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y Competent Junior Employee RAW novel - Chapter (518)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17화(518/797)
말단 사원이 너무 유능함 517화
“리스크는 확실합니다.”
며칠 후, 도경은 임시로 마련된 경신저축은행 인수 대응을 위한 TF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TF의 실무를 총담당하고 있는 한다현이 말을 하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향했다.
“주요 대출이 부동산과 관련된 대출이라는 겁니다.”
한다현의 말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반적인 금융위기와는 성격이 다르죠.”
“그렇습니다. 지사장님의 말씀처럼 일반 금융위기들은 모두가 예측하지 못할 때 한꺼번에 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미국의 금융위기를 본다면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와 같은 기업들이 일시적으로 물리고 물린 상품에서 리스크가 커지며 터진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수습이 상대적(?)으로는 쉬운 편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개발 사업은 조금 다릅니다.”
한다현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모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술을 뗐다.
“키워드는 서서히 무너진다는 겁니다. 그리고 뜻밖인 곳에서 지속해서 나타난다는 것.”
한다현의 말에 모두가 뜻을 알겠다는 얼굴이었다.
업계에 있는 사람들에겐 공감대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인데, 부동산마다 대출 시점이 다르고, 은행마다 익스포저의 규모가 상이하기 때문에, 금융위기처럼 한꺼번에 연쇄적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어느 날은 A 은행이…… 수습했다 싶으면 한 달 후, B 은행이 터지고, 동시에 C 은행이 터질 수도 있는 게 부동산 개발과 관련된 사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군요.”
도경은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실사의 선행.”
당국에 가장 먼저 요구할 점이었다. 장부를 까보기 전에는 그들의 익스포저가 얼마인지 알 수 없었다.
당국의 요구로 허허실실하며 인수했다간, 그 위험에 유성투자증권까지 잠식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또한, 이번 인수 과정에서 당국에 조건으로 걸 것도 명확해졌습니다.”
“손실 보장이죠.”
테일러가 그리 말하자, 한다현은 이어받아 입을 열었다.
“선례가 있습니다. 2005년 선진증권이 대선증권을 인수할 때, 정부가 손실을 보장해 준 선례가요.”
2004년 국내에선 2금융권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당시 증권사, 카드, 보험사의 강력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며 부실 금융기관들은 인수합병과 매각 대상이 되었다.
당시 선진증권은 업계 4위권의 대선증권을 인수하고, 어마어마한 성장을 했다.
“당시 정부는 기존에 발견하지 못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이를 일정 한도 내에서 당국에서 보전해 주는 항목이 삽입되었습니다.”
한다현의 설명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스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당시 대부분의 펀드와 신탁형 증권저축 상품의 손실을 당국에서 보장해 줬죠.”
“그렇습니다. 특히 이전 대주주의 실패로 인한 법적인 면책권을 받았는데, 이 부분은 저희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대선증권의 기존 경영진에서 펀드 내 일부 문제 자산에 의한 소송 결과로 회사의 책임이 인정되는 부분은 당국에서 손실을 보전한다는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회계 처리와 진행 중인 소송 등으로 인한 손실도 당국에서 보전해 주었다.
“요구하면 내주어야 할 것도 있어야겠습니다.”
다른 부서에서 파견 나온 TF 팀원이 그렇게 말하자 도경은 고민에 잠겼다.
상대는 규제당국이었다.
그들은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존재였고,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한다는 명분 하나만으로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없었다.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도경은 그리 말하며 모두를 바라보았다.
“저축은행은 결국, 저신용자나 시중은행 생태계에서 쫓겨난 국민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합니다. 부동산 개발 사업의 돈줄이 아니라요.”
도경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제시할 것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도경은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겠다는 제안을 할 예정이었다.
당연한 부분이겠지만, 지금 실상은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었으니까.
“자, 그럼. 우리가 할 일이 정해졌네요. 실사에 대비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도경이 그리 지시하자 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다현 본부장, 테일러.”
도경은 두 사람을 따로 불렀다.
“두 사람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던 두 사람은 도경의 말에 집중했다.
“경신이 광윤캐피털의 지분을 보유한 것이 사실인지, 그게 의결권이 있는 지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직원들에겐 지금 오픈하지 마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한다현이 그리 답하자 도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참, 보스.”
테일러는 도경을 향해 할 말이 있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성문건설의 경영진이 사재를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회사의 오너 가문에서 출연하는 것 같더라고요.”
“들었어. 먼저 선제적으로 그렇게 옳은 방향으로 움직여 주면, 길이 좀 더 넓어지지 않겠어?”
도경이 그리 말하자 테일러는 의문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도경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 * *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내줄 수 있는 것은?”
한편, 협상의 반대편인 당국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을 조율 중이었다.
“아무래도 전례가 있는 것으로 움직이는 게 윗선과 여론을 설득하기 쉬워질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보수적인 공직사회에서 금융 공직사회는 더더욱 보수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 선례가 있는 행동보다 중요한 실행책은 없었다.
“2000년대 초반 저축은행 구조조정 당시에 부실 저축은행을 우량 자산 중심의 Good Bank와 Bad Bank로 나누었습니다.”
다시 말해, 경신저축은행 내부의 우량 자산은 Good Bank, 손실이 예상되는 악성 자산은 Bad Bank로.
“그리고, Good Bank의 전액은 민간에서 인수하였고, Bad Bank는 우리 정부에서 손실을 보전해 주며 공공 영역에서 부담하였습니다.”
“가장 클래식 하면서도 양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건이군.”
