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5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55화(45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55화
“이사님!”
그날 저녁, 도경은 여의도 모처에 있는 복어 전문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의도 증권가 인물들뿐만 아니라 정치인 등 여의도에서 가장 조용하게 이야기를 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었다.
“선배.”
약속 상대는 최우진이었는데,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도경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최우진의 손을 맞잡았다.
“아니,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대표님 만났으면 사무실에도 오지.”
“직원들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요. 한창 장 마감 전에 제가 가서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요.”
“너무 배려하는 거 아냐?”
최우진은 그런 배려가 기분 나쁘지 않다는 듯 웃으며 코트와 재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춥지?”
“네. 한국이 춥다는 말은 들었는데, 플로리다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더더욱 체감되네요.”
아무래도 플로리다와 샌프란시스코는 각각 남부와 서부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았다.
“살이 좀 붙었네?”
“이래저래 사람들 만나며 맛있는 거 먹어서 그런가 봅니다.”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울은 괜찮았어. 매일 보고서 보낸 거 봤겠지만, PI 부서도 요즘 단타로 재미를 꽤 보고 있고.”
도경이 이끄는 전략투자사업부에는 세 개의 팀이 있었다.
회사의 돈으로 투자를 진행하는 증권투자본부,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 운용본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본부.
최우진이 말한 PI 부서는 증권투자본부 내에 속해 있었는데, 최근 성적이 괜찮았다.
“네, 보고서 봤습니다. 최근에 공매도가 중단되면서 시장이 정말 어려울 텐데, 잘해내고 있던걸요.”
“아우, 말도 마. 하루아침에 갑자기 공매도 금지한다고 해서 데일리 액션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
최우진은 손사래를 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뭐, 우리는 늘 도경 씨가 말한 대로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주어진 시장 상황에서 수익을 내야 하니까.”
“그렇죠. 그런 문제가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없을 일도 아니니까요.”
도경의 지론은 늘 그랬다.
외부적인 변수에 늘 귀를 열어두되 불평하기보다는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번에 실패해도 좋으니까 직원들에게 할 일을 하라고 했지.”
“그러니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역시 선배님이십니다.”
PI 부서는 공매도 금지 첫날 미친 듯 오르는 시장에서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결국 내리꽂을 것이라 봤기 때문이다.
“이번 전망은 훌륭하던데요.”
“맞아. 나도 솔직히 발작으로 오르고 한동안 광기가 계속될 거라고 봤거든. 외국인 물량이 그렇게 많이 빠져나갈 거라곤 예상 못 했던 거지. 대훈 씨가 본 전망이야.”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첫 후배이자 부사수였던 최대훈이 이제는 정말 훌륭한 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무섭게 내리꽂자마자 내릴 주식이 아닌데 분위기 때문에 내린 주식들을 집중적으로 담았지.”
여러 가지 문제가 겹쳐 있었다.
공매도가 금지되어 당분간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 예상한 외국인 자본이 빠져나갔고, 더불어 실적 시즌이 겹치며 실적이 좋지 않은 기업들의 주가가 내리기 시작했다.
코스피와 코스닥 두 종합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하자 두려움에 매도 버튼을 누르는 패닉 셀(Panic Sell) 물량이 쏟아졌다.
“그 왜, 이차전지나 반도체 같은 경우는 내리는 이유가 있잖아.”
“그렇죠. 이차전지는 최근 전기차 판매량이 줄어들었으니까요.”
전기차 판매량이 급감하며 한창 성장하던 전기차와 이차전지, 그리고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결국 완제품인 전기차가 팔리지 않는다면, 나머지 기업들은 당연히 매출이 줄어들 테니까.
“그리고 반도체도 그렇지. 그런데 제약은 아니거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매출이 견조할 걸로 예상되는 곳 몇 곳 담았더니, 결과가 따라주네.”
공포가 가시자, 제자리를 찾아가야 하는 기업들의 주가는 제자리를 찾아갔다.
“잘하셨습니다. 역시 선배님에게 믿고 맡긴 건 제일 잘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앗,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
“앞으로도 직원들의 창의력을 좀 살려주는 방향으로 해주셨으면 해요.”
“이제 뭐 내가 할 거 있나? 이사님이 들어와서 하셔야지.”
