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48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87화(487/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487화
“저는 정말 1차원적인 인간입니다.”
회의가 끝나자 도경은 펀드 운용팀의 팀장인 스테판 그린과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팀원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스테판은 한숨을 내쉬며 그리 입을 열었다.
“솔직히, 정말 솔직하게 보스한테 약간 실망했었거든요.”
도경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스테판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매크로 펀드까진 좋습니다. 가장 어렵기 때문에 펀드매니저의 능력을 많이 타는 펀드가 매크로 펀드니, 보스의 뛰어남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헤지펀드 전략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매크로 펀드는 기술적인 것보다 시류를 읽어내는 인사이트가 누구보다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펀드매니저의 능력이 가장 중요했고, 도경이라는 플레이어가 있기 때문에 매크로가 가장 알맞다고 스테판은 생각했다.
“그렇게 기대하고 있는데, 보스의 입에서 나온 첫 투자 대상이 정유산업이었어요. 정말 실망했었습니다.”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 중동 정세가 불안하니까 모두가 유가가 오를 거라고 예상하고 있고…… 앞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점점 커질 테니까요.”
“그렇지.”
“조금 전 회의에서 말씀하신 COP28도 유가 상승엔 호재였어요. 폐지라는 단어로 합의문이 끝났으면, 유가는 내렸겠죠.”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그래서 아…… 우리 보스가 안전하게 가려고 하시는구나 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 나도 처음엔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출발했으니까.”
며칠 전, 서재에서 고민하던 도경은 흘러나오는 뉴스 속보를 보며 바로 유가를 확인했다.
예멘의 후티 반군이 덴마크의 글로벌 1위 해운회사 소속의 컨테이너선을 공격했다는 속보가 나오자마자 유가는 5% 이상 치솟았다.
물론 후에 조금 진정되어 내리기만 하던 유가는 오랜만에 3% 이상 상승한 채로 장을 마감했다.
“그래서 정유산업에 관해 공부했지. 시작하고 나니 전통적인 원유 산유국들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었어.”
“셰일 혁명 때문이죠.”
“맞아. 그래서 셰일 에너지로 눈을 돌렸지. 재미있더라고. 올해 천연가스 가격이 안 오른 거 알지?”
도경의 물음에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겨울이 되면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아오른다.
워낙 많은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줄였음에도,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는 뛰지 않았어. 그 이유가 뭘까?”
“셰일가스인가요?”
“맞아. 러시아가 먹고 있던 유럽의 천연가스 파이를 모두 미국이 가져왔어. 어마어마한 수요를 모두 미국이 감당하고 있다는 거지.”
셰일 암석을 추출하면, 가스와 오일이 함께 나왔는데 오일보다는 가스가 더 많이 추출되었다.
셰일가스는 기존에 사용하던 가스와 성분이 유사해 바로 투입해도 될 정도였기 때문에 러시아 천연가스의 수요를 모두 흡수하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은 계속해서 오일을 퇴출하려 할 거야. 추출 과정에서도 또 내연기관 자동차라든지 그런 곳에서 탄소를 배출하는 것이 너무 크니까. 전통적인 산유국들은 타격을 입겠지.”
“그렇다면 셰일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것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바이든 정부가 미국의 석유산업에 강력한 규제를 하는 게 셰일 추출이 환경오염을 부추기기 때문입니다.”
셰일 추출은 수압파쇄 방식이었다.
지하 2~4㎞ 깊이의 셰일층에 모래와 화학 첨가물을 섞은 물을 고압으로 분사해서 암석을 파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식이 문제였다.
파쇄 과정에서 사용하는 물이 지하수층에 유입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셰일 가스 생산 과정에서는 메탄이 배출되었는데, 이산화탄소보다 지구온난화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메탄 문제는 상관없을 거야. 이미 오바마 시절부터 규제했었기 때문에 셰일 업체들이 대응을 확실하게 해뒀거든.”
유정이나 저장고, 송유관에서 누출되는 메탄을 억제하는 장비들이 이미 개발되어 있었고, 트럼프 정부 때 잠시 풀리긴 했지만,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는 다시 셰일 기업들이 규제에 대응 중이었다.
