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4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45화(44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45화
“오랜만입니다.”
그날 저녁, 도경은 퇴근 후 오랜만에 메시지가 마련해 준 아지트로 와 있었다.
랩탑 앞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며 도경이 인사하자 화면 너머 두 사람도 인사를 해왔다.
-윤, 오랜만입니다.
-이사님, 귀한 휴식 시간에…….
화면 너머로 화상 회의에 참여한 두 사람은 파미르 캐피털의 CIO이자 리우 샤오의 후계자 윌리엄 마셜과 유성투자증권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의 관리자 이지훈이었다.
“아닙니다. 샌프란시스코에 급한 일이 생겼으니 당연히 이야기를 나눠야죠. 그리고 제가 시간을 맞추는 게 맞고요.”
일과 시간에 날아온 빌의 이메일은 도경의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이지훈이나 빌에게 더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아침이 찾아오길 기다렸다.
“빌,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요.”
도경은 화면 속 빌을 향해 물었다.
빌이 보낸 이메일의 내용이나, 잠깐 이지훈에게 들은 바로는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가 이전과 같지 않았다.
-윤이 한국으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사이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주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도경은 심각한 표정으로 빌의 말에 집중했다.
-이메일에도 적었다시피 많은 회사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고 있습니다.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도경이 샌프란시스코에 처음 갔을 때도, 또 그곳의 일을 잠시 뒤로하고 한국으로 들어올 때도 많은 기업들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고 있었다.
“그건 제가 있었을 때도 같았습니다.”
-네. 같았죠. 그런데 지금과 같은 충격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듣기로는 머지않아 린드그렌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날 겁니다.
빌의 말에 도경은 정말 놀란 것인지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린드그렌이요? 리는 이걸 알았나요?”
도경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지훈을 향해 물었다. 빌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호칭을 달리했다.
-몰랐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좋지 않은 분위기가 떠도는 것은 알았지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리가 죄송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파미르가 먼저 알았다면, 따로 얘기했겠지만 우리도 어제 오후에야 이 정보를 파악했고, 리에게 말하기보다는 윤에게 바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빌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빌의 말에 집중했다.
-윤이 놀란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린드그렌에 관해서는 잘 알겠죠.
“물론입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있기까지 많은 것을 한 기업 아닙니까?”
린드그렌은 100년의 역사가 넘는 백화점 기업이자, 지난 35년간의 샌프란시스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었다.
상대적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빈민가였던 지역에 매장을 오픈한 린드그렌을 중심으로 1980년대에 샌프란시스코는 도심재개발 물결이 일었다.
린드그렌은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만든 지주나 다름없는 기업이었다.
-네. 변화의 물결을 일으킨 기업이죠. 린드그렌의 베팅으로 샌프란시스코의 도심에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들어왔습니다. 우리와 같은 금융기업들도 자리를 잡았고요.
빌은 도경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여러 대기업들도 그곳을 떠날 준비 중이라는 말들을 해오고 있습니다.
심각했다. 혁신의 중심에 선 도시인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하나둘 떠난다면 말 그대로 도시는 전에 없이 빠른 속도로 공동空洞화가 진행될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도시가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거리엔 마약에 찌든 노숙자들만 남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기업들은 하나둘 재택근무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작년부터 기업들이 떠나고 있었다.
기업이 떠나면 당연히 노동자들도 함께 떠난다.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미국 도시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기업이 떠나고, 사람들이 떠나다 보니 린드그렌이나 웨스트필드, 홀푸드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의 매장에서 매출이 감소했습니다.
코로나가 안겨준 샌프란시스코의 어둠이었다.
-텐더로인과 같은 거리에는 이제는 일반인들이 가지 않습니다. 그곳은 마약에 취한 사람들의 소굴이 되었거든요.
텐더로인은 샌프란시스코 내에서도 어둠의 거리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워낙 치안이 좋지 않아 그동안에도 샌프란시스코 내에서 가장 집값이 싼 동네였는데, 근래 이곳에는 마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더더욱 몰려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윤, 샌프란시스코 중심에 있는 내 의견을 이야기하자면 지금 흐름은 이전과는 다릅니다. 샌프란시스코는 점점 고담이 되어가고 있어요.
고담은 히어로 만화인 배트맨이 활동하는 도시였다. 일반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과 범죄들이 ‘고담’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납득이 될 정도로 범죄 도시였다.
-지금은 말 그대로 엑소더스(Exodus, 대탈출)나 다름없어 보입니다. 린드그렌이 떠나겠다는 공식 발표를 하는 순간 그와 관련된 기업들이 모두 떠날 것이고, 망설이던 다른 기업들도…….
“결심을 하게 되겠죠.”
-네. 그래서 급하게 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했습니다.
