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2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27화(42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27화
“지금쯤 대응책을 논의하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태산증권의 대표 탁인우는 기획실장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얼굴에서는 지금 상황에 대한 그의 감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겠지.”
“이번에 우리가 던진 건은 대표님의 결단으로 던질 수 있었습니다.”
기획실장의 말에도 탁인우의 얼굴에는 좀처럼 기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불안하지 않아?”
“네?”
“우리가 그렇게 한 번에 털어버리면 뭐라도 반응이 왔어야 하는데 지금 이틀째 아무런 반응이 없어.”
탁인우는 감정을 숨긴 것이 아니라, 그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대응책이 없으니…….”
“내가 아는 강성호는 바보가 아니야.”
자신이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모든 그림을 짜낸 강성호였다.
겉으로는 매우 복잡해 보이는 방식으로 모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 그림의 끝에는 명쾌한 해답 하나만이 있었다.
탁인우 자신으로의 경영승계.
“강성호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 내가 태산증권을 가지는데 상속세를 낼 돈이 없다고 술 마시면서 푸념 한마디 했더니, 단 하루 만에 승계의 그림을 짜온 사람이야.”
탁인우가 너무 강성호를 과대평가한다고 생각한 기획실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최소치가 4천억 원이었어.”
태산증권에 있는 전문가들이 모두 달라붙어 몇 날 며칠은 머리를 굴려 낸 방안이 4천억 원이 드는 그림이었다.
지분을 모으고 상속세를 내는데 줄이고 줄여 최소치로 잡은 것이 4천억 원.
“그런데 강성호가 내 푸념을 듣고 단 하루 만에 그려온 그림으로는 100억 원.”
15년 전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경영권 승계를 받았다.
당시 어마어마한 논란이 되었지만, 늘 그렇듯 아래에서 누군가가 책임을 지면 승계 문제는 사라진다.
“넌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나?”
탁인우의 물음에 기획실장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을 줄인 그림이었다.
“그런 강성호가 우리의 상대야. 주어진 상황을 모두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탁인우는 기획실장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도 다음 스텝이 필요해. 상대가 무엇을 하든 치고 나갈 수 있는 것.”
탁인우의 걱정은 이해가 됐지만, 기획실장은 당장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자신 있어 했던 이유도 단번에 상대가 걸어온 모든 것을 다 털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한 발짝 더 나아가려 한다 해도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알아. 우리가 상대의 모든 공격 지점을 차단한 거. 지금까지는 방어를 했으니 이제는 공격할 차례가 아니겠어?”
탁인우의 말에 기획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 같습니다. 방어만 하면 상대의 호흡에 휘말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 내 말이 그 말이야.”
“혹시 대표님께서는 생각해 두신 것이 있으십니까? 저는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 말에 탁인우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소액주주를 달랬으니, 이제는 조금 규모가 큰 기관투자자를 달래야 하지 않겠어?”
KFSG가 공격해 온 지점인 일명 개미투자자라 불리는 소액주주들을 자신의 편으로 돌리는 대의명분이었다.
하지만, 태산은 이번 발표로 개미투자자를 반으로 갈라두었다.
그러니 이제는 더 많은 지분을 가진 기관투자자 차례라고 탁인우는 생각했다.
“추천받자고.”
“무엇을…….”
“사외이사.”
탁인우의 말에 기획실장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외이사는 한 기업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이었다.
회사에 상주하는 이사는 아니었지만, 기업의 결정 과정에 참여해 기존 경영진들을 견제하는 위치였다.
물론 대다수는 결정에 찬성만 해주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 현실이었지만.
“우리의 의사결정 구조에 어울릴 수 있을까요?”
기획실장은 빙빙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결론은 태산의 결정 구조는 탁인우의 결정 그 자체였다.
새로운 사외이사가 들어온다면, 그 과정에서 사사건건 거부하거나 할 수 있었다.
“괜찮아.”
하지만, 탁인우는 큰 결단을 했다는 듯 이야기해 왔다.
아니,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도 자신이 누를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렇게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지이잉-
그때, 탁인우와 기획실장의 휴대전화에서 동시에 진동이 울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화면을 확인했는데, 기획실장은 잔뜩 놀라 입을 열었다.
“대, 대표님. 신라가……!”
“나도 보고 있어.”
[속보, 신라자산운용 태산증권 지분 대량 보유 신고. “경영 참여 목적.”]이번 일에 신라가 참전했다는 기사가 뜨자마자 가깝게 지는 언론사의 기자가 보내준 메시지였다.
“윤도경, 이 새끼가…….”
탁인우는 이제서야 지금껏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주인공을 알 것 같았다.
강성호가 아니었다.
가지려고도 해봤고, 꺾으려고도 해봤던 새싹이 어느새 자신의 높이만큼 자라서 자신을 위협하고 있었다.
“뭐 해? 빨리 일어나서 내가 지시한 걸 기관투자자들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발표해야지!”
시간이 없었다.
신라가, 아니, 유성이.
그리고 시장이 사랑하는 스타인 윤도경이 자신을 노려온다면 꽤 많은 이들이 그의 편에 설 것이다.
윤도경이란 이름은 어느새 그렇게 커버렸으니까.
