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34)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34화(434/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34화
“어서 오십시오.”
며칠 후, 여의도 모처에 위치한 고급 한정식집.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류태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어, 오랜만이네.”
남자는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여오는 류태화를 향해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는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그러고는 자리로 다가왔다.
“앉을까? 반갑게 악수하고 이럴 사이는 아니잖아.”
남자의 말에 류태화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향해 손짓했다.
두 사람 모두 자리에 앉자 잠시 후 식당의 직원이 들어왔고, 음식을 주문한 류태화는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만나 뵙자고 연락드렸는데,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류태화의 말에 물티슈로 손을 닦던 남자는 가만히 류태화를 바라보았다.
“비위도 좋네.”
남자의 말에 류태화는 가만히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니지, 오히려 류 대표 입장에서는 나를 만나는 게 기분이 더 좋으려나? 내가 더 비위가 좋은 건가.”
그렇게 혼잣말을 하던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다시 입술을 뗐다.
“매출 1위 증권사 축하해.”
“감사드립니다. 대표님.”
“어때, 15년을 넘게 1위를 하던 우리 태산을 제치고 1위가 된 기분이.”
오늘 류태화의 약속 상대는 태산증권의 대표 탁인우였다.
탁인우의 물음에 류태화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는데, 악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궁금함으로 묻는 얼굴이었다.
여러모로 탁인우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기쁩니다. 언젠가는 태산을 제치고 1위가 되었겠지만, 그걸 제가 대표일 때 해내서 좋습니다.”
류태화의 말에 탁인우는 무언가 버튼이 눌린 듯 눈썹이 꿈틀했지만,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류 대표, 너나 네 밑에 있는 윤도경이나 정말 내 앞에서 가식이라고는 떨지 않네.”
“대표님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그렇지. 내 앞에서 가식을 떠는 것보다 꼴 보기 싫은 것은 없거든. 피차 우리가 위선을 떨어야 하는 상황은 아니잖아.”
똑똑-
두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준비된 음식이 들어왔다.
상 위에 음식이 차려지고, 직원이 나가자 탁인우는 류태화를 바라보았다.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내기는 싫은데. 본론부터 얘기할까?”
탁인우의 말에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선진을 필두로 한라, DH가 컨소시엄을 구성할 거라는 소문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들었지. 그것들이 아주 깜찍한 짓을 하고 있어.”
탁인우는 진심으로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 말했다.
“뭐야, 류 대표. 지금 겁먹은 거야?”
“저희 유성은 태산과는 다르니까요.”
태산은 온라인 증권업계의 판도를 바꾼 증권사였다.
한창 주식시장이 대면 거래에서 온라인 거래로 바뀌던 과도기 시절에 혜성처럼 등장해 증권업계의 판도를 바꾼 것이 태산이었다.
태산은 빠른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도입해 신생 증권사로서는 이례적으로 엄청난 거래량을 기록했다.
편하고, 빠르고, 초보들도 적응하기 쉬운 디자인으로 태산의 트레이딩 시스템은 각광을 받았다.
“태산처럼 온라인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없습니다. 물론 저희도 온라인 시스템을 도입한 지는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고요.”
토큰 증권의 거래 시스템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나 PC 시스템이 대세가 될 것이다.
“그래서?”
젓가락을 들고 음식을 집어 먹던 탁인우는 진심으로 자신을 찾아온 의도가 무엇이냐는 얼굴로 물었다.
“선진과 한라, DH의 컨소시엄에 대비해서 저희 유성과 함께하시는 게 어떠신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하하하.”
탁인우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두고는 정말이지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이내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아, 미안해. 근데 류 대표 네가 내 입장이 되었어도 이렇게 크게 웃었을 거야.”
“이해합니다.”
“류 대표, ST 시대를 맞이해서 우리는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 그건 유성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렇습니다.”
“그럼 우린 경쟁자가 아닌가?”
40조 원이라는 판돈이 걸린 시장이었다.
그 시장의 파이를 얼마나 가져가느냐, 상대의 파이를 얼마나 뺏느냐에 따라 증권업계의 판도가 다시 한번 요동칠 수 있었다.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 같단 말이지.”
“저는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류태화는 탁인우를 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누가 뭐래도 ST 시장의 준비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것은 태산입니다. 그리고 선진을 필두로 한 컨소시엄이 구성된 이유도 태산을 넘어 1위가 되기 위해서고요.”
업계에서는 설마설마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상대 증권사의 고개를 뺏어오기 위해 혈안이 된 증권업계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을 대비해 협업을 한다니.
그간 없었던 흐름이었다.
하지만, 선진은 이를 갈았는지 전통적인 금융기업들과 힘을 합쳤다.
“그렇다면 태산에서도 대비를 해야 합니다.”
“해야지. 근데 그게 유성과 손을 잡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탁인우는 류태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나? 우리는 온라인 시스템이 강점이라 유성에 줄 만한 노하우들이 있다만, 유성은 우리에게 줄 게 없잖아.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냐는 말이지.”
“대표님.”
탁인우의 말에 류태화는 담담하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희 유성에는 있고, 태산에는 없는 것이 있습니다.”