“문제는 지하수 문제인데. 이 부분도 내가 말한 리프랙킹 공법이 도입되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도경은 여전히 의문이라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테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셰일을 다 추출하고 폐쇄했던 셰일 유정에 다시 고압의 물을 쏘면 기존에 추출하지 못했던 가스나 오일을 다시 추출할 수 있는 거지.”
“그게 환경 규제와 상관이 없나요?”
“완벽하게 없진 않아. 하지만, 미국 정부는 새로운 셰일 유정을 오픈할 때 강력한 규제를 하고 있어.”
이전에 만든 것들에는 적용되지 않는 규제였다.
셰일 업체들이 많이 파산한 이유는 추출이 끝난 셰일 공을 폐쇄하고, 새로운 시추공을 열었어야 했는데, 강력한 정부의 규제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드니 채산성이 없었다.
다시 말해, 규제를 모두 지키며 새로운 유정을 연다면 거기서 생산되는 가스나 오일에 비해 더 많은 돈이 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이미 열어놨던 막대한 양의 시추공을 다시 활용할 수 있다면?”
“돈이 들지 않겠네요.”
도경은 자신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한 스테판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생각해 두신 기업이 있으신가요?”
“있지.”
“어디인지…….”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은 종합석유화학 기업이었다.
석유와 가스를 탐사하고, 개발과 생산을 했고, 염소, 염화칼슘 같은 화학물질과 비닐을 생산했으며, 석유를 저장 및 운송을 해주는 부가 산업까지 석유와 관련된 모든 산업을 다 하고 있었다.
“옥시는 다른 기업들보다 미국 생산량이 많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 중 약 80%가 셰일 오일이야. 그리고 셰일 오일 생산량의 약 70%가 우리가 다녀왔던 퍼미안 분지 전체에서 생산되고 있고.”
“설마…….”
“맞아 퍼미안 분지의 유정 대부분을 소유한 게 옥시덴탈 페트롤리움이야.”
도경의 말에 스테판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보스는 짧은 시간에 이 모든 논리를 톱니바퀴가 굴러가듯 맞춰 나갔다.
“셰일 오일을 추출하기 위해 신규 유정을 파면 손익분기점이 배럴당 63달러야.”
즉, 셰일 오일의 가격이 배럴당 63달러가 되어야 수익을 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오늘 자 WTI유 유가가 배럴당 67달러더군.”
즉, 신규 유정을 열고 기름을 뽑아내 봤자 배럴당 4달러의 이득밖에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미 뽑아내고 폐쇄한 셰일 시추공을 다시 열면 채산성은 배럴당 39달러.”
“오늘 유가 기준으로 배럴당 28달러 이익이군요.”
“맞아. 이렇게 낮은 손익분기점은 만약 후에 다른 산유국들과 치킨게임이 시작되더라도 미국이 질 수 없어지는 이유가 되지.”
“왜 크기가 작은 옥시를 선택하신지 알 것 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미국의 정유주 대장은 엑슨 모빌이었고, 셰브론이나 코노코필립스 같은 거대 기업도 있었는데, 왜 옥시인가에 대한 의문도 가졌었다.
“그리고 옥시는 지금 어마어마한 투자를 진행 중인 사업이 있어. 그게 한 가지 이유가 더 되겠네.”
“뭡니까?”
“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
우리말로 하자면 탄소포집기술(CCS)이었다.
“CCS는 아직 부족한 기술이 아닌가요?”
“맞아. 그런데 옥시가 투자하는 사업은 기존의 CCS와 좀 달라. EOS(석유 회수)라고 불리는 기술인데. 쉽게 얘기하자면, 유전에 원유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반대쪽에 구멍을 뚫어서 이산화탄소와 물을 밀어 넣는다는 거지.”
도경의 말에 스테판은 집중했다.
“그렇게 된다면, 바닥에 남아 있던 원유는 밀려서 시추공으로 올라올 테고, 밀어 넣었던 이산화탄소 기체는 땅속에 갇혀 있겠지.”
