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6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68화(46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68화
한낮의 유성그룹 회장실은 고요했다. 통유리로 된 창으로 햇볕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회장실 안은 왠지 모르게 어두운 분위기였다.
넓은 책상에는 세 사람이 둘러앉아 있었는데, 회장 한태오와 그룹 본사의 CEO 그리고 기획실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세 사람은 조금 전까지 회의실에서 열린 ELP 교육 후보생들이 진행한 발표를 듣고 있었다.
“거참…….”
회장실 안에 퍼지던 정적을 가르는 소리가 한태오의 입에서 나오자 두 사람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조금 전에 회의실에서는 감정이 올라와서 그리하긴 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합격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태오의 물음에 기획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회사에서 낸 문제의 요지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발표자입니다.”
기실 이들은 ELP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합격자들을 논의 중이었는데, 도경의 차례가 되자 고민에 잠겼다.
“그렇지. 시험에는 가장 충실했지.”
기획실장의 말마따나 도경은 출제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지켰다.
다른 후보생들은 1위라는 단어에 집착했지만, 도경을 포함한 몇몇 후보생들은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경영방식을 제안해 왔다.
“자네, 괜찮나?”
한태오는 미소를 지으며 기획실장을 향해 물었다.
“자네보고 밥그릇 내놓으라고 하는데, 합격시켜서 괜찮겠냐는 말이야.”
도경은 발표에서 기획조정실의 권한을 축소하겠다고 말했다.
“글쎄요. 그게 될지 모르겠어서. 어떠한 감정도 들지 않습니다.”
“그럼 그 내용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한태오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기획실장을 향해 물었다.
“우리 유성그룹에는 크게는 일곱 개의 주요 계열사가 있고, 그 밑으로 마흔세 개의 자회사들이 있습니다.”
기획실장이 그렇게 운을 떼자 두 사람은 집중했다.
“이곳을 하나처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저희 기획조정실의 일입니다.”
컨트롤 타워라고 표현하기엔 기획조정실은 하는 일이 많았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수많은 악기가 하나의 소리가 되도록 조율했고, 때로는 그룹의 미래를 위해 비전을 제시했다.
가령, 한때 화학, 정유, 텔레콤만이 유성이란 기업을 이끌던 때가 있었다.
“기획실은 유성의 모든 것입니다.”
기획실은 그렇게 가다간 유성에는 미래가 없을 것이라 보고 반도체 회사 인수와 제약, 배터리 등의 진출을 미래 비전으로 제시했고, 그것은 지금 유성의 모든 것이었다.
“그렇지. 비디오테이프 클리너와 교복만 파는 것들이 무슨 반도체를 하냐고 비아냥을 들었던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 게 선대 회장님과 기획실의 작품이지.”
한태오의 말처럼, 유성은 화학섬유 회사였었다. 7~80년대만 해도 재계 순위에도 들지 못했던 지금의 유성을 이룬 것은 수직계열화와 기획실을 정점으로 둔 경영매니지먼트 시스템 덕분이었다.
“자네는 어때?”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대표를 바라보았다.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이름에서 권력이 나온다는 부분이 말입니다.”
대표는 한태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이 자리에 있으면서 각 계열사의 대표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물론 지주의 대표는 각 계열사의 CEO들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정 대표, 자네에게?”
대표는 계열사의 경영에 그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는 위치였다. 직함은 지주사의 CEO였지만, 그가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자리에서 가장 권한이 낮은 사람이었다.
지주사인 (주)유성의 대표는 신사업을 발굴하는 일들을 했다. 대부분은 기업에 대한 투자였고.
수평적인 관계였지만, 그들이 말할 곳이 없으니 대표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네. 윤도경 지사장의 말처럼 권한은 불확실한데 책임은 온전히 져야 한다는 것, 권력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부 구성원들의 이야기였습니다.”
대표의 말에 한태오와 기획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고민을 해볼 가치가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 머리가 아파. 그저 네게 권한이 있으면 어떤 경영을 할 건지를 물어봤더니, 지금의 문제점을 짚어주는 건…….”
한태오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두 번째는 또 어떻고, 분업화가 틀렸다고 말해오는데 이건 당장에라도 바꾸고 싶더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윤도경 지사장께서 핵심을 짚으셨다고 생각하고요.”
자신의 말에 기획실장이 같은 의견을 내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주사의 대표는 한태오와 기획실장을 향해 이야기했다.
“시간이 약이다…….”
“네. 이미 내부에서도 그것을 알고 융화된 부서들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그렇지만, 한두 개의 팀이 생기는 것으로 그것이 바뀌겠나.”
“그렇다고 해서 갑작스럽게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도 무리입니다.”
“경영에 대해 토론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는데…….”
한태오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을 보기 위했을 뿐인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도경의 프레젠테이션은 그런 의미로 세 사람에게 다가왔다.
“이번 발표를 사장단 회의에서 다시 하도록 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뭐?”
대표가 던진 말에 한태오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사장단 회의에서?”
“네, 고민거리가 된다면 저희 셋보다는 계열사의 사장단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 말에 한태오는 잠시 고민을 하다 고개를 돌려 기획실장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 급하게 변화는 할 수 없겠지만, 내부의 이야기는 들어서 바꿀 것은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자네 밥그릇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어.”
