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66)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66화(466/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66화
“뭐라고 했죠?”
며칠 후, 유성투자증권 미국 지사.
휴게실에 앉아 간단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점심을 먹던 도경은 고개를 들고 이지훈과 김우혁을 바라보았다.
“아, 며칠 후에 마이애미 바젤이 열린다고 하더라고요.”
“아, 마이애미 바젤이요.”
마이애미 바젤은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였다.
아트페어는 세계 주요 도시에서 열리는 미술 장터였는데, 그림을 사고파는 마켓이다.
그중에서 ‘아트바젤’이라 불리는 아트페어가 가장 유명했는데, 스위스 바젤과 파리, 홍콩,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행사였다.
도경의 반응에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 있으셔?”
김우혁은 작은 목소리로 이지훈을 향해 물었는데, 이지훈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평소 같았으면 누구보다 관심을 가질 도경이었다.
토큰 증권 시장이 열리며 미술품 시장에도 활기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책을 그리 재미있게 읽으세요?”
이지훈은 도경을 가만히 바라보다 물었고, 도경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책의 표지를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레이 달리오의 책이네요?”
레이 달리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펀드 매니저였다. 브리지워터라는 헤지펀드를 창립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했고, 전 세계 부자 순위에서도 100위 안에 드는 거물이었다.
“네. 레이 달리오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길래 브리지워터를 그렇게 큰 회사로 만들었을까 궁금하기도 해서요.”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책을 많이 읽으신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점심시간에 독서를 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글쎄요. 요즘 뭐가 그리도 바쁜지…….”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다시 책에 집중했다.
이지훈과 김우혁은 별일이 다 있다는 표정으로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유성투자증권 미국 지사의 관리자였는데, 도경이 그렇게 바쁘다면 자신들도 바빠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지사는 지사장이 휴식 시간을 이용해 독서를 해야 할 만큼 바쁜 일은 없었다.
지이잉-
그때, 도경의 손목에 걸친 스마트워치에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식사 편하게 하세요.”
도경은 두 사람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휴게실을 나섰다.
“뭐지? 우리 뭐 프로젝트하고 있어?”
김우혁은 본부장으로서 모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이지훈을 향해 물었고, 이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지사장님께서 개인적으로 무언갈 하고 계시는 것 같네요.”
“뭐지? 궁금하네. 늘 여유가 넘치던 양반이 저렇게 바쁜 걸 보니 나도 바빠야겠다 싶기도 하고.”
“궁금해하지 마세요. 보스가 저러는 건 다 이유가 있겠죠.”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밥이나 마저 먹자.”
김우혁이 그리 말하고 자리에 앉자 이지훈은 잠시 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
* * *
“책을 보면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네.”
도경은 유성그룹 내부의 CEO 양성 교육과정인 ELP의 교육생으로 합격하기 위한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며칠 전, 이메일을 받은 이후부터 여러 대가의 책을 읽으며 그들이 어떻게 업계 1위에 올랐는지를 배웠는데, 힌트를 얻지는 못했다.
“그분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자리에 오른 거니까.”
시험 주제인 ‘유성그룹이 대한민국 재계 1위에 오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되지 못했다.
“애초에 시험 주제도 1위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과정에 관해 묻는 것도…….”
문항이 애매했지만, ELP를 위한 후보로 뽑혔다면 누구든 질문의 요지를 알아들었을 것이다.
방법이 아니라 경영 과정에 관해 묻는 것이 시험의 요지였다.
“일단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니…….”
도경은 하루를 쪼개어 업무와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업무 시간에는 업무가 우선이었다.
지이잉-
업무를 다시 시작하려던 그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도경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 윤도경입니다.”
-윤 지사장 많이 바쁩니까?
수화기 너머 목소리의 주인공은 유성반도체의 미주지사장 김동섭이었다.
“아닙니다.”
-그럼 내일모레 일정이 괜찮겠습니까?
“내일모레 말씀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도경은 테이블 위에 있는 다이어리를 펼쳐 자신의 일정을 확인했다.
김동섭이 말한 날은 주말이었는데, 그날은 일정이 없어 집에서 시험 준비를 하려던 날이었다.
도경은 얼마 없는 휴일을 이용하려 했던 것인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김동섭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정이 없습니다.”
-잘됐네요. 내가 그날 마이애미에 가는데 같이 행사에 가지 않겠습니까?
“행사요?”
-네. 그날이 마이애미 바젤의 개막일이라.
“아, 마이애미 바젤이요.”
-윤 지사장도 잘 아나 봅니다.
“아닙니다. 언뜻 들어서요. 네. 알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그날 봅시다.
“네.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도경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다이어리에 김동섭과의 약속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 * *
“이야, 이게 무슨 차입니까? 번호판을 보고 윤 이사라는 걸 알았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행사가 열리는 마이애미 비치에 있는 한 컨벤션센터의 입구에서 만난 김동섭은 차에서 내리는 도경을 향해 물었다.
“번호판은…… 그렇게 됐네요.”
“잘 샀습니다. 결국 미국은 자본주의의 나라거든요. 상대가 타고 다니는 차를 누구보다 신경 쓰는 나라이기도 하고요. 키는 저기 저 친구에게 주면 차를 주차해 줄 겁니다.”