최우진의 말에 도경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선배, 다음 달에 정기 인사 있는 거 아시죠?”
“알지. 그룹 전체 인사 아냐?”
유성그룹은 12월을 맞춰 그룹사 전체가 정기 인사를 단행했다.
한 해를 평가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사장단부터 말단 사원직까지 긴장하는 시기였다.
“네. 아마 제가 승진할 것 같습니다.”
“벌써?”
“직급은 그대로 상무이사인데, 직책이 바뀔 것 같아요.”
“뭔데? 우리 사업부 또 승격해?”
“아뇨. 유성투자증권 미국 지사 지사장이 될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놀란 표정으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손뼉을 쳤다.
“축하해!”
“하하하.”
“정말 축하해. 지사장이면 어쨌거나 미국 오피스가 지사로 승격된다는 소문이 사실이겠네?”
“네. 마이애미로 터를 옮기게 되면 바로 지사로 간판을 달 것 같아요.”
“좋네. 그럼 CIO도 겸직이고?”
“네. 미국 한정으로요.”
“미국 한정?”
도경의 말에 최우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우리는? 누가 와?”
“오긴 누가 와요?”
“수석이 있어야 사업부가 돌아가지.”
최우진은 그리 말하고는 목이 마른 듯 앞에 있는 물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물을 살짝 들이켜며 도경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도경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선배가 하실 것 같아요.”
“푸, 푸훕…… 뭐?”
최우진의 자신의 입에서 나온 물이 사방으로 튀자 당황해 냅킨을 뽑아 도경에게 건넸다.
“미안해.”
최우진의 냅킨을 건네는 손은 바르르 떨리고 있었는데,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축하드려요. 선배, 아니, 최우진 이사님.”
도경이 확인 사살을 하듯 얘기하자 최우진은 멍하니 도경을 바라보았고, 도경은 그런 최우진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어서 와. 이번에 아주 큰 일 했어.”
이틀 후, 도경은 유성그룹 본사 회장실에서 한태오를 만나고 있었다.
“회장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도경이 깎듯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한태오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자리로 손짓했다.
“나야 늘 잘 지내지. 요즘 고민이 좀 늘어난 것 빼곤.”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해결 방안이 있을까?”
한태오는 앞뒤 다 자른 채로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아는 도경이라면 이미 자신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테니까.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약이다.”
“네. 현재 고금리와 시중에 현금이 말라가는 기조 때문에 신차를 사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한태오의 고민은 결국 이차전지와 관련된 문제였다.
그룹이 미래 먹거리로 고르고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배터리가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전기차의 수요가 줄어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줄일 건 줄이고, 투자할 곳은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 배터리 사장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구먼.”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었지만, 위기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유성배터리 또한 문제 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응책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자네가 생각하는 줄여야 할 곳은 어딘가?”
“제 생각엔 설비투자를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설비투자를 줄이라?”
“네. 현재 우리는 서산에 아주 큰 라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이상은 현 상황에서 부적절한 투자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 인력 감축은 어떻게 생각하나?”
확실히 회사가 어려울 때 가장 만지기 쉬운 카드가 감원이었다.
“필요하다면 해야겠지만, 저는 라인을 계속해서 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요가 줄었는데 라인을 계속 돌리라고?”
“슬슬 타이밍이 온 것 같습니다.”
도경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한태오는 놀란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았다.
“설마?”
“네. 치킨 게임입니다.”
치킨 게임(Chicken Game)은 마주 보며 달리는 두 차가 충돌하기 직전에 먼저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다.
겁쟁이를 찾는 게임이었는데, 이 업계에서 치킨 게임은 아주 간단했다.
“현재 생산되는 양을 유지하고, 상대의 반응을 보시죠.”
전기차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배터리의 기존 생산량이 유지된다면, 자연스레 배터리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버티겠나?”
“네. 우린 버팁니다. 여전히 3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요.”
유성배터리는 이미 양산차 업체들과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었고, 이는 3년간 유지되는 납품 계약이었다.
“그럼 상대는?”
“못 버틸 겁니다. 제가 알기론 미래화학이 내년까지, 신화에너지가 2년 후에 계약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때 반도체 업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일본 기업들이 D램을 양산하기 시작하며 가격이 낮아지자 인텔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철수했고, 대만의 기업들이 D램을 양산해 내며 당시 세계 2위였던 독일 기업이 파산했다.
