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3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36화(43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36화
“이해가 가지 않으시죠?”
며칠 후, 도경은 어디론가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펀드운용본부장 이진규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 네? 아닙니다.”
“표정에서 다 읽히시는 편이네요. 본부장님께서는요.”
도경의 말에 이진규는 표정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말씀하셔도 됩니다. 오히려 말씀을 하지 않으시면 제가 더 불편하니까요.”
이진규는 잠시 고민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번 일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누군가와 협업을 하면 포트폴리오도 풍부해지고 배우는 것도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게 왜 태산이냐?”
“……예. 송구스러운 말씀입니다만, 태산은 지금까지 협업의 대상이 아니라 적이라고 생각했던 날이 더 깁니다.”
적이라는 표현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니냐고 이진규는 생각했지만, 마땅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경쟁자라고 하기엔 한때는 유성이 태산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이제는 태산이 유성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말 솔직히 제가 아는 이사님은 그럴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와주시는 분이니까요.”
이진규는 정말 도경이 이 증권업계에서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돕기보다는 배척하고, 정보를 나누지 않는 이 업계의 스탠다드에서 보자면 도경은 별종이 확실했다.
숨기고 배척하기보다는 남들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윗선은 다릅니다. 오히려 더 태산을 견제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요즘같이 우리가 승기를 잡았을 때 태산을 눌러야 하는 게 아닌가…….”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만, 회사에서도 생각이 없이 태산의 제안을 승낙하겠다는 제 말을 따라준 건 아닙니다.”
도경은 옆에서 발을 맞추어 걷는 이진규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해나갔다.
“업계에 도는 소문을 아실 겁니다. 선진의 주도로 컨소시엄이 생긴다는 소문 말입니다.”
이미 업계의 대부분은 아는 소문이었다. 아니, 이제는 기사까지 나와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였다.
“새로운 시장이 열립니다. 그 시장에 대응하기에는 우리 유성 혼자의 힘으로는 너무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요.”
“…….”
“그래서 태산과의 접점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도경 자신은 의도하고 하는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며칠 전 이사회와 대표에게 보고를 할 때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번 일을 반길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왜 하필 태산인가? 라는 생각은 가질 수도 있습니다. 너무도 당연하게요.”
이진규의 말마따나 태산은 유성의 오랜 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높은 곳까지 올라왔고 태산에게 경쟁의식을 가진다면 오히려 우리가 지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도경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이진규를 바라보았고, 이진규는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제가 걱정해야 할 일이 더 남았을까요?”
“아닙니다. 이사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자책하지는 마시고요. 당연한 생각이니까요. 그럼 들어갈까요?”
도경의 말에 이진규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앞에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문이 열리고 도경이 방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사님, 오셨습니까?”
회의실에서 도경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태산자산운용의 CIO 하인성과 그의 팀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윤도경입니다.”
도경은 하인성의 팀원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자기소개를 마친 두 팀은 마주 보며 앉았다.
“먼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준 유성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시작하고 싶습니다.”
하인성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우리 유성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먼저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하고 넘어갈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자신의 말에 도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인성은 입을 열었다.
“가장 협의가 필요한 부분은 아무래도 수익의 분배 부분입니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둘 사이가 나빠질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시작부터 확실하게 정하고 가야 했다.
“자세한 것은 윗선에서 확정하겠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 협의해야 윗선에서도 이견 조율을 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태산에서 생각한 비율이 있으십니까?”
도경의 물음에 하인성은 자신들의 팀원과 눈빛을 교환하고는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6 대 4입니다. 물론 저희가 요청한 것이니 운용 보수에서 40%의 비율을 받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솔직히 50 대 50으로 나누자고 하더라도, 유성에게는 좋았다.
태산의 네트워크를 이용한다는 점도 있었고 더 나아가 유성에게는 새로운 시장을 준비한다는 점에서 태산의 도움이 필요했으니까.
“유성에서 생각하신 비율을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인성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도경의 입으로 향했다.
“5 대 5로 하시죠.”
도경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가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운용 보수는 정확히 50 대 50으로 나누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뒷말도 안 나올 테고요. 대신 조건이 한 가지 있습니다.”
비율을 듣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던 하인성이었다.
저자세로 나가지 말라던 탁인우의 말이 떠올랐었는데, 분명 60 대 40의 비율을 보고 올리면 탁인우는 화를 낼 것이 뻔했다.
“말씀하시죠.”
탁인우는 기쁨을 뒤로하고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펀드 업무의 주도는 저희 유성에서 하겠습니다.”
기실, 태산과의 협업 문제를 윗선에 보고했을 때, 윗선에서 정한 비율은 50 대 50이었다.
태산의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간 결정이었고, 도경은 납득했다.
하지만, 도경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 더 있었다.
“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컨트롤타워가 하나여야 된다는 것을 저는 배웠습니다.”