“말씀드렸듯 기획실은 유성의 모든 것입니다. 다만, 기획실에서도 내려놓아야 할 몇 가지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윤도경 지사장이 말한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요. 그러나 그건 결국…….”
“나에게 내려놓으라는 거지.”
한태오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결국 선택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도경도 그걸 알았지만, 기획조정실의 권한이라 얘기해 왔을 것이다. 기획조정실이 계열사를 통제하는 건 자신에게 의견을 묻기 때문이었다.
계열사의 대표들도 기획조정실에 보고를 올리는 것이 아닌 자신에게 보고를 올리는 것이었다.
“…….”
한태오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감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경영능력 또한 자신이 남들보다 뒤처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장단 회의에 안건을 올리지.”
하지만, 결단을 해야 했다.
내부 구성원들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한태오의 결단에 감복하면서도 그에게 시간이 필요할 거란 걸 눈치챘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참, 윤도경이는 합격으로 해. 취지에 맞는 답을 했으니, 그게 맞겠지.”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한번 인사를 하고 나가자 한태오는 고민에 잠긴 얼굴이었다.
* * *
“엑셀러스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한편, 도경은 일상으로 돌아와 이지훈에게 업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수익이 꽤 크네요.”
“네. 첫 투자는 PI(자기자본투자)가 되길 원하지 않으셨지만, 결과가 좋으니 팀원들의 사기가 많이 높아졌습니다.”
도경은 미국 지사가 된 이상 IB(Investment Bank, 투자은행)로서의 기능을 더 강화하고 싶었다.
물론 PI도 그중 일부긴 했지만, 직접투자보다는 중개업을 강화할 예정이었다.
“원하지 않았던 건 아니고요. 중점은 아니었습니다.”
도경이 미소를 지으며 결재를 마친 서류철을 건네자 이지훈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최근에 많이 바쁘신 것 같습니다.”
“아! 네.”
“무슨 일이 있으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김우혁 부장께서도…….”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손사래를 쳤다.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니까요.”
“개인적인 욕심이요?”
“네. 뭔가 좀 발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요즘 해서요. 그래서 책도 읽고 이런저런 짓들을 많이 했네요. 업무에 방해가 됐죠?”
“아! 아닙니다.”
이지훈은 화들짝 놀라 도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워낙 그런 것도 못 느끼도록 업무 시간에는 업무만 하셨으니까요. 그런 거였군요. 연유를 알게 되니 더 존경스럽습니다.”
“네?”
“업무 시간에는 업무를, 또 개인 시간을 쪼개어 자기개발을 하신다는 게…….”
“하하하, 너무 좋게 생각해 주십니다.”
“그럼 더 이상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중개 업무에 대해서 직원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고 보고드리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이지훈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나가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의 행동이 어지간히 신경 쓰였나 싶었다.
“걱정해 줘서 고맙기도 하고…….”
지이잉-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휴대전화에서 진동이 울렸고 화면을 확인한 도경은 놀란 얼굴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회장님, 윤도경입니다.”
-그래, 잠깐 전화 괜찮나?
“물론입니다. 한국은 늦은 시간일 텐데…….”
도경은 그리 말하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두 시를 넘어가고 있었는데, 이 시간이면 한국은 새벽 네 시였다.
-나이를 먹으니 밤잠이 없어서, 이맘때쯤이면 일어나.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태오는 저리 말했지만, 워낙 잠이 없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발표 잘 봤어.
한태오의 입에서 발표 이야기가 나오자 도경의 얼굴에는 송구스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에둘러 말하는 데 선수가 된 걸 보니, 자네도 이제 임원이 되었다 싶구먼.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야. 오히려 나를 배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어. 자네는 원래 말 안 가리고 해서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지 않나?
도경은 발표 내용에 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물론 그 자리에 한태오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그에게 보고가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태오가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가지 물어봄세.
“네. 말씀하십시오.”
-내가 그룹의 성장에 방해가 되나?
도경은 이 질문이 자신에게 올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발표를 했을 때 올 수 있는 반향 중 한 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닙니다.”
-그럼 그 이야기는 무엇인가? 결국 내가 각 계열사들을 컨트롤해야 하는 걸 멈춰야 한다는 말 아닌가?
기획실장은 그리 말했다.
‘기획조정실은 유성의 모든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한태오는 유성의 모든 것이다.’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계열사에서 경영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렇다는 건 그 보고들이 모두 기획실로 향해야 하고, 회장님의 결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제가 말한 것은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지 회장님의 존재가 아닙니다.”
-내게 내려두라는 말이 결국 그게 아닌가?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나에게 큰 고민을 주고 자네는 웃는구먼.
“그런 것이 아닙니다. 회장님, 계열사의 대표들 모두가 회장님이 직접 임명한 사람들입니다.”
-…….
“능력이 있으니 임명하셨을 테고, 그런 사람들이 회장님의 생각과 다른 선택을 할 일이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럼 또 어떻습니까? 그 선택으로 나온 결과에 대한 벌은 회장님께서 주실 텐데요.”
도경은 한태오의 마음을 이해했다.
아니, 솔직히 이해하진 못한다. 자신은 대기업의 총수가 되어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한태오의 마음속에 있는 불안함이 어떤 것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회장님, 그렇다면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십니까?”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