인수를 하는 주체인 민간금융기관은 우량자산을 온전히 자기 돈으로 인수해 수익을 볼 수 있었고, 당국은 부실자산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약속을 해줌으로써 원하는 저축은행 구조조정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을 보전해 주는 것이 아닌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는 우량자산의 경우는 보전해 주지 않고, 직접 인수해 가라는 명분까지 있으니 여론을 설득하기도 쉬웠다.
“하지만, 그걸로는 여론을 달랠 수는 있겠지만 납득시킬 수는 없겠지. 요구할 게 있을까?”
“경신저축은행의 경우는 현재 부실 저축은행이지만, 상대적으로 상황이 괜찮아진다면 우량한 저축은행입니다.”
“그렇지. 수도권을 기반으로 영업을 하니까.”
대부분의 저축은행은 한 지역에 자리 잡고 영업을 했다.
가령, A 저축은행은 대구와 그 주변 도시에만 영업장을 가지고 있었고, 경신저축은행은 서울과 주변 경기도 지역에만 영업장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산의 규모가 작다 보니 전국에서 사업을 영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태산저축은행도 매년 서울로의 진출을 꾀하지만, 매번 좌절하고 여전히 충청도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선진저축은행은 인천이고.”
“네, 처음부터 서울에 자리 잡고 영업을 하고 있는 저축은행이라는 점이 유성의 입장에서는 경신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경신저축은행은 업계 7위권의 자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이고?”
“네. 그렇습니다.”
“뭐가 있을까?”
“…….”
상사의 물음에 직원들은 고민에 빠진 듯했는데, 이내 한 직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명분이 필요한 조건이라면, 소상공인과 저신용자를 위한 초저금리 대출상품을 운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면 될 것 같습니다.”
“문제는 없을까?”
“네. 시행령상 가능한 일입니다. 마침 서울에서 사업을 영위 중인 저축은행이니 여론의 입장에서도 그런 것을 밝힐 거고요.”
부하 직원의 말에 상사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무제한으로 하면 문제가 될 것 같으니, 기간과 총대출 규모를 정하자고. 자자, 그럼 방금 얘기한 걸 골자로 협상 전략을 한번 짜보자고.”
* * *
“안녕하십니까? 윤도경입니다.”
“반갑습니다. 금융위원회 구조개선정책관 공성은입니다.”
구조개선정책관은 금융위원회에서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자리였는데, 국장급의 직책으로서 고위공무원단에 속할 만큼 높은 직책이었다.
도경은 자신의 카운터 파트너로 국장급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럼 앉으실까요?”
악수를 끝내자 정책관은 도경에게 자리에 앉기를 권유했고, 도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먼저 오늘 자리는 부실 저축은행인 경신저축은행의 인수와 관련한 유성투자증권과 우리 금융위원회 그리고 금융감독원 간의 이견을 조율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며칠 전, 인수와 관련된 제반이 담긴 문서를 보내 드렸는데, 받으셨지요?”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바로 유성투자증권의 의견을 들어보았으면 합니다.”
정책관의 말에 도경은 맞은편에 앉은 당국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첫째, 저희 유성은 경신저축은행을 인수하기 위한 실사를 먼저 진행했으면 합니다.”
도경의 말에 당국자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말씀은 실사가 진행되어야 인수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도경의 말에 정책관은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물론 일반적으로 기업이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하기 위해서는 실사가 우선이었지만, 이번에는 그것과는 다른 케이스였다.
당국의 구조조정에 금융기관이 참여하는 그림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좋습니다. 지금 판단은 하지 않겠습니다. 계속 이야기해 보시지요.”
정책관의 말에 도경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둘째, 만약 인수를 진행하게 된다면 우량자산은 모두 유성투자증권의 자산으로 인수할 것입니다. 다만, 불량 자산들은 당국에서 보전을 해주어야 협상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령, 현재 경신저축은행에서 진행 중인 소송 건으로 인한 손실 등이 확정될 시에 보전을 해주십시오.”
도경의 말에 당국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이었기 때문이다.
“셋째, 경신저축은행에서 손실이 확정된 불량대출의 경우는 당국에서 보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령, PF 대출과 같은 케이스입니다.”
당국은 현재 해당 건에 대한 지원책을 준비 중이었다. 도경은 그렇다면, 이것 또한 협상 테이블 위에 올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부분은 무조건적인 보전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대출에 관해 채무자의 상환 의지가 확실하게 있다든지, 부실 대출이 되어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여파가 큰 건에 관해 보전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도경의 머리에는 성문건설이 스쳐 갔다.
“의지를 어떻게 알죠?”
“성문건설과 같이 오너가가 대출 대환을 위해 사재를 출연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액션이 있으면 그 의지가 확인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좋은 방식인 것 같군요. 앞서 두 번째로 얘기했던 불량 자산에 포함될 것이고요.”
정책관과 더불어 당국의 실무자들이 그 정도면 흡족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도경은 이어 입을 열었다.
“저희의 조건이 관철되었을 시, 유성투자증권은 경신저축은행 인수 이후, 기업금융의 사업을 줄이겠습니다.”
도경의 말에 정책관은 눈을 부릅떴다.
“물론 대폭 줄이지는 못합니다. 아무래도 주요 파이프라인은 기업금융에서 나오니까요. 다만, 우리는 저축은행의 본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본질이 무엇입니까?”
“시중은행으로 대변되는 1금융권의 생태계에서 추방된 소상공인과 중저신용자들을 위한 초저금리 대출 상품을 운용하겠습니다. 물론 무제한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매년 가계대출 예산의 40%는 그곳에 사용하겠습니다.”
도경은 그리 말하고 상대의 얼굴을 살폈는데, 당국 실무자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럽다는 듯한 미소가 번져가고 있었다.