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23)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23화(423/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23화
“그러니까 낮은 배당과 높은 유보율이 문제라고 보는 거군요.”
다음 날, 신라자산운용의 대회의실에는 평소 긴급한 일이 있을 때만 모이는 신라의 임원진들이 모여 있었다.
도경은 오랜만에 이 자리에서 임원진을 상대로 전날 KFSG의 대표 강성호와 나눈 이야기들을 보고했다.
“그렇습니다. 유보율이 높다는 것은 돈을 버는 족족 곡간에 쌓아두기만 했다는 이야기니까요.”
“확실히 태산증권은 배당 성향이나 이익을 재투자하는 비율이 낮아 저희 쪽 플레이어들도 금융주 투자를 고려할 때 손을 잘 뻗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펀드사업부를 이끄는 이사가 이야기하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기업이 영업이익을 내고 이를 나중을 위해 곡간에 쌓아두는 것은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태산은 꽤 빠르게 상장했고, 어려운 시기에는 주주들에게 고통 분담을 요구하며 유상증자를 여러 번 시행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주식시장에 상장을 해 주주들에게 투자를 받은 기업이라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도 있어야 했다.
시장에 풀린 자사주를 매입해 유통되는 주식의 양을 줄여 주식의 가치를 올린다든지, 직접적으로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배당하는 일들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이었다.
도경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KFSG 측에서는 태산의 이러한 문제를 부각해 주주환원을 늘린다는 생각입니다.”
“태산에서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이 자리에 있긴 한데요.”
도경의 발표를 듣던 신라자산운용의 대표 서용원은 그리 말하며 한 사람을 바라보았다.
서용원의 바로 오른쪽에 앉아 있는 신라자산운용의 부사장 정태근이 그 주인공이었다.
신라자산운용의 부사장인 정태근은 사내에서 내부 경영을 담당하고 있었다.
일종의 백오피스의 총관리자였다.
“네. 제가 태산은 제가 15년간 몸을 담은 전 직장입니다.”
서용원의 호명을 받은 정태근은 입을 열었다.
“태산의 사내 분위기는 마치 군대와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물론 금융계가 전체적으로 경직된 조직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태산은 좀 더 심한 편입니다.”
금융계의 조직 분위기가 경직되는 이유는 돈을 다루는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철저한 내부 통제야말로 고객의 돈을 맡아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기업들엔 어쩌면 필요악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조금 달랐다.
“조직 분위기가 보수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내부 컴플라이언스가 강력한 경우가 대다수지만, 태산은 군대와 같습니다. 상명하복.”
도경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었다.
태산을 일컬어 트레이더 사관학교라고 부른다는 것을.
유능한 트레이더들이 많아 나오기도 했지만, 태산 출신 트레이더들은 하나같이 탑다운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이었다.
“위에서는 요구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아래에서는 그것을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지켜야 합니다. 우리 신라나 유성 여타 금융기업들도 탑다운 방식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각 팀에서 해결하는 구조이죠.”
금융사들은 워낙 각 사업부에서 하는 일들이 고도화된 금융기법들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하는 일에 간섭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도경과 같은 사업부의 책임자가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었다.
“태산은 다릅니다. 매우 많은 곳에 오너가가 신경을 쓰고 관리를 합니다. 특히 탁인우 대표 체제하에서는 이 문화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모두가 언뜻 들어 알고는 있는 태산의 사풍이었지만, 그곳에서 일을 하다 이직을 한 사람의 말을 들으니 또 다르게 들려왔다.
“왜 이런 방식이 자리를 잡았느냐. 그것은 태산이 오직 탁인우 대표의 아버지이자 전대 회장인 탁정민 회장이 힘들게 일군 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유성투자증권은 유성그룹이라는 뒷배가, 선진증권은 선진은행이라는 뒷배가 있었다.
여타 다른 증권사들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태산은 말 그대로 바닥에서부터 올라와 대한민국 1위 증권사의 자리를 따낸 기업이었다.
“탁인우 대표도 아버지와 같은 성향으로 회사를 자신의 가문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 전반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고요.”
“조금 모순적이네요.”