그간 많은 협업을 거치며 도경이 느낀 점이었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최대의 효율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그 컨트롤 타워가 우리 유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경의 말에 옆에 앉은 이진규는 놀라움을 감추느라 고생했다.
조금 전 자신의 불만이 우스워질 정도로 도경은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도경이 했던 말대로 이미 도경은 태산을 신경 쓰지 않는 레벨까지 오른 것이다.
“…….”
도경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하인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죠. 애초에 저희 측에서 먼저 제안을 한 건이니 그게 맞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조건 조율을 위한 인사 자리는 여기서 끝내고, 다음 주 월요일에 서로 포트폴리오를 가져와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모든 조건이 정해졌으니 바로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도경이었다.
하인성은 자신의 팀원들과 작은 목소리로 도경의 제안을 이야기 나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다음 주부터 함께 일하게 되었으니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다면 가감 없이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도경은 그리 당부 사항을 전하고, 다시 태산의 팀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회의실을 나섰다.
* * *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앉아 있네.”
며칠 후, 여의도 모처.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류태화와 태산증권의 대표 탁인우가 마주 앉아 있었는데, 탁인우는 특유의 말투로 틱틱거리기 시작했다.
“안 나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류태화는 다시 한번 만남을 청하면서도 탁인우가 거절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탁인우는 이 자리에 나왔다.
“그러게, 마음 같아서는 나오지 않고 싶었는데, 류 대표 너도 들어서 알다시피 내가 요즘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어. 네 새끼 때문에.”
도경과 KFSG가 연합으로 공격하며 태산증권의 경영 상태는 매우 힘든 상황이었다.
숨겨뒀던 태산컨설팅에 대한 것들이 계속해서 언론에 나오며 그것을 수습하고, 법적인 것을 방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우리 애들이 또 유성에 손을 벌렸더라고.”
탁인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면 내가 또 류태화를 쌩까면 우리 애들이 답답해질 거 아냐.”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그렇겠지. 류태화나 윤도경이나 나랑은 다른 종자니까. 어쨌거나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탁인우는 무언가 할 말이 있음에도 못 하고 빙빙 돌려 말해오고 있었다.
그것을 느낀 류태화는 가만히 탁인우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저는 유성과 태산이 토큰 증권 시대를 함께 맞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얘기네.”
“제가 듣기로는 선진을 위시로 한 컨소시엄이 내주 공식적으로 출범할 거라고 합니다.”
류태화의 말에 탁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안 될 거라 생각했던, 그저 소문으로만 치부하려고 했던 은행 계열인 증권사들의 연합체가 생각보다 잘 굴러가는 것 같았다.
소문 수준에서 더 나아가 선진증권을 필두로 한 컨소시엄이 출범한다는 확정적인 소식마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이렇게 자존심 싸움만을 하다가는 결국 저들에게 시작을 내주고 말 겁니다. 대표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시작을 내주면…….”
“다 내주는 거겠지.”
락인(Lock-In) 효과가 있었다.
어느 플랫폼이든 처음에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해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되면 이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다른 대안을 선택하지 않았다.
뒤늦게 그 시장에 진출을 하려면 처음에 쏟아붓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투자해야 했다.
“네. 그 파이를 뺏어오고 싶어도 지금 우리가 이렇게 자존심 싸움을 한 대가로 많은 것들을 치러야 할지 모릅니다.”
그저 결단만이 중요하다는 류태화의 이야기였다.
“류 대표.”
“네. 대표님.”
“나도 하고 싶어. 그런데 상황이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아.”
탁인우는 처음으로 진지한 태도를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너야 이사회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온 것이겠지만, 나는 가서 설득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우리 내부에서 유성에 대한 적대감은…….”
탁인우는 잠시 말끝을 흐렸다가 다시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유성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 경영에 내 사심을 담을 수는 없는 일이겠지. 그래서 이렇게 너랑 마주 앉아 있는 것이고.”
“…….”
“물론 네 입장에서는 나만 설득하면 끝이라고 생각했겠지. 지금까지 내가 태산을 그렇게 이끌어왔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탁인우를 설득하면 태산이 넘어올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윤도경과 강성호가 한 짓 때문에 나도 이사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야. 우리 이사회에 지금 KFSG에서 박아둔 사외이사도 들어와 있다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탁인우의 영향력은 그대로였지만, 이전과 같이 자신의 마음대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좀 더 지켜보자고 말하려고 온 거야.”
“거절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아이고, 성격 참 급하네.”
탁인우의 말은 거절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류태화였는데 탁인우는 답답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리 애들이 윤도경 팀이랑 협업을 한다며?”
“그렇습니다.”
“그거 결과를 지켜보자고. 그게 성과가 좋으면 나도 이사회나 회사 내부를 설득할 그게 있으니까. 애들한텐 말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거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그래, 선진한테까지 우리 자리를 위협받고 싶지는 않네.”
탁인우는 그리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가 잘 풀리면 다시 약속을 잡자고.”
탁인우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나가자, 류태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탁인우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