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70)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470화(470/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70화
-만족하나?
다음 날, 업무를 마치고 퇴근한 도경은 서재에 앉아 화상 대화를 하고 있었다.
모니터 화면 너머에는 회장실에 앉아 있는 한태오의 모습이 보였다.
“그저 존경스럽습니다.”
-만족하냐고 물었더니, 다른 말로 돌아오는구먼.
한태오는 자신의 물음을 교묘하게 피해 가는 도경이 탐탁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제가 만족하고, 하지 않고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도경은 화면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태오를 향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회장님께서 이리 빠른 결단을 내리신 것에 대한 존경의 마음뿐입니다.”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잠시 생각하다 입술을 떼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모를 수가 없었다.
내부의 불만 사항은 모두 자신에게 들려올 수밖에 없는 구조니까.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거야. 회사를 또 빼앗기는 기분이었으니까.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좋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회사는 주주의 것이었지 한태오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다만, 한태오는 태어나서부터 앞으로 유성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커왔을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업業이 유성그룹의 회장이었던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위로의 공감을 표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더 이상 그룹에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윤 지사장.
도경은 자신을 향해 부르는 한태오에게 집중했다.
-그게 아니었던 거야. 내가 아집을 부리고 있었던 거지. 작년쯤부터 느꼈어. 보고를 받는데 내가 더 이상 저 친구들이 하는 말을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기술은 점점 고도화되어 있었고, 여러 분야가 하나로 합쳐져 한 개의 상품을 탄생시켰다.
-그래서 공부도 했지. 그런데 안 되더군. 슬슬 은퇴 시기를 생각하고 있었어. 그런데 자네는 다르게 말해오더군.
도경은 그날 새벽 한태오 자신에게 물러나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등기 이사로 등록하고 이사회에 참여하고, 그룹의 중점 사업인 반도체와 이차전지 기업에도 이사로서 등록하라고.
-그래서 궁금했네. 그날은 물어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물어봐도 되지 않겠나?
한태오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는 경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험 주제에 대한 발표도 제 생각대로 할 수 있었던 거죠. 그저 제가 불편했던 것만 말하면 되었으니까요.”
도경은 자신이 시험에서 발표한 내용은 모두 자신이 사원 때부터 느꼈던 불편함이었다.
“회장님께서는 제 발표가 다른 분들보다 뛰어나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제가 경영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
“다른 분들은 경영에 참여하시는 분도 있으시겠죠. 그분들은 현재의 시스템이 쉽게 바뀌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던 거고요.”
도경은 다른 사람과 자신은 누가 뛰어난가의 차이가 아닌 그저 경험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경험이 없으니 호기롭게 지를 수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 제 의견에 많은 분이 동참해 주시는 것은 제가 이 그룹의 톱니바퀴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도경은 한태오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회장님께 말씀드린 겁니다. 진짜 경영에 참여하시라고.”
-…….
“회장님은 톱니바퀴의 정점에서 아무것도 보고 계시지 않았습니다. 톱니가 점점 닳아가는데도요.”
한태오는 자신이 그룹 전체를 경영한다고 생각했지만, 도경이 생각하는 경영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논의되고,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이 단 말 한마디로 사업을 뒤집어엎어 버리는 것은 경영을 해보지 않은 도경도 경영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회장님의 감과 안목 그리고, 경험은 그룹의 자산입니다. 저는 유성은 아직도 한태오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는 아닙니다.”
-그래서 나서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함께 조직 속에 들어가셔서 보셔야 합니다. 회장님의 안목으로 뽑아둔 CEO들이 얼마나 유능한지, 이 조직의 문제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도경의 말에 한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께서는 ‘내가 없으면 유성은 안 된다’라는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계속해서 그런 마음을 가지신다면 유성은 지속가능할 수 없습니다.”
재계 거물인 한태오도 결국 언젠간 그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테니까.
“권한을 늘려주시고, 그들에게도 경험과 책임을 심어주세요. 그랬을 때야말로 우리 그룹은 누구 하나에 의해 굴러가는 기업이 아닌, 지속 가능할 수 있는 기업이 될 겁니다.”
도경은 자신의 말에 연신 주억이는 한태오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께서 이번에 보여주신 결단은 제게도 여러모로 배울 점이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하하하.
한태오는 크게 웃으며 도경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 경영에 관해 잘 모른다고 했지?
“네.”
-걱정하지 마. 앞으로 6개월 동안 내 모든 것을 가르쳐 줄 테니.
“그게 무슨…….”
-ELP에 합격했다는 말이야.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자네는 자네 기수에서 1등을 해야 수료시켜 줄 거야.
“네?”
-그룹 계열사 대표들 데려다 놓고 교육했는데, 1등은 해야지? 각오하게.
한태오의 말에 도경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고, 한태오는 그 얼굴이 재미있다는 듯 껄껄거리며 웃었다.
* * *
“이사님, 주말에 뭐 하십니까?”
한 달 후, 도경은 유성투자증권 미국 지사 앞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있었다.
도경의 옆에는 이지훈과 김우혁이 앉아 있었는데, 이들의 손에는 커다란 샌드위치와 커피가 들려 있었다.
