 가입한 저희도 큰 이득을 봤고요.”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 선배도 꽤 이득을 보셨겠는데요.”
“아휴, 쪼금 봤습니다.”
최우진은 그리 말하면서도 입이 근지러운 얼굴이었다.
“아, 그렇습니까? 안타깝네요.”
“안 물어보십니까?”
“무엇을요?”
“얼마 벌었냐, 얼마나 이득이냐 그런 거요.”
“쪼금 이득 보셨다면서요.”
하지만, 그런 속셈엔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한 도경의 말에 섭섭하다는 얼굴이었고, 도경은 피식 웃었다.
“아우, 이사님! 다른 곳에서는 내가 얼마 벌었다고 말도 못 합니다. 다들 안 좋은 눈으로 볼까 봐.”
“원래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걸 얘기하면 좋은 예는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사님이라도 들어주십시오.”
“제가 질투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러면 뭐, 제가 사람 잘못 본 것이겠죠.”
두 사람은 한마디도 서로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말했고, 이대로 가다간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도경이 입을 열었다.
“어우, 선배도 참 유치하십니다.”
“이사님은 어떻고요.”
“그래서 얼마나 이득 보셨습니까?”
도경이 묻자 최우진은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5천만 원이요?”
“네. 예금에 넣어놨던 돈들 영혼까지 끌어다 투자해서 우리사주에 넣었는데 붐!”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아휴, 어디서 말하고 싶었는데 말도 못 하고 그냥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속이 다 시원하네.”
최우진은 개운하다는 얼굴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랑 들어주셔서요.”
“앞으로도 좀 대놓고 자랑하세요. 저는 오히려 뿌듯하네요.”
“그럼요. 이번 우리사주 대박은 이사님께서 우리 신라의 가치를 끌어올려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직원들 모두가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로만 감사하실 건 아니죠?”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한가요?”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피식 웃으며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통화를 걸었다.
“연지 부장님, 오늘 점심은 우진 본부장님께서 사신다고 하네요. 네네, 한다현 본부장님과 함께 회사 앞에 한우집 아시죠? 네. 거기로 오세요.”
도경의 전화 내용을 듣던 최우진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랑 들어준 값입니다. 이래서 자랑하지 말라고 하나 봐요.”
도경이 농담을 던지고 나가자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복이려니 해야지.”
그렇게 푸념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는데, 얼굴에는 마냥 싫지만은 않은 듯 미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 * *
“시장이 몹시 안 좋은데 우리가 또다시 행동주의에 나서게 되면 이슈 몰이를 한다는 평을 받을 것 같습니다.”
국내 헤지펀드계의 일인자 KFSG의 임원 회의장에는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국내에서 행동주의라는 것을 자리 잡게 만든 강성호는 팔짱을 끼고 임원의 말을 듣고 있었다.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적어도 지금은 그 타이밍이 아니고요.”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그게 다입니까?”
강성호의 말에 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강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 테이블을 돌기 시작했다.
“15년 전, 내가 KFSG를 세우며 했던 한 가지 다짐이 있습니다.”
“…….”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건 끝까지 간다.”
강성호의 말에 모두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집중했다.
“그럼 나는 무엇을 옳은 것이라고 평가 내릴 것인가?”
“…….”
“첫째, 우리에게 돈을 맡긴 고객의 수익을 최우선으로 한다.”
강성호는 계속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둘째, 시장의 질서를 파괴하지 않는다.”
강성호는 자신의 철학을 얘기해 왔다.
그가 쓴 책과 평소 인터뷰를 통해 계속해서 밝혀온 투자 철학이었다.
“셋째,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행동주의는 특정 기업의 지분을 매입하여 경영에 간섭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경영에 참여해 주식의 가치를 내려가게 만드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반대로 주식의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행동을 하도록 기업에 요구한다.
가령, 시장에 풀린 주식을 기업이 사들이게 만들어 주식의 가치를 끌어올리거나, 배당을 확대하라고 요구하고,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말 그대로 주주가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런데 지금이 타이밍이 아니라는 말은 내게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합니다.”
강성호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자신에게 지금은 타이밍이 아니니 나서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 임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 시장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제일 앞에서 나가야 하는 선봉대입니다.”
강성호는 적어도 자신과 KFSG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라 생각했다.
금융시장 규모는 전 세계 열 손가락 안에 들고, GDP와 같은 경제 규모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확실한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금융시장의 핵심인 주식시장의 모습은 그렇지 못했다.
“기업의 오너들은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고, 돈을 허튼 곳에 사용합니다. 유상증자와 같은 주주들에게 좋지도 않은 일들을 스스럼없이 하며 지분 가치를 하락시키는 건 예사고.”
강성호는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고는 심각한 얼굴로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주주들의 돈을 제 주머니에 있는 돈을 쓰듯 유용합니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 투자를 하는 주주들은 이런 비아냥을 듣죠.”
강성호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왜 아직 코스피를 하냐? 네가 바보 아니냐?”
국내 시장에 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은 바보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었다.
미국 시장에 투자를 하면 때가 되면 자사주를 매입해 지분 가치를 올려주고, 배당도 든든하게 하는데 왜 한국 주식을 하냐고.
“혹자는 너희 KFSG도 돈을 벌려고 하는 행동 아니냐고 묻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그렇다고 답합니다.”