이를 지중 저장이라고 했는데,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이었다.
“내 눈에는 옥시의 약점이 보이지 않는데?”
“워런 버핏도 그래서…….”
옥시의 주식을 계속해서 줍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워런 버핏이었는데, 그가 옥시의 주식을 매집하자 따라 들어간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입었다.
옥시의 주식은 계속해서 가격이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쎄. 워런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옥시를 매수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옥시의 가격은 아주 낮아서 진입할 만한 것 같은데. 어때?”
도경의 물음에 잠시 생각을 하던 스테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설명을 듣고도 반대하면…… 제가 바보겠죠.”
“좋아. 그렇다면, 내 턴은 끝났는데. 스테판, 기대해 봐도 되겠지?”
도경의 물음에 스테판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팀원들과 아주 어마어마한 산업을 골라보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없어.”
“해내보겠습니다.”
주먹을 꽉 쥐며 마음을 다잡는 스테판을 바라보며 피식하고 웃었다.
* * *
“요즘 금융가가 조용합니다.”
며칠 후, 도경은 이지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지훈이 그리 말해오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침에 출근하다 보니 다들 얼굴이 말이 아니더군요.”
“PIF가 투자처를 찾고 있다는 말에 이 마이애미가 들썩이네요.”
PIF의 중개인이자 대리인인 파흐드는 마이애미의 수많은 헤지펀드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PIF를 고객으로 모시기 위해 거대 헤지펀드들부터 중규모의 헤지펀드들까지 기존의 상품을 재정비하거나, 새로운 펀드를 만들고 있었다.
“자, 여기 결재했습니다.”
도경은 결재를 마친 서류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채권은 확실히 지훈 본부장님이나 우혁 본부장님 그리고 테일러가 있으니 든든하네요.”
“믿고 맡겨주십시오.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네. 고생합시다.”
이지훈이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나가려던 찰나 노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스테판이 방으로 들어왔다.
“리, 안녕하세요.”
“스테판, 오랜만이야. 같은 층에 있는데 펀드운용팀 팀원들은 보기가 힘드네.”
“이해 부탁드려요. 제 얼굴 보이시죠?”
스테판의 말에 이지훈은 피식하고 웃고는 등을 두드려 주었다.
“고생해.”
이지훈은 도경에게 다시 한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방을 나섰다.
“스테판, 갑자기 올라온 걸 보니 답을 구했나 보네?”
“물론입니다.”
도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한쪽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도경의 맞은편에 자리한 스테판은 태블릿 PC를 도경에게 건넸는데, 화면에는 자료가 떠 있었다.
“팀원들과 며칠간 고생한 결과, 저희도 지정학적 리스크에 투자했으면 좋겠다는 결과를 내렸습니다.”
“지정학적 리스크?”
“네. 얼마 전 예멘 후티 반군이 머스크의 컨테이너선을 공격하며 수에즈를 통과하는 상선들이 희망봉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유럽 대륙에서 아시아로 오는 바닷길은 대부분 수에즈 운하를 통해 왔다.
지중해와 홍해를 통과하면 아프리카 대륙의 끝인 희망봉을 돌아오는 것보다 약 30% 이상 기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의 정세가 불안정해지자, 상선들은 그 길을 포기하고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향하고 있었다.
“설마 해운사에 투자하자는 거야?”
그러다 보니 당연히 해상 물류비용이 늘었고, 해운사들은 운임을 더 많이 받고 있었다.
해운사들의 주가가 며칠 사이에 어마어마하게 올랐다.
“아뇨. 그건 좀 1차원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갚아오고 있었다.
“이 시기가 되면 해운업과 더불어 혜택을 보는 산업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해운업이야 수에즈가 다시 열린다면, 운임이 점점 내려가겠지만, 한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산업이요.”
도경에게 맞혀보라는 듯 스테판은 도전해 오고 있었고, 도경은 떠오르는 분야가 있었지만, 이번엔 져줘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도통 모르겠는걸.”
도경의 말에 스테판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보험업계입니다. 해운보험 말입니다.”
스테판의 말에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판의 자신감을 증명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