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52)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52화(452/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52화
“부사장님.”
일주일 후, 도경은 플로리다에서 실무를 담당하고 있던 유성투자증권의 실무팀과 합류했다.
한 호텔의 스위트룸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 겸 숙소로 들어선 도경은 고개를 숙여 신선호를 향해 인사했다.
“윤 이사.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윤 이사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신선호는 도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그 손을 맞잡았다.
신선호와 도경의 인연은 남달랐다. 신라증권을 인수할 당시 실무를 함께했고, 신라자산운용으로 사명을 변경했을 때도 신선호는 대표로 도경을 지지해 주었다.
그 덕에 도경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고, 도경의 성공은 신선호에게 좋은 실적이 되어 본사 부사장직에 오를 수 있었다.
“제가 오히려 부사장님의 지원을 받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하하하,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앉을까요?”
신선호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 우리 윤 이사는 어딜 가든 이슈를 몰고 다니네요.”
“이슈요?”
“오늘 아침 신문 못 봤습니까?”
신선호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있던 플로리다 지역의 신문을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미국 신용등급 강등을 예견했던 남자가 돌아왔다」
「“미국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인 의견으로 바뀔 수도.”」
「유성투자증권 CIO 윤도경, 미국 신용등급 전망 좋지 않게 봐」
「“연준을 믿을 수 있냐는 물음을 시장이 던질 것.”」
「유성투자증권, 샌프란시스코에서 플로리다로 이전하나? 실무협상 중」
그리고 플로리다 지역지는 어디서 소스를 얻은 것인지 유성투자증권이 플로리다주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언론들이 좋아할 말을 던져주었습니다.”
“네. 쇼잉(Show-ing)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실력이 좋다면 당연히 마이크는 따라오겠지만, 이 미국에는 도경과 같은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도경은 한국에서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언론과 스킨십을 늘리는 게 도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보여주기식이라기엔 발언의 여파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선호의 말대로 도경의 말은 트위터를 중심으로 대형 주식 커뮤니티인 레딧의 월스트리트배츠에서도 인기 게시글에 오를 만큼 여러 이슈를 낳았다.
“더군다나 피치사의 미국신용등급 강등을 예견했다는 타이틀이 윤 이사의 이름 앞에 있는데, 이번엔 다른 거대 신용평가사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 거라고 말하니 더더욱 그런 것 같고요.”
“제 발언의 여파를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지금 상황은 확실히 그럴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만약 아니라면 윤 이사의 말의 신뢰가 깎일 수 있습니다.”
신선호의 말에 도경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히려 아니길 빕니다. 언제까지 Bad is Good이라는 시장의 기조가 이어질 거라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더 많은 피해가 생기는 것보다 제 말의 신뢰가 꺾이는 게 낫죠. 피해자가 한 명뿐이니까요.”
도경은 언감생심 자신의 말 한마디에 시장이 좌지우지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노이즈를 내며 시장 분위기에 경종을 울려줘야 했다.
지금은 좋지 않은 소식도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시장을 끌어올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분위기가 계속될 리 없다는 말은 해주어야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이번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부디 아니기를 빌고 있었다.
“하하하, 역시 윤 이사입니다. 자 그럼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플로리다 측에서는 우리에게 이번 혜택을 주고 유성그룹이 플로리다와 연을 맺기를 은연중에 바라는 것 같습니다.”
실무를 하며 플로리다주와 협상을 한 신선호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놀라서 사고회로가 정지되었습니다만, 저들이 우리의 편의를 봐주는 것을 넘어 왜 그런 혜택을 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우리 뒤에 있는 그룹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그룹의 의사는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닌데도요.”
“네. 저들도 알 겁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어떤 편견 없이 무언가를 내주었다는 말을 하고 싶을 겁니다. 추후 유성반도체나 배터리의 공장이 미국에 지어질 때를 대비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것이죠.”
물론 그때가 되면 그룹은 더 좋은 제안을 하는 주를 선택할 것이다.
그것이 사업이니까.
하지만, 플로리다의 입장에서도 아무런 접점이 없는 상태보다는 지금의 거래를 그때 가서 내민다면, 남들보다는 이미지가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 입장에서는 나쁜 게 아닙니다. 처음으로 이 타국에서 그룹의 덕을 보고 있고요.”