이야기를 듣던 도경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탁인우 대표와 그 일가가 보유 중인 태산증권의 지분은 겨우 13%대입니다.”
탁인우와 그의 아버지를 포함해 가족이 가진 태산증권의 지분이 겨우 13%라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필요할 때마다 지분을 팔았죠. 편법으로 증여하며 낮아진 상속세를 내기 위해서도 지분을 팔아 주주가치를 낮췄고,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주가가 너무 올라 자신이 이득을 보고 싶을 때도.”
“…….”
“13%로 태산증권과 기타 계열사 11개를 이끌고 있습니다.”
대부분 국내 기업의 모습이었다.
물론 대주주가 기업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어쩌면 당연했지만, 이들은 다른 주주들이 기업 경영권을 넘볼 수 없도록 여러 겹으로 장치를 해두었다.
가령 이번에 선진증권과 자사주를 교환하는 것도 그 장치 중 하나였다.
“13%밖에 지분을 가지지 않은 대주주가 주인 행세를 한다? 명분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도경의 말에 회의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마따나 필요할 때마다 주주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다면, 주주환원은 당연한 선택이어야 했다.
“확실한 건 이번 싸움의 명분은 KFSG에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장에 있다 보면 태산증권 주주들의 불만을 모두가 알고 있을 테니까요.”
소액주주들은 KFSG의 손을 들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윤 이사는 이번 일에 KFSG의 요청을 받아들일 생각입니까?”
기실 어제 강성호를 만난 자리에서 도경은 그 어떠한 답을 하지 않았다.
“윤 이사의 말마따나 명분은 KFSG에게 있는 싸움입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도경의 말에 모두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태산 오너인 탁인우를 비판하며 KFSG에게 명분이 있다고 말해온 도경이었기 때문이다.
“KFSG 또한 의도를 제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강성호는 도경에게 자신이 명분이 있음을 보여주었지. ‘왜 태산인가?’에 대한 답은 주지 않았다.
“조금 더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도경의 말에 서용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본사인 유성투자증권이나 그룹에서도 이 문제는 우리 신라에게 맡기겠다고 전해왔습니다.”
이미 이 회의에 들어오기 전에 도경에게 보고를 받고 윗선에 의견을 물은 서용원이었다.
“그 문제는 애초에 제안도 전략투자사업부에 들어온 것이고, 또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윤 이사에게 결정을 맡기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견이 있으신 분?”
서용원의 물음에 모두가 다른 의견이 없다는 듯 가만히 있었다.
“좋습니다. 오늘 회의는 이렇게 끝을 내고, 후에 어떤 방향으로 결정이 나든 결과만 보고받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서용원과 회사는 각 사업부의 자율성을 지지해 주었고,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회의가 끝나자 도경은 굳은 얼굴을 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 * *
“저도 왜? 라는 것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온 도경은 최우진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전히 이번 KFSG의 제안에서 남은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태산일까요?”
“강성호 대표는 자신들에게 명분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얘기했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니까요.”
도경이 그리 말하자 최우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명분만으로 움직이는 곳은 아닐 겁니다. 적어도 그 명분에 더한 다른 명분이 하나 더 있어야겠죠.”
도경도 최우진의 의견에 공감했다.
대의명분은 애초에 외부로 보이는 것뿐이었다. 강성호나 KFSG가 왜 태산을 가장 앞선 적으로 생각했는지 그 프로세스를 알아야 했다.
도와주더라도 들러리를 설 생각은 없었으니까.
“강성호 대표는 우리를 이용하려거나 할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사님이 저들이 태산을 택한 이유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그 이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어본다고 해서 속 시원하게 답해줄 문제도 아닌 것 같고요.”
“일단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태산은 계속해서 팔로우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결정 내리시면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최우진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사무실을 나가자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무 어렵게 가나.”
속이 시원하게 KFSG에 물어보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다가도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어본다고 알려줄 거였으면 애초에 처음부터 이야기했겠지.”
도경은 약속 자리에서 강성호가 필요 이상으로 대의명분만을 얘기해 온다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감추는 것 같았다.
“일단 그 문제는 차치하고…….”
도경은 책상 위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 올려 내선 번호를 입력했다.
