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15)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15화(515/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15화
“현대 금융사의 성장 역사는 M&A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며칠 후, 도경은 급하게 소집된 유성투자증권 이사회에 참석해 브리핑을 해나가고 있었다.
M&A는 인수합병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금융 분야에서 인수합병은 회사의 성장 전략 중 하나였다.
유성투자증권이 신라증권을 인수해 합병하며 자산 규모나, 매출 규모에서 국내 1위의 증권사가 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대두된 금융위기 당시 이런 미국에는 전 세계를 휘어잡을 만한 메가뱅크(Mega Bank, 거대은행)들이 탄생했습니다. 바로 JPM과 BofA입니다.”
도경이 그리 발표를 이어나가자 이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융위기 당시 미국 금융당국은 재빠르게 부실 금융기관들을 인수할 금융사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 금융기관을 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린스펀 풋.”
한 이사가 그리 답하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전의 연준 의장은 금융위기 때마다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며, 도덕적 해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풋 옵션Put Option은 미리 정한 시기에 주식과 같은 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에 팔 수 있는 권리를 이야기했다.
다시 말해, 일주일 뒤 ‘윤도경’이라는 주식을 100만 원에 팔 수 있는 권한을 들고 있었다면, 일주일 뒤에 윤도경의 주가는 30만 원임에도 100만 원에 팔 수 있었다.
일종의 하락장이 예상될 때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헤징 수단이었는데, 당시 연준 의장은 아시아 금융위기, Y2K, 닷컴버블 그리고 9.11 테러 등 여러 위기 때마다 막대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 주식시장의 폭락을 막았다.
이를 연준의장의 이름을 따 그린스펀 풋이라 불렀다.
“물론 후임 연준의장도 양적완화로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당시 금융위기를 직접적으로 부추긴 월가에 유동성을 공급하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일명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월가가 무분별한 금융상품을 만들어내며 돈에 눈이 먼 상황에서 일어난 금융위기란 점이 문제였다.
“저는 적어도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똑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 않지만, 운율은 맞춘다는 말처럼요.”
도경은 자료가 뜬 화면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경신저축은행은 서울과 인천 등지의 부동산 개발 사업에 PF를 내주는 주요 공급자였습니다.”
“부동산개발 업체 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업의 가닥이 잡히면 제일 먼저 찾아가는 곳이 경신이라고 하더군요.”
이사의 말마따나, 경신은 부동산개발 사업에 대출을 내주며 성장을 했다.
저축은행의 특성상 개인 고객 영업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분명했다. 고객들이 저축은행에는 고금리 적금 상품이 아니면 돈을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금리로 돈을 맡긴 고객에게 적금 이자를 내주기 위해, 반대로는 당연히 고금리로 대출을 내주어야 했는데, 개인은 중저신용자 위주의 대출을, 기업에는 높은 금리가 예정된 부동산 PF 대출을 주로 했다.
“말씀대로 경신의 부동산 PF 비중은 자기자본 대비 65%에 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의 자본 대부분을 부동산 PF로 내주었다는 말인데,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을 때는…….
“익스포저가 엄청나겠군요.”
도경은 이사가 질문을 던지자 고개를 끄덕였다.
익스포저는 위험에 노출된 금액이라는 말이었다.
“그렇습니다. 현재 경신저축은행이 내준 부동산 PF의 연체율은 16.33%로, 업계 평균과 대비해도 높은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대부분 사업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서 그렇습니다.”
도경은 자료를 넘기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건설비의 증가, 인건비의 증가 등 경기가 나빠지자 시행사들은 부동산 사업을 중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도 상황은 좋지 않지만,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수도권은 더더욱 직격타를 맞았죠.”
어마어마하게 시장에 돈이 풀린 시절은 갔고, 더 이상 시장에 돈이 돌지 않게 되자 부동산 개발 기업들은 하나둘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지식산업센터로 대두된 미분양 사태는 개발이 끝났음에도 시행사에서 PF 대출을 갚지 못하는 상황을 발생하게 했습니다.”