강성호는 결의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그 대가로 우리는 정당한 이익을 얻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욕먹는 거요? 두려웠다면 이 일 시작도 안 했을 거고요.”
강성호의 말에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최적의 타이밍은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분명히 하고, 그 길만 걸어갈 뿐입니다. 내 말에 이견이 있는 사람은 말해도 좋습니다.”
강성호가 다시 한번 묻자 이번에는 누구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애초에 KFSG라는 곳은 그렇게 구성되었고, 강성호가 말한 일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좋습니다. 다들 내 의견에 동의해 줘서 고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하반기 우리가 새롭게 꾸릴 포트폴리오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모두가 침을 꼴깍 삼키며 강성호의 말에 집중했다.
KFSG가 하반기에 공들일 포트폴리오라는 얘기는 다시 말해 행동주의에 나서게 될 기업을 이야기했다.
“가장 먼저 제일 탑픽에 두고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기업입니다. 그 기업은…….”
강성호의 입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나오자 몇몇 직원들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몇몇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 * *
“합병되어도 우리에겐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관리자급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회의가 마무리되려던 찰나 도경은 직원들을 향해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여러분들이 합병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하고 또 한편으로는 설레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만, 정말 내 이름 앞에 있는 회사만 달라질 뿐이지 우리는 하던 일을 그대로 진행합니다.”
합병되더라도 사업부는 그대로 이 신라자산운용 빌딩에서 일을 하게 될 것이고, 사업부의 구조도 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몇몇 인원들이 승진을 하며 위치가 달라질 뿐이다.
“아마 다음 회의부터 최우진 본부장은 차석투자전략가가 되어 참석하게 될 것입니다.”
도경의 말에 모두가 최우진을 향해 손뼉을 치며 축하를 전했고, 최우진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지금까지는 전략투자본부만 관리하셨지만, 이제는 모든 부서를 다 관리하게 되실 겁니다. 보고 체계도 당연히 최우진 차석을 통해 제게 보고해 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번 한 주도 고생합시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어느새 사업부도 커져 합병 이후에도 유성투자증권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뿌듯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이리저리 살피며 방으로 향하던 도중.
“이사님.”
최우진이 도경의 옆으로 따라붙었다.
“아이고, 본부장님. 감사 인사는 나중에…….”
“아, 그런 것이 아니고요.”
최우진의 얼굴에는 할 말이 가득한 표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들어가실까요?”
눈치를 챈 도경은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걸음을 옮겼고, 이내 두 사람 모두가 방에 들어서자 최우진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회의 자리에서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자리에 맞지도 않고, 또 아직은 풍문 수준이라 따로 보고를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문요?”
“네. 제 친구가 태산증권에 다니시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아! 네, 예전에 성남지점에 있을 때 그분의 도움을 받은 적도 있죠.”
최우진의 동기는 도경이 파악하지 못한 정보를 알려준 적이 있었다.
물론 최우진의 입을 통해서지만.
“네. 그런데 최근 태산증권 내부에서 부장급 이상에게 자사주를 사라는 강요 아닌 강요가 들어오고 있다고 합니다.”
“자사주요? 우리사주가 아니라?”
“네. 자사주입니다. 시장에 풀린 주식이요.”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한 기업이 자신이 보유 중인 주식을 우리사주 형식으로 싸게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경우는 있어도, 시장에 풀린 자사주를 사들이라고 말한다는 건 처음 들어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저 권유 형식이었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압박이 좀 강요 수준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요?”
“네. 태산 고위층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선진증권의 고위층과 만나고 있다고 하더군요. 유상증자 얘기가 오간다고 하는데.”
“선진과 태산이요?”
그 말에 도경은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 태산증권의 주가와 매매 동향을 확인했다.
대부분의 증권회사 주식이 그렇듯 주가의 변동 폭은 적었고, 금융회사 주식처럼 안전자산 취급을 받고 있었다.
“확실히 최근 들어 거래량이 조금 늘어가고 있네요?”
“네. 저도 의아해서 매매 동향을 좀 봤는데, 개인이 아니라 기관에서 계속해서 사들이고 있습니다.”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매매 동향을 바라보았는데 기관투자자의 매수세가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도경은 굳은 얼굴로 생각을 종합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갑자기 태산 내부에서 자사주를 사라는 말을 해오고 있다.”
“네. 강요까지 해가면서요.”
“그런데 기관투자자의 매수세가 나오고 있고요.”
“거기에 태산과 선진이 만나 유상증자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서로의 주식을 교환한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습니까?”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에서 무언가를 급하게 방어해야 할 일이 생긴 것 같은데요. 선진과 유상증자로 지분을 교환할 정도면,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의 의결권을 살리기 위한 행위로 보이고요.”
회사는 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주주총회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태산이 보유한 30%의 자사주는 주주총회에서 단 1표도 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을 다른 회사와 지분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넘긴다면 그대로 의결권이 살아난다.
“외국자본일까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태산을 보면서 늘 언젠가 한 번 공격당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는데 이게 직접적으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보게 되니 조금 당황스럽네요.”
물론 아직은 최우진의 말마따나 뜬소문 수준이었다.
정황과 추측뿐이었고.
하지만, 증권사가 공격당한 전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이기도 했다.
“일단은 알겠습니다. 좀 더 지켜보시는 게…….”
지이잉-
그때, 도경의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본 도경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물들기 시작했다.
발신 번호가 설마를 확신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KFSG 강성호 대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