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29)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29화(429/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29화
“대표님, 손님들 오셨습니다.”
일주일 후, 태산증권 대표실.
탁인우는 자신에게 알려오는 비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고, 탁인우의 신호에 비서는 손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대표실로 들어온 두 사람은 도경과 강성호였다.
탁인우는 아무런 말 없이 두 사람을 향해 앉으라는 듯 손짓했다.
평소 늘 여유가 넘치는 말투와 몸짓을 하던 탁인우는 오늘 없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차디찬 한기만이 맴돌고 있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성호의 말에 탁인우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갈 거야?”
지난 일주일 탁인우는 정신없이 두들겨 맞았다.
KFSG를 필두로 한 신라자산운용, 유앤캐피털, 신화자동차 그리고 소액 주주연합은 계속해서 태산증권에게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이 담긴 서한을 보냈다.
그동안의 세월을 보상받으려는 듯한 일종의 영수증이었다.
“아시잖습니까. 저는 끝까지 갑니다.”
강성호의 말에 탁인우는 가만히 두 사람을 보다 천천히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확실하게 요구하는 것들 말해봐. 이견 좁혀보자고.”
그 말에 도경은 가만히 탁인우를 바라보았다.
얼굴에서는 한기가 감돌았지만, 그의 눈빛이 꺾여 있었다.
“확실하게 말해두는데 강 대표. 네가 말한 대로 끝까지 가면, 너나 나나 신라 그리고 나머지들도 다 죽어.”
탁인우는 두 사람을 향해 최후통첩을 날렸다.
“너희도 지분 계산 때려봤으면, 멈춰야 하는 시기란 걸 느낄 거야.”
지분을 계산했을 때 KFSG 연합이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태산 또한 계산을 했을 때 그와 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쪽이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확실하게 앞서지는 못하고 있어. 강 대표, 네가 말한 끝까지 간다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태산도 끝까지 가면 그냥은 안 져.”
협박이 아니었다. 그저 현재 상황을 담백하게 풀어낸 탁인우의 말이었다.
태산이 가진 자산을 모두 이 싸움에 투자한다면, KFSG 연합도 만만치 않은 출혈을 감당해야 한다.
어느 한쪽이 이기더라도 그 끝에는 모두의 파멸만이 남을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요구하는 거 말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건 받아들이고, 그쪽도 포기할 건 포기하고 게임 끝내자고.”
탁인우의 말에 강성호는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배당 성향, 유성투자증권만큼 끌어올려 주십시오.”
현재 태산의 현금배당은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1년에 1조 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그것도 현금 장사를 하는 기업이 하는 배당치고는 너무도 적었다.
유성의 1/3 수준이었다.
“우리가 연말에 하기로 했던 특별 배당 수준으로 맞추라? 매년?”
“그렇습니다. 두 번째 요구할 것이 사내 유보율을 낮춰달라는 요구였으니, 첫 번째 제안을 받아들이시면 자연스럽게 두 번째도 해결되리라 생각합니다.”
도경의 말에 탁인우는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다음은?”
“태산컨설팅 청산해 주십시오.”
“…….”
태산컨설팅은 기업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기업이 아니었다.
그저 탁인우의 소꿉 놀이터나 된 회사였다.
“태산증권의 주주로서, 태산컨설팅이 시행한 사업의 모든 익스포져(위험에 노출된 금액)를 태산증권이 떠안는 걸 볼 수 없습니다.”
“지금 정리하고 싶어도 못 해.”
“어차피 대표님의 지분이 많이 들어간 회사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부동산 투자 실패를 인정하시고 정리하시지요.”
도경의 말에 탁인우는 모욕을 참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태산컨설팅은 탁인우가 주도하던 사업을 했고, 실패했다.
“내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몰라.”
태산컨설팅의 적자를 감수하고 회사를 정리한다면, 그곳에 투자를 지시한 탁인우는 배임행위가 성립할 수도 있었다.
“태산증권이 손해를 본 만큼 사재를 투입하시면 됩니다.”
도경의 말에 탁인우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태산컨설팅을 이대로 정리하면 탁인우가 가진 지분은 그저 투자 실패로 날려 버리면 될 일이었다.
그건 본인의 실패였으니 감당해야겠지만, 그것도 모자라 태산증권의 손실을 본인의 재산으로 충당하라고 도경은 말해오고 있었다.
“책임을 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자는 무능하다고 하겠지만, 저는 대표님께서 자신의 실패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셨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다닐 겁니다.”
탁인우는 도경의 말이 무능하지만, 책임을 지는 대표가 될 것인지 범법자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는 말로 들렸다.
“그 제안을 모두 내가 받아들이면 얻는 건?”
“대표 자리의 유지겠지요.”
돌아온 답에 탁인우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았다.
한참 대표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탁인우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무모하면서도 전략적이고, 화끈하면서도 뒤끝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도경이 본 탁인우라는 사람이었다.
“윤 이사.”
계속해서 도경을 바라보던 탁인우는 도경을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KFSG와 신라, 유앤, 신화자동차가 요구한 주주제안 모두 철회해 주고, 윤 이사 사외이사 임명 건도 없는 것으로 하지.”