부동산 호황기 당시, 주택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가 들어오자 부동산에 투자하려던 돈들은 회피처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찾은 곳은 지식산업센터. 일명 ‘지산’이라 불리는 곳이었고, 그곳으로 막대한 투자자금이 향하기 시작했다.
돈이 몰리는 곳에는 당연히 ‘무분별한 개발’이 뒤따르기 시작했고, 개발업자들은 너도나도 지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신저축은행이 PF를 내준 시행사의 대부분은 지식산업센터를 개발하기 위한 회사였고, 사업이 완료된 지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미분양 사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금 회수가 되지 않았군요.”
“그렇습니다. 원래 같았으면, 이미 분양이 끝나고 PF를 갚아야 했지만, 원금을 갚을 수 없어 대출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만 내는 속칭 ‘좀비 PF’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사들은 남 이야기 같지 않다는 표정으로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증권사도 주된 밥줄은 부동산 PF 개발이었기 때문이다. 유성투자증권은 화정테마파크 사태 때 PF 규모를 줄여 다행이었지만, 다른 증권사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었다.
“좀비 PF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면, 금융기관들은 자의적으로 판단해 시행사에 EOD를 날립니다.”
기한후이익상실(EOD)는 대출의 원금을 회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금융기관이 시행사에게 만기 전에 대출을 회수하겠다고 통보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난 1~2년간 EOD를 날릴 수 없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국은 대주단 협의체를 만들어 EOD를 날리지 말고, 대출 만기를 연장해 주라고 가이드라인을 내렸습니다.”
EOD를 날리면, 건설사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가 무너지면 하청업체까지 무너지는 건설업계의 특성상 연쇄파산을 우려한 선제적 조치였다.
“그런데 이랬던 당국이 최근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저축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대손충당금을 늘리라 지시한 것이죠.”
“그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다. 태원건설 문제 때문이죠?”
이사의 물음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원건설의 장부를 까보니, 그들이 숨겼던 채무들이 하나둘 나왔고 당국은 덮어두는 게 해결책이 아니란 걸 느낀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가, 사전 바탕 설명이었고, 그렇다면 ‘당국은 왜 그런 판단을 내렸을까?’가 중요합니다.”
도경은 지난 며칠간 팀원들과 회의하며 내린 결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당국은 건설사들이 앞으로 계속해서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이와 같은 충격이 금융기관에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선제적 조치를 나서는 것 같습니다.”
“구조조정을 원한다고 보나요?”
“그렇습니다. 다 살리고 싶은데 앞서 말한 미국의 상황과 같은 겁니다. 명분이 없다고 느꼈을 겁니다.”
부동산 호황기 때는 너도나도 큰돈을 벌며, 성과급 파티를 한 건설사와 금융기관들이,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찾아오자 국가를 보며 살려달라고 말해오고 있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당장 사업이 잘될 때는, 분양가를 낮춰 받지도 않았고, 사회에 어떤 기여도 하지 않는 업체들을 살려주는 데 세금을 사용한다? 여론은 극에 치닫겠죠.”
“다른 방법이 필요하겠군요. 당국의 입장에서는.”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렇습니다. 그 방법은 구조조정을 통한 우회 지원이 될 겁니다. 부실한 금융기관은 터뜨리고 시장에서 소화되게 만드는 방법 말입니다.”
“경신저축은행을 터뜨리고…… 정부는 그곳을 시장에서 인수하길 원한다. 그런데 인수는 누가 합니까?”
이사의 물음은 금융계 기저에 깔린 인식이었다.
“제 의견도 같습니다. 영국의 전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가 한 말이 있습니다.”
도경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술을 천천히 떼기 시작했다.
“공포에 질린 금융가들은 영웅이 되려 하지 않는다.”
