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32)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32화(43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32화
“슬슬 자리 잡은 것 같죠?”
보름 후, 도경은 일을 끝마치고 한 식당에서 최우진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도 최근 회사 분위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도경의 물음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어려운 것 없었지. 처음부터 유성의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했으니까.”
아무래도 신라자산운용은 처음부터 내부 법적 규정이라든지 더 나아가 트레이딩 시스템까지 모두 유성투자증권의 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혼동은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이네요.”
“그렇지 않아도 평소보다 더 챙기고 있으니, 우리 이사님은 걱정 안 하셔도 돼.”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나저나 업계가 다시 변하는 느낌이던데 들었어?”
“왜요? 무슨 일들이 또 있습니까?”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주위를 살피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년부터 ST가 열리잖아.”
2024년부터 ST(Security Token)라 불리는 토크증권의 시대가 열린다.
사전적 의미는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자본시장법상에서 인정하는 증권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부동산이나 미술품 등 실물자산을 잘게 쪼개어 블록체인 기술로 된 토큰을 이용해 거래하는 시스템을 이야기했다.
이때 토큰은 증권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에 흔히 아는 코인과 달리 증권과 똑같은 법적 규제도 받는다.
“그렇죠.”
인프라도 마련해야 하고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었지만, 내년부터 도입이 되기 때문에 여러 증권사들이 거래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었다.
“4년 전부터 거래 플랫폼을 준비하고 기술에 투자한 곳이 있어.”
“태산 아닌가요?”
도경의 물음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디지털 쪽에서는 태산이 최고일 수밖에 없나 봐.”
다른 증권사들은 모회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성장했다.
유성투자증권은 유성그룹의 도움을, 선진증권의 경우에는 선진금융지주의 도움을.
하지만, 태산증권은 온라인 증권 거래 시대가 열리자 새롭게 창립한 증권사였는데, 바닥에서부터 성장해 한 달 전만 해도 대한민국 1위 증권사였다.
“다들 ST가 되겠냐고 비관적으로 봤잖아요.”
도경의 말마따나 토큰 증권이라는 걸 모두가 비관적으로 보았다.
이미 코인 시장에서 광풍이 불고, 여럿 피해를 본 피해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비슷한 토큰 증권 시장이 열릴까? 하는 의심들이 있었다.
“그렇지. 그런데 태산이나 소규모 증권사에서 이거에 목숨 걸고 달려드니까 당국에서도 가이드라인을 만든 거지.”
몇 년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금융 당국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기 위해 열린 자세로 토큰 증권이라는 시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어쨌거나 선진금융연구소나 맥킨지, 보스턴 컨설팅 같은 곳에서도 10년 안에 40조 원가량의 시장이 될 거라고 발표하더라고.”
“네. 결국 하우스를 누가 먼저 여느냐가 관건이겠죠.”
한때 코인 거래의 광풍이 불 당시 코인판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것은 거래소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마어마한 판이 열렸었다.
토큰 증권의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롭게 도입되는 자산시장에서는 누가 먼저 거래소를 열고 그곳을 선점하냐에 따라 미래가 갈리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아까 말했듯 태산이 가장 많은 돈을 투입했고, 준비도 가장 빠르지.”
“네. 확실히 태산은 대단한 곳이니까요.”
“다른 곳은 가만히 있겠어? 태산이 막 치고 나가는데 우리 유성이나 선진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냐고.”
“그럴 리는 없겠죠.”
“컨소시엄 얘기가 들려와.”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놀란 듯한 얼굴로 최우진을 바라보았다.
“컨소시엄이요?”
“그래. 선진증권, 한라증권, DH증권 세 곳이 컨소시엄을 구성하려 한다더라.”
선진은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증권사였고, 나머지 두 곳도 10위권 안의 중견 규모의 증권사였다.
“세 곳 다 은행권 기업이네요?”
최우진의 입에서 나온 세 증권사 모두 모기업이 시중은행이었다.
물론 은행권이 빡빡한 법적 규제 대상이었기 때문에 자금 이동이 쉽지는 않았지만, 모기업의 자금력만 보았을 때는 유성이나 태산과 같은 규모나 마찬가지였다.
“맞아. 저 세 곳이 합쳐서 새로운 토큰 증권사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라고.”
도경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2040년쯤 되면 40조 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모두가 말하는 증권 토큰 시장이었다.
그런데 은행권에서 이를 갈고 준비를 한다면 유성의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 뻔했다.
“문제는 도경 씨도 알다시피 이쪽도 발행시장이 있다는 거지.”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주식도 IPO와 상장을 하니까요. 당국에서 나온 가이드라인을 보면 토큰 증권도 IPO와 비슷한 작업을 하더라고요.”
“그렇지. 저 세 회사가 그동안 자신들이 가지고 있었던 부동산이나 미술품 풀을 공유한다고 생각해 봐.”
토큰 증권도 결국 발행이 되려면 상장 작업을 펼쳐야 했다.
그렇다면, 상장을 하면 상품성이 있는 자산을 찾는 것이 우선 되어야 했는데 세 회사는 전통적인 금융시장의 강자였다.
초창기 토큰 증권 발행시장에서 수수료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모든 것이 좋게 됐을 때 얘기고. 알다시피…….”
“엄청 보수적이겠죠. 세 회사 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사풍의 은행 계열사들인데 증권 업무를 하는 것만 봐도 보수적인 기업들이 토큰 증권 시대가 된다고 달라지겠어?”
최우진은 그리 말하면서도 얼굴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우리도 빠르게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잘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걱정을 하는 만큼 본사에서도 걱정하고 있을 테고요.”