도경의 말에 신선호는 피식하고 웃었다.
“어쨌거나 내가 따로 할 일은 없었고, 윤 이사에게 처음 제안한 대로 저들이 계약서를 내밀어 왔습니다.”
“합의서가 아니라요?”
“네. MOU보다는 처음부터 자신들을 선택해 주길 바라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원하는 건 그거 하나입니다. 확실한 선택.”
보통 이런 프로젝트에서는 법적 효력이 없는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여러 가지 옵션을 고려한 이후 계약을 했다.
하지만, 플로리다는 MOU 단계를 건너뛰고, 자신들을 선택해 줄 것을 바라오고 있었다.
자신들의 생각은 바뀔 리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수단이기도 했고.
“이 부분을 회사에 보고했고, 회사는 그룹에 보고를 했습니다.”
신선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도경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룹에서는 오케이 사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져 나오는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더불어 그룹에서는 한 가지 더 제안을 해왔습니다.”
“제안이라면…….”
“마이애미시에서 제공하는 부지에 커다란 빌딩을 짓겠다고요.”
뜻밖의 말에 도경은 놀란 듯 양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오피스를 유성투자증권 미국 지사로 승격하고, 마이애미에 새로 지어지는 빌딩에 유성그룹 미국 남부 지사를 입주시키겠다는 계획도 말해왔습니다.”
“그렇다는 건…….”
“네. 그룹에서는 미국 동남부 지역의 거점을 만들려고 했는데 마침, 이번 제안이 들어와 흡족해하는 눈치입니다. 자금 지원을 할 테니 그렇게 진행하라고 알려왔습니다.”
그룹의 입장에서는 미국으로의 진출이 필요한 타이밍이었다.
미국의 정책이 변하며 미국 내부에 생산시설과 여러 지사들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구실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말로 누구 하나 손해 볼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MOU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계약을 체결하려 합니다.”
“너무 좋습니다.”
“하하하, 윤 이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네요. 어쨌거나 내일모레 마이애미 시청에서 협약식을 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호출하셨군요.”
“주인공이 빠져서는 안 되니까요. 자, 봅시다.”
신선호는 손목에 걸친 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밑에 층에 숙소를 잡아두었으니, 오늘은 휴식을 취하고 내일 오후 1시까지 마이애미 시청으로…….”
띠링-
띠링-
그때, 동시에 도경과 신선호의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이게…….”
신선호는 놀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주시했다.
* * *
“어서들 오십시오.”
마이애미 시청, 시장실.
도경과 유성투자증권의 실무진들은 오늘 이곳을 방문해 협약식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주지사님, 시장님. 오늘 이 자리에 저희를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신선호는 대표로 플로리다 주지사와 마이애미 시장에게 인사를 했고, 두 사람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오히려 유성투자증권이 미국 지사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우리 플로리다와 마이애미를 파트너로 선택해 주어서 플로리다 시민을 대표해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주지사가 그리 말하며 악수를 청하자 신선호는 그의 손을 맞잡았다.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저희 유성투자증권이 플로리다와 함께 성장하는 그림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하하, 매우 좋은 말씀입니다. 그럼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빠르게 진행할까요?”
주지사는 그리 말하며 도경을 바라보았다.
기자들이 기다린다는 말에 속뜻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시장실에 마련된 협약서 앞에서 신선호와 플로리다 주지사, 마이애미 시장 그리고 도경이 섰다.
제일 먼저 주지사가 자리에 앉아 협약서에 사인을 했고, 신선호 또한 자신의 앞에 준비된 서류에 사인을 했다.
“다음은…….”
협약식을 돕는 마이애미시 직원의 안내에 따라 다음은 마이애미 시장이 사인을 했고, 양측은 서로 협약서를 교환한 후 다시 사인을 했다.
이윽고, 협약서에 모든 사인이 끝나자 모두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플로리다와 마이애미의 가족이 되신 걸 환영합니다.”
“영광입니다.”
그리 말하며 주지사와 신선호는 협약서를 교환했고, 손을 맞잡고는 정면에서 자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자, 그럼 모두 사진을 찍은 다음에 브리핑 룸으로 이동하시죠. 기자들이 성화라고 합니다.”