금융기관들은 지금 다른 부실 금융기관을 인수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 자신들도 위험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를 챙긴단 말인가?
불확실성에 발을 담글 위인은 없었고, 그렇다면 당국이 할 일은 하나였다.
“당국은 한 손엔 몽둥이와 한 손엔 케이크를 들고 나서겠네요.”
이야기를 듣던 류태화가 한마디로 정리하자 모두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비단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규제당국은 한 손엔 몽둥이를 들고, 한 손엔 회유책을 들고는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했다.
“그리고 저축은행을 보유하지 않고, 가장 많은 매출을 올린 금융기관에 그 짐이 떠넘겨질 것이고요.”
그런 금융기관은 한 곳뿐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금융기관 성장의 역사는 M&A의 인수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 짐이 떠넘겨질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성공한 인수합병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도경이 이들을 모아두고 자료를 준비한 이유는 오직 그것 하나뿐이었다.
“발표 고생했습니다.”
상석에 앉은 류태화는 도경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다른 이사들을 바라보았다.
“제가 윤도경 지사장에게 이사회에서 발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도 발표와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어나지 않는다면 좋을 일이었지만, 대비를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번 상황에 대응을 하는 TF(기획팀)를 꾸릴까 합니다. 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대응하기 위한 총괄팀으로…….”
류태화가 모두를 설득하고 있을 찰나, 조용히 회의실 문이 열리며 대표의 비서가 들어와 류태화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조용히 귓속말을 전했는데, 류태화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일주일 후, 금융위원회에서 면담을 요구해 왔습니다.”
“사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국에서 면담을 요청하고 사유를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건, 업계에선 여러 가지를 의미했다.
그대로 대부분은 조금 전 말했듯,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을 확률이 높았고.
“윤도경 지사장.”
“네. 대표님.”
“미국으로 언제쯤 출국합니까?”
“일주일 후입니다.”
“일정을 조금 늦췄으면 좋겠는데요. TF를 맡아주십시오.”
류태화의 요구에 도경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모두를 바라보았는데, 다른 이사들도 류태화와 의견이 같은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에 대한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얼굴로 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에 하나 인수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그건 전문팀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당국과의 협상에는 윤 지사장이 나서주십시오.”
당국을 설득할 적임자는 도경밖에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었고, 길게 심호흡을 한 도경은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 * *
“어서 오십시오.”
일주일 후, 금융위원회.
회의실에는 금융위뿐만 아니라 금감원을 비롯한 규제당국의 책임자들이 유성투자증권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류태화를 선두로 한 유성투자증권의 사람들이 들어서자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위원장님, 원장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류태화는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손을 맞잡았다.
“하하하, 류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그리고 뜻밖의 인물이 함께 오셨군요.”
“안녕하십니까? 윤도경입니다.”
도경은 금융위원장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도경과 안면이 있었던 금융위원장인 이혜연이 떠나고, 새롭게 부임한 금융위원장이었다.
“반갑습니다. 언론을 통해 미국에서의 활약상은 많이 전달받았습니다. 국내에 투자를 하기 위해 들어오셨다고요?”
“조금 과장되었습니다. 국내 일을 정리하고 해외로 다시 갈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모쪼록 미국에서 좋은 활약으로 국내시장도 조금 챙겨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덕담인 말이겠지만, 도경은 등줄기에서 땀이 흘렀다.
당국의 책임자라는 지위는 쉽사리 볼 자리가 아니었으니까.
도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도경을 비롯한 유성투자증권 일행은 나머지 당국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자, 그럼 앉으실까요?”
금융위원장이 그리 이야기하자 모두 자리에 앉았고, 금융위원장은 금감원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이유를 제가 설명해 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금감원장의 물음에 류태화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유성투자증권 측을 모신 이유를 말하고,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금감원장은 그리 말하고는 굳은 표정으로 류태화를 바라보았다.
“유성투자증권에서 부실 저축은행 인수에 나서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