김동섭의 말에 도경은 자신의 차를 대신해서 주차해 줄 미주지사 직원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키를 건넸다.
“유성반도체 미주지사는 주말에도 일하네요.”
“하하하, 지금 나보고 악덕 상사라고 하는 겁니까?”
김동섭의 말에 도경은 미소로 대신 답했다. 농담이라는 것을 김동섭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말에는 쉽니다. 대신 오늘은 특별 업무가 있어서 그런 것이죠.”
“아트페어에 말씀이십니까?”
“네. 유성행복재단 아시지요?”
“물론입니다.”
유성행복재단은 유성그룹의 사회공헌 재단이었다.
기부는 물론이거니와 재단 계열법인에 사학재단도 있어 교육에도 투자했고, 문화재단 산하에는 여러 미술관이 있었다.
“문화재단에서 오늘 이곳에 그림을 사러 출장을 왔거든요. 그 친구들은 미주지사가 없다 보니 우리가 업무 지원을 하는 거고요.”
“지사장님께서 직접 나서십니까?”
“하하하, 그런 건 아닙니다. 나는 오늘 윤 이사를 만나러 왔지요.”
김동섭의 말에 도경은 의아하다는 얼굴이었고, 김동섭은 피식 웃었다.
“저번 만남에서 내가 헤어지기 전에 한 말 기억합니까?”
“……아, 네.”
“연락받았습니까?”
자신의 물음에 도경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머뭇거리자 김동섭은 도경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NDA에 대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NDA에도 적혀 있겠지만, ELP를 수료한 사람이나 같은 동기들끼리는 존재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적혀 있으니까요.”
김동섭의 말에 도경은 놀란 얼굴로 김동섭을 바라보았다.
“왜요. 나는 ELP를 안 받았을 것 같습니까?”
“아! 아닙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도경은 자신을 자책했다.
생각해 보면 김동섭은 이미 시험을 봐야 할 거라며 이야기했다.
그렇다는 건 ELP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작년 기수였습니다. 11기요.”
김동섭과 도경은 박람회장을 걸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람들의 말소리에 나누는 이야기들이 전부 흩날려지는 장소였는데, 비밀 이야기를 하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시험에 참여하라는 연락 받았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룹이 참 영악하지 않습니까?”
김동섭의 말에 도경의 얼굴은 밝아졌다.
기실 이메일을 받은 이후 자신의 처지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 답답했다.
그런데 그런 처지를 알아주는 이의 등장이 어찌 이리 반가운지…….
“비밀 유지는 물론이고……. 참, 비밀이 어떻게 지켜지나 싶겠죠?”
“네. 사실 NDA 하나로 비밀이 지켜지려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윤 이사는 왜 내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NDA를 작성했으니까요.”
“하하하.”
김동섭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도경은 비밀 유지서약서 하나로 되겠냐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비밀을 지킨 이유는 그 서약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아마 그 이메일을 받은 직원들은 대부분 본부장급 이상의 레벨이겠죠. 우리 레벨쯤 되면 계약서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자가 되면 결재서에 사인을 하는 것조차도 함부로 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런 비밀주의가 선택받았다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주죠. 그런 것들이 비밀이 지켜지는 이유입니다. 저도 이메일을 받기 전까지는 ELP의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까요.”
“네. 저도 처음 알았습니다.”
“어쨌거나, 작년에 내가 이메일을 받고 정말 힘들었던 건 누구에게도 조언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이겨내고 교육생이 되셨고 수료도 하셨네요. 역시 대표님이 존경스럽습니다.”
도경의 말에 김동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같은 처지가 된 후배를 만나면 한마디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
“윤 이사,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도경은 김동섭의 말에 집중했다.
“물론 매년 시험 주제는 달라지는 것 같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정답이 없는 시험입니다.”
그렇다.
도경이 받아 든 시험의 문제는 그 누구도 정답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아니, 아예 정답이 없는 시험이었다.
“그렇다면 출제자의 의도를 봐야겠죠. 그룹에서는 무엇을 원할까요?”
“……그룹에서 원하는 것이요?”
“ELP는 미래에 계열사의 CEO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렇다면 윤 이사의 경영 능력을 미리 보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요?”
김동섭은 짧게 말하고는 자신의 임무가 끝났다는 듯 걷기 시작했고, 옆에서 따라 걷는 도경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했다.
“하하하.”
김동섭은 그런 도경의 모습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자신의 짧은 말이 도경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이다.
* * *
[재계 2위인 유성그룹이 재계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프레젠테이션하십시오.]“결국 과정을 말해야 하는 거야.”
다음 날, 도경은 마이애미에 있는 집의 서재에 앉아 있었다.
랩탑의 화면에 띄워둔 시험 주제를 보며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전날 만난 김동섭의 말은 아주 충분한 힌트가 되었다.
“과정은 즉, 경영방식을 이야기하라는 것이고.”
도경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결국 답이라는 걸을 알았다.
“내가 CEO가 되면 어떤 경영을 할 것인가…….”
그렇게 혼잣말을 읊조리며 고민에 잠겼던 도경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키보드에 양손을 올리고는 자신만의 것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