“부사장님, 윤도경입니다. 여쭈고 싶은 것이 있어서 지금 올라가서 만나 뵐까 하는데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도경은 재킷을 챙겨입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 * *
“내 방에는 이런 것밖에 없네요.”
사무실을 나온 도경은 조금 전 회의 자리에 있었던 부사장 정태근의 방에 찾아왔다.
“아휴, 아닙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정태근은 도경의 앞에 비타민 음료수를 내려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 내가 신라에 온 지 1년이 지났는데 이렇게 단둘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죠?”
정태근의 물음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찾아뵈었어야 했는데요.”
“아닙니다. 윤 이사는 그때 샌프란시스코 문제로 한창 바쁠 때였으니까요. 이해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태근은 태산증권에서 아주 오랫동안 경영이사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다.
신라자산운용에서 백오피스를 강화하며 그를 높은 연봉과 함께 스카우트했고, 1년 전부터 신라에서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갑자기 윤 이사가 나를 찾아올 이유는 태산 때문이겠죠?”
“네.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하하, 실례가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전 회사를 욕보이지 않는 선에서 내가 답해줄 수 있는 건 하겠습니다.”
정태근의 말에 도경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 입을 열었다.
“회의 자리에서 부사장님께서는 탁인우 대표와 사주 일가가 태산의 자본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해 배당과 같은 주주환원 정책을 꺼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탁정민 회장이나 탁인우 대표가 늘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물론 국내 여러 기업의 오너들이 그런 성향이 짙은 건 사실입니다. 내부 유보를 오너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요.”
대부분 오너가의 지분이 적은 곳에서 하는 생각이었다. 오너가가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현금 배당해 자신들이 많은 돈을 가져갔다.
보유한 지분이 적으니 괜히 배당을 해서 세금을 내고 하면 이익이 적어졌고, 그에 따라 회사에 쌓아두기만 했다.
도경의 말에 정태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적어도 태산과 같은 증권사라면 주주환원 정책을 하는 시늉이라고 할 것 같거든요.”
“……음.”
“가령 시장에 풀린 자사주 매입을 할수록 주가는 올라가고, 오너가가 경영권 방어를 하는 데 더 수월해집니다.”
당연히 주가가 비싸진다면, 경영권을 공격하는 곳에서 비싼 주가에 머뭇거릴 수 있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만, 나는 그저 회사의 경영만 했었기 때문에 탁인우 대표가 나에게 그런 것을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도경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해했다.
탁인우가 회사 전반에 여러 가지 영향을 끼쳤다면, 여러 사람에게 그 문제를 공유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 문제는 탁인우 대표와 그의 사촌인 기획실장이 대부분 도맡아 했었거든요. 미안합니다.”
“부사장님,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뭔가 힌트라도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찾아뵌 거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힌트는 주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괜찮습니다. 이렇게 저와 대화를 나눠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언가 떠오르거나 내가 듣는 게 있다면 윤 이사에게 말을 해주도록 하겠습니다.”
정태근의 말에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서려 했다.
“아! 윤 이사.”
그때, 뒤에서 정태근이 무언가 떠오른 것인지 도경을 불렀고, 고개를 돌리자 그는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다 이내 확실하게 떠오른 것인지 입을 열었다.
“제가 퇴사하기 전에 여러 번 탁인우 대표와 기획실장이 이야기 나누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제가 호출을 받아 대표실에 갔을 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날 때가 있었거든요.”
정태근은 긴가민가하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두 사람이 태산컨설팅에 꽤 많은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회사에서 태산컨설팅에 대한 현금지원도 많이 했고요.”
“태산컨설팅 말씀이십니까?”
“네. 탁인우 대표가 기획실장에게 잘 챙기라고 여러 번 당부했었어요. 이게 이번 건과 관련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부사장님. 그래도 뭔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네.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정태근이 그리 말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차선태 팀장님. 그룹의 정보가 필요합니다. 네. 태산컨설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알겠습니다. 준비되면 제 방으로 와주세요.”
수화기 너머 상대는 도경의 비서이자 업무지원팀 팀장 차선태였다. 통화를 마친 도경은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