“…….”
“투자에 관한 노하우입니다.”
류태화가 그리 말하자 탁인우의 미간은 점점 좁혀져 갔다.
“물론 1위를 오랫동안 지킨 태산에게는 조금 무례한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잘 아네.”
“하지만, 객관적으로 이제는 우리 유성의 실력이 태산보다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네. 우리 유성은 오랫동안 WM(개인자산관리)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투자자들의 니즈가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알고 있습니다.”
탁인우는 심사가 뒤틀릴 것 같았지만, 가만히 류태화의 말에 집중했다.
“그 니즈를 바탕으로 그동안 투자상품에 대한 막대한 연구와 투자를 했고요.”
류태화의 말은 사실이었다.
전임 대표인 심주원은 유성이 살길은 개인 고객의 유치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자산관리 부분을 강화했고, 국내에는 유성의 적수가 없을 정도였다.
“태산에겐 없고, 우리 유성에게는 있는 것. 바로 토큰 증권 시대의 투자상품입니다.”
“…….”
“저희는 그동안 주식과 채권 이외에도 부동산, 와인 선물 등 여러 분야로의 투자 중개를 했습니다. 그 속에서 쌓인 노하우는 태산이 가지지 못한 것이고요.”
앞으로 토큰 증권의 시대가 열린다면, 류태화의 입에서 나온 투자자산들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외에도 저희는 음악이나 웹툰, 웹소설 같은 저작권에 대한 투자도 현재 준비 중이고요.”
태산이 플랫폼 구성에 빠르고 유능했다. 반면 유성은 그 플랫폼에서 거래될 자산에 강했고.
“제 생각에는 저희가 힘을 합친다면, 업계를 선두할 겁니다. 그 이후에 저희끼리 싸워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것들부터 떼놓자?”
탁인우의 물음에 류태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싸워도 링 위에서 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류태화가 그리 말하자 탁인우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 * *
“여러모로 모두 어려운 과제를 얻은 기분일 겁니다.”
한편, 도경은 펀드운용본부장 이진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아무래도 그동안 운용과 관련해서만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테마를 찾는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이진규가 그리 말하자 도경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팀원들 너무 질책하지는 말아주시고요. 본부장님이 제게 말했듯 모두가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필요한 일입니다. 앞으로 우리 펀드운용부가 사업부의 중심에 서야 하니까요.”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부 내의 여러 본부가 페어플레이를 하며 서로 경쟁한다면 사업부의 퀄리티가 올라갈 테니까.
동기부여가 가득한 이진규의 말과 몸짓은 만족스러웠다.
“물론 본부장님의 팀 매니지먼트에 크게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제 말은 직원들의 창의력이 죽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진규는 도경이 직원들에게 유하게 대하니 자신은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당한 긴장감이 돌 때야말로 직원들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테니까.
“악역은 제가 되어야 하는데 본부장님께 떠맡긴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네요.”
“아닙니다. 이마저도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이진규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도 따로 준비해 볼 테니까, 회의 자리에서는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는 정도로 하죠. 너무 필터링은 하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이진규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그동안 다들 운용만 하다 보니 힘이 드나 보네.”
도경은 이해한다는 듯 혼잣말을 했다.
가장 유능한 팀원들을 모아둔 1팀이라도 그간 포트폴리오 구성보다는 기존에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관리만 하다 보니 다들 감을 잃은 것 같았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그리 말하며 일에 집중하려던 찰나.
지이잉-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는데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문자메시지가 수신되었는데, 명함 한 장이 전부였다.
[태산자산운용 CIO 하인성]보통 전화를 걸어오기 전 상대가 처음 보는 전화번호에 당황하지 않도록 예의상 보내오는 메시지였다.
지이잉-
연이어 전화가 걸려오자 도경은 묘한 표정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윤도경입니다.”
-윤도경 이사님, 안녕하십니까? 태산자산운용의 하인성입니다.
“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도경의 인사에 수화기 너머에서는 반가운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사님께서 제 이름을 들어보셨다니 영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저를 말씀이십니까?”
-네. 갑작스레 이리 말씀드려 예의가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만, 실례를 무릅쓰고 이사님을 뵈면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꽤 당돌한 하인성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럼 언제가 괜찮으십니까?
하인성의 말에 도경은 책상 위의 달력을 보았는데, 마침 시간은 오늘밖에 없었다.
“오늘 이외엔 다음 주나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잘됐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제가 유성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네. 찾아오신다고 말해두겠습니다. 네네, 그럼 조금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경은 잠시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찾아올 일이…… 설마.”
생각을 하던 도경은 며칠 전, 메시지가 자신에게 해온 말이 떠올랐다.
“태산이랑?”
태산과 유성은 경쟁 상대였다. 그리고 자신과 태산의 대표 탁인우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물론 탁인우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는 도경이었지만, 상대도 그리 생각하냐가 문제였다.
“……만나보면 알겠지.”
그리 혼잣말을 뱉은 도경은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팀장님, 곧 태산에서 손님이 오실 겁니다. 네. 태산자산운용의 하인성 이사께서 오실 테니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도경은 개의치 않는다는 얼굴로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