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5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57화(45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57화
“실버 포인트에서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며칠 후, 플로리다 탬파.
탬파는 플로리다 서부의 항만도시인데, 주변 여러 도시를 포함해 탬파베이(Tampa Bay)라고 불리는 거대한 대도시 권역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이 자식들이…….”
직원의 보고에 화를 내는 남자는 미국의 유명 헤지펀드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이자 CEO인 짐 카스테야노스였다.
“우리 소피스트가 여기까지 내려온 건가?”
짐의 물음에 직원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는 전 세계 헤지펀드사의 한 획을 그은 곳이었다.
눈앞에 있는 오너인 짐 카스테야노스 또한 전설적인 투자자였고.
“예전 같았으면 실버 포인트의 게리는 내 앞에 바로 뛰어왔을 거야.”
짐의 말에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버 포인트 또한 미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헤지펀드였지만, 짐의 평판은 그 이상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무리해서 남부로 옮기는 게 패착이었던 것 같습니다.”
“뭐?”
직원은 가만히 짐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말 그대로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회사를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무리할 거였다면 더 무리해서 마이애미로 갔어야 했습니다.”
직원의 말에 짐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본사는 뉴욕 월가의 한가운데 가장 비싼 빌딩에 있었다.
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좋지 않아졌고 이에 본사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내 판단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건가?”
“결과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당시 소피스트 내부에서는 여러 후보지가 거론되었지만, 짐은 남부. 그중에서도 요즘 한창 뜬다는 플로리다주를 고집했다.
플로리다 주 정부와도 협상했지만, 그들은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금융 회사들이 대규모로 자리 잡은 마이애미의 땅값과 사무실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올라 엄두도 낼 수 없었고.
그래서 택한 곳이 이곳 탬파였다.
“탬파는 좋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이곳에 자리 잡은 헤지펀드는 소규모 헤지펀드들뿐이고 우리와 협업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
“더군다나 이 업계는 위신을 누구보다 따지는 곳입니다.”
위신은 곧 신용이었다.
위신이 떨어진 곳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게 이 업계의 생각이었고.
“규모가 줄어들어 마이애미도 아닌 탬파로 온 우리를 만나줄 곳은 없을 겁니다.”
직원의 말은 아프게 들려왔지만, 사실이었다.
짐 카스테야노스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해보겠네.”
회사가 이렇게까지 온 것에는 짐의 실패가 컸지만, 어쨌거나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를 만든 것도 짐이었고, 세계 최대 규모의 헤지펀드라는 과거의 영광을 만든 것도 짐의 능력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가 알아서 하게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직원이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을 나가자 짐 카스테야노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바닥에 들어온 지 40년이 넘었지만, 올해처럼 힘든 적은 없군…….”
업계에서 자신의 지위도 예전만 못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지. 구색은 갖추었으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야 해.”
업계의 대세를 따라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로 합류했다.
물론 마이애미나 올랜도 같은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짐은 구색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짐 카스테야노스는 전화를 들어 올려 익숙한 이름을 찾았다.
뚜루루-
잠깐의 통화 연결음이 흐르고 상대가 전화를 받자 짐은 입을 열었다.
“리우, 짐이네. 파미르에 제안할 게 있어.”
* * *
“시장 상황은 작년 말부터 이어진 낙관론이 유지 중입니다.”
한편, 찰리 멍거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도경은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꽤 오래 준비한 미국 지사의 공식 업무가 이제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큰 하락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요.”
도경은 미국 지사의 관리직들과 최근 시장 분위기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네. 잠시 쉬어가긴 하는 분위기지만 대세 상승장이 지속되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시장의 분위기가 좋게 흐르고 있었다.
“중심에는 채권금리의 빠른 하락이 주식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은데. 테일러?”
도경의 부름에 한쪽에 앉아 있던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테일러는 샌프란시스코 오피스에 있을 때 도경의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강연을 보고 여러 조언을 얻었으며, 몸담고 있었던 헤지펀드에서 자신의 의견이 통하지 않자 회의를 느끼고 유성으로 합류한 채권 전문가였다.
오피스가 지사로 승격된 이후 테일러는 채권팀을 이끌고 있었다.
“네. 윤의 말대로 채권 금리의 하락이 주식시장의 상승을 불러온 것 같습니다.”
채권 전문가로서의 시각이라고 혹자는 말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미국의 여러 가지 경제 지표가 침체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서는 한 가지 희망을 가지는 것 같고요.”
테일러 우드의 말에 모두가 집중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기준금리가 내려갈 것이다.”
도경이 자신의 말을 받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지금까지 기준금리를 끌어올린 이유는 시장에 도는 돈을 막기 위함입니다.”
기준금리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정하는 금리였다.
기준금리가 0%대라면 낮은 이자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었고, 반대로 금리가 낮으니 저축보다는 투자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말해 기준금리가 낮다는 것은 시중에 돈을 풀어 경제 활황을 기대할 수 있었다.
“재작년부터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기준금리를 천천히 올려도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이 잡히지 않으니 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렸습니다.”
기준금리를 올린다면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 아주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돈을 저축하면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으니 돈을 쓰기보다는 저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금리를 올린다면 시중에 도는 돈들이 사라지게 되고 이는 소비를 막아 물가상승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채권금리도 기준금리와 덩달아 몰랐습니다.”
당연히 국가나 기업에서 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리려면 기준금리보다는 높은 이자를 지급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채권의 이자도 가파르게 올랐고.