“네, 네! 알겠…….”
똑똑-
그때였다.
대표실 문이 노크 소리와 함께 열리며 사색이 된 얼굴의 직원이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기획실장이 묻자 직원은 입을 열었다.
“KFSG 측에서 주주제안을 해왔습니다.”
“주주제안? 내용은?”
탁인우는 그렇게 물으며 직원을 바라보았다.
“신라자산운용의 윤도경 이사를 사외이사로 임명해 달라는 제안입니다.”
* * *
“예전엔 참 머리 회전이 빨랐습니다.”
한편, 그 시각 도경은 KFSG의 대표실에서 강성호를 만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 내고도 정말 놀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두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손에는 맥주캔이 쥐어져 있었다.
도경은 업무 시간에는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지만, 오늘 강성호의 얼굴을 보니 그냥 넘어갈 수 없어 그의 제안을 받았다.
“그때는 그랬었습니다. 그 능력으로 탁인우를 태산의 대표실에 앉게 했죠.”
도경도 지금 와서야 그때의 보도들을 찾아보고 생각했다.
강성호가 같은 편이라 다행이라고.
그리고 시대가 달라서 다행이라고.
강성호가 반대편에 있었거나, 혹여라도 지금이 그가 말하는 그 시기였다면.
무서운 상대를 적으로 두는 것만큼 큰 걱정이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제는 나도 많이 늙은 것 같습니다.”
“글쎄요. 이렇게 업무 시간에 맥주를 권하실 정도로 열려 있으신데요.”
“하하하, 어제 윤 이사의 전화를 받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조금 설렜거든요.”
“…….”
도경은 가만히 강성호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내가 이제는 예전만큼 또렷한 생각을 하고 있지 못할 때, 그래서 상대의 한 방을 맞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강성호는 확신에 가득 찬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주변을 둘러보니 백마 탄 초인이 서 있더군요.”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은 강성호를 백마 탄 초인이라 평한 적이 있었다.
이 척박한 금융시장에 혜성같이 나타나 주주행동의 기치를 올린 선구자.
그런 강성호의 입에서 자신에 대한 후한 평가를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이번 일을 기획하며 마지막 퍼즐로 윤 이사를 생각해 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강성호는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윤 이사에게 내가 너무 의존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지만, 내 머리가 이제 따라주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무기인 윤 이사와의 인연을 사용할 수밖에요.”
강성호는 아직 자신에게도 무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건 윤도경이라는 존재였다.
“그래서 윤 이사에게는 늘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신나는 일에 저희를 끼워주셔서 감사한데요.”
“하하하. 이번엔 내가 정말 실수를 했습니다. 숨겼으면 안 됐는데.”
“듣고 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남에게 하기란 늘 쉽지 않으니까요.”
도경의 말에 강성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강성호는 어느새 정신을 차린 것인지 또렷한 눈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한 방 때렸으니, 다음 스텝을 생각해야겠군요.”
어떤 방식으로든 태산은 대응해 올 것이다.
탁인우는 상대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준비해야 했다.
“저는 상대방의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게 즐겁습니다.”
도경은 강성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상대는 어떻게 할까? 혼자서 침대에 누워 막 섀도복싱을 해보는 거죠.”
도경의 말에 강성호는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윤 이사를 보면 가끔 승률을 끌어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를 본 것일까? 생각했는데 그 비결이군요.”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냥 그걸 즐기는 것 같습니다.”
도경은 재미있다는 듯 말해왔지만, 강성호는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 도경이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태산을 상대로 사외이사 추천이라는 강수를 둔다면 과연 태산은 어떤 수를 낼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동종 업계, 경쟁사에 있는 임원 또한 사외이사가 될 수 있었다.
오히려 요즘 추세는 경쟁사의 임원을 일부러라도 모셔 와서 사외이사로 앉히고 있었다.
자신들은 경쟁사의 인물도 데려올 만큼 투명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물론 상법에는 경쟁사의 인물을 사외이사로 앉힐 때는 주주총회가 필요하다고 되어 있었지만, 경쟁사라는 범위가 어디까지 좁혀야 할지 몰라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선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수를 생각해 봤지만, 제가 내린 답은 하나입니다.”
“무엇입니까?”
“저를 사외이사로 임명해 달라고 우리가 요청한 이상 시장은 우리의 손을 들어줄 겁니다.”
“그렇죠. 윤 이사도 자신의 명성을 이용하기 위해 이 수를 던진 것일 테니까요.”
강성호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저보다 더욱 큰 아군을 데리고 오면 될 겁니다.”
“더욱 큰 아군이요?”
“네. 태산증권의 입장에서는 윤도경을 따르는 사람은 되돌릴 수 없겠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면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곳에서 사외이사를 추천받거나 그곳의 인물을 아군으로 만들려고 하겠죠.”
그 말에 강성호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번뜩이는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NPS.”
강성호가 답을 얘기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게 확실하게 태산의 수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제 머리에서 나온 예측일 뿐이죠.”
“하지만…….”
“네. 하지만, 이 움직임을 차단한다면 우리에게도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겁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며 강성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고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국민연금, 우리 쪽에서 먼저 접촉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