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5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58화(45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58화
“짐 카스테야노스라…….”
다음 날, 도경은 마이애미 모처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 앉아 약속 상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상대는 한때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헤지펀드라고 불렸던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대표이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짐 카스테야노스였다.
“우리가 짐 카스테야노스를 만난다고 해서 이득이 있을까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민하던 도경은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오늘 이 자리에는 이지훈과 함께 나왔다. 상대가 업무적인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글쎄요. 저도 그게 걸리긴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짐 카스테야노스의 영향력이 아직 업계에 있을지는 몰라도 우리에게는 이득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지훈은 냉정한 말투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가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은 무려 20년 전입니다.”
짐 카스테야노스는 그리스 이민자 집안 출신의 미국인이었다.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한 짐은 거대 증권사에 취직해 업계에 적응했다. 그리고, 1980년대 후반 회사를 뛰쳐나온 그는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를 만들었다.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등장은 업계 모두에게 놀라움을 주긴 충분했습니다. 업계에 들어와 이 바닥의 역사를 공부할 때 빠지면 안 되는 이름으로 남았으니까요.”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는 획기적이었겠죠.”
“네, 공매도란 시스템이 있었지만, 유명무실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주력으로 삼는 헤지펀드가 탄생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을 테니까요.”
80년대에도 공매도로 수익을 올렸고, 이를 이용하는 헤지펀드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직 공매도만을 주력으로 삼는 헤지펀드는 없었다.
그 판을 바꾼 것이 짐 카스테야노스의 소피스트였다.
“짐의 실력은 뛰어납니다. 어디까지나 80년대의 기준으로는요.”
이지훈은 냉정한 평가를 계속해서 내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빠른 머리 회전과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능력으로 판도를 바꿨죠. 특히 세계 기업사에 길이 남을 사건을 만든 사람이니까요.”
“엔론 말씀하시는 거죠?”
도경의 물음에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엔론은 미국의 건실한 천연가스 기업이었다. 안정적으로 에너지 산업으로 돈을 벌며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단 한 명의 CEO로 바뀌기 시작했다.
“엔론은 엉망인 기업이었습니다. 새로운 회장이 멀쩡한 사업을 뒤로하고 혁신기업으로 변하겠다고 선언했으니까요.”
멀쩡하게 돈을 잘 버는 에너지 기업이었던 엔론은 신임 회장이 기업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성장이 느리다는 핑계였죠.”
“네. 하지만, 에너지 기업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에서 버는 돈으로 배당을 하는 것이 옳은 사업이었죠.”
이지훈의 말마따나 에너지 기업들은 고정적인 매출로 주목을 받는 산업 섹터였지 성장을 원하는 섹터가 아니었다.
신임 회장의 생각은 그런 기저에 깔린 생각과 달랐고, 혁신기업이 되겠다며 금융과 통신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공적이었죠. 어디까지나 재무제표상으로는요.”
도경은 씁쓸한 듯 말했다.
엔론의 금융과 통신 등등으로의 산업 진출은 성공적이었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며 기업은 고성장했다.
하지만, 단 하나 통신 산업으로의 진출은 실패했다.
이미 레드오션이었던 미국 내 통신 산업은 엔론에게 어마어마한 적자를 안겨주었다.
“분식회계를 했으니까요.”
엔론은 통신사업에서 나온 적자를 모두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유령회사.
다시 말해 페이퍼 컴퍼니로 떠넘겼다.
더불어 당시 닷컴버블이라는 시류에 편승해 여러 가지 재무제표를 조작해 주가는 1주당 90달러에 달할 만큼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네. 그 부분을 짐은 꿰뚫어 본 거죠.”
짐 카스테야노스는 그 부분을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했다.
재무제표를 보는 데에는 뛰어난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엔론의 수익은 급격하게 올랐지만, 현금흐름은 늘지 않았습니다.”
매출이 늘면 당연히 현금흐름도 좋아져야 했으나 엔론은 그러지 못했다.
“더불어 수익을 부풀리는 것의 대부분이 사업 수익이 아닌 파생상품 투자에 의한 수익이었고요.”
당시엔 이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엔론의 가파른 성장에만 관심이 팔린 상태였었다.
자고 일어나면 올라 버리는 엔론의 주가에 단체로 정신이 나갔었고, 누가 먼저 엔론의 주식을 사서 더 많은 수익을 보느냐에 모든 것이 집중되었던 시기였다.
“짐은 누구보다 빠르게 알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엔론의 거품은 꺼질 것이라고요.”
실제로 짐 카스테야노스는 9월경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가 가진 현금 대부분으로 엔론의 주식에 공매도를 했다.
그리고…….
“짐이 포지션을 잡고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모든 것이 밝혀졌죠.”
짐은 이 공매도로 7억 달러(한화 약 9,200억 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전까지 공매도는 그저 도박이라는 평가 받았습니다만, 이 사건 이후 공매도는 주가가 과대평가된 기업을 찍어내는 투자 기법이 되었고요.”
이지훈의 말마따나 공매도에 대한 투자자들의 평가가 달라짐과 동시에 짐 카스테야노스는 월가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짐은…….”
이지훈은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멀리서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경과 이지훈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갑습니다.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짐 카스테야노스입니다. 이쪽은 수석 투자전략가인 필립이고요.”
짐은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고, 도경은 짐의 손을 맞잡았다.
“유성투자증권의 미국 지사장 윤도경입니다. 여기는 이지훈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 부지사장)입니다.”