“바쁠 것 같습니다.”
“아니, 이사님. 요즘 연애하십니까?”
“네?”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던 도경은 의아한 얼굴로 김우혁을 바라보았다.
“주말에 저희 집으로 한번 모시려고 했는데, 매 주말마다 바쁘다고 하시니 기회가 나오지 않네요.”
“아…… 저도 정말 가고 싶습니다만, 정말 너무 바쁩니다.”
기실, 도경은 주말마다 그룹에서 진행하는 CEO 교육 과정인 ELP에 참가하고 있었다.
도경의 조는 해외 지사에서 일하는 관리자급 인물들이 모인 조였는데, 유성바이오 유럽 지사장과 유성화학 미국 지사장이 같은 조원이었다.
주말마다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해 교육을 받았다.
“요즘 진짜 저도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토요일에는 경영에 관해 학계, 재계 인물들의 강의를 통해 배웠고, 일요일에는 전주에 받았던 과제를 발표해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보안 사항이었고 아무리 가까운 이지훈이나 김우혁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설마 아직도 공부하십니까?”
김우혁의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이지훈이 묻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기 빌딩 건설이 들어갔잖아요.”
유성투자증권이 마이애미시로부터 받아 윈덤그룹과 함께 진행 중인 본사 사옥 건설이 설계 단계를 마치고, 건설에 들어갔다.
“그곳에 입주하게 되면 지금보다 지사 규모가 더 커질 텐데 그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경영해야 하나…… 그런 걸 공부 중입니다.”
“이야…….”
도경의 말에 김우혁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벌써 경영인의 길을 생각하시네요.”
“하하하, 그런 거 아닙니다.”
도경은 크게 웃다가 이내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제일 잘하는 게 투자인데, 선수는 필드에서 뛰어야죠.”
“그럼 만약 갑자기 이사님께 유성투자증권 대표직 제안이 들어온다면요?”
김우혁의 물음에 도경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두 사람이 궁금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자 도경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진지한 답을 원하는 거죠?”
“그럼요.”
“거절할 겁니다.”
“대표직을요?”
“네. 아직 더 해야 할 게 많아요. 필드에서 최고가 되지도 못했는데 뒤로 가긴 싫거든요.”
“경영도 정말 잘하실 것 같은데…….”
김우혁은 아쉽다는 듯 쓴 입맛을 다셨다.
“저는 더 하고 싶은 게 많아요. 그리고 우혁 부장님도 한국에는 못 들어가시겠네요.”
“네?”
“한국에 들어가시면 워낙 죽이 잘 맞는 양반이 하나 있어서요.”
도경은 김우혁에게서 진한 최우진의 향기를 느꼈다.
자리가 잡히니 김우혁도 여유가 생겼는지 농담도 자주 던졌다.
“일을 안 하실 것 같으니, 미국 지사에만 계셔야겠어요.”
도경은 그리 말하고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로 들어갔고, 김우혁은 벙찐 얼굴로 도경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옆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이지훈을 바라보았다.
“누군데?”
“있어요. 선배랑 완전 똑같은 분.”
이지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경을 따라나섰고,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김우혁은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두 사람을 따라나섰다.
* * *
“스테판을 정말 잘 데려온 것 같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일상으로 복귀해 일을 하고 있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습니까?”
이지훈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걸 본 적이 없던 도경은 의외라는 얼굴로 물었다.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회의에서 계속 까여도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제안합니다.”
이지훈의 말에 도경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네. 스테판 덕분인지 모르겠으나, 처음에는 자기주장을 하지 않던 직원들도 요즘은 회의 때 아이템을 제안합니다.”
“좋네요. 스테판을 면접할 때 특유의 자신감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도경은 스테판 그린의 자신감이 좋았다.
“지훈 본부장님을 첨 봤을 때 모습 같기도 하고요.”
“저를요?”
“네. 그때 기억 안 나십니까? 같은 팀의 부장님한테도 제 할 말 다 하셨잖아요.”
“그건…… 이제 어릴 때라…….”
이지훈은 뒤통수를 긁적였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직원들이 창의력을 발산한다는 소식만큼 좋은 소식은 없습니다. 매우 좋네요.”
“여기 직원들이 제안한 아이템 중 내부 회의에서 반응이 좋았던 것들입니다.”
이지훈이 보고서를 건네자 도경은 들뜬 마음으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지사장님께서 가장 중점적으로 둔다고 하셨던, 중개 업무를 중점으로 고려했습니다.”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서류를 훑어 내려갔다.
“재미있는 아이템들이 많네요. 두고 가시면 제대로 읽어보고…….”
그렇게 말을 하던 도경은 서류에 적힌 특정 부분에 시선이 멈췄다.
그러고는 흥미롭다는 듯 정독하기 시작했다.
“이거 누가 낸 거죠?”
도경은 보고서에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물었고, 슬쩍 서류를 확인한 이지훈은 입을 열었다.
“스테판입니다.”
“지금 스테판 제 방으로 보내주세요.”
“바로 말씀이십니까?”
“네. 지훈 본부장님도 함께 들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지훈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섰는데, 도경은 완전히 빠져든 듯 보고서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