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2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28화(42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28화
“윤도경 이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로 와 있었다.
도경은 처음 보는 기금운용본부의 본부장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본부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신라자산운용의 윤도경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본부장은 도경의 그런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해 왔다.
도경은 본부장의 안내에 따라 사무실 가운데 있는 소파에 자리했는데, 잠시 후 비서가 차를 가져다주자 두 사람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갔다.
“조금 더 일찍 찾아뵈었어야 했는데, 송구스럽습니다.”
“하하하, 그렇게까지 말할 일입니까? 오히려 우리 NPS가 윤 이사님께 큰 신세를 지고 있지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자산을 운용하는 곳이었다.
증권가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큰손이기도 했고, 기업들의 입장에서도 대부분은 대주주를 제외하고는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지분을 들고 있는 기업들이 많았다.
“우리가 최근 들어 국내시장에서 직접 투자를 줄이는 분위기로 가면서, 여러 자산운용사들의 손을 빌리고 있습니다. 그중 단연 으뜸은 신라자산운용이고요.”
본부장의 말마따나 최근 NPS는 국내시장에서 직접 자산을 운용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전문자산운용사들에게 기금을 맡기는 흐름으로 가고 있었다.
기업들에 대한 영향력도 줄여가고 있었고 말이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제가 본부장직을 역임하고 나서 기조를 바꿨었습니다.”
도경은 가만히 본부장의 말을 경청했다.
“우리 NPS가 너무 많이 시장에 영향력을 끼치는 것 같아서요.”
실제로 국민연금은 시장의 제일 큰손이다 보니 그들의 매매 동향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시장을 좌지우지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업의 승계나 경영 사안에 관해 깊게 관여하며 여러 논란을 만들기도 했다.
“첫해부터 조짐이 좋더니 작년에 우리 신라자산운용을 만나 제가 윗선에 어깨를 펴고 다닐 수 있습니다.”
도경이 이끄는 팀에서 만든 블라인드 펀드의 최대 고객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였다.
“오히려 저야말로 신라와 저를 믿어주시고 가장 큰 돈을 맡겨주신 NPS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하하, 솔직히 나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직원이 하도 윤도경 이사는 믿어야 한다고 해서.”
“김대엽 실장님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도경의 입에서 이름이 나온 사람은 NPS의 사모투자 실장이었다.
처음부터 안건을 도경에게 제안해 주고 모두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 때도 도경을 밀어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본부장을 만나러 오기 전에 인사를 나누고 온 참이다.
“능력이 있는 친구의 말이니 믿고 지켜보았습니다만, 결과로 돌아오니 기뻤습니다.”
도경은 계속해서 자신을 칭찬해 오는 본부장을 보며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래, 이렇게 바쁘신 분이 오늘 전주까지 내려오신 이유가 있으십니까?”
본부장이 운을 띄우자 도경은 본론을 꺼내야겠다는 듯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제가 태산증권을 상대로 주주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 바닥에서 지난 며칠간 그 이야기만 나오고 있으니까요.”
서로의 입에서 입으로, 대형 유튜브 채널부터 언론까지.
도경과 KFSG의 이야기가 모든 이슈를 잡아먹고 있었다.
“놀랐습니다. KFSG야 원래 그런 일들을 해온 곳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신라가 개입할 줄은 몰랐거든요.”
아무래도 신라는 2위 증권사인 유성투자증권의 계열사였다.
곧 합병이 될 회사였고, 그러다 보니 1위 증권사와 2위 증권사 간의 싸움이라며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충분한 소재였다.
“제가 알기론 NPS에서 태산증권의 지분 5.7%를 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거야 모르는 분들이 없지요.”
“그 지분을…….”
“윤 이사님.”
도경이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할 때, 본부장은 손을 들어 도경의 말을 제지했다.
“설마 우리보고 신라와 KFSG의 편에 서라는 제안을 하러 오셨다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습니다.”
자신의 말에 도경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본부장은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그간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게 있습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가 투자 기업의 경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었다.
몇몇 기업들이 배당금이 늘어난 것도 큰손인 국민연금의 영향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우리는 그저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움직였을 뿐인데, 우리의 행동을 정무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자금 성격이 공적자금이다 보니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의 확실한 이득이 될 사안이 아니라면, 나서지 않기로 내부적으로 의견을 통일했습니다.”
“…….”
“윤 이사가 우리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 일은 들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NPS는…….”
“네. 기권할 예정입니다.”
그 말에 도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합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본부장은 지금 상황이 불편한 듯 완곡하게 도경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전주까지 내려오셨는데 마음에 짐을 얹어드린 것 같아 미안합니다.”
도경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본부장실을 나섰다.
그러고는 꽤 심각한 얼굴로 로비로 내려왔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이게 누구야.”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주친 인물은 태산증권의 대표 탁인우였는데, 모르긴 몰라도 도경과 같은 볼일이 있어 이곳으로 온 것 같았다.
도경은 본부장이 참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날 겹치는 시간에 약속을 잡다니.
“일이 잘 안 됐나 봐?”
탁인우가 웃으며 물어오자 도경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살살해. 내가 너를 아끼니까 하는 말이야.”
탁인우는 화를 낼 법도 한데 감정을 숨기는 데 정말 익숙한 사람이었다.
도경은 다시 한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겠죠?”