빌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자 도경은 가만히 화면 속의 빌을 바라보았다.
-우리 파미르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려 합니다.
그리고 빌의 입에서 폭탄과도 같은 선언이 나오자 도경은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거짓이었다.
급작스러운 시기에 자신에게 빌이 연락을 해왔다는 건, 파미르도 그동안 유지해 왔던 기조를 변경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었으니까.
-우리는 변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대로 이곳에 남겠다는 고집을 부렸다가는 도태되고 말 겁니다.
누가 뭐래도 금융기업의 최대 고객은 기업이었다.
기업들이 있어야 금융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었고, 금융기업이 있어야 기업들이 존재할 수 있었다.
두 산업은 물리고 물린 관계였기 때문에 같은 지역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금융기업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스타트업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지금 샌프란시스코의 상황은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의 산업을 지탱해 오던 스타트업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이들과 공생관계인 금융기업들 또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우리 파미르는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대한 일들을 했습니다.
“서부의 월스트리트를 만들었죠.”
도경의 말에 빌은 고개를 끄덕였다.
파미르 캐피털은 샌프란시스코에 자리 잡은 이후, 여러 헤지펀드들과 투자은행, 상업은행들을 끌어모아 샌프란시스코를 서부의 월가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떠나려 합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있는다면 다른 기업들은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할 테니까요.
파미르가 떠난다는 발표를 하면 많은 기업들이 함께 떠나려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린드그렌과 파미르 캐피털이 대지주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두 대지주가 떠난다면 더 이상 샌프란시스코에 남을 이유가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현재 우리는 오스틴과 시애틀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다음 이사회에서 두 도시 중 하나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는 기업들이 향하는 곳들이었다.
남부 텍사스주의 오스틴과 북서부의 시애틀로 많은 기업들이 이전해 가고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윤과 이야기를 나누자고 한 이유는…….
빌은 굳은 표정으로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유성이 우리와 함께 떠났으면 합니다.
* * *
“네, 대표님. 갑작스레 이렇게 일정이 잡혔습니다.”
이틀 후, 도경은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나와 있었다.
이곳은 비즈니스 제트의 전용터미널로 전용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터미널이었다.
-아닙니다. 하필 내가 일본 일정을 하고 있을 때 일이 생겼네요. 전용기는 서울로 돌려보냈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성투자증권의 대표 류태화 또한 현재 해외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초대받아 참석 중이었다.
-말했듯이 샌프란시스코의 일은 모두 윤 이사에게 일임했으니 확실하게 정리하고 돌아오길 바라겠습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결정나든 보고드리고 결정하겠습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몸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류태화와 통화를 마친 도경은 옆 자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함께 가자고 해서 미안해요.”
도경은 이번 출장길을 한다현과 함께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샌프란시스코 내의 스타트업들이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을 해야 했는데, 세계적인 벤처투자캐피털인 세쿼이아에서 일한 한다현의 정보력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에요.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 일에 이사님께서 저를 떠올려 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출국수속을 마쳤다.
그러고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전용기에 올라탔는데, 기장과 승무원이 인사를 해왔다.
“윤도경 이사님,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장과 손을 맞잡은 도경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이 전용기는 유성투자증권 앞으로 되어 있는 전용기였다. 해외 출장이 잦아질 회사 간부들을 위해 그룹의 회장인 한태오가 마련해 준 전용기였다.
일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류태화가 타고 떠났었는데, 도경의 일정을 위해 전용기를 서울로 복귀시킨 류태화였다.
인사를 마친 도경은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고,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이 많으시죠?”
옆에서 들려오는 한다현의 목소리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여러모로 걱정이네요. 이제 겨우 샌프란시스코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런 시련이 올 줄은 몰랐고요.”
“상황이 너무 빠르게 변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세쿼이아도 본사를 옮길 거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라구요.”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쿼이아 캐피털의 본사는 실리콘 밸리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스타트업들이 있었다.
스타트업의 미래에 투자하는 VC인 세쿼이아가 스타트업의 본진인 실리콘밸리를 떠난다면…….
“스타트업들도 실리콘 밸리를 떠나겠군요.”
“세쿼이아가 떠난다면 연쇄반응이 일어날 거예요.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석 달 전만 해도 도경은 자신이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소문도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가서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네요. 일단 비행기에서는 일 생각 하지 말고 좀 쉬자고요. 미국에 도착하면 어마어마하게 바빠질 겁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행기는 어느덧 활주로에 진입해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쩌면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물론 자리를 잡은 지 3개월 만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 자체가 리스크일 수 있었다. 하지만, 도경은 이 또한 다른 기회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신 바짝 차리자.’
도경이 그리 생각을 마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비행기는 활주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 날아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