이후, 일본과 대만 업체가 치킨게임을 벌였고, 이때 미래전자가 치킨게임에 참여해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서 세계 1위 기업이 되었다.
“치킨 게임이 끝나고 나면 늘 공백이 발생합니다. 그 공급망 혼란이 우리가 가져갈 열매고요.”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잠시 고민을 하다 웃었다.
“한번 이야기 나눠볼 만한 가치는 있는 얘기구먼. 참, 내 정신 좀 봐. 자네만 만나면 늘 그룹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게 되네.”
“제 생각을 회장님께 들려 드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하하하, 빈말은……. 어쨌거나, 고생했어. 이번에 일은 우리 그룹에 꽤 큰 도움이 될 거야.”
도경이 유치해 온 마이애미 부지에는 커다란 빌딩이 올라갈 것이다.
그곳에는 호텔과 테마파크, 유성투자증권의 미국지사와 더불어 유성그룹 계열사들의 미국 지사 혹은 미국 동남부 본부가 자리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 유성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아닙니다. 그룹에서 바른 판단을 내려 일을 진행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는 미국 지사장이 되었으니 미국에서 지내겠구먼.”
“네. 미국에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현이 녀석만 외로워질 테고.”
“자주 보기로 했습니다.”
“뭐?”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놀란 얼굴이었는데, 도경은 의아한 얼굴로 한태오를 바라보았다.
“혹시 다현 씨가 말씀을…….”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 게야?”
한태오의 물음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였고, 한태오는 가만히 도경을 바라보다 이내 크게 웃었다.
“하하하! 아주 좋구먼. 올해 들은 소식 중 가장 기뻐.”
“걱정하시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합치라고 하고 싶지만, 내 꾹 참겠네.”
“이미 말씀하신 거나 다름없습니다.”
“하하하, 자네만 좋으면 나는 허락이야.”
마치 한다현의 의사는 필요 없다는 듯 한태오가 잔뜩 신이 난 말투로 얘기했다.
“다현 씨의 의사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당분간은 정말 바쁠 것 같고요. 후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꼭 회장님께 허락받으러 오겠습니다.”
“허락이고 자시고 필요 없어. 나는 무조건 찬성이니까.”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안 되겠구먼, 그런 좋은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오늘 점심은 내가 사야겠어.”
한태오는 그리 말하며 협탁에 있는 전화를 들어 올렸다.
“호텔 한식당에 전화해 놔. 지금 내가 사윗감이랑 간다고. 그래, 사윗감.”
한태오는 이미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켜며 말했고, 도경은 그런 모습을 보고는 못 말린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정말, 다들 나오지 마시라니까.”
보름 후, 도경은 김포공항 비즈니스 터미널에 서 있었는데, 함께 마중을 나온 어머니, 동생과 함께 걷다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안 나옵니까? 이번에 가시면 언제 들어오실지도 모르는데.”
최우진의 말에 다른 팀원들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주 들어올 겁니다. 본사가 한국에 있는데 어떻게 자주 안 들어오겠어요?”
“그래도 언제 오실지 모르니 인사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경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한 명 한 명의 손을 맞잡았다.
“어제 회사에서 제대로 인사를 못 해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여러분들이 나와주신 덕분에 정말 맘 편히 갈 수 있습니다.”
도경의 말에 몇몇 팀원들은 미소를 지었고, 몇몇은 여전히 울상인 얼굴이었다.
“하하하, 그렇게들 계시면 제가 맘 편히 못 갑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세계에 우리 유성의 이름을 알리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몸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랄게요.”
“이사님 걱정이나 하세요. 아주 그냥 뭐든 갑작스럽게 결정하시는 데는 선수라니까.”
이연지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네. 저는 잘 챙길게요. 여러분들을 믿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가족들과 포옹을 나눴고, 마중 나온 팀원들과도 다시 한번 악수를 나눴다.
“갑니다.”
도경은 짧은 인사를 하고는 출국장으로 들어가다 이내 다시 몸을 돌려 모두에게 손을 흔들었고, 모두가 환한 얼굴로 도경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