탁인우는 옆에 있는 기획실장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얼굴 봐라. 세상 무너진 얼굴인데. 올라가서 잘 구슬려 봐야지.”
탁인우는 도경의 뒷모습을 잠시 주시하다가 이내 몸을 돌려 약속 장소로 올라갔다.
“…….”
한편 도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입구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차량에 올라탔다.
“가신 일은 잘되셨습니까?”
도경이 차에 올라타자 운전석에 앉아 대기하던 비서 차선태가 물었다.
“네. 잘된 것 같네요.”
도경은 조금 전의 굳은 표정은 오간 데 없이 웃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휴대전화를 꺼내 든 도경은 어디론가 통화를 걸었다.
“대표님, 전주에서 일 끝났습니다. 네. NPS는 기권입니다.”
기실, 도경은 NPS가 거절하길 줄곧 바라왔다.
이쪽 편을 든다면 나쁘지 않았지만, 오히려 태산을 자극할 것이다.
태산은 더한 수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NPS가 기권을 선택한다면 태산은 어떻게든 NPS를 설득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네. 본부장은 쉽게 흔들릴 사람은 아니더군요. 네.”
그래서 자신이 이곳에 오는 동안 강성호를 다른 곳으로 보냈다.
바로 태산증권의 3대 주주인 신화자동차였다.
“그렇습니까? 잘됐습니다. 이제 빠르게 주주총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면 될 것 같습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강성호가 간 일이 잘된 것 같아 도경은 전화를 끊고는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여기, 윤 이사가 요구한 겸직허가서입니다.”
한편 서울로 돌아온 도경은 신라자산운용의 대표 서용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솔직히 하나의 묘책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겸직허가서를 써달라고 하는 거 보면 정말 태산의 사외이사직에 오르려고 합니까?”
서용원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주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겠죠.”
“정말 무섭습니다.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을 정도로요.”
서용원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해왔다.
“보통 블러핑이나 그저 움직임만 그렇게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윤 이사를 보면 정말 그렇게 할 것 같아서 무서워요.”
“하하하.”
“웃을 게 아닙니다. 제가 이 겸직허가서를 이사회에 요구하니 다들 놀라더군요. 유성의 류태화 대표께서도 놀라셨고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저 도경의 속임수로만 봤기 때문이다.
“이게 최대한의 승률을 끌어낼 방법입니다. 시작도 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시작한 이상 최대의 승률을 끌어내기 위해선 모든 것에 진심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서용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도경의 방식이었다.
“모두가 쉽게 얘기합니다. 윤 이사니까 해낼 거라고.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겠죠.”
“…….”
“어째서 윤도경은 매번 해낼까?”
서용원은 진심으로 도경이 존경스러웠다.
“이런 모습이기 때문에 늘 해내는 것이겠죠.”
“칭찬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끝나고 나서 받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이겼다는 보고를 기다리겠습니다.”
서용원의 말에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대표실을 나섰다.
* * *
“NPS 쪽이 쉽사리 넘어오지 않습니다.”
사흘 후, 태산증권 대표실.
기획실장은 대표 탁인우에 보고하고 있었다.
며칠 전, 직접 전주까지 내려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만나고 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본부장을 봐. 내가 직접 내려갔는데도 그렇게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잖아.”
탁인우는 심각한 얼굴이었다.
지난 사흘간 계속해서 NPS와 접촉했다. 본부장과도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접근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차단되고 있었다.
“이쯤 되면 NPS의 의지가 확고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기획실장의 말에 탁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기획실장의 말마따나 포기를 해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래. 안타깝지만, NPS가 중립을 유지해 준다면 우리가 빠르게 다른 곳들을 감으면 될 테니까.”
사흘이란 시간을 NPS에게 몰두했지만, 지금도 늦은 것이 아니라 생각한 탁인우였다.
“네. 3대 주주인 신화자동차와 접촉해 보겠습니다.”
신화자동차는 탁인우의 아버지 대에 거래를 트며 꽤 가깝게 지낸 기업이었다.
하지만, 탁인우가 경영을 물려받자마자 둘의 사이는 소원해졌는데, 원래 태산에서 담당하던 신화자동차 계열사의 퇴직연금을 신화자동차증권을 만들어 처리하기로 선택하면서부터였다.
소원해지긴 했지만, 따로 경쟁 상대는 아니었으니 접촉해 볼 만도 했다.
“그래, 그럼 그렇게…….”
띠리링-
그때, 기획실장의 휴대전화에서 요란한 벨 소리가 울렸고, 기획실장은 송구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죄송합니다. 진동으로 해둔다는 게…….”
“아냐, 받아봐.”
탁인우의 말에 기획실장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과 회의 중…… 뭐?”
“왜? 무슨 일인데.”
탁인우의 물음에 기획실장은 휴대전화를 내리고는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KFSG에서 임시주총을 열어달라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냐? 뭘 그거 가지고 놀라고 그래?”
“……KFSG가 신화자동차의 지분 위임장을 들고 왔다고 합니다.”
기획실장의 말에 탁인우의 얼굴은 당혹감으로 물들어갔다.
“우리가 늦었어…….”
지난 사흘이란 시간 동안 자신들이 NPS에 집중하고 있을 때 상대가 한 발짝 먼저 움직인 것이다.
탁인우는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