“그렇겠지?”
“네. 거대 컨소시엄의 등장 자체를 그냥 지켜볼 회사는 아닐 테니까요.”
“아휴, 나도 너무 높은 곳까지 올라왔나 보다.”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렇지 않아? 이런 걱정 안 했는데, 이제 위치가 위치다 보니 별걸 다 걱정하게 되네.”
“좋은 거죠. 회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회사는 올바른 길로 갈 테니까요. 식사 마저 하시죠.”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식사를 이어나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보고할 곳이 멀리 있으니 오가기 힘들겠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사업부 내부에서 정한 건들을 보고하러 유성투자증권 본사로 와 있었다.
류태화는 도경에게 번거롭지 않냐는 듯 물어왔다.
“괜찮습니다. 장단이 있지 않겠습니까?”
유성투자증권 본사는 신라자산운용의 옛 본사 빌딩이자 현재 전략투자사업부의 사무실이 있는 빌딩에서 두 블록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아무래도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 보니 도경은 매번 보고를 하러 이곳으로 와야 했다.
“본사 빌딩에 들어와서 일을 한다면 보고를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그만큼…….”
“자율성이 떨어지겠지요.”
류태화는 도경의 말뜻을 이해한다는 듯 이야기해 왔다.
“그리고 내부에는 여러 사업부가 부대끼고 있으니, 서로 눈치도 좀 봐야겠고요.”
물론 사업부끼리 하는 일의 성격이 워낙 달라 눈치를 보는 일이야 있겠냐만서도, 류태화의 말은 도경에게 적용되는 것이었다.
“윤 이사야 워낙 잘하고, 다른 간부들과 별다른 부대낌 없이 지내겠지만, 상대도 같은 건 아닐 테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모로 편한 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류태화는 도경을 향해 미소를 짓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그럼 보고를 받아볼까요?”
류태화의 말에 도경은 준비한 보고서를 건넸다.
“증권투자본부의 경우에는 기존에 해왔던 대로 PI를 중점으로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장이 어려운데 어떻게 방향은 잡혔습니까?”
“네. 국내 시장보다는 미국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와 협조를 해서 미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할까 생각 중입니다.”
도경의 말에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더불어 벤처투자본부 같은 경우는 신규 투자는 중단하고 모두 도큐센스의 IPO(기업공개)에 투입되었습니다.”
“아, 우리 IB(기업금융) 사업부에서 공동주관사로 참여했죠.”
“네. 도큐센스는 시리즈D 투자 때부터 저희 벤처투자본부에서 인큐베이팅을 해왔기 때문에, 공동주관사로 유성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류태화는 흐뭇한 얼굴이었다.
“왜 한창 증권사들이 벤처에 투자를 한 것인지 조금 느끼고 있습니다. 도큐센스는 나스닥에서 아주 주목받는 신규상장 기업이니까요.”
“말씀대로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인공지능이 시장의 메인 테마인 가운데 상장을 준비하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도 끌리고, 여러 곳에서 투자를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한다현이 이끄는 벤처투자본부는 도큐센스의 상장 작업을 돕고 있었다. 특히 유성투자증권과 도큐센스의 사이에서 이견을 조율해 주는 조율자 역할을 도맡아 했다.
“좋습니다. 상장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IB에도 최대한 협조하라 지시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펀드운용본부에 관해서 보고를 드리겠습니다.”
“새롭게 펀드를 구성하려고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류태화가 흥미롭다는 듯 묻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그동안은 블라인드 펀드와 관리 중이던 펀드에 집중을 했습니다만, 이제는 다들 일에 대해 적응을 마쳤습니다.”
펀드운용본부 같은 경우는 사업부 내에서 가장 늦게 구성된 본부였다.
그러다 보니 일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고, 그간 운용 중인 두 개의 펀드를 차질 없이 운용해 가며 이제는 실력이 올라올 만큼 올라왔다고 도경은 생각했다.
“새롭게 펀드를 구성해서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을 뚫는 것이 좋다고 내부적으로 판단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기조대로 미국 시장을 타겟으로 하는 펀드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류태화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웬만하면 국내시장을 타겟으로하는 펀드를 구성할까 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국내 퇴직금 시장과 기타 금융상품 시장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IRP나 ISA로 주식 직접투자는 불가능하니 펀드 쪽으로 돈이 몰리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금저축, 퇴직연금 등등 금융상품들로는 주식에 직접투자가 불가능했다.
물론 ETF를 담을 수 있었지만, 비율상 펀드를 필수로 가입해야 하는 상품도 있었다.
도경은 그 시장을 노리고 싶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펀드로 국내시장에서 수익률 탑을 먹고 난 이후, 미국 시장으로의 투자를 생각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윤 이사가 정말 이제는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군요. 회사 입장에서도 금융상품 수익이 크다 보니 내심 윤 이사의 움직임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류태화는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PM은 펀드운용 본부장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PM은 포트폴리오 매니저를 뜻했는데, 펀드를 구성하고 관리하는 총책임자를 이야기했다.
펀드운용본부장은 본부가 생기며 외부에서 스카웃해서 데려온 사람이었는데, 국내에서는 이력이 나름 괜찮았다.
류태화의 당연하다는 듯한 물음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뇨. 제가 직접 구성할까 합니다.”
“윤 이사가요? PM을 맡겠다는 말입니까?”
“네. 이제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업부를 위해서, 또 저를 위해서, 제가 쌓아온 명성을 이용할까 합니다.”
오랜만에 보는 도경의 강단 있는 말에 류태화는 놀란 듯 두 눈을 뜨고 도경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