이쪽의 제안을 모두 받아들여 주는 대가로 탁인우는 모든 것을 철회하라 얘기해 왔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실무자 KFSG로 보낼 테니 문서화하자고.”
“통 큰 결단 감사드립니다.”
도경이 고개를 숙이자 탁인우는 입을 열었다.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고 통 큰 결단이라니. 강 대표.”
“네.”
탁인우는 강성호를 불렀다.
“이걸로 네 악감정도 풀렸으면 좋겠는데.”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언제고 우리를 또 공격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우리의 제안을 계속해서 유지하신다면 그럴 일 없다는 것은 대표님께서 더 잘 아실 겁니다.”
강성호가 그리 답하자 탁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회복할 수 있는 사이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일어나지?”
탁인우는 두 사람에게 축객령을 내렸고, 도경과 강성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윤 이사.”
대표실을 나가려던 도경은 자신을 부르는 탁인우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태산으로 올 생각은 여전히 없나?”
“대표님, 이제 저를 품기엔 태산이 너무 작아졌습니다.”
“…….”
도경의 말에 탁인우는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번 싸움의 승리로 신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테고, 유성과 합병된다면 대한민국 증권사 1위 자리는 유성의 몫이나 다름없었다.
도경은 아무런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탁인우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겼다.
* * *
“오늘 종가에 프리미엄 10%를 붙여서 모두 매수하기로 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도경은 여의도 모처에 있는 한 바에서 강성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운터 자리에 앉아 술과 함께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아쉽지 않습니까?”
“네?”
“내일 태산의 백기 투항이 올라간다면 주가는 20%, 30% 더 오를 겁니다.”
강성호의 말에 도경은 피식 웃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저희는 애초에 리스크가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주가가 40% 이상 올랐고요.”
싸움에서 지더라도 손실은 모두 KFSG가 떠맡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싸움이었다.
신라는 애초에 이 싸움에서 리스크가 제로에 수렴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리스크를 선택한 KFSG에서 높은 수익을 가져가는 게 도경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수익은 저희도 충분히 봤습니다.”
“큰돈을 넣었으니 아주 큰 수익으로 돌아오겠군요.”
“그렇습니다. 리스크가 없는 투자는 처음 해봤는데 이 맛에 몰방하나 봅니다.”
도경이 농담을 섞어 이야기하자 강성호는 피식하고 웃었다.
“윤 이사에게는 참 고맙습니다.”
도경은 가만히 강성호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미사여구가 필요 없이 나의 치기로 시작한 일입니다.”
“…….”
“이제는 탁인우 대표에게 내 감정을 드러낼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저 대의명분을 꿰맞췄던 겁니다.”
강성호는 부끄러움을 참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성이 마비됐죠. 내가 던진 수를 맞고 탁인우 대표가 소극적으로 대응할 때 이겼다고 생각했거든요. 윤 이사까지 합류했고요.”
“…….”
“태산은 소극적인 대응을 한 게 아니라 시간을 벌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반격이 나왔을 때,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강성호에게는 자신이 헤맬 때 도와줄 동료가 있었다.
“그때, 윤 이사가 내민 손은 정말 커 보였습니다. 부끄러웠고요. 아, 내가 치기만으로 이 많은 사람의 돈을 잃을 뻔했구나.”
이번 일을 시작할 때 강성호는 대의명분이 있다면 KFSG는 나선다며 자신의 임원에게 한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행동은 자신의 치기를 정당화할 구실이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몹시도 부끄러웠다.
“윤 이사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지금 포지션에서 승률을 높일 방법만 찾으면 된다고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강 대표님과 피터 브라운을 보며 자라왔습니다.”
“거장의 이름 옆에 내 이름이 붙으니 한없이 초라해지는군요.”
“아닙니다. 강 대표님은 이 척박한 한국 금융시장에 위대한 발자국을 남기신 선구자이십니다.”
도경은 진심이라는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피터 브라운과 강 대표님 모두 이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옳다고 여기면 끝까지 가겠다.”
“하하하, 피터 브라운의 말을 제가 도둑질해 온 겁니다.”
“행동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도경의 말에 강성호는 가만히 집중했다.
“강 대표님은 시장을 바꾸기 위해 옳은 일을 끝까지 밀어붙이셨고, 이 땅에 몰염치한 기업인들에게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만드셨습니다.”
“…….”
“저는 그 행동을 보고 배웠을 뿐입니다. 옳다고 여긴 것을 관철하고 이기기 위해 승률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법을 말입니다.”
“정말…… 부끄럽군요.”
도경의 말은 감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반대로 부끄러움도 몰려오는 강성호였다.
“고맙습니다. 이번 일을 이길 수 있게 만들어줘서요. 또, 내가 우리 고객들께 큰 실패를 안겨 드리지 않을 수 있게 해주어서요.”
강성호는 그리 말하며 도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도경은 그 모습을 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대표님, 저는 이 시장에서 KFSG가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이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도 소액 주주들을 위해서, 건전한 시장을 만들어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강성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그게 우리 KFSG가 할 일이니까요. 윤 이사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이 시장에서 더럽고 아니꼬운 꼴을 보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제힘 닿는 데까지 돕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강성호는 환하게 웃으며 잔을 들어 올렸고, 도경은 강성호와 잔을 마주치며 이번 일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