도경은 인사를 마치고는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앉으실까요?”
도경의 말에 모두는 자리에 앉았고, 짐은 도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오마하에서 잠깐 스쳐 지나가 제대로 인사를 못 했습니다.”
찰리 멍거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짐의 거만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윤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잘 보일 걸 그랬습니다.”
짐은 농담 투로 이야기해 왔지만, 도경은 전혀 농담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때의 짐과 지금은 행동과 말투가 달랐으니까.
하지만, 굳이 그런 것을 내색할 필요가 없다는 듯 도경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월가의 영웅인 짐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우리 유성과 소피스트가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도경의 말에 짐은 흡족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리우에게서 윤을 소개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실망했습니다.”
짐의 말에 순간 이지훈의 표정이 굳어갔다.
유성이 먼저 만나자고 한 것도 아니었고, 그저 저들의 필요로 인해 만나는 자리인데 짐이 선을 넘는다 생각했다.
아무리 업계의 스타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 기운을 느낀 것인지 짐은 크게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하하, 윤을 욕하자는 게 아닙니다. 그 이후 윤에 관해 알아보니 엄청나더군요.”
짐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과장된 소문들뿐입니다.”
“아닙니다. 실로 여러 일들은 나도 놀랐습니다. 특히 피치의 신용등급 강등을 예견한 것은 가장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업계에서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신용등급 강등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예견을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 파급력을 잘 아니까.
하지만, 눈앞에 앉은 도경은 그 모든 것들을 자신 있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야기했다.
그런 점에서 짐은 도경을 인정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는 최근 여러 방면으로 투자 대상을 늘리고 있습니다.”
“투자 방법을 바꾸셨습니까?”
도경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더 이상 공매도 하나만으로는 고도화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짐은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 물론 공매도 옵션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 옵션을 투자 대상으로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 여러 투자 제안을 받았고, 이런 시장에서 우리와 함께 합작으로 투자를 할 대상은 찾고 있었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리우가 미리 언질을 준 것도 있었지만, 이 자리에 나올 때 짐이 자신이나 리우를 필요로 할 일이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론을 먼저 이야기할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고, 짐은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상장 전 기업에서 투자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기업에서는 최대한 많은 헤지펀드의 투자를 끌어내 상장 성공을 원하는 것 같은데.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 * *
“한없이 오만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출근을 한 도경은 전날 있었던 짐과의 만남에 관해 이지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좀 그런 모습이 없잖아 있었죠.”
도경은 이지훈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한 말투로 공감했다.
전날 사업 이야기 이후, 식사를 할 때 짐은 끊임없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마치 과거에 빠져 사는 사람 같았습니다. 물론 짐은 대단한 사람 입이다.”
이지훈은 도경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 같은 사람은 꿈도 꿔보지 못할 부를 이루었고, 성공한 커리어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패 이후에도 그런 모습을 하고 있다는 건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이지훈이 말한 실패는 하나였다.
“지금 소피스트 어소시에이츠의 모습은 예전과 다릅니다.”
“단 한 건의 실패 때문이죠.”
“네. 테슬라 공매도 때문입니다.”
짐 카스테야노스는 테슬라의 주가가 과열되어 있다고 봤고, 테슬라는 실패할 거라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테슬라 주식에 공매도를 했다.
그때 그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여준 것이 없음에도 시가 총액은 미친 듯 오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테슬라는 성공한 기업이 되었고, 주가는 더더욱 올랐다.
“그 실패를 하고도 짐 카스테야노스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공감합니다.”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짐은 자신의 투자 전략에 대해 굉장히 확신을 가지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이전의 실패는 없다는 듯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제 이야기를 나눈 짐의 모습은 그러했다.
“더불어 시장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고요.”
그 자리에서 짐은 계속해서 지금 시장이 잘못되었다고 도경을 향해 말해왔다.
과거의 성공한 경험은 그의 투자 철학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변하기에 이제는 많이 늦은 사람인 것 같았다.
도경의 말을 듣던 이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지사장님과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짐 카스테야노스 때문인가요?”
“네. 께름칙합니다.”
“하하하, 지훈 본부장님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짐과 그가 추천한 기업은 별개의 것이니까요.”
도경은 굳은 얼굴로 이지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만에 하나 짐이 추천한 기업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은 기업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쓰레기 같은 기업일 수도 있죠.”
이지훈은 가만히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판단을 짐이라는 인물 때문에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짐에게 실망을 해서 적절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럴 수 있죠. 짐 카스테야노스를 배제하고 기업에 대한 것만 조사해 봅시다. 어떻습니까?”
“네. 리서치 부서와 함께 조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지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이지훈이 방을 나가자 도경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지훈 본부장한테 말한 것을 나한테도 적용해야 하는데.”
이지훈에게는 짐과 그가 소개한 기업을 별개로 두고 보자고 했지만, 도경 자신 또한 짐 카스테야노스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이지훈에게 한 말은 자신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생각할 시간에 움직이자.”
생각이 계속된다면, 오히려 좋지 않은 방향으로만 계속 생각할 것 같아 움직이자고 마음먹은 도경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익숙한 번호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 윤도경입니다. 하하하, 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뵈러 갈까 하는데 오늘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메시지로 보내주시면 바로 찾아뵙겠습니다.”
전화를 마친 도경은 옷걸이에 걸쳐둔 재킷을 챙겨 들고는 사무실을 나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