“하지만, 미국의 최근 경제지표들이 전부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는 윤의 말대로 기준금리를 슬슬 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로 작용하는 것이고요.”
채권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는 시장이었다.
곧 기준금리가 내릴 것 같으니 현재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만기가 긴 채권들에 돈이 몰리면, 당연히 채권 이자는 내려갔다.
“그렇다면 채권 전문가로서 테일러의 의견은요?”
“조금 경계하며 관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도경은 가만히 테일러의 말에 집중했다.
“채권 금리 하락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시장의 기대감이 너무 빠르게 앞서고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테일러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도 다릅니다. 채권은 차치하더라도 주식시장에서 우리는 좀 더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는 플레이어입니다.”
도경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시장이 과열되었다. 시장이 미친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 시장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좋겠죠.”
어쨌거나 시장을 떠날 수 없는 몸이었다.
매번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팔짱을 끼고 관망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이 시장을 이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이었다.
도경이 그리 말하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위를 떠나 이 방 안에서 가장 시장에 대한 넓은 인사이트를 가진 도경의 말이었으니까.
딱히 반박할 거리도 없었고 말이다.
“정리하겠습니다. 일단 채권 시장은 테일러의 말처럼 경계하며 관망하겠습니다.”
예측하고 움직이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움직이더라도 수익을 못 보는 것은 아니다.
수익률은 결국 엑시트(Exit, 탈출) 타이밍이 결정하는 것이니까.
“주식시장은 조금 적극적으로 나서겠습니다. 리가 각 팀과 회의를 거쳐 롱이든 숏이든 여러 방향으로 고려해서 진행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도경의 말에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다들 창의성을 죽이지 마십시오. 뭐든 좋으니 이야기하고 조율을 거쳐봅시다.”
도경의 당부를 마지막으로 회의가 끝이 나고, 모두 사무실을 나서자 도경은 길게 심호흡했다.
본격적으로 지사가 출범하고 첫 투자를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당분간 좀 많이 바쁠 것 같은데.”
지이잉-
그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도경은 반사적으로 책상 위에 있는 휴대전화를 들어 올려 화면을 확인했다.
“오랜만이에요.”
화면을 확인한 도경의 얼굴에는 화사한 미소가 번졌다.
“4개월 만인가요? 찾아도 아무런 말이 없으시더니.”
알림의 주인공은 메시지였다.
미국으로 넘어오고 지사 사무실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도움을 얻을까 싶어 불렀을 때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어 보였기 때문에 불필요하게 윤도경 씨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부르라고 하셨잖아요.”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메시지의 말이 반복되자 도경은 졌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어요. 그럼 지금 저를 찾으신 걸 보면 제가 도움이 필요한 상태인가 보죠?”
도경의 물음에 화면 속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더욱 깊이 있는 투자를 해야 할 시간이 왔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말해오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도경은 가만히 집중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찰리 멍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찰리 멍거의 이야기가 나오자 도경은 숙연해짐을 느꼈다.
-모든 투자 결정에는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요소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숫자가 매겨질 수 있는 자료만을 과대평가한다.
도경도 언젠가 찰리 멍거가 한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숫자는 투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투자를 결정하는 데는 그보다 더 측정하기 어려운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말이었다.
-찰리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우리는 숫자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고 믿고 있습니다.
도경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지는 않습니다.
“숫자를 만지는 게 사람이라면요.”
도경의 말에 화면 속 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것을 만지는 사람이 거짓을 이야기할 뿐이죠.
“…….”
-우리는 숫자의 무결성을 믿되 그 속에 숨겨진 의도를 봐야 합니다.
메시지가 말한 심도 깊은 투자의 시간이라는 말을 도경은 이해할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을 파악하세요.
투자 대상에 대해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파악하라는 말은 가장 단순했지만, 몹시 어려운 주문이었다.
-그리고 승산이 높은 것에 베팅하세요. 그것이 윤도경 씨와 유성투자증권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메시지의 말에 도경은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가장 잘하는 거네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길을 알려줘서 고마워요. 열심히 해볼게요.”
-그런 윤도경 씨의 자세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언제나 늘 곁에서 응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팟’ 하는 소리와 함께 애플리케이션이 종료되었고, 도경은 다시 한번 마음을 바로잡고 길게 심호흡을 했다.
“더 많은 것들을 봐야겠는걸…….”
지이잉-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다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전화를 받았다.
“리우, 윤도경입니다.”
알림의 주인공은 리우 샤오였다.
-윤, 다시 한번 찰리의 마지막을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그 자리에 참석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다행이군요.
수화기 너머 리우는 인자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것이 있어 연락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플로리다에 있는 친구를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윤도 찰리의 장례식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짐 카스테야노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도경은 의아한 얼굴로 리우의 말에 집중했다. 짐 카스테야노스는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양 행동했었는데 리우가 그를 소개하는 이유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리우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고, 이야기를 들은 도경은 잠시 고민했다.
-물론 윤이 꺼려진다면…….
“아닙니다. 만나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연락처를 보낼 테니 연락해 보세요.
“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리우와 인사를 하고 전화를 마친 도경은 곧이어 도착한 리우의 메시지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 메시지에 적힌 연락처로 통화를 걸었다.
뚜루루- 딸칵-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지나고 상대가 전화를 받자 도경은 입을 열었다.
“유성투자증권의 윤도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