주지사의 안내를 받으며 모두는 마이애미 시청에 마련된 브리핑 룸으로 들어섰는데 도경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일행이 들어서자마자 어마어마한 속도로 플래시가 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가다듬고는 준비된 자리에 앉았고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언론에 협약에 대한 브리핑을 주지사가 진행하고 신선호는 소감을 발표했다.
“이제 질문받겠습니다.”
플로리다주 대변인이 그리 말하자 기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들어 올렸다.
“미스터 윤도경에게 질문입니다.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본다며 하향했는데, 미리 아시던 정보인가요?”
기자의 물음에 도경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기실, 이틀 전 신선호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갑작스레 뉴스 속보가 떴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신용등급 전망이 부정적이라는 것은 최장 3개월 뒤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협약식과 관련한 질문만 해주십시오.”
도경이 곤란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아무래도 이 자리는 유성과 플로리다가 주인공이 되어야 했지, 자신이 주인공이 되면 안 되는 자리였다.
“아닙니다. 나도 궁금한데 한번 들어보죠. 아까 물어보려다 참느라 애썼으니까요.”
그때, 플로리다 주지사가 그리 말하자 순간 기자회견장에 있는 모두가 웃기 시작했다.
플로리다 주지사는 차기 대선후보로 꼽힐 만큼 유망한 정치인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위트 있게 상황을 모면하려는 것 같았다.
도경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번 발표 며칠 전, 미시간대에서 장기 기대 인플레이션에 대한 발표를 한 것을 봤습니다.”
미국의 미시간대는 매달 기대 인플레이션 수치를 발표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소비자가 향후 12개월간 물가상승률이 얼마나 될 것인지 전망을 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기대심리 지수로 단기는 1년, 장기는 5~10년간 물가상승률 기대치를 발표한다.
이 지표는 미국의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 및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많이 참고하는 지표였다.
“5년과 10년 기대 인플레이션 수치가 3.2%를 상회했습니다. 몇십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로 소비자들이 전망을 했더군요.”
더불어 이 수치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를 선행하는 경향을 보였다.
기대 인플레이션률과 실제 물가상승률이 맞아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사실 당장 내일의 물가를 우리가 알 수 없을진대 5년과 10년 후의 물가를 점친다는 것은 결국 ‘너는 얼마나 미국 정부를 믿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결국 소비자들의 심리가 반영되는 지표였다.
“그런데 그 기대 물가상승률이 높다는 것은 미국 정부와 연준을 믿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물가상승을 통제하지 못하고 물가가 치솟을 거라고 모두가 보는 듯했다.
“실제로 미국 의회는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죠. 부채한도를 늘리지 못하고 연방정부가 셧다운된다면?”
도경은 타인의 시선에서 할 수 있는 말들을 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의 부채는 계속해서 늘어가는 중입니다. 내년에 더 많은 이자를 갚기 위해 더 많은 국채를 찍어내야 하고요. 악순환의 연속이고, 이는 미국의 신용등급과 관련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도경이 그런 평가를 내린 것은 미래를 본 것이 아니라 그저 외부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또 전문가로서 내릴 수 있는 평가였다.
“제가 예견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만 이런 전망을 본 것도 아닐 테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런 미래를 알고 대비 중일 겁니다. 제 말을 들으신 분들이 좀 더 앞으로 올 거친 파도를 잘 대비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이야기입니다.”
도경의 말을 기자들이 열심히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도경은 여러 질문들에 답변을 했고, 마지막으로 이번 협약에 대한 질문들을 주지사와 신선호가 답하고는 기자회견이 끝났다.
“후…….”
브리핑 룸을 빠져나온 도경이 한숨을 내쉬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플로리다 주지사는 도경의 어깨를 두드렸다.
“악수 한번 해도 되겠습니까?”
플로리다 주지사의 말에 도경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정말이지 대단한 분석이었습니다. 앞으로 그 능력으로 우리 플로리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 유성을 가족으로 받아주셨으니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말하자 플로리다 주지사는 미소를 지으며 마치 도경에게 힘을 불어넣는 듯 손에 힘을 주었고, 도경 또한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